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거리문화 탐방
1. 일시 : 2009년 10월 31일(토요일) 11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2. 탐방한 곳 : 육거리시장, 성안길, 청소년문화거리
3. 함께 간 사람 : 교지 <山菊> 편집위원 6명 (지희, 지현, 해주, 영현, 지선, 정운)
4. 목적 : 교지 특집 기사 취재
<가기 전에>
오늘은 교지편집위원 학생들과 청주거리문화를 살피기 위해 육거리시장, 성안길, 청소년문화거리를 가기로 했다. 교지 특집 기사 준비를 위한 마지막 탐방이다. 학교 교지에 무슨 시장이나 거리 문화가 필요하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런 기사를 통해서 고등학교 학생들이 생활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가정과 학교에서 부딪치는 문화나 학문의 내용을 수용한다면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또 미래의 가정 주부이며 이 땅의 살림꾼이 될 여고생들이 재래 시장과 거리 문화의 현실을 바로 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최근 청주시에서 조성한 청소년문화거리의 실상을 보고 청소년들이 원하는 그들의 거리를 그려보도록 하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모두가 미래에는 가정, 지역사회, 국가사회의 살림꾼으로 이 땅의 더 나아가 세상의 가치을 이끌어 갈 사람들이 아닌가? 혹 거리문화 탐방에 참석하지 못하거나 별 생각없이 기웃거리며 돌아다니기만 한 학생들도 기사를 보고 간접 경험을 하고 관심을 갖도록 하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했으면 좋겠다.
사실 어느 학교도 교지에 지역 문화를 담는 예는 드물다. 아니 아직 보지 못했다. 교지에 대한 개념도 확실히 잡지 못한 것 같다. 그냥 아이들의 문학 작품이나 싣고 선생님들의 글 몇 편을 싣는 것이 고작이다. 교지는 당대 학교 문화를 저장하는 보고이다. 당대의 학교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의식, 가치관, 생활의 실상이 모두 담는 역사의 기록장이다. 이렇게 하려면 학교문화의 바탕인 지역사회를 돌아보지 않으면 안된다. 학교에서는 내가 이렇게 교지 기사에 대한 게재 영역을 마음 속으로 그리고 있는 것을 이해했는지 아주 쉽게 나의 거리 문화 답사 계획을 수용하고 적극적으로 후원해 주었다.
<육거리 시장>
육거리 시장은 청주의 대표적인 재래 시장이다. 오늘 마침 중간고사를 치르고 첫 토요일이라 편집위원들 마음이 그렇게 바쁘지 않을 것 같았다. 또 편집위원 몇 명이 오늘 실천에 옮기자고 찾아 와서 쾌히 허락했다. 편집위원이 6명이라 내 차로 전원 용납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시내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시내버스를 타보는 것도 하나의 거리 문화의 체험이라고 생각되었다. 또 우리 학교에서 육거리 시장에 접근하기에 다른 교통 수단보다 더 편할 것 같았다. 시장 앞에서 내려서 바로 길을 건너면 된다.
공부에 바쁜 아이들인데도 모두 기대에 부풀어 있다. 시장 구경도 구경이지만 스스로 무엇이든 이루어 낼 수 있다는 기대감일 것이다. 정문 앞에서 버스를 타니, 버스는 법원 검찰청 건물을 돌아 수곡사거리에서 개신 오거리로 와서 우리 아파트를 지나, 배티를 넘어 운호학원 앞으로 돌아 꽃다리를 건너서 우리를 내려 주었다. 청주의 남부 지역을 한 바퀴 돈 것이다.
[현황]
농산물, 식료품, 특산품, 농기구, 건어물, 육류, 축산물, 수산물, 한약재료, 그릇, 의류, 혼수, 신발 등 다양한 상품이 있다.
청주시에서는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아케이드 공사를 실시하였다. 시장 번영회에서는 대형 할인점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손수레(카트), 화장실 등 편의시설을 갖추었고 간선도로 변의 무질서한 노점상도 정비하였다. 아케이드 공사는 2002년 3월 9일에 기공하여 2003년 6월 23일에 준공, 총연장 715m에 걸쳐 있다. 노폭과 높이에서 소방 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설계했고, 이에 대한 공사비는 35억원 (국비 20억, 도비 5.5억, 시비 9.5억)이 들어갔다.
2001년 육거리 시장에 41대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을 1차로 건립한데 이어 2006년 사업비 38억원을 들여 상당구 석교동 125-88번지 등 16필지 2650㎡를 매입해 89대를 주차할 수 있는 제2주차장을 건립했다. 또한 각종 범죄·도난 방지를 위해 CCTV 64대를 시장에 설치했으며, 앞으로도 태양광 발전시스템, 야간 경관 조명등을 설치할 계획이다.
청주육거리 재래시장은 2007년 상인대학 운영을 통해 41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기도 했다. 또 공용쿠폰제 실시, 원산지 표시 사업, 홍보책자 발간 등 다양한 사업 추진과 김장 김치 대축제, 추석 한마당 축제 등 고객 유입을 위한 다양한 이벤트를 갖고 있다.
청주육거리 재래시장은 2006년부터 중소기업청에서 선정하는 전국 시범 시장으로 2년 연속 선정됐다.
간선도로를 따라 우리나라 최고(最古), 최대의 돌다리인 남석교가 묻혀 있다. 일제가 ‘시가지 개정’이라는 미명 아래 땅 속에 묻은 것으로 길이 80여m 달하는 이 돌다리는 오봉원년(五鳳元年:한나라 선제), 즉 박혁거세 즉위 원년인 BC47년에 세워진 돌다리이다. 청주문화원과 청주 JC 등 시민단체는 해마다 시장 입구에서 남석교 모형을 만들어 놓고 ‘남석교 다리밟기’ 놀이를 재현하며 시민 안녕과 건강을 다지고 있다.
-청주시 홈페이지-
우리는 육거리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내렸다. 바로 횡단 보도를 건너 시장 입구로 갔다. 시장은 물을 파는 사람, 물건을 떼는 사람, 물건을 사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나는 아이들이 혹시 장사하시는 분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하고 많이 걱정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장사하시는 분들은 의외로 친절했다. 처음에는 학생들을 시장에 데리고 온 저의가 뭔가 의심하는 눈치였다. 편집위원 중에 사진을 맡은 해주가 사진을 찍으니까 더욱 그랬다. 말을 잘하는 지희가 상인들에게 겸손한 말씨로 이것저것 질문하기도 하자 그들의 의심은 해소되었다. 나도 아이들에게 재래 시장의 본래의 모습을 보여 주고 제대로 알게 하려는 것이라는 의도를 자세히 설명하니까 모두 친절하고 자상하게 설명까지 해 주었다. 오히려 '학생들 교복이 참 예쁘다'고 말하기에 내가 '교복이 예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예쁘지요.'하고 받아 아주머니들이 모두 웃었다. 이곳 상인들이 물류센터나 대형마트보다 훨씬 더 인간적이라는 것을 느꼈다.
입구에서 바라보니 매우 무질서하고 지저분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깨끗하게 지울 수 있었다. 점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점포를 깨끗하고 질서 있게 정리 하였으며, 양쪽에 늘어선 점포 사이 길 가운데 있는 간이 판매대도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매우 낯설어하다가 일단 재래 시장의 정겨운 분위기를 읽었는지 진열된 상품을 이것 저것 만지기도 하고 좋다고 환호도 올리고 사진도 찍고 상인들에게 이것저것 묻기도 하면서 분위기에 젖어 가고 있었다. 교지 기사 수집을 위한 본래의 목적보다도 아이들에게는 '체험학습'이라는 뜻하지 않은 거대한 효과를 거두는 쪽으로 흘러 가고 있어 가슴이 뿌듯했다.
시장의 들머리는 듣던 것보다는 더 사람도 많고 활기차 보였다. 그러나 아직 한낮이라 그런지 물건을 사러 온 사람은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았다. 시장 바구니를 든 가정 주부를 만나기 힘들었다. 명절 전의 농협물류센터나 홈플러스 식료품 코너처럼 활기에 넘치면 얼마나 좋을까?
석교동 교차로에서 보이는 육거리 시장 입구
시장안은 많은 상인들과 고객들로 활기가 넘친다.
나는 아이들에게 상품을 살펴 보라고 했다. 그리고 대형마트에 어머니를 따라가 본 경험이 있으면 그 때와 대조해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라는 암시를 보냈다. 먼저 찾은 것은 가판대 앞에 있는 50대 후반의 상인을 찾았다. 우선 둥글레는 알겠는데 노랗게 부서지는 듯한 상품을 모르겠다. 기장도 아니고 좁쌀도 아니다. 물었더니 메밀이라고 한다.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메밀 찧어놓은 것을 본 일이 없다. 메밀쌀이 이렇게 이쁜 줄은 처음 알았다. 옆에 둥글레도 있다. 누가 사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 사실은 이것이 훨씬 더 믿을 만한 자연산일 텐데 말이다. 이곳이 정선 장날만큼만이라도 흥청거렸으면 좋겠다.
메밀과 둥글레를 파는 가판대
건어물과 젓갈을 파는 가게에 들러 광천에서 온 새우젓을 보았다. 광천에 일부러 가서 봤던 것과 다름이 없다. 다만 양이 그만 못하고 다양하지 못한 것 뿐이다. 값을 물어보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광천보다도 조금 비싸지 않을까? 그러나 광천산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혔다. 백화점에서 작은 플라스틱병에 넣어 비싸게 파는 것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아이들은 젓갈이나 건어물에 크게 관심이 없는 듯하다.
젓갈 가게 앞에서 소중한 한 사람을 만났다. 내가 시내 어떤 학교에 근무할 때 가르친 제자를 만난 것이다. 가정 주부가 되어 아기를 데리고 시장에 온 것이다. 아기는 한 대여섯 살은 되어 보였다. 이름은 잊었지만 예쁘고 참하며 공부도 꽤 열심히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선생님은 여전하세요."하고 생긋 웃을 때 그녀의 옛모습이 보였다. 더구나 "선생님 예전에도 시장 말씀하시더니 학생들하고 시장 오셨네요."라고 말해 줘서 더 고마웠다.
젓갈과 새우젓 가게(깨끗하고 풍성하다)
시장에서 만난 제자 와 아기
과일이나 생선은 까막눈으로 보아도 신선하고 질이 좋을 뿐 아니라 값도 절반 정도로 쌌다. 고등어 명태 같은 생선은 아주 신선하고 품질도 좋았다. 산지를 분명히 밝혔다. 좌판에서 생선을 팔고 있는 30대 후반의 젊은 상인 한 분은 아이들에게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심지어 산지에 따른 생선의 맛과 신선도까지도 솔직하게 설명해 준다. 또한 생선의 종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생선의 이름과 쓰임가지도 설명해 주었다. 한 노년의 상인은 옆에 와서 명태의 이름이 도루목, 생태, 동태, 코다리, 북어, 황태까지 쓰임새와 품질을 가르는 법까지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구경하지 못했던 낯선 생선들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다. 특히 아이들이 좋아하는 갈치에 대해서는 외국산과 우리 제주 은갈치를 대조해 가면서 설명해 주어서 정말 고마웠다. 은갈치의 은빛은 정말로 화려하다. 가격도 물어보니 모든 생선이 대형 마트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쌌다. 맛도 비교되지 않을 만큼 좋은 것은 나도 경험으로 안다.
나는 그 젊은 상인이 하도 고마워서 고맙다는 말을 여러번 하면서 감사를 표했다. 그러나 그 분은 '학생들을 데리고 재래 시장을 찾아오는 선생님'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며 오히려 내게 감사의 말을 했다. 이 청년 상인을 보면서 나는 아이들과 함께 재래 시장을 찾아오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취재 이상의 효과를 거두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사진을 찍으면서 미안해하던 아이들도 그 상인의 모습에서 재래 시장의 인심을 발견하고 감동하는 눈치였다.
상선 가게
깨끗하고 싱싱하며 생산지 표시도 분명하다.
과자
보기에도 아름다운 떡집
원산지 표시와 함께 가지런한 곡물 채소
과일도 아주 싱싱했다. 원산지도 확실하게 표시되고, 정가를 정확하게 표시했다. 물건도 좋았다. 특히 재래시장은 냉장 시설이나 조명이 없이도 싱싱하게 보인다. 대형 마트에 가서 청과물 코너를 가보면 종일 가습기로 습기를 더해 주고 상품에 적절한 조명 시설로 사람 눈을 현혹시키고 있다. 그러나 여기는 그런 시설이 없이도 모든 먹거리들이 싱싱하게 보인다. 그러면 종이에 매직으로 써 놓은 가격이나 원산지 표시를 믿을 수 있을까? 그것은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곳 상인들의 표정을 보면 100% 믿을 수밖에 없다. 그들의 얼굴은 상인이 아니라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어머니나 아내의 표정이고 논이나 밭에서 추수하는 농민의 모습 그대로였다.
이태리에 갔을 때 베네치아에서 거리 가판대의 상인들을 보면서 아주 깨끗하게 정리된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나이 많은 이태리의 할머니들이 시장 바구니를 들고 나와서 서로 반가워하면서 물건을 흥정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 나라의 시장 모습과 흡사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바로 그 때 그 모습을 보았다.
가게에 깨끗하게 진열된 과일
생선 가게를 지나고 과일 가게를 지나니, 떡과 과자를 파는 가게들이 있다. 떡도 그 자리에서 만들어 그 자리에서 파는 것들이라 먹음직스럽고 깨끗하다. 아이들에게 생과자를 사도록 했는데 바구니에 놀랄 만큼 많이 담았는데도 놀랄 만큼 값이 싸서 가게 주인아주머니가 장난하는 것이 아닌가 착각할 지경이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어린 시절처럼 과자를 먹으며 시장을 돌아다녔다. 시장이 믿음직스러웠다. 아이들의 반응도 믿음직스러웠다. 그래서 즐겁다.
빵집에서 크로켓을 만들고 있었다. 그걸 구경하고 있노라니 아이들이 침을 꼴깍 넘기는 것 같았다. 먹고 싶은 만큼 사라고 했더니 한 개씩만 먹으면 된다고 했다. 여섯 개에 4000원이었다. 그런데 한 개를 덤으로 주는 것이었다. 맛도 아주 좋았다. 위생상 불결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겠지만 아주 깨끗했다. 나는 도넛이나 구운빵을 좋아하지 크로켓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먹어보니 아파트 앞에 있는 유명한 제가점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입맛이 촌스러워서 그런가? 그렇다면 그것이 바로 신토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리밥집에 들러 점심을 먹었다. 된장 맛이 아주 좋다. 상추 겉절이, 고사리나물, 콩나물 무침, 무생채 등을 넣고 참기름을 '찍' 뿌린 다음 비벼 먹는 것이다. 아이들이 이런 밥을 먹지 않을까봐 걱정하면서 시장에 왔으니까 자장면이나 핏자 같은 거 말고 시장의 보리밥을 먹어봐야 한다고 설득했다. 이것이 더 위생적이고 건강에도 좋다고 했다. 아이들은 쉽게 수긍했다. 어떤 학생은 처음 먹어 본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먹으면서 아주 맛있다고 해서 감사했다. 특히 된장 맛이 아주 좋았다. 과자에 크로켓을 먹었더도 한 그릇을 다 비웠다. 주인 아주머니 인상도 좋고 아주 친절했다. 계산할 때도 학교 카드 사용을 아주 편리하게 도와주었다. 이웃집 아주머니처럼 마음이 편안하. 시골에서 보리밥을 고추장에 비벼 먹을 때처럼 마음이 편안했다.
우리는 채소 가게, 표고 버섯만 파는 가게, 순대국집 등을 지나 옹기전, 옷가게, 농기구 가게를 지나서 민물 고기를 파는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눈 다음 성안길로 향했다. 아이들은 민물고기에 대해 아주 신기하게 생각한다. 미꾸라지와 미꾸리의 차이점을 설명해 주었다. 또 가물치와 쏘가리, 붕어, 메기, 잉어 같은 민물고기에 대해 매우 신기해 했다. 특히 자라는 처음 보는 사람도 있고 그것을 사람들이 먹는 것에 대해서도 신기하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시장의 풍경
시장의 풍경
시장의 풍경
떡집 앞에서, 시장보기 실습
늘어선 점포 - 그러나 장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깨끗하게 정리된 점포
순찰 초소- 그 앞에 채소와 표고가 싱싱하다
표고가 싱싱하다
예술품
시장에서 식사하는 노점상
육거리 시장의 자라
보리밥집
성안길로 접어들면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재래시장은 단순히 물건만 팔고 사는 곳이 아니라 찌든 현대 생활에서 잃었던 옛날의 인정을 맛보는 곳이다. 재래시장은 값도 싸고 육거리 시장에서 보았듯이 우리 지방의 풍물과 인심을 발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내가 필요한 물건을 사고, 팔고자 하는 물건을 팔아서 이윤을 남기는 경제적 공간이라기 보다는 인정을 나누고 삶의 정을 나누며 나를 돌아볼 수 있고, 우리네 살아온 삶의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 미래를 조명할 수 있는 삶의 공간이다.
당국에서 시민을 재래시장으로 부르기 위해서는 대형 주차장을 조성하고, 상품을 싣고 내릴 수 있는 공간과 시스템을 마련하여 좀 더 현대화했으면 좋겠다. 왜 대형 마트에는 초대형 주차 시설을 제공해 주면서 재래 시장은 홀대하는지 모르겠다. 또한 상인들에게 세제상 혜택을 주어 질좋은 물건을 싸게 팔 수 있는 제도상 보완을 해주면 좋을 것 같다. 청주 시내에는 육거리 시장을 비롯한 북문시장, 가경시장, 복대 시장 등 몇 개의 재래 시장이 있고 많은 시민이 이용하고 많은 상인들이 그 시장에서 일하여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시민의 중요한 삶의 현장이다. 시청에는 과연 이들을 관리하는 특별 부서가 있는지 궁금하다. 시의회 의원들은 과연 재래시장의 유통 현실과 삶의 모습을 얼마나 고민하는지 알고 싶다. 이런데 관심을 두고 현재의 모습에서 전통을 이어 나가는 것이 바로 문화를 살려 영원히 간직하는 무형의 자산이 될 것이다.
<성안길>
성안길 탐방은 청주읍성 남문터에서 부터 시작하였다. 우선 남문터에 대하여 개략을 설명하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 청주 읍성과 읍성에 있던 4대문을 설명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성안길'이라는 지명 유래를 대충 이야기하였다.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기도 하고 처음 듣기도 한다고 했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은 아빠나 엄마로부터 들었다고 한다.
〔성안길〕
청주시 상당구에 있는 대표적인 상가지역이다. 청주시의 대표적인 상권 지역이다. 1990년대 후반에는 침체 현상을 겪기도 했으나, 대형 쇼핑센터가 들어서면서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성안길의 로데오 거리는 젊음의 문화가 살아 숨쉬는 로데오를 표방하고 있다. 청소년부터 중장년층들까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패션 문화공간이다. 특히 상당구 북문로 1가에 조성된 ‘모던 쇼핑 스트리트’는 청주권의 패션 메카로 자리 잡고 있다.
-디지털 청주문화대전-
〔청주읍성〕
(1) 정의
조선시대 청주관아(官衙)와 민거(民居)를 둘러쌓은 성.
(2) 개설
읍성은 지방 군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 행정기능을 담당하던 성이다. 우리나라 역사서로서 가장 오래된『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에 신라 685년(신문왕 5) 3월에 서원소경을 설치하고, 689년 윤(閏) 9월 26일에 서원경성을 쌓았던 기록이 있어 청주읍성의 전신은 아마도 통일신라가 구주오경제(九州五京制)를 갖추던 신문왕대 특히 685년부터 689년까지에 걸쳐 축조되었다고 여겨진다. 우리나라 읍성으로서 축조연대를 문헌으로 알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성에 속한다.
통일신라에서 중요한 지방 도시에 해당되는 9주와 5소경의 도시 구조는 문무왕~신문왕대에 이르러 주성(州城)과 소경성(小京城)의 축조가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이러한 축성은 도시의 방어목적과 보민용으로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지금까지 밝혀진 연구 결과에 의하면 포곡식산성(包谷式山城)과 평지의 시가지 계획이 실시된 유형에 있어, 여기에 남원소경(南原小京, 지금의 남원)·사벌주(沙伐州, 지금의 상주)·청주(菁州, 지금의 진주)가 속하는데 시가지는 방리제(坊里制)가 채택되어 160×160m 크기의 방과 시가지 중앙에 폭 80m의 남북대로가 있어 좌우 대칭 모양으로 되어있고, 다음으로 시가지가 성으로 둘러싸여 나성형식을 가진 유형이 서원·국원(國原, 지금의 충주)·북원(北原, 지금의 원주)·완산주(完山州, 지금의 전주)·하서주(河西州, 지금의 강릉) 등이라 한다.
(3) 위치
청주읍성은 보통 조선왕조시대의 청주목(淸州牧)의 읍성이라고 이해되고 있다. 조선시대의 청주읍성은 현재의 청주 시가지에서 무심천(無心川)(無心川, 옛 대교천)의 동쪽에 있으며 고려시대부터 있어온 성터가 기본이 되어 조선시대에 이어진 것이었다.
(4) 건립경위
청주읍성에 관한 것은 고려 태조대에 나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고, 상당산성에서 「사량부속장지일(沙梁部屬長池馹)」의 명문와가 출토되기도 하였으므로 7세기 후반의 서원경성이 어떤 것인지 알기 어려우나, 읍성 자체가 서원경성이었을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다.
읍성 내에 있는 고려 초의 용두사지(龍頭寺址)철당간(龍頭寺址鐵幢竿)은 고려 초부터 이곳이 읍치의 중심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며, 청주시의 읍성이 있던 지역의 도로망이 남문에서 북문까지의 대로를 중심하여 방격(方格)으로 짜여져 있는 것은 고대의 경성방리제(京城坊里制)를 방불케 하는 바가 있다.
그런데 후대로 내려와 청주읍성의 축성기사가 비교적 명확하여, 시축 시기에 혼동을 가져왔으며, 고려시대 읍성이 홍수로 말미암아 훼손된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토루로 된 읍성을 석축으로 고쳐 쌓은 연대는 불명확하나 1487년(성종 18)에 완공된 것으로 나타나 있다.
(5) 형태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地理志)에서는 읍성은 석축이고 둘레가 1,084보인데, 성 안에 우물 13개가 있어 사철 마르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어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는 둘레가 3,648척, 높이 8척, 『성종실록(成宗實錄)』에서는 둘레 5,443척, 높이 13척,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서는 1,427보라 하여 각기 차이가 있다.
필사본으로 남아있는 『청주읍지(淸州邑誌)』의 성지(城池)에서 읍성을 「돌로 쌓고 1,350보이다. 포루가 8곳인데 다만 두 곳이 남아있다. 높이는 8자이며, 성안에 우물 13개가 있다. 여장은 566타가 있고, 서문·남문·북문은 모두 아치식이며, 또한 문루가 있으나, 동문은 홍예를 틀지 않았고 문루도 없다.」라 하였다.
이러한 기록의 차이는 용척(用尺)의 차이와 성문의 옹성과 문구부(門口部)의 포함여부에 따른 차이로 여겨지며, 대체로 둘레 1,640m, 성벽 높이 4m 규모였다고 여겨진다. 임진왜란 때에는 읍성을 점령한 왜군을 의병군이 탈환한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전해오는 『청주읍성도(淸州邑城圖)』가 전라남도 구례의 운조루에 남아 있어 조선시대 후기의 읍성내 건물의 배치와 민가의 존재 상황을 대략 알 수 있다.
(6) 현황
한편, 1910년 한일합방이 되어 관찰부 대신 도청이 청주에 설치되었고, 1911년 4월 착공하여 1915년에 마친 시구 개정사업을 명분으로 하여 먼저 사방의 성벽을 헐어 그 돌을 이용하여 하수구를 만들고 남석교에서 일직선으로 남문을 경유하여 북문으로 통하는 간선도로 즉 성안길(중앙로)을 개수하였다.
따라서 그 성벽 자리는 지금까지 도로의 구실을 하였으므로 성벽을 찾아볼 수가 없다. 이처럼 일제에 의해 헐려서 지금은 존재하지 않으나 읍성이 존재했던 터전을 알 수 있고, 과거 읍성의 존재에 대하여는 문헌기록이 남아있다. 현재의 청주시는 읍성이 없기 때문에 역사도시로서의 면모를 확연하게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읍성이 아닌 다른 유적들을 통하여 역사도시로서의 면모를 짐작할 수밖에 없다.
-디지털 청주문화대전-
〔청주읍성 남문지〕
(1) 정의
청주읍성의 남쪽 문이 있던 자리.
(2) 현황
상당구 남문로 2가 남단에 있는 청주읍성 남문터는 청남문(淸南門)이라 하였으며, 홍예문·문루·옹성이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모두 헐리어 성안에 있던 관아와 충청병영의 시설들도 없어졌다.
본래 남문 앞 옹성리(甕城里) 마을은 성안길의 남쪽 끝이며, 성곽도시였던 청주의 관문으로서 역할을 하였다. 남문터를 알리기 위해 1994년에 청주 문화사랑 모임이 표석을 설치하였다.
-디지털 청주문화대전-
청주읍성 남문터
북문지 앞에서 이쁜 편집위원들
성안길에 들어서자 육거리시장과는 분위기부터 사뭇 다르다. 젊은이들이 물밀듯이 걸어다니고 간혹 토요일 수업을 일찍 마친 학생들도 있었다. 청주의 유행의 최첨단을 선도하는 거리답다. 거리에 좌판을 놓고 물건을 파는 사람도 있고 먹거리를 파는 사람도 있다. 거리의 상가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대부분이 젊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물건을 실제로 사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다. 상가는 거의 할인 판매 기간인 모양이다. 할인 판매 사실을 대형 광고물로 붙이고 사람들을 유인하고 있으나 책가방을 둘러멘 학생들만 드나들 뿐이다. 오히려 거리 문화가 더 흥청거리고 거리에 설치해 놓은 가판대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남문지에서 바라본 성안길
축제 분위기의 거리 모습
할인 매출 기간
거리의 마술사
가판대
성안길의 끝이라고 볼 수 있는 북문터
아이들은 내가 있어서인지 아니면 실제로 별 관심이 없어서인지 그냥 물 흐르듯이 군중을 지나쳐 청소년 문화거리로 흘러 갔다. 청소년 문화거리는 사람들이 천막을 치고 오후에 몰려들 사람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천막에는 모두 '청소년문화거리', '청소년무화존'이라고 쓰고 무슨 설문 조사를 한다든지 홍보를 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몰려드는 청소년은 없었다. 체험활동이나 마술체험 같은 것도 아이들은 없었다. 차없는 거리라는데 의미가 있는 것으로만 보면 좋을 것 같다.
안타까운 것은 청주시에서 청소년문화거리를 만들면서 어떤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청소년 문화존 바로 옆에 노래방이나 단란주점이나 중년나이트 같은 것들이 그냥 거기 있었다. 청주시에서 많은 예산을 들여서 만들어 놓았지만, 교육을 맡은 사람 입장에서는 가서는 안되는 곳으로 지정해야 할 판이었다. 시에서 어떻게 그 사업체를 청소년 문화존이니 폐업을 하고 나가달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길게 앞을 내다본다면 성안길이나 기타 다른 곳에 있는 청소년 관련 문화시설을 이곳으로 모을 수도 있을 것이다. 독서실, 서점, 만화방, 패스트푸드점, 청소년 저용 영화관, 청소년만 갈 수 있는 피시방 같은 것을 들 말이다. 지방자치단체 장들이 내 임기 동안 이루어내는 실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가능할 것이다.
한곳 공터에 무대를 만들어 놓고 무슨 공연 준비를 하는 듯 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무대에서 연습을 하고 있었다. 몇 명이 객석에 앉아 있었지만 흥미 없는 표정이다. 우리 편집위원들도 객저성에 앉아 있었지만 취재 이외의 호기심은 없는 듯하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일어서서 다른곳으로 이동하자고 한다.
우리는 여기서 오늘 탐방을 끝내고 나는 집으로 돌아오고 아이들은 학교로 돌아 갔다. 학교에 남은 공부가 있다고 한다. 토요일 오후가 자유스럽지 못한 아이들이 그 얽매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나는 약간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랬더니 아이들은 오늘 아주 좋은 공부를 했다고 한다. 생활과 접하는 좋은 공부라는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경험이다. 대학 입시에도 이런 경험이 큰 기여를 해주었으면 더 좋겠다.
청소년의 문화
청소년 문화거리에서
마술체험활동 그 너머에는
오늘 거리문화 탐방은 아주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육거리 시장이나, 성안길이 우리 문화의 소중함에 대한 깊은 인식을 하고 있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그러한 거리 문화를 보존하고자 하는 정책적 배려나 예산 확보에는 매우 인색한 것 같다.
최근 육거리 시장, 성안길, 수동 달동네인 수암골 같은 곳이 영화의 촬영지로 관심을 끌고 있다. 심지어는 일본인들 가운데 한국 문화의 본고장으로 서울의 명동이나 인사동 근방만을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육거리 시장과 성안길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그들이 영화촬영의 배경으로 삼기도 한다고 한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보면 땅에 묻힌 남석교, 문지만 남아 있는(사실 문지조차도 없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청주 읍성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 더구나 이런 문화재가 금세기까지 잔존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한 때 힘을 잃은 겨레가 그들의 역사에 얼마나 엄청난 손실을 가져오는가 짐작할 수 있다. 북문지에서서 가만히 남아 있는 청주 읍성을 그려 본다.
'여행과 답사 > 우리문화 답사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조대왕 태실 답사 - 대왕의 태- (0) | 2014.08.02 |
---|---|
충북 진천군 진천농교 (0) | 2012.07.30 |
청주 산남동 원흥리 유적 답사 (0) | 2009.10.28 |
진천 이월의 이원 아트빌리지 상촌미술관 (0) | 2009.05.26 |
진천 종박물관 (0) | 2009.05.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