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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떠난 여행 - 8. 청평사와 소양감 댐

느림보 이방주 2013. 8. 12. 06:15

2013. 7.31.

 

맑고 태평한 세계 청평사

 

맑고 태평한 세계는 정말로 존재할까? 존재한다면 과연 어디쯤 있을까? 우리 내외는 맑고 태평한 세계를 찾으려 청평사로 향했다. 청평사는 소양강댐 공원에서 배를 타고 들어갈 수 있다고 하지만 나는 북산에서 오봉산길을 넘어 청평사로 들어가는 아름다운 산길을 택했다. 길은 구불구불하고 경사가 급해 운전하다가 몇 번 놀랄 정도로 위험하기는 했지만 태평의 세계를 찾아가는 어려움이 이 정도라면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다. 장송이 우거진 찻길을 몇 구비를 돌고돌아 내려가니 자그마한 청평사 주차장이 있었다. 그러나 많은 차들이 이미 점령하여 내가 주차할 곳은 없다. 평일인데도 청평사를 찾아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햇볕이 뜨거워 손을 데일 것 같은 주차장 블럭 위에 간신히 차를 세우고 절로 향한다.

 

절로 올라가는 길목은 온통 음식점 천지이다. 심지어는 매표소와 붙어 있는 건물에서도 음식을 팔고 있다. 강원도의 특산품인 메밀전, 전병, 도토리묵, 막걸리, 막국수 식당이 많다. 고기는 제발 팔지 않았으면 좋겠다. 식당마다 사람이 가득하다. 쳥평사 계곡을 찾아온 것이지 청평사를 찾은 사람들은 아니다. 맑고 태평한 세상을 찾아온 사람들이 아니라, 시원하고 편안한 곳을 찾아온 사람들이다.

 

악착같이 유혹하는 식당의 하소연을 뿌리치고 계곡에 이르니 이번에는 청평사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에 사람들이 몸을 담그고 있다. 정말 차갑고 시원하게 보였다. 어린아이들도 처녀들도 모두 옷을 입은 채 몸이 젖어 쾌락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오르막길에서 계곡수에 담근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사찰로 향하는 길은 그렇게 지루하지 않았다. 오르막길에서 가장 눈에 뜨인 것은 폭포이다. 아홉가지 소리를 낸다하여 구성 폭포라고 한다는데 마침 장마철이라 물이 많아 쏟아지는 물줄기가 크고 우람하다. 그런데도 그 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평안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오히려 마음이 불안을 털쳐버리게 하는 기분이었다. 

 

청평사(淸平寺)

973년(광종 24) 승현(承賢)이 창건하고 백암선원(白岩禪院)이라 하였으나, 그 뒤 폐사되었다. 1068년(문종 2) 이의(李顗)가 중건, 보현원(普賢院)이라 하였다. 이의의 아들 자현(資玄)이 이곳으로 내려와 은거하자 오봉산에 도적이 없어지고 호랑이와 이리가 없어졌다고 하여 산 이름을 청평이라 하고 사찰 이름을 문수원(文殊院)으로 하고 중창하였다. 1550년(명종 5) 보우(普雨)가 청평사로 개칭하였다. 6 ·25전쟁으로 구광전(九光殿)과 사성전(四聖殿) 등은 소실되고, 현재 보물 제164호인 청평사 회전문과 극락보전 등이 있다.

 

절터는 강원도 기념물 제55호로 지정되었으며,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8호인 3층석탑이 있다. 이 탑에는 상삿뱀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원나라 순제(順帝)의 공주가 상삿뱀이 붙어 고생을 하다가 이 사찰에 와서 가사불사(袈裟佛事)를 한 후에 상삿뱀이 떨어져 나갔다는 소식을 들은 순제가 지었다고 하며, 그래서 이 탑을 공주탑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사찰 내에 있는 고려정원은 일본 교토[京都]의 사이호사[西芳寺]의 고산수식(枯山水式) 정원보다 200여 년 앞선 것이다. 

 

 

청평사에는 일주문이 없다. 폭포를 지나니 성벽처럼 큰 돌을 쌓아 올린 축대가 보이고 축대 위에 절집 기와지붕이 얼굴을 내밀어 절집 배치의 윤곽이 보인다. 게다가 오봉산 학소대가 뒤에서 절을 품어 안고 있어서 안정감이 있어 보였다. 몇 계단을 오르니 바로 청평사 정문인 회전문이다. 윤회의 문이다. 이곳을 들어서면 나는 무엇으로 환생하는가? 절집은 매우 정갈하고 단정하다. 오봉산이 바로 뒤에서 내려다 보고 있고 그 산 줄기가 묘하게 절집을 품어 안고 있다. 회전문을 지나니 대웅전이다.

 

대웅전은 다른 절이나 별로 다를게 없이 웅장하지만 안에 모신 부처님은 아주 소박하게 보였고 천장을 가득 메운 연등도 역시 소박하다. 현판이나 단청이 화려한 것도 다른 절과 비슷하고 크게 꾸밈이 없다. 그렇다고 퇴락한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아내가 법당에 들어가 예배를 드리는 동안 다시 뜰 아래로 내려서니 축대와 계단이 아름답다. 이곳저곳을 살펴보아도 별다른게 발견되지 않는 것은 절집에 대한 상식의 부족이다. 책을 읽어야 한다. 이런 무식으로는 문화를 볼 수 없다.

 

뒤로 돌아 극락보전으로 갔다. 극락보전은 대웅전과 비교도 안될 만큼 아름답다. 단청의 기교도 아름답고 현판도 아름답다. 문살에 연꽃 문양도 논산 쌍계사 대웅전의 그것 만큼은 못되어도 아름답게 만들었다. 그러나 본래 극락전은 고려시대 지은 건물로 한국전쟁 때 불타버리고 새로 조성한 건물이라 한다. 현판을 슨 사람이 인하대학교 총장이라고 되어 있는 것이 그를 말해 준다.

 

산신각은 가지 않았다. 뒤로 돌아가면 일주문에 해당하는 해탈문이 있고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셔둔 적멸보궁이 있다는데 갈길이 멀어 여기서 멈추었다. 이렇게 대충 둘러보고 가는 것은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다. 다음에 청평사에 대하여 좀 더 알고 다시 찾아와야겠다.

 

청평사는 요란하지 않고 아담한 절이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 해서 오만하지도 않고, 바깥 세상이 시끄럽다 하여 휩쓸려 쓸데없는 소리를 떠들지도 않을 것 같다. 오봉산 아래 그의 품안에 조용히 내면을 다지면서 진리를 추구하는 절이다. 내려오는 길은 그치지 않고 시끄럽다. 당나라 공주를 사랑하던 사나이가 상사병으로 죽어 변신한 뱀 이야기 같은 속된 이야기처럼 사람들은 끊이지 않고 괴성을 지르고 깨끗한 물을 어지럽힌다. 그러나 되돌아본 청평사는 아무 말이 없다. 다만 부처님의 은혜처럼 그들에게 맑은 물을 아끼지 않고 쏟아내리고 있다.

 

오봉산 아래 오롯한 청평사 전경

청평사에 올라서기 전 계단 아래에서 바라본 축대와 회전문

아담한 대웅전

아름다운 돌의 안정된 모습

섬돌의 아름다움

극락보전

정갈하고 아름다운 단청

연꽃 무늬의 문살

현판

단청의 구조물

 

회전문 위에서 바라본 안산

구성 폭포의 시원한 물내림

 

소양강댐에 도착하니 해질녘이 되었다.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고 차량을 갈무리이 수 없을 만큼 밀려들어오고 있다.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과 경찰이 함께 단속하고 있지만 무질서가 극을 이룬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왔을까. 덥기도 하고 앉을 자리도 마땅하지 않다. 피곤하다. 간신히 벤치 하나를 차지할 수 있어서 물을 마시고 피로한 눈을 식혔다. 댐은 만수가 되어 어둑어둑하다.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대청댐처럼 넓지 못하다. 가파른 산기슭을 허물고 간신히 주차장을 만들고 주차장 주변에 벤치를 놓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청댐보다 더 많다. 대청댐은 청주 대전 사람이지만 여긴 서울에서 오는 사람들이다.

 

물은 맑고 깨끗하다. 이 물이 흘러 서울사람들을 적셔 주는 것이고 그를 위하여 댐을 건설한 것이다. 남한강에 건립된 충주댐이 그렇듯이 많은 농촌 사람들이 댐으로 하여 고향을 떠나야 한 사실을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 우리는 단순히 유람차 와서 아름다운 물과 산의 경치에 취하지만 여기에는 떠난 사람들의 아픔이 있다.

 

오늘은 강행군이어서 몸이 많이 피로하다. 댐 아래 여관에 짐을 풀었다. 여관은 깨끗하다. 

 

소양호의 맑은 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