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7일(화) 닷새째
주사는 계속 찔러대는데 가슴 통증은 멈추지 않는다. 기침은 좀 줄었지만 기침을 할 때마다 찢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아프다고 말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일찍 내보내 주지 않을까 하는 어린애 같은 생각이다. 오후에는 가슴 통증이 갑자기 더 심해졌다. 그래도 말을 하지 않았다.
옆자리 40대 날나리 환자는 종일 텔레비젼을 켜고, 밤에도 쉬지 않고 켠다. 나를 의식해서 소리를 작게 하지만, 그래도 귀에서 왱왱하는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혹 밤에 간호사가 와서 체온을 재거나 혈압을 체크하고 링거를 돌아본 다음 자는 것 같아 끄고 나가면 즉시 다시 켠다. 100원이면 30분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창틀에 동전을 쌓아 놓고 연신 넣는다. 텔레비젼 돈 통에 들어 있는 동전은 누가 꺼내 갈까? 그는 동전이 떨어지면 주섬주섬 웃저고리를 찾아 입고 밖으로 나가 동전을 바꾸어 왔다. 그럴 때면 담배 냄새가 심하게 났다. 나간 김에 담배를 피우고 오는 모양이다. 그는 가끔 술도 마셨다. 함께 쓰는 냉장고에 맥주가 들어 있었다. 병원에서는 가끔 냉장고 검사도 해야겠다고 쓸데없는 생각을 해 보았다. 돈 통에 동전을 넣으면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천둥소리 같다. 나도 돈 좀 넣으라는 얘기 같다. 가끔 아내가 동전을 넣기도 했고, 아들이 오면 돈을 넣었다. 낮이나 밤이나 잠을 잘 수가 없다.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 있는다. 밤에도 그렇다.
점심 시간에 2학년 부장님과 담임 선생님들 몇 명이 오셨다. 미안했다. 그 분들의 피같은 회비를 덜어 내게 주었다. 학년부장을 해봐서 나도 알지만 학년부가 가난하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안다. 여러 가지를 깊이 생각할수록 미안하고 괴롭다. 지난 1년이 많이 후회스러웠다.
이효정 선생님 내외분이 오셨다. 인사 이동이 되어서 매우 바쁠 텐데 여러가지 음식을 해오셨다 그 중에 사모님의 특기인 열무김치는 입맛을 돋구었다. 며칠 간은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단백질 금지를 당한 나로서는 김치만으로도 충분히 식사를 때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아, 그런데 얼큰하고 시원한 열무김치를 보니까 갑자기 라면이 먹고 싶어진다. 오돌오돌하게 끓어난 뜨거운 라면에 냉장고에 들어 있던 시원한 열무김치를 얹어서 먹는 맛은 생각만해도 속이 탁 트이는 기분이다. 이효정 선생님과 백두대간에서 라면을 끓여서 그렇게 먹은 적이 있는데 그 숲 속이 다시 그립다.
내과과장님이 와서 2주 입원을 이야기 한다. 너무 길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저녁에는 며칠간 떨어졌던 밥맛이 조금 돌아섰다. 아내가 해온 반찬 때문일 것이다. 저녁을 먹고 나니 몸에 있는 주사 줄을 모두 떼어 주었다. 몸을 씻고 싶었다. 간호사에게 물으니 괜찮다는 것이다. 얼마만인가? 샤워실이라고 쓰인 곳에 가서 옷을 벗고 몸을 씻었다. 머리서부터 뜨거운 물을 끼얹으며 씻노라니 거울에 비친 내 몸이 참 우습다. 며칠만에 이렇게 가늘어질 수가 있는가? 탄력도 없고 껍질 벗긴 삼대를 묶어 세워 놓은 것처럼 가볍다. 머리도 감았다. 하수도 구멍이 메일 정도로 머리가 빠진다. 면도도 했다. 옷을 갈아 입으니 그런 대로 개운하다. 아내가 환의를 바꾸어 와서 그것까지 갈아 입었다.
사람들이 다녀가는 틈을 타서 김팔봉 문학 연구 논문 한 편을 읽었다. 궁금하던 글이라 재미있다. 아들이 수필학을 가져왔다. 읽고 싶었던 책을 미루어 두었던 것이다. 15집, 16집을 연달아 읽었다. 시간 때우기는 그만이다. 간호사들이 흘끔흘끔 보고 지나가고, 누군가 가만히 누워 있어도 병이 나아질까 말까인데 어려운 책을 보면 언제 낫겠냐고 핀잔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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