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15일
스승의 날은 스승의 날
그날 내 책상
스승의 날이다. 쑥스러운 날이다. 愚子는 스승의 날을 스승의 날이라고 생각하는데 아이들은 이 날을 愚子의 날로 생각하고 꽃을 달아 준다, 노래를 불러 준다 여러 가지로 굿을 열어 주기 때문이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더 심했다. 愚子가 담임을 맡아서 그럴까? 아이들의 마음이 변해서 그럴까? 가는 곳마다 스승의 날이라는 굿의 주인이 되어야 했다.
아침에 스승의 날이라는 것을 그새 까맣게 잊고 출근했다. 미리 행사를 어떻게 한다는 시간 안내 알림메시지를 받았지만 까맣게 잊었다. 출근해서야 아이들이 선물을 들고 오는 바람에 아 오늘이 스승의 날이구나 생각했다. 최운식 교수님께 전화라도 드려야 하는데 너무 멀리 계신다. 이멜을 보내기는 죄스럽다. 내 경우를 보면 그거라도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그러나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이들이 빵, 꽃, 사탕, 양갱이, 초콜릿 같은 것들을 들고 왔다. 이쁘다. 편지를 정성으로 써서 내놓는 아이들도 있다. 배달해오는 꽃다발은 없었다. 다행이다. 오늘은 소박한 아이들의 선물이 우리를 더 기쁘게 한다.
8시 20분에 강당으로 갔다. 학생회에서 주관하여 행사를 열었다. 꽃달아주기 정도이다. 간단해서 좋다. 현자하고 명자하고 꽃을 가지고 왔다. 실장 부실장 두 아가를 한아름에 안았다. 이쁘다. 3학년 아이들과 아이리스 3기장이 꽃을 달아 주었다. 고맙다. 연구실에 돌아 왔는데도 아이들이 따라와서 난리를 피운다. 아이들은 공연히 즐겁다. 그러나 우리는 쑥스럽다. 愚子는 아이들에게 愚子의 수필집 '손맛'에 서명을 해서 나누어 주었다. 愚子를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흑심을 깔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미 제가 먼저 알고 마음 밑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11시쯤 올해 졸업한 지현이가 왔다. 의젓해졌다. 얼굴이 많이 밝아져서 보기 좋았다. 학교 생활의 재미를 이야기해 준다. 愚子는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안다. 오래 전이지만 愚子도 힘들게 다닌 학교이다. 최근에 어떤 학생은 너무나 바쁘게 다녀야 하기에 아빠가 차를 다 사주었다고 한다. 지현이는 정말 슬기롭다. 이 아이의 능력을 나는 인정한다. 지적인 능력이나 정의적인 능력이나 남다른 아이이다. 더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하지만 이런 사람이 교직에 들어온다는 건 국가적으로 정말 좋은 일이다. 정말 교직의 후배가 된다는 사실이 반갑고 기쁘다. 그 후에 졸업생 몇 명이 들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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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그림들
토요일 오후라 남 선생님과 이 선생님에게 점심을 사고 싶었다. 가는 중에 아이들이 연습하기에 점심을 어찌하느냐니까 짱이 그냥 대충이라고 한다. '피자라도 먹을래' 했더니 사양한다. 요즘 아이들이 사양하는 아이들이 다 있다. 우리반 아가들이 이렇다. 점심값을 조금 주었다. 그랬더니 점심먹으러 가서는 愚子가 사려던 점심은 남 선생님이 샀다.
점심에 막걸리를 딱 한 잔 했는데 안 먹던 술에 얼굴이 온통 붉게 물들었다. 아이들 연습을 보고 있는데 작년 산국 편집장인 지희에게서 어디 계시냐고 문자가 왔다. 찾아 다닌다는 것이다. 연구실에 왔더니 지희가 왔다. 편지다. 귀여운 놈, 좀 있다가 문학동아리 2기장 혜수가 왔다. 내가 막내딸이라고 하는 심지현과 같이 왔다.
여기에 편지를 같이 올릴까? 그만두자. 그 아가들이 내용은 비밀로 하고 싶을 것이다.
오후에 몇 제자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아픈 이야기도 들었다. 제자들은 다 잘 사는 것이 아니다. 잘 사는 제자만 소식이 오는 것도 아니다.
스승의 날은 스승의 날일 뿐인데 내가 왜 이런 호사에 취해 있는가? 생각해보면 내가 내게 안타까울 뿐이다. 나는 나의 스승에게는 아직 편지 한 장 드리지 못했다. 퇴근 무렵 한 해도 빼 놓지 않고 찾아오던 제자에게서 문자가 왔다. 괴로운 일이 있는 모양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지만 안쓰럽다. 그러나 해결해 줄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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