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생활과 일상/꽃밭 일기

꽃밭일기 14 - 흑과 백

느림보 이방주 2010. 5. 24. 16:00

2010년 5월 19일

 

체육대회 둘째날이다. 이날은 아가들의 최대 관심사인 치어리더 경연대회가 있는 날이다. 치어리더 경연대회는 벌써 3년째 계속되는 교내 체육대회의 꽃이다. 해가 갈수록 팀별로 경쟁이 심해져서 그 역기능 때문에 올해는 폐지 위기에 놓이기도 했으나 그 순기능이 더 크기 때문에 존속 가능하게 되었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 반대도 하겠지만 나는 여러가지 순기능 때문에 존속에 찬성하는 편이다. 오히려 산남고의 전통으로 체육 선생님들이 바뀌어도 계속되기를 바란다.

 

금년 체육대회에서 치어리더경연대회는 크게 기대할 수 없었다. 중간고사가 끝나자 1학년이 수학 여행을 떠나 15일 귀가 했기 때문에 연습할 시간이 불과 이틀 정도 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 2학년 2반 아가들의 열성으로 완벽하게 공연에 성공했다. 자신들이 먼저 완전히 익힌 다음에 일대일로 1학년을 지도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감동적이었다. 반장인 현자는 사실 좀 기능이 떨어지는 한두 사람도 제외시키지 않고 모두 참여시켜 어른보다 나은 리더쉽을 보였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꼴찌를 해도 아가들의 모습은 훌륭했다고 칭찬해 주려고 했다.

 

연습하는 과정에서 아가들은 모든 것을 철저하게 비밀에 붙였다. 심지어 내가 섭섭할 정도로 내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자신들이 구상하고 음악을 선택하고 연습을 하는데 최종 연습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했다고 한다. 愚子는 19일 실제 공연할 때 처음 보았다. 정말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가? 그러나 그 치밀성에 놀랐다.

 

愚子는 아가들의 공연을 '흑과 백'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세상은 백에서 시작해서 흑으로 수렴된다. 아니면 흑이라는 혼돈에서 시작하여 백이라는 개벽으로 창조되는 것이다. 아가들은 그런 철학적 의미를 생각하고 구상한 것으로 보였다. 백색의 얼굴에서 무에서 시작하여 하늘로 향하는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냥 愚子가 그렇게 의미를 부여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5명의 비담임 부장, 원로 선생님이 497점을 주었다. 그래서 1등을 했다. 기특하다. 그 감동어린 아가들의 모습을 여기 남기고 싶다.

 

 흑과 백의 시작

 

 

 

 대열의 정비

 하늘을 향하여

 다시 정비- 퇴장 직전

 

다만 5분간의 공연이 이렇게 감동적일 수가 없다. 이로써 아가들은 하나가 되었다. 훌륭하다. 믿음직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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