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답사/등산과 여행

백두대간 부봉에서 마패봉까지

느림보 이방주 2009. 11. 16. 16:51

2009년 11월 14일

 

오늘은 날씨가 많이 차갑지만 토요산악회를 따라서 월항삼봉, 부봉, 마패봉을 다녀오기로 했다. 지난번 포암산 산행 때 하늘재에서 월항삼봉 쪽으로 올라가는 등산객들을 보고 부러워했고, 월항삼봉과 부봉을 가보지 못해서 한 번 다녀오고 싶었다. 그런데 토요산악회의 등산 계획이 있어 신청하였다. 토요산악회는 가입만 해 놓고 별로 따라다니지 않아서 사람들을 잘 알지 못한다. 어쩌면 혼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러면 그냥 혼자 가는 것 만도 못하다. 대중 속의 고독은 더욱 외롭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면 사람을 사귀게 되니까 그리고 또 산이 있으니까라는 생각으로 쉽게 결심할 수 있었다.

 

<산행 개요>

 

1. 산행지 : 백두대간 월항재-부봉- 마패봉

2. 산행 코스 : 평천리 마을- 평천재(월항재)-945봉-부봉(921)- 동암문-763봉-북암문(714)- 756봉-마패봉-조령관(삼관문)-고사리 주차장

3. 거리 : 약  13 km

4. 시간 : 평천리 출발 (08:30) - 조령관 (14:20) -레포츠 공원 주차장(14:50) 약 6시간 20분

5. 함께 간 사람 : 토요산악회 회원들

 

<지도>

 

 

조금 이른 시간인 6시 20분에 체육관 앞 주차장에서 출발하기로 하였다. 나는 아내가 일찍해 주는 아침을 먹고 도시락을 싸 가지고 5시 50분에 집에서 출발하였다. 체육관 앞에는 원거리 산행을 떠나는 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둠 속이지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추워서 차에 올랐다. 자리를 찾아 앉았다. 총무가 알아봤는지 확인하는지 "느림보님입니까?"하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자리를 다시 잡아 주었다.

 

출발하기 전에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홍세영선생님이 보였다. 쉴 때 인사하기로 했다. 어떤 마음 넉넉한 회원이 떡을 해 왔다고 하면서 한 덩이씩 돌렸다. 추위에도 아직 따뜻하다. 아침을 충분히 먹었기에 떡을 먹을 수 없다. 공연히 아내를 고생시켰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 산행이 조금 걱정 되었다. 지난번에 다친 발이 아프지는 않지만 걱정이 되었고, 술에 취해서 넘어지는 바람에 다친 손목이 아직 조금 아프기 때문에 줄을 잡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버스는 청주를 출발하여 증평, 괴산을 거쳐 연풍에서 3번 국도에 접속하여 문경으로 들어갔다. 그 때까지도 하늘재에 가서 월항삼봉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하늘재에서 월항삼봉으로 가는 길이 입산 금지라고 한다. 이미 관리하는 분이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길을 바꾸어 평천리로 들어가 마을을 지나 평천재(월항재)를 거쳐 부봉으로 간다고 안내했다. 월항삼봉을 가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러나 내년 봄에 가면 된다.

 

평천리 달목이 마을에 도착한 것은 8시가 넘어서이다. 청주에서 6시 30분 쯤 출발했고, 오는 중간중간 사람들을 태웠기 때문이다. 달목이 마을에서 산행 준비를 하고 사진을 찍고 8시 30분 쯤 출발하였다. 

 

평천리 마을은 골짜기가 아주 깊었다.  버스가 선 곳에서 시멘트 포장길이 끝나는 곳까지 거의 한 시간을 걸은 것 같았다. 그만큼 지루했다. 마을은 온통 가을걷이로 바쁘고 어수선하다. 추위가 닥쳐온다니 가을 사과를 따느라고 분주하다. 사과는 추위가 오기 전에 햇볕을 받을 수 있는 날까지 아슬아슬하게 둔다. 그러다가 추위 소식이 있으면 이렇게 막바지에 수확한다. 나무에 그냥 매달린 사과가 아름답다. 연풍 생각이 난다. 감나무에는 미쳐 손이 가지 않은 감이 말갛게 붉었다. 주렁주렁 매달린 감을 보니 갑자기 어머니가 그립다. 배추를 다듬는 집, 무말랭이를 널어놓은 집 모두가 가을을 맞고 있다.

 

달목이 마을에서 월항재로 오르는 길은 길이 거의 없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따라서 낙엽을 헤집으며 간신히 길을 찾는다. 그러나 낙엽송이 넘어져 길을 가로 막아 우리는 거의 각개전투 훈련을 하는 것처럼 기어갔다. 이런 길에 나는 아주 취약하다. 아무리 구부려도 배낭이 걸린다. 우리 일행이 오르막길에서는 한줄로 늘어서서 걷는 모습이 수색대 병사들 같다.

 

 이름도 아름다운 달목이 마을

 달목이 마을에서 산행 준비하는 회원들

 달목이 마을에서 바라본 월항삼봉이 구름에 가렸다

 달목이 마을의 산

 마을 앞을 지나 산으로

 무말랭이

 윗말로 올라가는 아름다운 풍경

 사과

 가을걷이를 끝낸 농가의 모습

 평천재(월항재)를 향하여

 

추위는 이미 가셨다. 겉옷을 벗었다. 셔츠와 조끼만 입었다. 땀이 셔츠에 밴다. 그러나 모자를 벗을 수는 없다. 머리는 시리다. 자켓을 가방에 넣으니까 가방이 꼴이 된다. 길은 아주 부드럽다. 활엽수들이 떨군 낙엽들이 푹신하게 길을 포장했다. 게다가 낙엽송의 황금빛 바늘잎이 양탄자처럼 부드럽다. 발목도 아프지 않다. 아팠던 발목이 오히려 제자리를 찾아 더 부드러워진 것 같다.

 

월항재(평천재)에 오른 것은 1시간 50분쯤 지났을 때인 것 같다. 나뭇잎도 젖어 있고 공기도 젖어 있다. 월항삼봉 쪽으로 다녀 왔으면 싶었지만 쉽게 다녀 올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다. 월항재에서 서성거리기에 나는 물을 마셨다. 과일을 먹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여유가 없다. 얼굴에서 땀이 흐른다. 눈썹을 지나 눈으로 들어간다. 모자를 벗었다. 수건으로 이마를 동여 매었다. 땀이 내려오는 길에 둑을 막은 것이다.

 

바로 오르막이다. 나는 선두에 섰다. 오르막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다만 흙에 물이 묻어 미끄럽다. 미끄러운 흙이 나무 뿌리에 묻어 잘못 밟으면 그냥 나뒹굴게 된다. 그러나 아무도 넘어지는 사람은 없다.모두들 산길에 익숙하고 안내하는 분이 계속 경고를 보내기 때문이다.  945봉으로 오르는 막바지에는 나무사다리가 놓여 있다. 보기는 흉하지만 이렇게 하면 산이 덜 훼손될지도 모른다. 나무 사다리는 아직 공사중인 모양이다. 군데군데 발전기와 산소통이 비닐에 덮인 채 그냥 놓여 있다.

 

945봉에서 부봉으로 가는 길은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드디어 전망이 좋다. 등마루를 밟으며 1관문 쪽 새재 과거길과 그 위의 주흘산이 보인다. 멀리 월악산 준령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월항삼봉을 넘어 포암산이 보일듯하다. 그러나 잡목이 우거져 시야는 그렇게 훤하지 않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산들이 모두 환상이다. 마룻길은 바위도 없이 평온하다. 낙엽을 밟으며 아주 평탄한 길을 걷는다.

 

945봉에서 부봉은 아주 코 앞에 있는 듯하다. 그러나 꺼꾸러질 듯 아득한 저 산 아래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한다. 내리막길이 위험하다. 그러나 모두들 서두르지 않고 조심한다. 아무도 미끄러지거나 넘어지지 않는다. 내리막길을 걸어서 부봉 삼거리까지 가는 길은 나무사다리 공사가 한창이다. 공사는 거의 끝난 것 같은데 뒷마무리를 아직 하지 못한 것 같다.

 

안부에 내려서니 시든 단풍나무가 무성하다. 아직 잎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화려했던 한 때의 모습을 상상할 만하다. 세상의 역사가 모두 그런 것이 아닐까? 자연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너무나 뻔하게 순리대로 움직인다. 세상을 경영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두 뻔한 자연의 이치를 잊어버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두 뻔한 순리를 뻔하게 예상하며 바보처럼 생각없이 뻔하게 행동해도 세상은 우리를 속이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화려했던 모습도 자연을 겸허하게 수용한다.  

 945봉의 이정표

 언뜻언뜻 보이는 백두대간

 백두대간

 등마루를 걸으면서 보이는 산 줄기 

 한 때는 화려했을  단풍도 자연의 변화를 수용한다

 

부봉 삼거리에 도착했다. 이정표가 복잡하다. 아마도 충북에서 세운 것이 있는데 문경에서 더 세워서 그런 모양이다. 산악대장은 여기서 머물렀다. "부봉은 안 가나요?" 내가 물었다. 가실 분만  갔다 오란다. 모두 머뭇거린다. 가실 분 갑시다. 내가 앞장섰다. 오르막길이 그렇게 험하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온 길과는 다르다. 줄을 잡고 올라야 하는 곳도 있고 바위를 잡고 기어 올라가야 하는 곳도 있다. 정상에 이르는 길은 두세 번 쯤 한 10m는 줄을 타야 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아래는 절벽이다.

 

정상에 올랐다. 널직하다. 정상석에서 몇이 사진을 찍었다. 더 아름다운 봉우리가 사방으로 보인다. 북으로 멀리 월악산 준령이 아름답다. 부봉은 모두 여섯 개의 봉우리가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 제 2봉이 가장 높지만 제 1봉에 정상석을 세운 것은 전망이 가장 아름답기도 하고 이곳이 백두대간에 이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상에서 귤을 하나 먹었다. 배가 고팠다. 아침에 먹다 남은 떡을 한 조각 먹었다. 물을 마셨다. 2, 3, 4, 5, 6봉을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기 와서 보니 숙제가 또 하나 남는다. 언제 저길 또 가야 한다. 그냥 여기서 멈추기에는 그 봉우리들이 지나칠 정도로 아름답다. 주흘산도 아직 가보지 못했는데 이효정 선생님 말씀에 의하면 주흘산과 함께 할 수 있다고 한다.

 부봉 삼거리의 이정표

부봉 정상에서

 부봉에서 보이는 봉우리들 

 부봉에서 보이는 봉우리들

 

다시 부봉 삼거리에 이르렀다. 내리막길이다. 12시가 막지났다. 낙엽에 덮인 성이 보이기 시작한다. 계속 성벽 위를 걷는 기분이다. 아니 아마도 그럴 것이다. 이 험준한 산악지대에 성벽을 쌓은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부터는 아주 완만한 내리막길이다. 성벽을 옆으로한 오솔길에는 낙엽이 무성하다. 밟을 때마다 아주 고즈넉한 소리가 난다. 혼자 걷기에도 흐뭇한 길이다.

 

한 30분쯤 걸으니 동암문이다. 암문은 무너지고 흔적만 남아 있다 성안의 사람들은 이 암문을 통하여 어디를 몰래 드나들었을까? 성의 주인은 충청도 쪽 사람들일까? 경상도 쪽 사람들일까? 신라인가? 고구려인가? 성돌에는 옛사람의 손길이 묻어 있겠지만 확인할 수 없다. 바위를 만지면 그들의 손맛을 확인할 수 있을까? 동암문을 지나 안부 평평한 곳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었다.

 낙엽에 덮인 성벽

 동암문

 무너진 동암문

 소나무

 

점심을 먹고 마패봉을 향하여 출발했다. 마패봉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 걸어야 할 것이다. 완만한 오르막길이다. 산이란 언제나 완만하게 시작해서 정상이 가까워지면 가파르게 된다. 걷기는 아주 좋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반드시 평탄한 등마루가 있고, 등마루를 지나면 내리막길이 나온다. 

 

 756봉에 도착했다. 이제 마패봉은 코앞이다. 그러나 마지막 오르막길이다. 마패봉이 927이니까 고도 170 정도는 오르막길을 가야 한다. 좋다. 아직도 다리는 힘이 남았다. 마지막 오르막길은 가파르다. 그러나 쉼없이 올라본다. 약간 숨이 가쁘다. 그러나 참는다. 정상이 나왔다. 그러나 거긴 정상이 아니었다. 정상은 정상석이 있었는데 없다. 언젠가 비를 흠씬 맞으며 신선봉을 거쳐 마패봉까지 걸은 적이 있었다. 한번은 비를 맞았고 한 번은 아내와 함께 온적이 있었다. 기억이 아련하다. 다만 소나기가 쏟아지던 날 혼자서 마패봉에서 조령관으로 내려가는 내리막길에서 미끄러지던 기억만 살아 있다.

 756봉에서 이정표

 성벽 위의 오솔길

 756봉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부봉

 여긴 마패봉 정상이 아니다

 마패봉에서

 

마패봉에서 조령관(삼관문)으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르고 험하다. 언제든지 구르고 싶어하는 돌이 있고, 타고 내려가야 할 줄이 있다. 미끄러운 솔뿌리도 있다. 양지쪽의 마른 낙엽은 복병이다. 뒤꿈치로 잘못 밟으면 그냥 미끄러진다. 내리막길은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잡을 수 있는 줄도 있고 돌계단도 있다. 그렇게 가파른 내리막길을 걸으니 바로 조령관이 보인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

 조령관

 고사리 주차장에서 바라 본 신선봉

 고사리 마을 유래비와 소나무

 

조령관 아래 통나무 집에 들렀다. 손님이 꽤 많이 앉아서 부침개를 안주로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낯익은 주인 아주머니가 안으로 들어오라 손짓을 한다. 왕대포를 한 잔 마셨다. 속이 싸르르한다. 아주 좋다. 따뜻한 어묵 국물을 마시니 속이 더워온다.

 

레포츠 공원까지 걸어 내려오니 새한 관광 버스가 거기 있다. 주차장에 올라가지 않고 길가에 서 있다. 이곳의 은행나무는 또 얼마나 화려했을까? 그러나 지금은 낙엽이 되어 다 땅에 뒹군다. 간단히 하산주를 마셨다. 나는 통나무집에서 왕대포를 한 잔 했기에 소주는 마시지 않았다. 안주로 가래떡을 넣은 돼지고기 김치찌개만을 먹었다. 시장기가 가신다. 3시 50분에 출발했다. 숙제 하나를 해결했다. 후련하다. 그러나 또 하나의 숙제가 생겼다. 눈요기만 한 주흘산과 부봉의 2,3,4,5,6봉을 가야 한다. 또 하늘재에서 월항삼봉도 다시 가야 한다. 행복한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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