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8일(수)
오늘 옆으로 누워 보았다. 오른쪽으로 누우면 가슴이 터질 듯하더니 오늘은 누워도 괜찮았다. 반듯하게만 누워 있는 것보다 편리했다. 우선 링거를 왼쪽 손이나 팔에 꽂았을 때는 오른쪽으로 눕는 것이 편리했다.
점심시간에 심선생님과 1학년 여선생님들이 오셨다. 그중에 어른인 심선생님이 환자가 왜 양말을 신지 않느냐고 일러 주었다. 나는 흉칙한 발을 얼른 이불 속으로 넣었다. '맞아 양말을 신는 거야.' 그래야 발도 시리지 않고 말이야.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그 분들이 돌아가신 다음에 바로 양말을 신었다. 훨씬 안정감이 있다.
주사는 날마다 똑같이 맞는다. 간호사들은 친절하다. 그들의 친절은 몸에 배어 있다. 그냥 사무적인 친절이 아닌 것 같아 미더웠다. 그런데 간호사마다 기술은 조금씩 다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나는 그 분들이 대학에서 처음 배울 때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주사 바늘을 찌르는 기초 과정에서 교수의 설명을 제대로 듣지 않은 모양이다. 그리고 자기 나름대로 몇 년을 지낸들 누가 일러 줄 것인가? 과연 나는 제대로 하고 있을까? 대학에서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나는 말이다. 나도 내 앞에 있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침을 베풀어야 하는 것도 생각하게 되었다.
저녁을 먹고 어두워질 때까지 것대산을 바라보았다. 하늘이 점점 회색빛으로 변해 가는 모습이나, 청남학교 둘레 마을에 불이 들어오는 모습은 어제와 마찬가지이다. 창문 가까이 가서 차들을 내다 보았다. 차들도 어제 그대로다. 병실 밖으로 나가서 복도를 서쪽 끝까지 걸어 보았다. 서쪽 하늘이 붉게 타고 있다. 그 너머에 우리 아파트가 있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러나 자꾸 집이 아주 먼 곳으로 생각된다.
혈압과 체온을 수시로 재 가면서도 간호사들은 말이 없다. 이상이 없어서 그런다고 한다.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 낮에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는데 무슨 잠이 오겠는가? 겨우 것대산이나 바라보는데 무슨 피로가 있어 잠이 오겠는가? 또 낮이라 하여도 책을 읽다가 피곤하면 그냥 누워서 자면 된다.
딸이 연신 전화를 한다. 외지에 가서 아비의 아픔을 들으니 불안하겠지. 눈으로 보지 못하니 더 그럴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에게도 부담을 준 것이다.
아내 친구들이 연신 전화를 한다. 큰일이다. 그 분들이 알면 떼로 몰려올 것이다. 그러면 난 꼼짝 못하고 이 몰골을 보여줘야 한다. 아내에게 단단히 조심을 시켰다. 뿐만 아니라 아내와 함께 테니스를 하는 박선생님 사모님에게도 단단히 부탁을 했다. 세상은 이미 어두워졌다. 것대산도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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