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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떠난 여행 - 6. 비수구미

느림보 이방주 2013. 8. 7. 22:22

2013. 7. 31.

 

비수구미 마을

 

전망대를 지나 아래 지도에서 보이는 것처럼 아흔아홉 구비를 거의 내려 갔을 때쯤 이정표에서 '비수구미" 를 알린다. 경사가 급한 아랫 길은 좁기도 했다. 길가 싸리나무 가지가 타이어에 감기는 기분이다. 한두 구비를 돌고 나니 비포장 도로이다. 돌아가고 싶었지만 감히 말을 꺼낼 수가 없다. 비수구미는 아내라 소망을 노래하듯 외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길은 갑자기 끊어지고 차량 몇 대가 좁은 길가 양쪽에 주차되어 있다. 주인은 있는지 없는지 장마 중에 내비친 태양빛 때문에 불에 달군 철판처럼 지나는 사람에게도 열을 내품고 있다.

 

나루에는 두 척의 배가 매어 있다. 배를 타고 건너 오라는 건지, 약 2km쯤 걸으면 된다는데 걷는 길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말없는 호수의 물결만 찰랑거리고 볕은 더욱 뜨겁다. 지도에 표시된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다. "비수구미지요?" "잘못 거셨습니다." 단칼에 짤라 버린다. 114에 걸어 화천군청을 불렀다.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는데 그 번호이다. 다시 걸었다. 받는다. 배를 보낸단다. 나는 돌아갈까 했는데 아내 얼굴에 미소가 돈다. 

 

 

 

해산터널과 비수구미 그리고 평화의 댐 부근

 

잠시 후에 요란한 엔진 소리가 나더니 물살을 가르며 모터보트가 한대 왔다. 젊은이는 무척 무둑뚝하다. 먼저 뱃삯이 왕복 삼만원이라고 했다. 그래도 타야지. 그런데 배를 타고 산모롱이를 한 번 도니 비수구미 마을이다. 4분 정도 걸린 것 같다. 물이 많아져 길이 묻혔다고 한다. 걷는 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삼만원도 절약하고 산천도 천천히 음미할 것 아닌가? 주변은 완전히 자연 그대로이다. 하늘로 뻗어 가지를 드리운 홍송이 산 그늘을 지운다. 흥건하게 괸 물은 배가 지날 때마다 출렁인다.  

 

비수구미

나물과 약초를 캐며 텃밭을 가꾸며 민박도 받는 오순도순 세 가구 일곱 명이 사는 육지속의 섬마을이다. 한여름 해산터널 근처까지 6km에 이르는 계곡은 가뭄에도 물이 많아 곳곳에 깊은 소를 이루고 있는데 피라미, 꺽지, 참마자, 버들치들이 노닌다. 청정 호수인 파로호와 명산 해산이 어우러져 낭만과 서정을 만끽할 수 있으며, 600년 된 느티나무와 소나무가 마을의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채 마을 어귀에 자리잡고 있다. 화천민 체험장에서는 숯가마 요리체험을, 녹색체험관에서는 민박 및 농촌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배에서 내리니 바로 해산에서 골짜기를 이루며 내려오는 비수구미 계곡의 물이 호수로 흘러들고 있다. 물은 맑고 깨끗하다. 돌에 부딪치는 물에서 맑은 소리를 낸다. 물은 많으나 계곡이 넓어 깊이가 없다. 깊은 곳이 장딴지에 닿을 정도이다. 수면에 햇살이 부서진다. 우리는 나루에서 비수구미까지 들어오는 길을 역으로 걸어 보기로 했다. 아직 점심 때가 되지도 않았고 아름다운 경치도 돌아보고 싶었다. 마을에서 기슭으로 가는 곳에는 철제 현수교를 놓았다. 아마도 군에서 지방을 위해서 돈을 들인 것 같다. 들어오는 길은 나무 그늘이다. 길은 걷기 좋게 다듬어 있다. 우리는 이런 저런 좋은 이야기만 하면서 걸었다. 산이 좋고 물이 좋은 오지에 들어오니 속된 세상의 아웅다웅하는 일은 다 잊었다. 방긋방긋 웃는 손자 얼굴만 자꾸 떠올랐다.

 

되돌아와도 점심 시간이 되지 않아 시냇물에 들어 앉아 더위를 식혔다. 발이 시리다. 마치 이른 봄에 얼음이 녹아 내리는 것만큼이나 시리다. 돌에는 물때 하나도 끼지 않았다. 시내보다 사람들이 더 많다. 아내는 TV에서 본 사람이라며 지나는 이들에게 인사를 한다. 아마도 민박집 주인인가 보다. 식당겸 민박집 대청은 시원하다. 오지에도 냉장고, 에어컨이 있고, 자연 바람을 차단하고 문명의 바람을 쐬고 있는 모습이 아이러니하다.

 

점심 상이 나왔다.  산채비빔밥이다. 아홉 가지 나물과 장아찌 다섯 가지, 그리고 다른 반찬 다섯 가지, 그리고 우거지 된장국이다. 나물 이름을 다 몰라 주인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그는 자랑 삼아 신이 나서 설명해 준다. 취, 다래순 묵나물, 단풍취, 고사리, 병풍취, 부지깽이나물, 깻잎장아찌, 무말랭이, 빙어말림, 병풍취 줄기 장아찌, 무장아찌, 콩잎 장아찌, 김치, 씀바귀무침, 도라지무침, 오이무침이다. 묵나물은 들기름을 넣고 팬에 달달 볶으면서 손으로 조물락 조물락했는지 부드럽다. 묵나물을 한데 붓고 고추장을 넣어 비볐다. 큰 그릇에 하다 가득이다. 시장과 다른 반찬으로 숟가락 가득 퍼서 입에 넣었다. 지나치게 고소한 맛으로 사람을 유혹하지는 않았다. 그냥 텁텁한 맛이다. 그런데 씹을수록 달다. 구수하다. 해산(1194m)과 재안산(955m)의 자연이 입안에 가득하다. 파로호의 옛이야기가 입안에서 오물오물 이야기를 한다. 나는 아내가 남긴 밥과 남은 나물을 한꺼번에 섞어 다 해치웠다. 그냥 산골맛 그대로이다. 만약에 입을 유혹하는 맛이 없다하여 도회인의 입맛에 맞추기 시작한다면 이것도 무너질 것이다. 나는 서둘러 나루터로 나가기를 바랐다. 산채비빔밥을 합하여 우리 둘이서 비수구미에 바친 놀이값은 자그마치 일금 오만원이다.    

 

 

나루에서 바라본 비수구미 마을 전경

 

비수구미 민박집의 산채비빔밥 창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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