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생활과 일상/것대산이나(病床일기)

것대산이나 바라보며 -병상에서 8일째

느림보 이방주 2009. 3. 31. 22:55

2월 20일(금요일)

 

오늘은 종업식이다. 종업식은 어떻게 진행될까? 교직생활 동안 내가 의식을 진행하는 마지막 종업식이 될 줄 알았는데 그걸 놓치고 말았다.  뭐 그렇게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학교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을까? 뭐 다 그렇게 잘 진행되고 있겠지. 지금 봐서는 23일 퇴원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퇴원을 한다고 해도 학교에 나가서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방학 중인데 그냥 병가를 다시 냈다.

 

사실 오늘은 이효정 선생님과 전라도 지방의 산 3~4 군데를 오르기 위해 벌교에서 만나기로 한 날이다. 이선생님이 먼저 가서 20일 조계산을 종주하면 나는 종업식을 마치고 시외버스로 벌교에 내려가 합류하기로 했다. 그래서 23일 저녁에 올라와도 24일부터 학년말 정리를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럴 계획이었다. 그러나 허사이다.

 

아침에 보니 온몸에 발진이 깨끗이 없어졌다. 그러나 그건 없어진 것이 아니다. 주사나 약 기운 때문에 살갗 밑으로 숨은 것이다. 마치 두더지처럼 말이다.  그러나 주사를 놓아도 약을 먹어도 그 때만 숨을 죽이던 것보다는 약의 효과가 좀더 오래 지속되는 것은 그만큼 그놈들의 기운이 떨어진 것이라고  자위했다. 기침도 거의 없어졌다. 가끔 나오는 기침에 가래는 없다. 또 마른 기침으로 돌아가는 것인가? 그러나 병원에 처음 오던 날, 바로 그 이튿날에 기침을 하면 가래가 나오고 혈농이 섞여 나오던 것에 비하면 나아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기침을 할 때 가슴이 아프지 않다. 그냥 퇴원해서 집에서 주사를 맞으면 안되나? 링거도 포도당으로 바뀌었다.

 

머리가 맑아진다. 것대산이 한층 가까이 보이는 듯하다.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식 날이다. 우연일치겠지만 그 분도 폐렴으로 돌아가셨단다. 그 분의 장례를 보면서 사는 방법이 참으로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팔봉과 같이 사는 법도 있도 김수환 추기경님처럼 사는 방법도 있다. 모두가 역사 속에서 자신이 서 있는 순간에 어떤 것이 역사의 도도한 흐름에 아름다운 한 물결을 보태는 것인가에 대한 판단에 달려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렇게 병상에 누워있는 나 같은 몸이야 그 거대한 역사의 물결에 비하면 좁쌀만한 물방울도 되지 못하니 별 걱정될  것은 없다.

 

아침에 밥이 없어서 한참을 기다려 얻어 먹었다.

 

항생제를 바꾸었다고 한다. 나는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지 못한다. 설명해 주는 이도 없고 듣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런 것을 꼼꼼이 알고, 모르면 물어서라도 적어 두어야 바른 병상일기가 제대로 될 것이라는 생각은 했다. 그러나 귀찮다. 이렇게 누워 있다가 나아지면 나가면 되는 것이다.

 

새벽에 피를 뽑았는데 왜 뽑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세수를 하고 대변을 보고 와서 또다시 그냥 늦잠이 들었는데 간호사가 와서 피를 뽑는다고 했다. 그냥 그러라고 했다. 그런데 혈액 검사를 통해서 농증의 정도를 추측하는 모양이다. 피가 많이 맑아졌다고 결과를 일러 주었다. 그러나 새벽에 대변을 볼 때마다 참혹함을 본다. 나는 그냥 항생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변이 말똥처럼 전혀 끈기가 없다. 물을 내리면 굵직한 뱀이 굴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처럼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등겨가루를 물에 적셔 뭉쳐 놓은 것처럼 힘없이 풀어져 흘러 간다. 가루처럼 부서진다. 그냥 부서져서 빗물에 황토가 섞이듯 변기에서 떠내려 간다. 나는 내 몸에 살이 그렇게 힘없이 흘러 떠내려 가는 것 만큼 슬펐다.

 

아내는 절에 갔다가 오후에 왔다. 큰 누님이 또 전화를 하셨다. 여전히 어머니 목소리다. 엄마의  눈시울에 떠나지 않던 눈물이 슬픔처럼 보인다. 동갑내기 김선생님과 선생님 몇 분이 또 오셨다. 김선생님은 이미 발령이 났다. 죄를 짓는 기분이다. 갚아야 한다는 생각도 잘못이겠지. 저녁에 학부모 한 분이 딸과 함께 왔다. 물론 학부모라기 보다는 문우라고 하는 편이 낫겠다. 비타민제를 사왔다. 새콤한 맛이 생기를 돋운다.

 

논문 한편을 더 읽었다.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눈이 점점 흐려지는 것 같은 기분이다. 퇴원했으면 좋겠다. 이효정 선생님이 산에서 전화 ---.  벌교에는 차밭이 파랗게 생기를 더하고 있겠지.  그림처럼 눈에 선하다. 퇴원하고 싶다. 몸이 한없이 가벼워진 것 같다. 로비에 나가면 어지럽다. 병원에서 더 허약해졌다고 말하고 싶다. 주사바늘 들어간 곳이 아프다 부어 오른다. 어머니는 이승을 떠나시기 전에 그 두 달간 얼마나 괴로우셨을까? 결국은 이렇게 나도 그렇게 되는 걸 ---  링거라도 빼면 날아갈 것 같겠다. 그게 곧 해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병동에 있는 많은 노인들의 누어있는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죽음이 해방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끔찍하고도 해서는 안될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