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4일
꽃밭지기들의 나들이-산막이옛길
꽃밭지기들에게 이렇게 재미있는 시간이 있다.
중간고사 기간, 아가들에게는 찾지 않으면 안 되는, 어쩔 수 없이 찾아야만 하는 보물을 완벽한 보안으로 꽁꽁 묶어 감추어 놓고, 우리는 편안하게 콧구멍에 꽃바람을 넣으러 떠난다. 후덥지근하고 답답한 오후 아가들을 지나치게 약올리면 꽃잎에도 멍이 든다. 소문 나지 않게 점심 먹고, 2시 30분에 주차장에서 출발했다.
정말 우리들에겐 이렇게 재미있는 시간이 있다.
우리들 열 명은 내 차와 부장님 차에 나누어 탔다. (막내 이미영 선생님은 고향에 가시고) 출발에 앞서 콧노래가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동부우회도로-36번 국도-34번 국도를 달려 칠성 들머리에서 산막이옛길 표지판으로 보고 괴산댐에서 내려오는 괴강 좁은 시멘트 다리를 건너 외사리로 접어 든다. 괴산이 고향이면서도 괴산댐을 처음 와 보신다는는 조 선생님을 모시고 오는 것이 더욱 보람이다. 외사리 좁은 고샅길에 살피 꽃밭 곁은 아주 조심스럽게 지나, 폐교된 외사초등학교 담장을 아픈 마음으로 또 지나서, 괴산댐 관리 사무소 앞을 슬쩍 지나,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옛길 분위기가 슬슬 펼쳐진다.
주차장에서- 멀리 비학산 산벚꽃이 한창이다.
출발에 앞서 물을 마시고
들머리 -소나무와 마당패랭이
연리지와 호수
진달래는 이미 지고, 철쭉이 피기 시작했다. 비학산에 산벚꽃이 한창이다. 산야가 이미 초록이다. 호숫가 버드나무는 얼마나 푸르러졌을까? 다 좋다. 산벚꽃도 녹음도 없어도 된다. 물이 있고 소나무나 청청 늘어지면 그만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니 봄 날씨 한 번 살벌하다. 하긴 봄도 마지막 날이니 훅훅 볶을 만도 하지. 들머리에 소나무를 심는 공사가 한창이다. 어딘가 잘 살고 있는 소나무가 잡혀와 여기 거친 땅에 심겨지고 있다. 길가에 마당패랭이가 한창이다. 지난 번에 왔을 때 한참 공사를 하더니 그새 이렇게 꽃을 피웠다. 배나무가 하얗게 꽃을 피웠다. 그 연약한 가지에 요강만한 배가 매달릴 것이다. 사과꽃은 끄트머리가 발그레하다. 김유정의 <동백꽃>에서 한참 퍼드러지는 동백꽃 아래서 동갑내기 사내를 처음으로 간을 본 열일곱 점순이의 고것이 이랬을까?
출렁다리를 건너기 전에 그네가 있다. 그네도 좋지만 여기서 바라보는 호수가 그만이다. 산벚꽃이 눈쌓인 것 만큼이나 피어 있는 비학산이 한꺼번에 호수로 쏟아져 내려온다. 호수 건너 실뱀이 기어가듯 갈론으로 들어가는 길이 언뜻언뜻 보인다. 따라가 보면 마치 무릉도원이 나올 것만 같다. 사람들의 얼굴이 편안해 보이고, 복사꽃이 일년 내내 피어 있는 마을, 아이들 웃음 소리가 떠나지 않는 마을, 대낮에도 장탉이 모가지를 있는 대로 빼고 목청껏 울음을 뽑아내는 마을, 그런 자유로운 마을이 나올 것만 같다. 가 보면 안다. 마지막 골짜기에 스며 있는 그 마을은 5km밖에 안 된다. 거기서 옥녀봉(玉女峰)도 가고 아가봉(雅佳峰)도 갈수 있다. 옥녀와 아가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이뻐요
愚子가 끼면 안돼- 바로 엄숙해져
아름다운 소나무- 아름다운 꽃밭지기들
부장님 겁 먹었슈?
호수만큼 맑은 여인
꽃밭은 꽃 같은 이들이 가꾸고
예사롭지 않은 관계
솔숲을 지나 다른 분들은 출렁다리로 건너게 하고 愚子는 사진을 찍었다. 건너고 싶었지만 지난 토요일부터 생긴 어리럼증이 아직은 어찔어찔하다. 그러나 돌아 오는 길에는 건널 수 있을 것 같다. 공기가 이렇게 좋은데 그만한 잡티 쯤은 날릴 수 있지 않을까? 머리도 가슴도 다 씻기는 기분이다. 젊은 김 선생님은 특수부대 요원처럼 당당하고, 어르신 김 선생님은 조심스럽고, 부장님은 부장님답게 여유 있고, 괴산에서 났으면서 처음 와 보시는 조 선생님은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이시고, 김 선생님은 줄을 타면서도 사색에 잠긴 듯, 총무님께서는 아이처럼 행복하고, 문 선생님은 무섭지만 안 무서운 척, 아직도 귀여운 김수정 선생이 제일 겁이 많다. 장난꾸러기 유승순 선생님은 사다리가 높은 데일수록 더 흔들어댄다. 불혹에 더 혹함을 불러내도 보는 이게겐 만점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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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도 사실은 줄사다리 건너기랍니다
가는 길이 좋다. 예상대로 호숫가 버드나무는 푸르름을 더하고, 물은 더 없이 맑고, 굴참나무 다래 덩굴에는 아가 손 만큼 새싹이 돋았다. 세상은 푸름 속에 생명이 넘친다. 우리는 모두 즐겁다. 이렇게 잠시 아이가 되어 본다. 소나무는 눈을 맞아야 고고해 보인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기대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소나무도 나무이다. 봄을 맞아 물맛을 보니 바늘잎도 넌출거릴 줄을 안다. 이런 풍경 속에 흔들리지 않는 수행자도 있을까? 물이 있고 산이 있고 푸름이 있는 이곳에 오면 성철 스님 어깨도 부드러워질 것만 같다. 길가에 하늘매발톱이 보랏빛꽃을 피웠다. 금낭화가 아름답다. 보랏빛 제비꽃이 피었다. 꽃밭에 사는데 여기도 꽃밭이다. 그러나 이 꽃밭은 우리가 가꾸어야 할 꽃밭은 아니겠지. 그저 보기만 하면 된다.
가는 길이 즐겁고 보이는 것이 고와서 앉아 쉬다가, 물을 바라보다가 산을 바라보고 서로 웃다가 중간쯤 광장에서 되돌아 오기로 했다. 그래야 이제 다음에는 좋은 분과 함께 올 기회가 될 게 아닌가?
칠성호
호숫가 여인
유선생님
산막이 광장
녹음은 한창 우거지고
꽃밭지기 여인들
샘물 받기
녹음 속에
역시
길을 따라
거북이 부장님
뭐 보시나?
내가 끼면 정말 안돼- 또 금방 엄숙해져
멀리 댐이 보이고
호수 건너 과수원 길
호수보다 여자
산보다 남자
제비꽃
매발톱꽃
돌아오는 길에 괴산올갱이해장국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진짜 올갱이이다. 전통 토장에 아욱을 넣은 올갱이국 한 뚝배기를 단숨에 비웠다. 뜨겁다. 속이 푹 익는 기분이다. 오늘 내릴 땀이 여기서 다 쏟아진다. 사실은 올갱이해장국보다 더 뜨거운 현장 토론도 있었다.
나의 꽃밭에 돌아와 보니 8시가 훨씬 넘었는데 아가들 예닐곱이 아직도 공부하고 있었다.
"선생님 어디 다녀 오세요?"
하는데 정말 말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재미 있는 일을 이렇게 안쓰러운 아가들에게 어떻게 얘기하나?
"아가들아 나는 머리도 가슴도 다 꽃바람에 헹구고 오는 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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