비평과 서재/문학과 수필평론

한국수필 2월호 월평

느림보 이방주 2015. 2. 17. 16:14

<2월호 월평 자료>

밥상

 

허 석

 

눈발이 벚꽃처럼 날리던 겨울밤이었다. 군불 땐 구들장은 뜨끈하지만 희미한 알전등 불빛은 어둠 앞에 가난했다. 횃대에는 무릎 나온 조무래기 바지들이 시래기마냥 걸려있고 어머니는 식구들 구멍 난 양말이나 옷들을 기우고 있었다. 솜이불 아래 동생들은 깊은 잠에 새근거리고 온 방안을 등밀이로 휘젓고 다니는 막내의 잠버릇은 늦은 밤까지 멈출 줄을 모른다.

벽 가까이 밥상 하나가 놓여있다. 각진 곳마다 주칠이 벗겨진 소반에 수저와 반찬이 정갈하게 차려지고 모란꽃수 상보로 곱게 덮어두었다. 문풍지가 떨릴 때마다 아랫목에 앙구어놓은 밥주발에 자꾸 눈길이 간다. 일터에서 밤늦게야 귀가한 아버지는 고흐의 자화상처럼 목도리를 위아래로 휘감은 채 하얀 눈을 어깨에 두르고 있다. 밥상너머로 전해오는 넓은 등 그림자는 막 데워낸 된장찌개만큼 정답고 푸근하였다.

구수한 밥 냄새에 잠자던 위가 동하였나보다. 어느새 눈비비고 일어난 막내가 눈치 없이 밥상머리에 달라붙는다. 황급히 떼어놓지만 빤히 목구멍만 쳐다보고 꼴깍거리는 자식에게 결국 숟가락을 넘기며 아버지는 대궁밥을 남긴다. 바깥에서 안주거리를 많이 먹었다며 짐짓 배부른 듯 숭늉으로 입가심을 하신다. 이게 웬 횡재냐 싶게 입맛을 다시는 동생이 얄미웠던 건지, 배곯는 아버지가 속상해서인지 그런 밤에는 잠을 뒤척이곤 했다.

그 때의 밥상은 대단한 권위와 위세가 있었다. 누구하나 끼니를 거르는 경우는 없어서, 강요나 협박이 없어도 온 식구를 한자리에 불러 모으게 한다. ()은 밥상에서 나온다.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이 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것처럼 기분 좋은 일이지만 형제 많은 집안의 밥상은 언제나 모자라게 마련이다. 밥투정이나 편식은커녕 조금이라도 더 먹으려 걸신스럽기 이를 데 없다. 나름대로 요령은 있다. 볼이 미어지게 숟가락질에 부지런하거나 맛난 반찬을 남보다 빨리 내 밥그릇 위에 옮겨다놓는 것.

결국은 탈이 났나보다. 모처럼 고등어조림이 상위에 올랐는가했더니 그만 잔가시 하나가 목에 걸렸다. 동생은 놀라 컥컥거리고 다급한 어머니는 등짝을 탕탕 두들기며 위아래로 훑어 내린다. 효과가 신통찮은지 이젠 김치를 통째로 찢어 억지로 목구멍으로 떠넘기면 덩달아 동생 눈시울도 시뻘겋게 변해간다. 모두가 걱정 반, 웃음 반이다. 그렇게 밥상 앞에 온 식구가 모여앉아 오늘의 이야기와 안녕이 만들어지고 하루의 시작과 끝이 갈무리된다. 대처로 나간 식구 하나의 빈자리가 겨울날 추녀 끝에 매달린 미루나무 그림자처럼 허전하기만 하다.

사업 때문에 가족과 멀리 떨어져 혼자 지낸 적이 있었다. 아내의 정성스런 손길이 아쉽지 않은 곳이 없지만 무엇보다 밥상 앞에서 그 정도가 심했다. 강다짐이나 매나니 밥상이어서가 아니었다. 아무리 배부르게 먹어도, 아무리 귀하고 맛난 음식을 바깥에서 사먹어도 공복감은 여전했다. 양념 하나가 빠뜨려진 것 같은, 기억속의 손맛 같은 무언가를 기대했다가 공허하게 돌아오는 상실감 같은 거였다. 숟가락이 하나여서 외롭고 혼자여서 무거웠던 모양이다. 음식의 배고픔보다 온 식구들이 함께 하는 밥상에 대한 허기였다.

! 배고파!” 그 한마디에 도마에 칼질 소리 요란하고 찌개 보글거리는 냄새가 풍겨오는 그 정겨운 시간에 대한 그리움, 식당에서처럼 손님중의 한명으로서가 아닌 나만을 위해 정성으로 차려낸 밥상을 받고 싶었다. 문 여는 시간도 문 닫는 시간도 없는 밥상, 늦은 밤에 귀가해도 무조건 부엌부터 달려가는 그 사랑받는 느낌이 절실했었다.

일상에서 익명으로 함몰되어가는 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존재감은 사라져가는 현실 속에서 알게 모르게 무기력해지고 자신감을 잃게 될 때가 많았다. 각다분하고 경쟁적인 삶일수록 상처와 좌절을 받기도 쉬운 것이 현실이다. 기운 빠진 어깻죽지에 격려와 위로의 날개가 필요할 때 가장 큰 등받이가 되어준 것은 식구와 함께 하는 따뜻한 밥상이었다. 누군가를 위하여 기다리고 염려하며 차려낸 그 밥상에서 무관심의 결핍은 해소되고 마음에 안정과 평안을 얻을 수 있었다. 가족에게서 받는 존중과 인정받는 느낌보다 더 힘이 나고 든든한 것은 세상에 없었다.

궁정 같은 식탁과 번쩍이는 촛대나 화려한 그릇들을 꿈꾸지는 않았다. 코앞에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눈을 맞추고 살 냄새 맡으며 둘러앉은 두리반 하나면 족하다. 식구들 한팔 안에 된장 뚝배기 하나 놓여있으면 천하별미이다. 내 앞으로 고기반찬 밀어 놓아주고 내 밥숟갈에 갈치 살 발라 올려놓아 줄 수 있는 밥상은 가족밖에 없다. 맛있게 먹는 식구들 보기만 해도 배부른 사랑이 있고, 삼시 세끼 불 지피는 일이 귀찮아도 식은 밥 먹일 수 없는 정성이 먼저인 곳이다. 밥상과 가족은 같은 의미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 밥상은 밥을 먹기 위한 기능적인 식탁이 아니라 같은 시공간 안에서, 같은 형질의 신뢰와 애정을 융합하는 매개체이다.

겨울바람에 행인들의 옷깃이 움츠려든다. 이 차가운 계절에 홀로 먹는 밥상이 또 얼마나 많을까싶다. 사별이거나, 기러기 부부이거나, 독신자이거나, 피치 못할 노숙자이거나, 돈 벌러 가서 어느 외진 숙소에서거나……. 육지로 쪽배하나 연결하지 못하고 멀리 떨어진 외딴섬에 홀로 남겨진 고립과 소외감 같은 것은 혹시 아닐까. ‘애정 없는 상차림이 독이 된다.’는 말처럼 혼자만을 위한 밥상에 결코 건강이나 행복감을 기대할 수는 없겠다. 마음의 고향이자 안식처, 식구들과 둘러앉은 밥상이 살아가는 날들의 생명이고 기쁨이었던 그 순간들이 아쉽기만 할 것이다.

오늘도 식탁에 빈자리가 있다. 어떤 때는 아들이거나 딸이거나, 또 때로는 내가 당사자가 되기도 한다. 서로의 생활 방식이 다르고 사회가 바빠지고 인스턴트식품의 편의성이 늘어남에 따라 부모 형제간은 고사하고 자기 식구들도 한자리에서 밥 먹는 것이 쉽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모두가 노마드가 되어 뿔뿔이 흩어져버려 가족은 존재하지만 식구는 없어진 것만 같다. 오늘은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 또 어디로 가고 있는지 서로가 제대로 보지 못하고 쉽게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하루의 감사기도도 없고 한 끼 밥의 고마움도 없다. 배는 늘 고팠지만 우애와 화목이 넘쳐났던 어린 시절의 정서적 포만감은 이제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갓 난 아기 때 나의 밥상은 어머니 젖가슴이 아니었을까. 옴죽옴죽 빨아대던 흐벅진 젖무덤, 손안에 잡히지도 않는 그 밥상은 우주보다 크고 봄볕보다 따뜻했다. 홀로된 어머니의 외로운 밥상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반찬 한두 개 소반에 올려놓고 맹물에 그리움을 말아 잡숫고 계실 것이다. 이번 주말에 밥 먹으러 가겠다고 미리 전화해야겠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된장찌개 냄새 그득 할 것이다.

 

 

허 석/뉴욕문학 등단, 작품집: , 그 의미 속으로/그 남편, 그 아내

E-mail: sukhur99@naver.com

 

아무것도 미루지 마라

 

이 은 희

 

하루에도 몇 번씩 짐을 싼다. 하루 이틀 묵을 짐이 아니다. 적어도 한곳에서 사나흘 있을 요량이다. 여행 가방 안에 무엇을 넣고 뺄 것인가 매번 짐을 꾸릴 때마다 느끼는 고민이다. 어디 몸만 달랑 떠날 순 없을까. 머리로는 스님처럼 바랑 하나 걸치고 가볍게 떠나는 그림을 그린다. 그러나 소소한 물건 하나 없이 떠난다는 건 역시 불안하다.

평소 들고 다니는 가방에서 나의 성격이 여실히 드러난다. 내 가방은 꽤 무거운 편이다. 큰 가방을 좋아하니 가방 무게 또한 만만치 않다. 그 안에는 메모지와 펜, 소소한 화장품이 든 파우치와 손수건, 핸드폰 휴대용 건전지 등속을 모두 나열할 수가 없을 정도다. 겉으론 필요해 보이는 소지품인데 정작 하루에 한 번도 꺼내지 않을 때가 많다. 어깨에 통증이 일어도 미련스럽게 끌어안고 다닌다. 아픔을 감수할 정도로 나에게 꼭 필요한 소지품인가 묻는다.

나도 모르는 사이 물신주의에 물든 탓이다. 물건의 집착에서 못 벗어나 어깨가 아파도 내려놓지 못하는 병이다. 이런 성격에 집기 비품을 버리고, 하물며 정든 집을 팔고 여행을 떠난다는 생각을 어찌 할 수 있으랴. 어림도 없는 소리다. 여전히 수백일 여행은 상상일 뿐이다.

 

최근 나의 가슴을 뒤흔든 부부가 있다.즐겁지 않으면 인생이 아니다의 저자인 린 마틴 부부가 여러 나라를 머물며 생생히 기록한 여행기다. 70대 노부부가 깊이 정든 집을 팔고 세계 여행을 떠난 이야기다. 지금도 방랑 생활 중이다. 2015년에는 아시아에 머물 계획이고, 그중 가장 가고 싶은 나라가 한국이란다. 나는 그들의 행보를 눈으로 가슴으로 따라가며 적지 않은 감동과 몹시 부러워한다. 그들보다 젊디젊은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의 세계 일주를 노부부가 이뤄내고 있다. 손자를 돌볼 나이에 언어와 음식, 문화가 낯선 나라를 몸소 겪고 느낀 여행기에 감탄이 절로 흐른다.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든 부부는 미뤄도 좋은 건 아무것도 없단다. 대부분 나이가 들면 전원생활을 원하든가,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 소일거리를 하며 안주하려는 경향이 많다. 그런데 고령의 나이에 세계 여행 결정을 내린 그들의 용기와 결단이 대단하다. 부부에겐 웬만한 젊은이들 못지않은 추진력과 패기와 무엇보다 지치지 않는 남다른 열정이 돋보인다. 제일 먼저 가족의 반대에 부딪혀 그들의 뜻을 이해시키고, 집을 팔고 손때 묻은 살림살이를 지인에게 나눠준다. 친구와 가족의 위로를 포기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 과정을 함께 느끼니 이들의 여행은 나에겐 오를 수 없는 산처럼 높아만 보인다.

집 없이 여행하며 사는 홈 프리 라이프(Home Free Life). 여행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가족을 떠나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돌며 생활하기가 어디 쉬우랴. 물건에 대한 집착이나 소유욕이 많은 이는 엄두도 못 내리라. 특히 우리 정서는 집을 구매하고자 해외여행은 고사하고 평생 몸을 바쳐 일을 하지 않던가. 그런 집을 어찌 버릴 수 있겠는가. 그들과 문화적 차이를 상당히 느끼는 부분이다.

여행자는 대부분 돌아갈 집이 기다린다. 어디서든 집 걱정을 하게 된다. 무소유를 강조한 법정 스님도 집 안에 두고 온 난 화분이 말라죽을까 걱정하며 괴로워하는 글이 있잖은가. 부부에겐 발길 머무는 곳이 바로 집이다. 여느 관광객과는 거리가 멀다. 일단 여행 가방을 내려놓기로 선택한 모든 곳에서 잠시 현지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 앞에는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온갖 모험이 기다린다. 그들이 머문 지역은 당분간 그들에게 호기심 천국이 된다.

여행기를 읽은 많은 독자가 마틴 부부에게 공감한단다. 새로운 모험이 선사한 삶의 기쁨이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하리라.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어떤 구속 없이 자유로이 여행하는 그들이 부럽다. 책장을 덮으며 여러 생각이 들락거린다. 현재 난 직장에 얽매여 어찌할 수 없는 형편이나 노후의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발상과 희망을 엿본다. 머지않은 날에 그들처럼 완벽한 떠남은 아니어도 비슷한 짧은 여행을 계획한다. 이루지 못한 꿈을 위로하며 재정비하는 시간이다.

마틴 부부는 즐겁지 않으면 인생이 아니란다. 나에겐 역설이다. 삶이 어찌 즐거운 일만 있으랴. 젊은 시절 노는 것조차 두려운 나였다. 한 목표를 향하여 질주한 시간이 있었기에 이 자리도 있었을 터다. 만족스럽지 않은 내 모습도 그려지지만, 후회스러운 삶이라고 말할 순 없다. 내가 이룬 것에 순간순간 만족하고 행복해하던 시절도 있었으니까. 그들이 계획한 인생이 내 삶이 될 수 없고, 가지 않은 길이 더욱 그리운 법이다. 지금 창밖에는 계절이 건너가는 소리로 수런거린다.

갑장 지인은 뒤늦게 얻은 어린 자녀 덕분에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그녀는 웃어도 웃는 게 아니라며 자신이 좋아하는 계절이 빨리 건너갔으면 좋겠단다. 자녀가 성장한 나 또한 다르지 않다. 늙어도 좋으니 어서 세월이 흘러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허망한 소리를 덧붙인다.

아직도 아무것도 미루지 마라!”는 마틴의 말이 귓전을 맴돈다.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엔 인생은 짧다. 가방을 열고 또 그렇게 고민에 빠진다. 정녕 자연인으로 돌아가는데 절차가 필요하던가. 짧은 여행도 나에게 감사한 일이다. 긴 여행은 몸이 자유로워지면 계획하리라. 가방에서 소지품 하나를 꺼내고자 망설이다 도로 집어넣는다. 내가 감당할 무게인 양 차곡차곡 꾸린다. 다시 원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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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2004년 월간문학 등단

수필집검댕이,망새,버선코,생각이 돌다,

수필선집전설의 벽출간.

이메일주소: ehleeup@hanmail.net

 

 

 

커피 칸타타

 

박 기 옥

 

내 이럴 줄 알았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선들 무사하랴. 이번에는 커피다. 데이트 나갔던 딸아이가 찬바람을 일으키며 제 방으로 쌩 들어간다. 엄마 등쌀에 세 번이나 만났는데 만날 때마다 자판기 커피만 권하더라는 것이다. 식사비에 버금가는 커피는 사치라는 주장이었다고 한다. 딸은 커피를 음식 값과 비교하는 남자가 불편했고 남자는 여자의 커피 선호가 거북했던 모양이다. 난감한 일이다.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가 만난 건가.

젊은 날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둘만의 오붓한 자리를 마련한 남자가 다방에서 커피를 시켰을 때였다. 오후였는데도 남자는모닝커피란 것을 시켰다. 커피에 계란 노른자를 띄워주는특커피였다.

그의 입장에서는 여자에게 비싸고 좋은 것을 사 주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나는 평소에도 날계란이 싫었다. 비릿한 맛이 커피에 섞이는 건 더욱 싫었다. 커피 한 잔에서조차 영양가를 따지는 남자도 재미없었다.

난처했던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상식적으로 계란 노른자는 스푼으로 조용히 떠서 한 입으로 먹는 법이다. 그런 다음 커피는 커피대로 마시면 될 일이다. 그런데 남자는 스푼으로 노른자를 깨뜨리더니 커피를 훌훌 젓는 것이 아닌가. 순식간에 커피는 커피 죽이 되고 말았다. 그는 그것을 입가에 몇 방울 묻혀가며 허겁지겁 떠먹었다. , 그 코믹하고 갑갑한 모습이라니!

딸아이가 제 방에서 비디오의 볼륨을 높인다. 하필이면 바흐의 <커피 칸타타>. 영주(領主)의 딸이 시집은 안가고 커피 마시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다. 영주가 단단히 화가 났다.

, 이 몹쓸 딸 같으니! 커피 좀 그만 마시고 시집이나 가라니까!”

, 아빠 그런 말씀 마세요. 커피를 못 마시면 나는 아마 구운 염소고기처럼 쪼그라들고 말 거예요. 천 번의 키스보다 더 달콤하고 맛있는 이 커피를!”

, . 아이의 방문을 연다. 쟁반 위에 에스프레소 두 잔을 준비했다. 일반 커피의 열배를 농축하여 진하고 쓴 맛이다. 비디오를 끄고 아이 옆에 앉아 눈을 맞춘다.

요즘은 애견카페에서도 커피향내를 풍겨 개들이 신났다네요.”

아이가 내 눈치를 보며 선수를 친다.

자판기 커피도 취향이야. 바흐도 달짝지근한 일회용 커피를 좋아했다더구만.”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마신 딸이 얼굴을 찡그린다. 바로 이 때다! 주먹을 들어 딸의 머리를 힘껏 쥐어박는다.

인생이 본디 쓰디 쓴 거다. 아무려면 남자가 커피보다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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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수필집 <아무도 모른다> 출간

수필창작 <에세이 아카데미> 주강

한국문협 / 한국수필가협회 / 펜클럽 / 수필문우회 회원

 

 

<한국수필 2월호 합평>

 

이방주

(충북수필문학회장, 서원대 수필창작교실 강사)

 

1. 허석의 <밥상>은 현대인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분명하다. 밥상은 사물이지만 때로 사물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안에 내포된 엄청난 일들과 사유를 말하게 한다. 글쓰기에서 무궁무진할 것 같은 '사물' 글쓰기에 대한 생각은 어떤지요?

 

허석 작가의 밥상은 일상의 상투적 사물을 통하여 우리네 삶의 특별한 의미를 구현한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필 창작에서 쉽고 친근한 소재일수록 예술적 아름다움을 그려내기 어려운 법인데 이 작품은 매우 치밀한 구성과 표현 기법을 통하여 문학적 긴장감을 조성하여 전통적인 밥상 문화를 담아내는데 성공한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밥상은 가난했던 시절에는 사람들을 모여들게 하는 권위의 상징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권위의 상징이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은 밥상에서 나온다고 단언하였습니다. 다소 상투적인 이야기로 흐를 수 있는 것을 사랑받는 느낌’, ‘존중과 인정’, ‘신뢰와 애정의 융합의 매개체가 되어 마음의 고향이자 안식처이며 우리네 살아가는 날들의 생명이고 기쁨이라고 구체화하여 시대에 따른 의미의 변화를 일깨워 줌으로써 독자의 가슴에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습니다. 한편 이러한 밥상의 의미가 퇴색되어가는 현실에 대한 아픔을 토로하면서 우애와 화목이 넘쳐난 어린 시절의 정서적 포만감을 그리워하는 것으로 읽는 사람의 가슴을 진하게 울리고 있습니다.

일반적이고 진부한 것으로 전락할 수도 있는 주제를 독자의 가슴에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것은 형상화 기법에 있음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의 형상화 기법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바로 14개의 문단을 3부분으로 크게 나누어 어린 시절 밥상에 대한 기억의 재생’ ‘화자가 아내로부터 받은 밥상에 대한 체험의 재생’, ‘현대 사회에서 결핍된 밥상 문화에 대한 안타까움을 일목요연하게 진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 다음에 밥상을 어머니의 젖가슴과 일치시키면서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의 문단을 구성하는데도 사실의 체험+사색+의미화라는 수필 문단구성의 일반적인 방법을 잘 이행하고 있어서 의미를 뚜렷하게 살려 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의 형상화 기법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비유의 참신성입니다. ‘아버지의 등 그림자는 된장찌개만큼 정답고 푸근하다.’ ‘나간 식구 하나의 빈자리가 겨울날 추녀 끝에 매달린 미루나무 그림자처럼 허전하기만 했다.’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또한 뜨끈하지만’ ‘눈시울도 시뻘겋게’ ‘보글거리는 냄새’ ‘옴죽옴죽 빨아대던 흐벅진 젖무덤과 같은 감각어를 통한 표현도 진한 인상을 남기는데 한몫하고 있습니다. 적재적소에 앙구어놓은’ ‘대궁밥’ ‘강다짐’ ‘매나니 밥상등 우리말 살려 쓰는 솜씨도 그냥 지나치기 어렵습니다.

이와 같은 사물의 의미를 통하여 삶의 의미를 찾아내는 작품에서 중요한 점은 사물의 의미 찾기가 개성적이면서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도록 일반화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허석 작가의 밥상은 이와 같은 수필의 요건을 두루 갖춘 작품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일부 한 두 문단에서 지나치게 상세한 서술로 다소 지루한 감이 드는 점이 옥에 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 이은희 <아무것도 미루지 마라> 는 원관념은 소유에 대한 현대인의 의식을 꼬집고 있지만, 짐짓 여행이야기로 깊이의 깅요를 덜어내고 있다. 이러한 이중적 글쓰기 방법은 어떤지.

 

이은희 작가의 아무것도 미루지 마라는 린 마틴 부부의 여행 에세이 즐겁지 않으면 인생이 아니다에 대한 감동과 작가 자신의 중년 이후의 설계를 밝힌 작품입니다. 대개 이런 주제의 경우 자칫 설명과 교훈적 가르침으로 진부한 느낌을 주기 십상입니다. 또한 텍스트로부터 받는 감동에 매몰되어 화자의 가치 해석이나 의미화를 잃어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의 경우는 독자에게 삶의 지혜를 깨우치려는 속셈도 들키지 않았고, 자신의 감동에 매몰되지도 않았으면서 넌지시 알리는 시사점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린 마틴의 에세이 즐겁지 않으면 인생이 아니다에서 아무것도 미루지 마라라는 소주제를 작가의 내면에서 소화하여 화자의 언어로 독자에게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린 마틴의 에세이를 한 문단의 삽화로 처리함으로써 수필적 구성의 효과를 극대화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효과를 거둘 수 있게 한 이 작품의 구성을 보면 작가 자신의 현재 상황을 서두 부분에 3개의 문단으로 진술함으로써 화자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됨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대상을 문단 3개의 삽화로 비중 있게 처리한 듯하지만, 화자가 중심이 되는 화법으로 서술하여 중심을 잃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즐겁지 않으면 인생이 아니다라는 마틴의 말을 화자 자신의 처지에선 역설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미래의 자유를 위하여 현재를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은 또 하나의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미래의 긴 여행을 위하여 현재의 짧은 여행을 달게 받아들이는 반전이 독자를 안심하게 합니다.

작가는 살아갈수록 집착에서 벗어나 가진 것을 내려놓는 것이 미덕일수도 있지만 삶의 목표를 향하여 매진해온 것이 오늘을 낳게 했다고 생각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고의 전개는 여행이라는 삶의 단면을 통하여 인생 여정에서 소유의 가치를 면면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다소 건조한 듯한 문체이기에 독자를 달콤하게 하지는 않았지만 깊은 사색을 유도하여 생각할수록 오히려 의미가 깊어지는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3. 박기옥의 <커피칸타타>는 사회의 변화를 잘 말해주고 있다. 커피와 결혼하지 않는 젊은이의 모습이다. 커피라는 매개물을 이용하여 낭만적으로 끌고 가면서 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스타일이다. 작가가, 글쓰기에서 스타일을 중시하고 있다면 무엇인지.

 

박기옥 작가의 커피 칸타타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가 작곡한 커피 칸타타에서 영감을 얻어낸 작품으로 생각됩니다. 바흐의 커피 칸타타는 사랑보다 커피를 좋아하는 딸이 걱정되는 아버지에게 드리는 딸의 하소연을 아빠가 들어주면서 자유롭게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으로 결혼을 약속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박기옥 작가의 커피 칸타타는 딸을 둔 부모의 마음을 잘 드러낸 작품이어서 같은 처지의 독자들의 공감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작품에는 바흐의 커피 칸타타처럼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의 코믹한 갈등을 수용하여 재미를 더합니다. 거기에다가 같은 젊은 세대이면서도 남녀 사이의 가치관의 차이를 드러내면서 역시 흥미 있는 이야기로 진행되다가 결국 작가인 부모의 아무려면 남자가 커피보다 못할까하는 기지로 갈등이 해결되는 것으로 결미를 가져옵니다. 젊은이들이 하찮아 보이는 사건으로 큰일을 저버리는 것을 경계하고 깨우치는 교훈적 의미도 있다고 봅니다.

원고지 6매 남짓의 짧은 작품이지만 구조가 탄탄하고 문장이 간결하면서도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어서 여운이 길게 남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현재-딸의 모습 묘사’ ‘과거- 화자의 추억의 재생을 대비하여 반복하면서 의미를 점점 주제에 가까이 수렴시키는 긴장된 기법이 짧은 수필의 전형적인 구성법을 보여주어서 돋보입니다. 거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간결체로 일관한 문장의 함축성으로 여운을 주어 독자에게 사색의 자유를 주어 읽기에 편안합니다. 다만 현재의 갈등은 딸에게 있으므로 부모의 추억을 재생하는 것보다 딸의 고민에 대한 서술이 조금 더 구체화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칸타타는 성악곡이라고 합니다. 자판기 커피를 좋아하는 남성에게 개들도 좋아하는 에스프레스 향기를 외면한다고 탓하지 말고, 서로 다른 속에서 훌륭한 화음을 이루어내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마음으로 부모와의 갈등도 해소되기를 기대합니다.

 

4. 총평을 부탁드리고 굳이 평자의 취향에 따라 한편을 선택한다면 어느 작품인지요.

세 작품 모두 독창적인 사고로 각각의 소재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있습니다. 소재에 담긴 개성적인 의미를 발견했지만 독자 모두에게 일반화되어 수필문학으로 성공적이었다고 봅니다. 굳이 평자의 취향에 따라 한 편을 선택한다면 삶의 하나의 단면을 통하여 인생의 모두를 조명한 이은희 작가의 <아무것도 미루지 마라>를 선택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