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답사/등산과 여행

속리산 문장대에서 천왕봉까지

느림보 이방주 2012. 10. 8. 04:28

속리산 문장대에서 천왕봉까지

 

2012년 10월 6일

분평동 남부터미널(07시:35발 직행버스) - 화북탐방지원센터(09:20) - 문장대(11:00) - 문수봉-청법대 - 신선대 - 입석대- 비로봉 - 상고석문 - 천왕봉(14:10) - 상환석문 - 상환암 - 세심정 - 법주사(16:20) - 법주사 터미널(17:10발 직행버스) - 분평동 남부터미널(18:28)

 

 

속리산 천왕봉에서

 

화북에서 문장대까지

한번도 안 쉬고 걸어 보았다.

아주 느린걸음으로 ……


문장대에서

관음봉과 묘봉 상학봉을 바라보고
뒤돌아
멀리 천왕봉까지 가는 등마루를 바라보면서
저 높은 봉우리가

과연 나를 받아주실까 걱정했지만

아주 다소곳한 마음으로 천천히 2시간 반을 걸으니
천왕봉은 아무런 말도 없이 나를 받아 주었다.
천왕봉에서 다시 걸어온 등마루를 바라보니
정말 오늘의 나가 믿어지지 않았다.

세심정으로 내려오면서

이제 정말 이루기 어렵겠지만
날마다 하나씩 비우는 마음으로 지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문장대에서 바라본 관음봉, 속사치, 상학봉, 묘봉

 

  오랜만에 문장대에 올랐다. 전보다 새롭게 보인다. 오늘은 관음봉과 상학봉 묘봉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오늘의 목적지인 천왕봉으로 가는 등마루를 바라보면서 제발 나를 받아주시기를 빌었다. 어느 바람 부는 날 왔을 때 바로 흔들리다가 떨어질 것 같던 철사다리를 난간도 잡지 않고 내려올 수 있었다. 그래도 겸손해야 한다. 혼자이니 말을 안해도 되어서 좋다. 默言---------------.

 

 

문장대서 멀리 천왕봉을 바라보고

 

 

  정상은 그림처럼 간단한 것은 아니다. 내가 잘나서 되는 것도 아니다. 산이 받아주어야 한다. 산이 용납해야 하는 것이다. 문장대를 내려오면서, 천왕봉을 바라보면서 나를 용납해 주기를 천왕봉에게 빌었다. 그리고 아주 겸손하게 천천히 자근자근 걸어가기로 결심했다. 환갑의 무릎을 아끼며 때로 물을 마시며, 좋은 생각만 하며, 가는 길의 아름다운 것들을 찾으며, 그렇게 걷기로 했다. 발걸음이 아주 가볍다. 좋다. 마음을 겸허하게 하면 이렇게 가벼워지는 것을------------.

 

 

물들이기를 시작하는 가을 나무들

 

 

  가을 나무들은 저마다의 색깔로 물들이기를 시작했다. 한여름 동안의 환경의 영향과 하늘이 내려준 사랑과 상처를 이렇게 빛깔에 담아 내놓는다. 거짓없이 -----------. 나무나 사람이나 삶은 거짓으로 되는게 아니다. 나를 보아 달라고 소리쳐서 되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다 보여주는 것을 ----------.  가을 나무처럼 말이다.   

 

 

천왕봉에서

 

  천왕봉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아무 탈없이 나를 받아 주었다. 가는 길도 그렇게 험하지 않았다. 아주 순탄했다. 나는 서두르지도 않았다. 젊은이들이 빠른 걸음으로 따라오면 길가에 서서 길을 양보해 주었다. 그러나 쉬지는 않았다. 쉬지 않고 가다보면 내가 길을 양보해 주었던 그들이 내게 다시 길을 양보해야 한다. 느리지만 쉬지 않는 것은 이런 반기를 주는 것이구나. 젊은 날 왜 그렇게 서두르며 살았는가? 아무 이룬 것도 없이 말이다. 정상석 옆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맞추고 기다리니 성급한 젊은이들이 내게 자리를 비워주지 않는다. 황산에 갔을 때처럼 사진을 아주 찍지 못하지는 않겠지.

  정상 아래 의자가 하나 눈에 보였다. 빵을 반쪽 먹고, 사과를 반쪽 먹고 포도를 반 송이 먹었다. 그리고 가져온 오미자 차를 반 병만 벌컥벌컥 마셨다. 그러다가 不慍선생이 내게 하던 말씀이 생각났다. "형은 왜 물을 그렇게 빨리 마셔? 입 안에 넣고 살살 달래가면서 마셔야지."  다시 한 모금 입에 넣고 그의 말대로 굴리면서 살살 달래 보았다. 오미자차 맛이 새롭다. 따뜻한 물이 목구멍으로 아주 부드럽게 넘어간다. 물 마시는 법을 가르치는 친구. 有朋이自遠方來하니 不亦樂乎아. 벗은 이 높은 곳까지 다리품도 팔지 않고 올라와 나를 가르치고 있구나. 한참을 기다려 그들이 다 지난 다음 어떤 젊은이에게 부탁해서 정상 사진 한 장을 간신히 얻었다.

 

 

천왕봉에서 보니 문장대에서 걸어온 등마루가 다 보인다

 

  천왕봉에서 한참을 서서 걸어온 길을 바라본다. 참으로 아름답다. 살아온 세월이 이렇게 아름다운가? 어떤 일이 가장 아름답고 어떤 일이 가장 그렇지 못한가 따지지 말자. 저 산줄기가 다 아름답듯이 모두가 내게는 꽃 같은 세월이다. 1058m 여기서 세상이 다 보인다. 그러나 다 보이는 것도 아니다. 안 보이는 것이 더 많다. 아니 바로 코 앞에 있는 것도 안 보이는 것이 있다. 내 마음도 다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보이는 것은 얼마나 될까? 보이는 것은 다 보이는 것인가? 보이는 것은 내가 다 볼 수 있는 것인가? 내려오는 길에도 무릎은 그렇게 괴롭지 않다. 그래도 내리막길을 조심하자. 모두 내리막길에서 파탄이 일어나지 않는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문장대까지의 마루금이 바로 백두대간의 일부이다. 천왕봉에서 한남금북정맥이 나위어 진다. 한남금북정맥의 북쪽은 한강수계가 되고 남쪽은 금강수계가 된다. 동쪽 상주 화북으로는 낙동강 수계가 된다. 천왕봉은 높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큰강 3개의 분수령이 되는 셈이다. 그만큼 산줄기가 장엄하다. 그 꼭대기에 내가 와서 서 있는 것이다. 쉽게 내려서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마냥 서 있을 수는 없었다. 이제는 돌아서 한강 수계인 법주사 쪽으로 하산을 서둘러야 한다. 그래 내려가자.

 

 

상고암은 아직 저 속에 들어 있네

 

 

  언젠가 비로산장에 왔을 때 不慍선생이 상고암을 말한 적이 있다. 하산길에 거기를 들러 보려고 했는데 상환암과 갈림길에 있는 이정표에 300m라고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쪽으로 발길이 돌려지지 않았다. 무릎이 말을 듣지 않은 것인가? 인연이 없는 것인가? 내려오는 길에 자꾸 상고암이 옷깃을 당긴다. 드디어 찾았다. 그런데 저 나뭇가지 속에 상고암은 저렇게 숨어 있었다. 인연이 있으면 한 번 오르게 되겠지. 비로산장에서 자고 새벽에 오르면 안개 속에서 정말로 속리(俗離)의 상고암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아! 아껴 두자. 다 보고 가면 이제 안 오게 될지도 몰라.

 

 

상환암 아래 꽃 한송이(꽃향유)

 

상환암 바로 아래 채소밭 둑에 피어난 꽃이다. 가을 꽃이 예쁘다. 봄에는 환상과 꿈으로 화사하게 피어나던 꽃이 가을이 되면 엷은 볕에도 이렇게 청초해 보인다. 봄 꽃은 사람의 마음을 흩어 놓는데 가을 꽃은 사람의 마음을 가라앉게 한다. 내면에 침전이 생긴다. 그러고 보니 상환암 부처님께서 어느새 여기 와서 계셨다.

 

세심정 금강골 계곡 물에 마음을 씻고

 

 

  세심정에 거의 내려와서 계곡 바위 위에 앉았다. 양말을 벗으려다가 상류에서 더러운 발을 씻는 것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여기서 마음만 씻기로 했다. 씻는다 하여 다 씻어질 리도 없지만 말이다. 남아 있는 사과 반 개, 포도 반 송이를 먹었다. 씻었다고 한 마음에 바로 때가 묻었다. 오줌이 몹시 마렵다. 그러고 보니 문장대 오를 때 눈이 쓰리도록, 모자 차양에서 방울방울 떨어지도록 땀을 흘리고 나서는 땀이 나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셔츠는 젖어 있었다. 마신 물이 얼마인가? 맞아, 마신 물이 얼마인가?  몸속에 괴롭히는 요산(尿酸)이 다 빠져 나갔을 텐데----. 아직도 찌꺼기가 많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몰래 바위에 대고 갈기면 얼마나 시원할까 하고 생각하다가 또 참았다. 이렇게 깨끗한 물에다가 오래 묵은 요산을 흘려 보낼 수는 없다. 참아 보자. 아직은 참아야 하는 데까지 참을 수 있을 거야. 세심정까지 못 참으면 복천암 갈림길에 근심을 풀어 줄 곳이 있다. 그래도 서두르지는 말자.  節制----------.

 

  복천암 갈림길 해우소에서 묵은 근심을 풀었다. 목욕소를 지나며 온몸이 근질거리고 끈적거리는 것을 느꼈다. 알탕을 하고 싶었지만 욕심 많은 세조의 피부병이 세월을 넘어 전영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형수가 뱉은 침을 얼굴에 맞고 꺼림칙해서 계속 긁어대다가 결국 긁어 부스럼이 되어 이곳에 와서 목욕을 하면서 관음보살의 손길에 의해 깨끗이 나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세조의 욕심을 욕하면서도 조카의 왕위를 뺏고 괴로워하던 삼촌의 인간적 괴로움에 연민의 정을 가지고 있던 여항의 동포가 지어낸 이야기일 것이다. 지금은 상수원이 되었다.

 

  법주사를 지내며 마음 속으로 삼배를 올렸다. 온몸에 찌꺼기가 다 빠져 나간 기분이다. 포장도로를 걷는 발길이 가볍다. 아니 온몸이 가볍다. 이렇게 가벼운 것을----.  정말 어렵겠지만 하루에 한 가지씩 비우면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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