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18일
<산행 개요>
1. 산행지 : 내연산
2. 산행 코스 : 보경사 주차장-보경사-문수암-문수봉(622)-삼지봉(내연산710)-마당미기-향로봉(930)-시명폭포-은폭포-연산폭포-관음폭포-보연폭포-삼보폭포-쌍생폭포-보경사 주차장
3. 거리 : 약 15 km
4. 시간 : 보경사 주차장 출발(08:20) - 향로봉정상(12:00) - 보경사 주차장 도착(13:20) 약 7시간
5. 함께 간 사람 : 연철흠 이효정 이방주(3명)
오늘은 내연산을 가기로 한 날이다. 내연산 산행은 작년부터 계획을 해서 올 여름에는 반드시 가려고 했으나 내가 건강이 좋지 않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산행을 할 수 있을 만큼 내가 회복되기를 기다려 오늘을 맞은 것이다. 그동안 다시 산에 다닐 수 있을 만큼 조금씩 힘을 길러 왔다. 말하자면 오늘은 새로운 도전이다. 자신이 있다.
아침 4시 20분에 일어났다. 어제 저녁에 대충 가방을 챙겨 두었기 때문에 준비할 것은 별로 없었다. 집에서 40분에 나와서 만나기로 한 산남고 주차장에 가니 4시 50분이다. 잠시 후에 연선생님이 오고 조금 후에 다시 이선생님이 와서 5시 10분경에 연선생 차로 출발하였다.
친구는 내연산을 여러번 다녀 왔기에 거침없이 달렸다. 어떤 때는 160km도 가는 것 같았다. 포항까지는 2시간이 채 안 걸렸다. 포항에서 7번 국도를 타고 보경사 쪽으로 달리다가 대통령의 고향인 홍해읍의 어떤 해장국 집에서 순대 국밥으로 아침을 먹었다. 거기도 병천 순대였다. 맛도 병천 순대 맛을 닮았다. 먹다보니 병천순대도 맛있는데 해물순두부를 먹을 걸 그랬다고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보경사 주차장에 도착하여 준비를 하고 8시 20분에 출발했다. 나는 한 10년 전 쯤 월곡고전문학연구회 세미나가 이곳에서 있어서 아내와 함께 밤에 왔다가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다. 새벽에 일어나서 보경사까지 갔었으나 아침 식사 시간에 늦을 것 같아 되돌아 왔다.
월곡회 회원인 박창원 선생이 이곳 근처의 청하중학교의 교장으로 있어서 연락을 했으나 마침 친구들과 설악산으로 등산을 떠난다고 해서 만나지 못했다. 웬만하면 연락하는 것이 서로 폐가 될 수도 있지만, 박선생님이 청주에 오면 내게 전화를 하고 나도 포항에 가면 전화를 해야 하는 사이이기 때문에 연락을 해 본 것이다.

보경사로 들러가는 길목은 음식점으로 가득하다. 이곳은 도토리묵과 칼국수로 유명하다고 한다. 자주 와 본 두 분의 말에 의하면 할머니들이 식당 앞에 나와 앉아서 홍두깨로 칼국수를 밀고 젊은이들은 장사를 한다고 한다. 집안에 노인이 없으면 할머니를 어디서든 모셔다가 국수장사를 한다고 하니 노인들이 대접을 받는 사업인지 혹사를 당하는 사업인지 판단할 수가 없다, 보경사 경내는 아주 조용하다. 이른 아침이라 사람이 없다. 입장료가 꽤 비싸다. 문화재 관람료라고 하지만 보경사에 그렇게 소중한 문화재가 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시주하는 마음으로 내면 된다고 하지만 산에 가는 사람들에게 문화재 관람료를 받으면 통과세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누구도 그냥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한 마디씩 한다면 선남선녀에게 부처님을 빌어 입으로 짓는 죄를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바람이 몹씨 분다. 해탈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아직 없다. 이른 아침에 등산을 하는 몇 사람들이 사찰 옆 계곡으로 사라지고 햇살은 곱게 절집 지붕에 빛살을 내리붓는다. 바람이 나뭇잎을 날린다. 물들어가는 나뭇잎들이 뒹군다. 산에서 내려 흐르는 물이 노랑색 낙엽을 싣고 속세로 흘러내려간다. 우리는 바람을 맞으며 문수봉 쪽으로 오르막길로 한발 한발 올려 놓기 시작했다. 돌길을 밟아 한 전망대에 올라서니 계곡이 한 눈에 들어 왔다. 그리고 우리가 밟아야 할 등마루의 윤곽이 눈에 들어 왔다. 아득했지만 등마룻길이 참 평화스럽게 보였다.
보경사 주차장에서 준비 완료
일주문을 향하여
내연산 보경사
매표소
해탈문
사찰 경내 아침 햇살
속세로 내려가는 시냇물
청하계곡의 햇살
문수암을 오르는 능선에서 보이는 청하계곡
문수암으로 올라가는 길은 생각보다 가팔랐다. 그러나 거리는 짧다. 문수암은 작고 아담한 일주문으로 시작한다. 일주문이라기보다는 시골 초가집 삽작이라고 해야 좋을 것 같았다. 초가로 이은 지붕이 오히려 산에 잘 어울린다. 암자는 작고 조용하다. 삽살개가 두 마리 마당에서 뛰어 다닌다. 대웅전 뜨락에 고추를 널었다. 바람이 불어 고추 멍석이 날랐다. 스님이 나와서 멍석을 다독거린다. 이런 수도가 오히려 바라보이는 수도가 아닌가 한다. 마당을 서성이다. 되돌아나와 문수봉 쪽으로 걸었다. 오르막길이다.
여기서 문수봉은 바로 0.5km란다. 물매가 아무리 급하다 한들 그 물에 떠내려야 가겠는가? 능선을 바로 다잡으니 바로 거기다. 10시 40분경 문수봉에 올랐다. 문수봉 정상은 그래도 훤하게 사계가 트였다. 가야할 길과 올라온 길이 보인다. 여기서부터는 평지처럼 걷기에 편안하다고 한다. 이정표에는 1시간 40분이 걸린다고 하지만 1시간만 걸으면 내연산 삼지봉에 닿을 수 있다. 우리의 역사를 살아가듯이 그렇게 걷는 것이다. 그렇게 계속 걸어가는 것이다.
문수암 대웅전
문수암 일주문
문수봉까지 0.5km
문수봉에서
좋아요
문수봉에서 내연산 삼지봉을 향해서 걷기 시작했다. 길은 아주 좋다. 뾰족한 바윗돌 하나 없다. 평탄한 흙길에 부엽토가 쌓여 마치 솜이불을 밟는 것처럼 편안하다. 탄력있는 길을 걸으니 발목이나 무릎이 편안하다. 산은 이제 막 물들이기를 시작했다. 붉은 놈, 더 붉은 놈, 아직 노란 놈, 이제 연두색인 놈, 물들이기를 생각지도 않는 놈, 가지각색이다. 사람들의 성품이 가지각색인 것은 나뭇잎을 닮아 그런 것인가?
삼지봉은 내연산의 산줄기가 우리가 지나온 문수봉, 오늘은 가지못하는 등대산, 내연산의 최고봉인 향로봉 세 줄기로 갈린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문수봉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참으로 평탄한 길을 걸었다. 큰 힘이 들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여기에서 간식을 먹었다. 내가 가져온 요쿠르트와 바나나, 기주떡 한덩이 씩 먹었다. 간식을 너무 많이 먹으면 오르막길에서 힘이 더 들게 마련이다.
여기에서 문수암 아래에서 만났던 청년들을 만났다. 우리보다 앞서서 갔는데 뒤늦게 나타났다. 얘기를 들어보니 문수봉을 들르지도 않고 문수샘 쪽으로 왔다고 한다. 지름길로 온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보다 늦게 올라 왔다. 이유를 물으니 자주 쉬었다고 한다. 그들은 여기서 계곡으로 내려갈 셈이었다. 오르막길에서 자주 휴식을 취하는 것은 경제적이지 못하다. 천천히 걷더라도 쉬지 않고 걷는 것이 힘이 덜 든다. 우리는 그대로 출발했다. 단풍이 좋다. 가끔씩 나타나는 오르막길도 한 10여 분 힘을 쓰면 바로 평탄한 능선이 나타난다.
내연산 삼지봉
내연산 삼지봉에서 연선생, 이효정대장님
단풍
12시가 다 되어 내연산에서 가장 높은 향로봉에 도착했다. 여기에서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다. 연선생도 아내의 전화를 받는 것 같았다. 청하 계곡을 지나 멀리 동해 바다가 보였다. 계곡은 중간이 쫙 갈라져 바다로 향했다. 산줄기는 군데군데 붉게 물들기 시작했고 드문드문 바위가 박혀 순탄하지만은 않은 모습을 보여 준다. 바다를 향하여 내달리던 산줄기는 어디만큼 가서 바다로 스며들고 멀리서 산줄기를 삼킨 바다는 그 푸른 빛이 희미하다. 정상에는 몇 팀이 둘러 앉아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우리는 간식을 먹은지가 얼마되지 않기 때문에 더 내려가다가 점심을 먹기로 했다.
향로봉에서 내려오는 길은 경사가 급하고 돌길이다. 지금까지 평탄하던 산에도 이렇게 고통을 주는 길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다 받아들인다. 무릎이 심하게 아프다. 몇 해 전만 해도 이런 길을 사뿐사뿐 내려 설 수 있었다. 이제 확실히 다리에 있던 탄력이 많이 부실부실해진 모양이다. 갈수록 그럴 것이다. 고무줄처럼, 바람이 잔뜩 들어 있는 튜브처럼 그렇게 탱탱한 다리로 돌아갈 수는 없을까? 친구는 끊임없이 걸어야 한다고 한다. 술을 마실 시간이 있으면 걸어라. 그런 말이다. 맞다. 누우면 죽는다. 걸어야 산다.
골짜기 물을 만나는 것은 그렇게 단순한 길이 아니다. 나무뿌리를 지나고 너덜지대를 지났다. 물이 조금 흐르는 골짜기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김밥 몇 덩이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 소주를 두잔 마셨다. 속이 후끈 달아오른다. 소주 기운이 가슴을 친다. 뜨거운 김이 입안으로 훅훅 달아 오른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비탈에 간신히 붙어 있는 길을 걸을 때도 있고 차라도 다닐 수 있을 만큼 너른 길을 만날 때도 있다.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이제 올라오는 사람들도 많다. 올라오는 사람들과 마주치면 길이 더디다. 내려갈 수록 계곡은 더 넓어지고 계곡에 뒹구는 바위들이 더 거대하다.
향로봉에서 이효정 대장님과
단풍에 내려앉은 가을 햇살
너덜지대와 단풍
청하계곡은 이른 단풍이 들었다
이 계곡이 폭포로 유명하다는데 폭포는 언제 나타나는가? 물이 이렇게 없는데 과연 폭포는 살아 있을까? 모롱이를 돌아 언덕을 내려 계곡은 점점 넓어지고 계곡에 구르는 바윗덩이가 더 거대해 지더니 드디어 물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울긋불긋 계곡 너럭바위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올라오는 사람들도 많다. 출렁다리를 건너면서 옥같이 맑은 담수를 내려다 본다. 물은 오를수록 맑고 깨끗하다. 사람들은 그래서 맑음을 찾아 자꾸만 위로 오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아래로 내려가야만 한다. 우리는 물을 따라 아래로 내려간다. 내려가는 물은 아래로 갈수록 불어나고 불어난 물은 더 큰 소리를 낸다. 그래서 폭포를 이룬다.
우리는 은폭포를 시작으로 연산폭포, 관음폭포, 삼보폭포, 쌍생폭포를 지나면서 감탄을 연발했다. 폭포는 폭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위의 바위와 나무를 배경으로 더욱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사람들이 폭포 가까이에서 아름다움을 즐기고 있다. 물이 많았다면 더 아름다울 뻔 했다. 아쉽기는 하지만 걸음을 재촉하여 자꾸 뒤를 돌아보며 보경사를 향해서 내려왔다.
<내연산 십이폭포>
경북 포항시 송라면에 위치한 해발 710m의 내연산 남쪽에 협곡을 이룬 14km의 청하골은 계곡 양안이 깍아 지른 절벽으로 이뤄져 마치 동굴 속의 미로를 연상케 하고 곳곳에 폭포가 걸려 이른바 내연산12폭포 또는 보경사 계곡이라 하여 경북 8경의 하나로 꼽고 있다. 제1폭포 쌍생폭(상생폭), 제2폭포 보현폭, 제3폭포 삼보폭, 제4폭포 잠룡폭, 제5폭포 무풍폭을 거쳐 제6폭인 관음폭과 제7폭포 연산폭 일대가 이 계곡의 클라이맥스다. 쌍폭인 관음폭은 쌍굴인 관음굴, 폭포 위로 걸린 연산적교(구름다리), 층암절벽과 어우러져 환상적이다. 연산적교를 건너면 높이 20m의 연산폭이 학소대 암벽을 타고 힘찬 물줄기를 쏟아 내린다. 보경사에서 연산폭까지는 약 3km, 1시간 남짓한 오솔길이다. 연산 폭 위로는 길이 없고 관음 폭 옆으로 뚫린 산길을 따르면 제8폭포 은폭, 제9폭포 시명폭, 제10-12폭포인 제1 복호폭-제3 복호폭이 이어진다. 그러나 힘든 길이다. 등산이 목적이 아니라면 관음폭과 연산폭 근처에서 쉬는 것이 좋다. 보경사를 포함한 청하골은 1983년 10월에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출렁다리
흔들려 ! 마구 흔들려!
바위와 숲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계곡
은폭과와 연인일까? 내외일까?
연인폭포
관음폭포
물이 많았더라면
쌍생폭포는 물이 줄어 한 줄기만 흐른다
보경사는 탐방객으로 가득 찼다. 가을 차회가 열리고 있다. 이곳저곳에 자리를 펴고 분위기를 잡은 다음 다례 시연을 하고 있었다. 앉아서 체험을 하고 싶었지만 나의 행색이 어울리지 않고 시간도 없었다.
보경사 경내를 돌아보고 내려오는 길에 녹차를 시음했다.
<보경사>
602년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신라 지명법사가 진평왕에게 '동해안 명산에서 명당을 찾아 자신이 진나라의 도인에게 받은 팔명보경을 묻고 그 위에 불당을 세우면 왜구의 침입을 막고, 이웃 나라의 침입도 받지 않으며 삼국을 통일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진평왕이 지명법사와 함께 내연산 아래에 있는 큰 못에 팔면보경을 묻고 못을 메워 금당을 건립하고 보경사라고 했다. 경내에는 보경사원진국사비(보물 252)와 보경사부도(보물 430)가 있으며 조선 숙종의 친필 각판 및 5층석탑 등이 있다.
<보경사 5층 석탑>
1985년 10월 15일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203호로 지정되었다. 보경사는 602년(신라 진평왕 25) 지명법사(智明法師)가 중국에 유학하고 있을 때 어떤 도인으로부터 받은 8면보경(八面寶鏡)을 동해에 가까운 내연산(內延山) 아래 용담호 옆에 깊이 파묻고 그 위에 세운 절이라고 해서 보경사(寶鏡寺)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사찰이다.
이 석탑은 1023년(고려 현종 14)에 건립된 5층석탑으로 일명 금당탑(金堂塔)이라고도 한다. 《보경사금당탑기(寶鏡寺金堂塔記)》에 의하면 1023년 3월에 도인(道人)과 각인(覺仁), 문원(文遠)이, 절이 있는데 탑이 없을 수 없다 하여 서로 의논하고 발원하여 시주를 얻어서 세운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단층 기단(基壇) 위에 세워진 5층석탑으로, 기단과 옥신(屋身)에는 목조 건축의 기둥을 모방한 귀기둥이 있다. 옥신과 옥개(屋蓋)는 각 1매석(枚石)으로 만들어져 있다. 처마끝은 수평을 이루고, 처마선(線)은 끝에서 약간 들려 경쾌한 곡선을 이룬다. 옥개석의 상부에는 2단의 탑신받침이 있지만, 상륜부(相輪部)는 노반(露盤)과 복발(覆鉢)만이 남아 있다.
기단의 크기는 가로·세로 각 1.5m 이고, 탑의 높이는 5m로, 탑신의 체감률이 낮아 전체적으로 고준(高峻)한 느낌을 준다.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을 계승한 고려시대의 석탑이다.
보경사 가을차회
차와 대화
보경사 5층석탑
보경사 소나무
아담한 보경사의 오후
보경사와 가을을 즐기는 사람들
내려오며 뒤돌아 보니
아침에 불던 바람은 멎고 저녁 하늘이 우거진 고목 사이로 햇살을 내리붓고 있었다. 바람불어 스산했던 아침과는 완전히 대조적이다. 따뜻하고 평온하다. 아직도 탐방객은 끊임없이 들어오는데 들머리 칼국수집에서 칼국수와 도토리묵으로 이른 저녁 식사를 했다. 저녁을 먹기 위해 들마루에 올라 신발을 벗는데 오른쪽 허벅지 얇은 근육이 짜증을 낸다. 다리를 뻗고 가다듬은 다음 10여분을 달랬다. 도토리묵이 나오고 소주가 나왔다. 소주를 한 잔 마시니 스르르 멈춘다. 허벅지가 술 생각이 났나?
칼국수 맛은 옛날 생각이 나게 했다. 꼭 보리마당질을 하다가 보릿짚을 살라 끓여낸 우리밀 누룽국 처럼 그런 맛이었다. 배는 부르지만 그 향미 때문에 너무 적은 양이 원망스러웠다. 여기서 소주를 두어 잔 마시고 부침개까지 시켜 먹으니 더 바랄 것도 없는 세상이 되었다. 해는 서산에 비스듬하고 사람들은 서둘러 내려오기 시작할 때 보경사 주차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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