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답사/등산과 여행

전북 순창-남원 책여산에서

느림보 이방주 2012. 10. 15. 04:09

전북 순창 - 남원 책여산(冊如山)

 

  2012년 10월 13일, 10월의 둘째 토요일이다. 하늘이 맑고 깨끗하다. 백만사 산행가는 날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참석하지 못하는 회원이 많아 5명이 출발했다. 종주 산행이기에 차를 두대 가지고 가야하지만, 경비가 많이 나므로 가서 택시를 타기로 했다.  이효정 대장 소렌토에 5명이 타고 떠났다. 

 

  이 산은 전북 순창군에서 남원시에 걸쳐 있는 산이다. 높지 않아 오르는데 힘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바위가 꼭 책을 쌓아 놓은 것처럼  포개져 있고 암릉이 날카로워 자칫 실족이라도 하면 매우 안타까운 일이 벌어질 만큼 위험했다. 그리고 순창 책여산과 남원 책여산이 바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나뉘어 있어 순창 책여산을 등반하고 내려와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를 건너 남원 책여산을 올라 거의 비슷한 높이에 비슷한 암릉을 걸어야 하므로 하루에 두 산을 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 5시간쯤 걸리는 산이고 암릉이지만 힘든다는 생각은 없었다.

 

                    책여산에서 내려다 본 순창 남원의 아름다움-섬진강, 평야, 마을

                   굽이치며 평야를 적시는 섬진강의 아름다움

 

산에서 내려다 보면 사람들은 다 그만하게 사는 모습이다. 산과 산 사이에 마을이 있고 마을 앞에는 내가 흐르고 내를 건너면 들이 나온다. 그 마을에서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가 산까지 들려 오는 듯하다. 그런데 우리 농촌은 산에서 보면 평화롭게는 보이지만 풍요로워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 지금까지 생각이었다. 그러나 오늘 책여산에서 남원고 순창의 마을은 그렇지 않은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산이 높고 푸르며 강이 크고 느리다. 들이 넓고 잘 정리되어 있고 들판 가운데나 산기슭에 산재되어 있는 마을이 크고 잘 정리되어 있다. 사람들이 질서 있고 정리된 삶을 사는 모습이 마을 모습에서 보인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섬진강이다. 섬진강은 멀리 산에서 내려온다. 산에서 내려오는 것은 한 가지인데 이 강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아주 조용하다는 느낌이다. 떠들고 시끄럽게 흐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기는 산에서 하늘의 물을 받아 스밀 것을 스미고 흐를 것은 흐르는 것이 자연의 섭리인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또 아주 느릿느릿 흐른다는 것이다. 멀리서 보니 흐르는 것이 아니라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이다. 차라리 호수라면 어떨까? 머물러 주변의 상황을 다 살피고 강 주변 마을의 고통과 애환을 다 들어 알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고 보니 머물러야 될 곳에서는 머물고, 돌아가야 할 곳에서는 돌아 흐른다. 그리고 더 적셔야 할 곳에서는 더 적시는 것이다.

 

산은 높고 멀다. 높고 먼 산은 강을 낳는다. 하늘에서 내려주는 생명수를 받아 뿌리마다 간직했다가 조금씩 뱉어낸다. 산은 생명수의 보고이다. 물은 한 방울씩 모여 물 줄기가 되고 물줄기가 모여 강이 된다. 산은 강의 어머니이다 자연이나 인간이나 강을 먹고 산다. 산은 생명의 원천이고 돌아가야할 고향이다.

 

들과 마을이 그림의 절정이다. 들이 넓고 누렇게 익어가는 색깔이다. 마을은 한 군데 모여 있으면서도 풍요가 보인다. 그늘이 없지만 산을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평온해질 것이다. 이렇게 잘 갖추어져서 아름답고 풍요롭고 평화로운 마을을 최근에 보지 못했다. 오늘의 산행은 참으로 마음을 풍요롭게 했다. 사실 떠날 때는 말을 아끼고 모든 것을 절제해야겠다고 다짐했는데 풍요로운 자연이 모든 다짐을 잊어버리게 했다. 고속도로에서 며느리에게 받은 반가운 전화가 오늘의 자연을 더 아름답게 보게 했는지도 모른다. 5시간만에 산에서 내려와 들길을 걸으면서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러니 그밖의 모든 번뇌는 잊어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