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가면극인 봉산탈춤 양반과장을 보면서 서민의 대변자로 등장하는 말뚝이의 지혜에 감탄하게 된다. 말뚝이는 몇 개의 소재로 엮어가는 재담으로 양반의 부도덕, 무식, 허세 등 허위적 권위에 도전한다. 그 도전은 단순한 것이 아니라 때로 조롱도 있고 희화도 있고 신랄한 비판도 있다. '양반, 거처, 담배, 음악' 등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소재들에 알게 모르게 내재되어 있는 계급의식에 비판과 풍자를 쏟아 붓는다. 말뚝이는 기발한 언어유희로 양반을 조롱하다가 단순한 변명을 통하여 안심시키며 결국 당시 계급적 한계를 수용한다. 양반도 말뚝이의 변명을 용납하여 갈등은 일시적이나마 해소된다. 여기서 관객을 포함하는 모든 사람들이 악공들의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한바탕 춤판을 벌이는 것으로 대통합이 이루어진다.

신분 간의 갈등을 보여 주는 판소리 춘향가도 용서와 화합의 춤판과 함께 대통합으로 절정을 이룬다. 공적 공간인 동헌 마당에서 이루어지는 춤판에서 서민은 양반에 한발 다가서는 소망을 이루고, 양반은 한 계단 내려섬으로 인간적 해방감을 만끽한다. 흥부전도 빈부의 갈등을 용서와 화합으로 해소하고 대통합을 이루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경제적 상황이 역전되었을 때 흥부는 놀부를 조건 없이 용서함으로써 과거를 덮고 미래를 향한 대통합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문학 작품은 현실을 반영한다. 봉산탈춤, 춘향전, 흥부전에서 당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꿈과 꿈을 이루는 지혜를 발견할 수 있다. 말뚝이는 계층 간의 갈등을 이해와 용서로 해결하고 대통합을 이루어낸 조상들의 지혜를 대변하고 있다.

이번 18대 대통령선거에서 후보자들의 화두는 '계층 간의 통합'과 '상생하는 복지'로 종합할 수 있다. 이것은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소망인 통합과 상생을 반영한 것이다. 통합은 갈라진 마음을 하나로 묶는 것을 말한다. 이 시대에는 수많은 집단적 갈등이 존재한다. 남북의 이념적 갈등, 동서의 지역적 갈등, 사용자와 노동자와의 갈등, 보수와 진보와의 갈등,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갈등,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갈등 등 통합의 대상은 헤아릴 수 없이 많고, 갈등의 구릉도 또한 깊을 만큼 깊다. 이러한 구릉은 지난 정부에서 무관심했기에 더욱 깊어졌다고 할 수 있다.

갈등 해결의 지름길은 과거의 과오를 이해하고 미래를 위한 관용의 자세라는 것을 고전을 읽으면서 배울 수 있다. 과거에 집착하면 갈등의 골만 깊어진다. 승자의 오만과 패자의 저주 또한 통합과는 거리가 멀다. 네가 나를 따르라고 할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수용하겠다는 용기가 전제 되어야 한다. 이것이 대통합에 이르는 말뚝이나 흥부의 지혜이다.

대통합이 이루어지면 복지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그런데 복지를 꼭 필요한 것이라고 공감하면서도 방법에는 이견을 보이고 있다. 한쪽은 선별적인 복지가 최선이라 하고, 한쪽은 보편적 복지가 궁극적인 목표라면서 대립하고 있다. 이것은 매우 우매한 대립이다. 어떤 방법이든 돈은 결국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오고, 부자들이 더 많이 부담해야 한다. 정부는 복지를 가난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모든 국민에 대한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상생적 복지 정책을 수립하는 기본자세이다.

말뚝이는 천대받는 마부였지만 그의 재담에서 양반에 대한 인간적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 비록 희화와 풍자는 있지만 그 저변에는 사랑이 있다. 통합과 상생이라는 국민의 소망을 이루는 지혜는 바로 상대에 대한 사랑이다. 지금은 가진 자에 대한 못 가진 자들의 섭섭함이 극에 달해 있다. 정치권력이든 경제 권력이든 가진 자들은 못 가진 자들의 안경을 쓰고 그들의 섭섭함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런 안경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새로운 집권 세력이 민중의 통합과 상생의 꿈을 이루어 주는 '말뚝이의 지혜'를 갖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