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생활과 일상/할아버지가 쓰는 규연이의 성장 일기

지구를 주무르는 사나이 -259일

느림보 이방주 2013. 12. 26. 00:07

2013. 12. 26.

 

나는 지구를 주무르는 사나이가 되었네요- 259일째

 

<규연이의 일기>

 

우리집에는 방이 세 개예요. 제일 큰 방은 엄마 아빠가 쓰는 방인데 커다란 침대가 있고 그 아래 내가 자는 침대도 있어요. 자다가 내가 뒹굴어 갈까봐 테두리가 있는 침대예요. 거실을 건너 현관 쪽으로 가면 아빠의 공부방이 있고 바로 옆이 내방이라네요.

 

내방에 가면 외삼촌이 사주신 밀랑말랑한 매트가 깔려 있어서 내가 넘어져도  아무 걱정 없도록 만들었어요. 내방에 가면 여러가지 예쁜것들이 많아요. 이모가 사준 장난감, 정민이 누나가 쓰던 장난감, 아빠가 성급하게 사온 기차, 장난감 천국이예요. 이번 크리스마스에 할아버지가 사준 재미있는 책도 있어요. 그방에만 가면 혼자서도 심심하지 않아요.

 

나는 엄마랑 놀다가도 심심하면 내방으로 가는데 거실에서 꽤 멀어요. 현관이 컴컴해서 조금 무서운데 내가 지나가면 불이 저절로 확 켜지거든요. 처음에는 그게 더 무서웠는데 이제는 으레 켜지려니 하니까 괜찮아요. 또 며칠 전에 어떤 아저씨가 와서 현관으로 나가는데에 예쁜 덧문을 달아서 바람도 안들어오고 무섭지도 않아요. 사실은 내가 자꾸 현관으로 나가니까 엄마가 아빠랑 상의해서 문을 달았을 거예요. 내가 못들을 거 같지만 엄마 아빠 말을 다 알아 듣걸랑요. 알면서도 말을 하면 자꾸 '옹알옹알 에~~~~에" 이렇게 나오니 부끄러워서 말을 참는 거지요.

 

그방에 가면 많은 장난감이 있는데 새로 파랗고 동그란 것이 내 키만한 걸 새로 들여 왔어요. 내가 신기해 하니까 엄마가 지구본이라고 가르쳐 주었어요. 내가 사는 지구가 이렇게 생겼대요.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엄마는 "여기가 규연네 집이 있는 청주, 여기가 서울, 여기는 고모가 요전에 갔다온 미국, 여기는 엄마 아빠가 신혼 여행 갔던 파리-----" 하면서 가르쳐 주었어요. 그런데 나는 그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냥 기어가서 무언가 궁금해서 짚고 일어서 봤어요. 그런데 동그란 놈이 자꾸 돌아가서 넘어질 뻔 했어요. 짚고 일어서서 이곳 저곳을 살펴보고 있으니까 얼마나 기분 좋은지 막 소리를 질렀지요. 소리를 듣고 엄마가 뛰어 오더니 사진을 찍었어요.

"우리 규연이 잘했어요. 참 잘했어요. 조금 있으면 걷겠네. 이제 며칠 있으면 손을 짚지 않고도 서겠어요. 우리 규연이 장하다."

하면서 눈물까지 글썽글썽하는 거예요. 그렇게 잘한 일인가? 그러면 자꾸 일어서야지. 아빠가 오면 또 혼자서 일어서 봐야지. 이런 생각을 했어요. 

 

할아버지는 일어선 나를 보고 "지구를 주무르는 사나이"라고 칭찬해 주었어요. 정말 세계 이곳 저곳을 주무르는 사나이다운 사나이가 되어야지 하는 마음을 먹었어요.

이제는 어른들에게 안기지 않겠어요. 혼자서 서겠어요. 기분 좋은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