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생활과 일상/할아버지가 쓰는 규연이의 성장 일기

요렇게도 설 수 있어요-260일

느림보 이방주 2013. 12. 27. 22:26

2013. 12. 27.

 

요렇게도 설 수 있어요. 두렵지 않아요. --260일째

 

<규연이의 일기>

 

오늘은 날씨도 추운데 문화센터에 다녀 왔어요. 그런데 엄마가 목욕을 하자고 하네요. 다른 애들은 목욕하는 것을 싫어한다는데 나는 물에 들어가는 걸 아주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어요. 어렸을 때가 언제냐구요? 지금은 다 컸냐구요. 아니 나도 어렸을 때가 있었잖아요?

따뜻한 물에 들어가니 추위가 확 풀리고 축축했던 고추가 고실고실해졌어요. 기분 상쾌하고 좋으네요. 어른들은 혼자서 목욕을 하는데 나오 혼자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목욕을 하면 엄마는 언제나 새옷을 입혀 주었어요. 새옷을 입으면 기분은 좋지만 옷을 입을 때 아주 기분 나빠요. 옷의 팔에 팔을 넣는 것도 그렇고 머리를 통째로 넣고 나올 때 얼굴이 막 아프거든요. 엄마가 조심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떤 때는 눈을 찔리기도 하지요. 그래도 오늘은 울지 않고 잘 입었어요. 엄마가 머리까지 예쁘게 빗겨 주었어요. 엄마는 "우리 규연이 예쁘네. 머리를 빗으니까 더 예쁘네."하면서 내 볼에 뽀뽀를 해 주었어요.

 

나는 엄마 품에서 빠져나가 얼마나 예쁜가 보려고 텔레비전 앞으로 갔어요. 가끔 아주 가끔 이상한 그림 들이 나오는데 그게 언제 나오는지 잘 모르겠어요. 어떤 때는 그림책에서 본 것들이 거기 나와서 막 돌아다니기도 하고 그래서 내가 만져 보려고 해도 만져지지도 않아요. 그런데 아주 가끔이예요. 엄마가 보여줘야만 보이지요. 그래서 나는 내 얼굴이 보고 싶을 때 거기에 비추어 봐요. 전에는 현관까지 기어가서 보았는데 현관에 문이 생겨서 나가지도 못해요.  과연 예쁘기는 하네요. 그런데 이마가 왜 이리 넓지? 할아버지는 이마는 목마당이라 넓을수록 복을 많이 받는다고 해요. 정말 그럴까? 엄마는 배가 뽈록, 엉덩이가 뽈록, 양볼이 뽈록이라고 놀려대요. 정말 이 배가 크면 들어갈려나? 

 

재미가 없어 도로 내려와 소파로 기어 갔어요. 이제 푸릎으로 기니까 순식간에 갈 수 있어요. 전에 누워서 살 때는 답답해서 어찌 살았나 몰라. 소파를 짚고 일어서는 것도 문제 없어요. 내가 좋아하는 장난감인 런닝 홈(집에 대한 공부) 대문에 주춧돌에 올라 서 봤어요. 아! 정말 서 지네요. 두 발을 다 올려 놓고 서 있어도 하나도 두렵지 않네요. 한손으로 소파를 짚고 한손으로 장난감을 짚었어요. 문제 없네요. 머리를 돌려 엄마에게 자랑하려고 하는데 엄마는 이미 나를 보고 있었어요. 세상에 보고 있으면서도 잡아 주지 않았단 말야? 아! 엄마는 내가 혼자도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거예요. 이제 엄마가 나를 믿어주네요. "우리 규연이 잘했어요. 참 잘했어요." 내는 내친 김에 한 발을 들어 올려 보았어요. 그래도 넘어지지 않았어요. 엄마는 더욱 기뻐하면서 나를 안아 주었어요.

 

나도 인제 얼마 안 있으면 엄마처럼 , 아빠처럼 걸을 수 있을 거예요. 정민이 누나처럼 걸어 다니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가고 싶은데를 다 갈거야. 아빠도 9개월 만에 걸었다는데 나도 9개월이 되려면 얼마 남지 않았네요. 그 때까지 걸을 수 있을까? 열심히 연습할거예요. 누가 내 손 좀 잡아 주세요. 할아버지 오셔서 내 손 좀 잡아 주세요. 그런데 요즘 할아버지가 왜 안 오지? 할아버지가 안아주면 아주 높아서 좋은데--------- 할아버지 규연이 안아주러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