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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떠난 여행 - 9. 김유정 문학관과 실레 이야기길

느림보 이방주 2013. 8. 12. 06:20

2013년 8월 1일

 

김유정 문학관과  실레 이야기길

 

김유정문학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뭐라 할까? 농촌 문학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이는 사실주의 문학이라고 할 것이다. 쉽게 해학이라 해버리기도 할 것이다. 우리 문학 특유의 해학과 판소리 문체를 이어받아 고전과 현대의 일부 단절론을 극복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한 문학사적 의의를 중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김유정은 이곳 춘천시 신동면 금병산 아래 실레길 마을에서 짧은 문학 인생을 살면서 샘물을 퍼내듯이 그의 영혼을 토해 놓았다. 비록 생애는 짧았지만 그가 뱉어놓은 아름다운 말은 우리의 영혼을 울리고도 남는다. 그러니 그의 문학 세계를 짤막한 한 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래 전부터 김유정 문학관이 궁금했기에 이번 무작정 떠난 강원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었다. 소양강 댐 아래에서 쉬고 바로 김유정 문학관 찾아가는 길을 내비게이션에게 부탁했다. 실레골에 도착하니 이른 아침이라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관리하는 분들이 문을 열고 청소를 하며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당은 싱그럽고 집안 여기저기 동백을 심어 마치 김유정 문학이 동백꽃 문학처럼 생각되었다. 또 그의 작품 「봄봄」이나 「동백꽃」의 내용을 재미있는 구조물로 만들어 배치했다. 학생들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는 많은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의 작품 「동백꽃」에 의하면 동백나무는 이렇게 집안에 있으면 안되는 배경이다. 나는 문학에서 배경의 의미를 말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황순원의 「소나기」에서 ‘시내 건너 동산 위’와 아울러 김유정의 「동백꽃」'동백꽃 숲'을 예로 든다. 특히 ‘동백꽃 만발한 그 아래’라는 배경은 소설에서 매우 복합적인 공간 의미를 지니고 있다.

프로이드에 의하면 인간의 욕구는 항상 외부로 치솟는다고 한다. 그 말은 어린 아이에서부터 노인까지 다르지 않게 적용되는 말이다. 치솟는 욕구를 모두 세계가 받아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바로 세계와 자아와의 충돌이다. 「동백꽃」에서 열일곱 아이들의 치솟는 사랑의 욕구는 세계가 만들어 놓은 계급이라는 규범에 부딪친다. “가난하다고 해서 어찌 사랑을 모르겠는가?” 소작의 아들이라 해서 어찌 사랑을 참을 수 있겠는가? 마름의 딸이라 해서 어찌 소작의 아들을 안을 수 없단 말인가? 이것이 청춘의 억울함이다. 인간의 욕구가 세계와 충돌은 소설만이 아니라 시나 수필에도 마찬가지로 표현된다. 다만 형상화 기법만이 다를 뿐이다. 

 

인간이 세계로부터 부당하게 당한 억울함에서 벗어나려면 모순으로부터 도망해야 한다. 소작의 아들이라는 운명은 제가 선택한 것도 제 게으름으로 돌아온 것도 아니다. 마름의 딸이라는 것도 원망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몽룡은 춘향이를 보면서 양반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계급이라는 굴레는 젊음의 혈기를 풀어주지 않는다. 그러한 부당한 세계를 잠시이지만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이 동백꽃 숲속이었다. 거기서 그들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인간 해방 경험하게 된다. 솟구치는 사랑을 분출하게 된다. 알싸한 동백꽃 향기를 생강나무의 알싸한 향기라고 생각하겠지만 생각나무는 상처를 입지 않으면 향기가 없다. 그래서 나는 그 두 사람의 성애의 향기라고 단정한다. 그들은 동백꽃 숲 속이라는 그들만의 이상세계에서 마음으로만 통하던 사랑을 행위로 이룬 것이다. 동백꽃 숲 속은 인간 해방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세속의 공간인 마당에 동백나무를 심는 것은 김유정 문학에 대한 미흡한 이해의 결과이다. 

 

황순원의 <소나기>에서 시내 건너 동산 위도 같은 맥락이다. 소작의 아들이고, 못난이였던 소년은 시내를 건너 그만의 카오스에 가서 우월자가 되고 여자의 보호자가 된다. 이처럼 인간은 늘 현실과 다른 세상을 꿈꾸며 산다. 사람들은 꿈을 현존하는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늘 꿈을 꾸며 산다. 잠자다 꾸는 꿈에서도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일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현실에서 미래를 꿈꿀 때도 마찬가지이다. 모순투성이인 ‘여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꿈을 꾸게 마련이다.  ‘저기’를 향하는 우리네 꿈은 지속된다. ‘저기’에 도착하면 ‘저기’는 곧 ‘여기’가 되기에 또 다른 ‘저기’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김유정 문학에서 ‘저기’에 대한 소망은 어느 작품에나 나타난다. 「봄봄」에서 머슴인 '나'는 항상 점순이가 영원한 ‘저기’였다. 「만무방」에서 만무방으로 낙인찍힌 인물이 지향하는 ‘저기’는 어디일까? 사람대접을 받는 일일 것이다. 뇌성마비인 사람이 정신까지 불구가 아니듯이, 벙어리는 영혼까지 벙어리가 아니다. 소작이라고 하여 어찌 꿈까지 소작이겠는가? 모순된 세상에서 저급한 일을 맡아 하는 사람이라고 그가 어찌 가치관도 저급할 수가 있을까? 윗사람이 더 교양과 지식이 높은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사람들은 특히 권력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더 많이 알고 자신의 판단이 맞는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무식한 권력자일수록 더 심하다. 엄청난 착각이다.

 

김유정은 가난했고 젊은 나이에 병중에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서른을 살지 못하고 세상을 버렸다. 병중이었다고 그에게 꿈이 없었을까? 실레골에 머물면서 눈을 뜬 채 꿈을 꾸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문학은 단순한 농촌 소설이 아니다. 계급간의 꿈의 대립을 이렇게 가슴 아프게 표출한 문학은 없다. 그의 해학은 그저 웃음이 아니다. 가슴으로부터 피눈물이 솟구치는 해학이다. 그런 모순의 현실을 해학으로 드러냈다고 해도 웃음만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적나라한 고발이고 치열한 저항이다. 그는 그렇게 못 가진 자의 편에 있었다. 일상의 계급은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영혼의 계급은 영원한 소작이다. 그러기에 늘 지청구의 대상이었던 청소년의 억제할 수 없는 사랑을 이해하는 가장 인간적인 사랑을 표출한 것이다.

 

동백꽃 숲 속은 그냥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동백나무꽃은 햇살에 온기만 스며도 피는 꽃이 아닌가? 산등성이에서 살면서 나뭇가지들 사이로 햇살이 한 줌만 내려와도 노랗게 피어나는 꽃이다. 봄을 맞아 제일 먼저 등성이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열일곱 사랑이 바로 그렇게 솟구치는 풋사랑이 아닌가? 그러니 동백꽃 피어난 숲은 공간만이 아니라 사랑이 샘솟는 그런 계절을 말하는 시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춘향전이 광한루의 봄으로 사랑의 계절을 말했다면 김유정은 동백꽃 숲으로 사랑의 공간과 시간을 다 말해 버린 것이다.

 

김유정이 말하는 동백꽃 숲은 아직 마을로 내려오면 안 된다. 저 깊은 산등성이에 있어야 한다. 아니 인간이 규범이라는 사슬을 지니고 사는 한 동백꽃 피어나는 숲은 마을로 내려올 수 없다. 마을은 언제나 모순이 있는 세계이고 규범은 계급을 바탕으로 한다. 계급은 인간사회가 존재하는 한 없어질 수 없다. 이 사회에서 권한을 위임 받은 모든 마름들은 ‘흉허물 없이 말하라’라고 하지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규범에 어긋나는 다시 말해 계급에 벗어나는 말은 흉허물이 있다는 것은 전제한다. 이렇게 오늘도 수많은 형상의 마름들이 이 사회를 오도하고 있다. 그들이 쏟아내는 플라스틱 언어들이 소작인들을 멍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김유정이 지금까지 살았다면 어떤 소설들이 나왔을까? 신경림 시인처럼 “가난하다고 해서 왜 사랑을 모르겠는가?” 이렇게 하소연했을까? 그렇게 탄식만 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김정한이나 최서해처럼 도끼로 지주의 머리를 찍어 죽이고 마름의 집을 불태웠을까?

 

동백을 여기 심은 것은 꿈을 다 펼치지 못하고 요절한 작가에게 카오스를 만들어 주고 싶은 공무원들의 소박한 소망이라고 생각해 두자. 그렇게 생각하면 얼마나 기특한 일이냐. 나까지 마음이 편안하다. 생가 옆에는 도라지꽃이 한창이다. 도라지꽃은 보랏빛 꽃이나 흰 꽃이나 어찌 그렇게 처절하게만 보일까? 꼭 가난한 어머니의 치맛자락 같다. 병마에 시달리던 김유정의 젊음을 바라보는 벗의 눈길 같다.


문학관을 나오니 마을을 감싸 안고 있는 동산이 포근하다. 나지막한 저 산길을 걸으면 김유정의 다하지 못한 문학의 꿈이 눈에 보일 것만 같다. 

 

김유정 생가의 모습- 재현해 놓은 닭싸움

김유정 생가와 문학관 건물-생가는 장마로 뒷산이 무너져 공사중이라 들어갈 수 없었다.

담장을 가린 동백나무

도라지꽃

김유정 문학의 배경인 실레골 모습과 야산 그리고 높이 보이는 것은 금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