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과 서재/문학과 수필평론

수필문학 세미나에 대한 변명

느림보 이방주 2005. 3. 20. 07:44

   3월 12일

3월인데도 바람이 차다. 서울 바람은 더 차다. 시골 사람에게 서울 바람은 언제나 더 차고 냉정하다. 지하철 종각역에서 내렸다. 그러나 1번 출구를 찾아 밖의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 가슴 두근거리도록 달갑지 않다. 아니 오히려 가슴 밑바닥에는 새 부임지의 교문을 들어설 때와 같이 기대감보다 작은 두려움이 더 솔솔 피어오른다. 출구를 나가 서울호텔을 찾아가기까지 차고 냉랭한 바람은 어머니가 생각날 정도로 매웠다. 안경 속에 휘도는 작은 폭풍 같은 바람이 자꾸 눈물을 나게 했다. 시작 시간이 한 시간이나 남았다. 호텔 옆 찻집에 들러 따끈한 원두커피를 마시며 출력시켜온 원고를 꺼냈다. 아뿔싸, 완성된 원고를 보낸 것이 아니라 초고를 보낸 것이다. 오자는 한두 자밖에 없지만 어색한 어구와 비문투성이다. 특히 '봄에 만나는 나'는 이미 내 작품집 '축 이는 아이'에 발표된 것인데 그냥 읽어봐도 책과 많이 달랐다.

 

한국수필작가회로부터 '나의 수필작법'이라는 주제로 수필을 발표하라는 주문을 받은 것은 2월 중순이다. 허정자 회장께서 직접 전화를 했다. 누군가 발표하기로 되어 있는데 사정이 생겼다는 것이다. 나는 ‘나의 수필작법’으로는 몇 해 전에 써 놓았던 '하나의 잎새에 머문 우주'가 있었기 때문에 어려울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한국수필작가회 모임이 있을 때마다 이런저런 핑계로 빠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꼭 참석시키기 위한 회장의 배려라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고마웠다. 예시 작품으로는 작품 가운데 '봄에 만나는 나'를 원고로 보냈다. 이 작품을 보낸 이유는 언젠가 김영희 선생님께서 ‘문학저널’에 실었으면 좋겠다고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는 이 작품이 이미 작품집에 수록 된 것이라, 한 번도 발표한 적이 없는 ‘불의 예술’을 발표하고 싶어 그렇게 했었다.

 

사실 2월말은 교사라면 학년말 휴가가 있어서 편히 지낼 수 있는 기간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게는 더할 수 없이 바빴다. 교장께서는 정년을 맞으시고, 교감 선생님은 다른 학교 교장으로 승진했기 때문에 신학년도 준비를 내가 감당해야 했다. 교사로서 같은 교사들의 교내 인사의 기초를 마련해야하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긴장되고 바빠서 웬만해서는 터지지 않는 입술이 갈라지기까지 했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엉뚱한 원고를 보낸 것이다. 변명할 시간이 없다. 변명은 또 다른 오해를 낳는다. 그냥 읽기로 했다. 원고는 이미 그대로 인쇄되어 있다. 조경희 회장, 서정범 교수께서도 참석하셨다. 조경희 회장께서는 힘은 없어 보였지만 축사를 하시는 특유의 목소리는 카랑카랑하고 이야기가 완벽하게 논리적이다. 그렇게 늙어가는 모습이 부럽다. 내 자리는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 작년에 이 자리에서 질의를 한 적도 있었다. 그 반대편에 앉게 된 것이다. 회원들은 앉아서 작품을 읽고 있다.

하나의 잎새에 머문 우주를 발표하는 나

 

내 차례가 되었다. 비교적 당당하게 나가서 내 작품을 읽을 수 있었다. 나는 나의 수필 작법인 ‘하나의 잎새에 머문 우주’를 읽었다. 김영희 선생님께서는 ‘직접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는 문학교사답게 이론에 충실한 글이었다고 사회자로서의 간략한 설명을 덧붙였다.

 

질의 시간이 되었다. 질의자로 나선 김남석 회원은 처음 뵙는 분이었다. 그분은 ‘하나의 잎새에 머문 우주’에 대해 수필문학 원론과 같은 글이며 세계에 대한 나만의 앎을 격조 높은 지성적인 언어로 형상화해야한다는 말이 ‘체험과 감상’이라는 수필문학의 본질에 맞아 공감한다고 했다. 또 ‘봄에 만나는 나’는 제목부터 깊이 있는 사고를 담고 있을 것 같아 기대했다면서 ‘나는 어떤 빛깔인가?’하는 사색이 좋았다고 했다. 또 중간 중간에 율문으로 표현한 것이 효과적이었다고 반쯤 긍정적인 평가를 해 주었다. 그러면서 ‘날망’이라는 단어가 두 번 나오는데 사전에 없었다면서 ‘날망’에 대해 물었다.


            세미나에서 질의 광경 -나의 맞은 편에 안경 쓰신 분이 김남석 회원

 

나는 날망에 대해 설명했다. 우리 고장인 청주 지방에서 흔히 쓰이는 말이라는 설명을 덧붙여 산등성이를 타고 올라가면 높은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번에는 유인혜 전회장께서 ‘꼭두서니’는 어떤 색이냐고 물었다. 그 분은 그 빛깔에 대해 궁금해서 묻는 것 같았다. 나는 초등학교 때 어머니가 무명에 검은색 물을 들인 이불을 덮어 주시면서 얼굴쪽과 발쪽을 구분하기 위해서 얼굴 쪽을 덮는 천에 들인 유난히 붉은 색 물감을 꼭두서니 빛이라고 하시던 생각이 나서 그 색깔과 비슷한 옷을 입고 참석하신 이숙 선생님의 옷 색깔을 들어 설명했다. 아무도 이의는 없었다.

 

서정범 교수께서 총평을 하는 시간이다. 다른 분들의 발표에 대해서는 그런대로 의례적인 말을 하면서 격려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내 글에 대해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우선 사색이 시적이고 지성적인 수필이라 반갑다고 했다. 우리가 수필을 대접 안한다고 투정할 것이 아니라, 수필의 문학적 위상을 지키려면 지적인 수필을 써야 한다고 강조 했다. 정서적인 수필만으로는 대접받을 수 없기 때문에 지적인 사색을 통해서 정서를 전달해야 한다고 해서 내 글에 공감을 보냈다. 다시한번 이제 수필은 지적인 수필로 끌어 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정자 회장의 인사 왼쪽부터 서정범 교수님, 조경희 회장님 이숙선생님

 

그러나 단어는 일반적인 단어를 써야 한다고 했다. 유명한 수필가가 희소성 있는 단어를 쓰면 사람들이 읽을 때 사전을 찾아보고 ‘야 이런 단어가 있구나.’하겠지만 평범한 작가는 그런 단어를 쓰면 ‘뭐 이런 말을 썼나?’하고 의문을 제기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쓴 단어들은 그 분의 특이한 콧소리의 어조로 ‘뭐 이런 말을 썼나?’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날망’과 ‘청솔의 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 했다. 날망은 당신께서도 충청도 사람이기 때문에 잘 아는데 ‘마루’로 써야 된다고 했다. 서교수께서는 '날망' 은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도 모르는 단어라고 했다. 그리고 청솔의 성에 대해서 작가가 설명해 보라고 해서 나는 글을 쓰기 전에 달이 뜬 새벽에 산에 오르면서 느꼈던 분위기를 되살리며 설명을 했다. 작가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사실 날망은 우리말 큰사전에 이미 실려 있다. 그러나 자세한 설명은 없고 ‘마루’와 같은 말이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 고장에서 날망은 아주 많이 쓰이는 말이다. 시골에 가면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농사짓는 내 친구들도 일상으로 쓴다. 또 정상을 뜻하는 산마루와는 의미가 약간 다르다. 기슭에서 산등성이를 올라갈 때 가장 높은 부분을 날망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등성이를 또 타고 올라가면 날망은 또 나온다. 마루는 산에 하나밖에 없지만, 산등성이를 타고 오르면 마루에 이르는 날망은 여럿이 될 수 있다. 날망이 하나밖에 없는 산에서는 날망과 마루가 같은 의미일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산에서는 엄연히 다르다. 

‘달빛은 청솔의 성을 뚫고 기슭에 마구 피어난 진달래에 하얗게 묻어난다.’에서 '청솔의 성'은 동격은유를 쓴 것이다. 청솔이 성처럼 둘러싸인 아래 진달래가 핀 모습을 그렇게 쓴 것이다. 말하자면 청솔이 원관념이고 성이 보조 관념이다. 여기서 성을 ‘城’으로 이해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같은 시기에 심었을 것이라고 짐작되는 리기다소나무가 무리를 지어 성처럼 자란 소나무 숲을 어떤 말로 단숨에 표현할 수가 있을까? 은유나 상징은 복잡한 관념을 단숨에 생동감 있게 표현하기 위해서 쓰는 표현법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가르쳐 왔다. 그래서 그렇게  쓴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내 뜻을 이해 못하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할 것이라고 믿는다. 또 이해 못한다고 해도 사실 어쩔 수 없다. 시를 읽고 그 비유와 상징을 다 이해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솔직하게 시를 가르치는 지금도 시의 상징과 비유의 원관념들을 다 이해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오히려 다 이해한다면 함축적인 언어에서 긴장감을 갖는 것으로 미감을 구현하는 문학이 무슨 신비감이 있겠는가. ‘날망’, ‘꼭두서니’ 이런 말들이 작가들을 술렁거리게 한다는 것이 참 우습다.

 

작품집에 실린 글에는 ‘보지락’이라는 말도 있다. 초고를 잘못 보내서 오히려 다행이지 완성된 원고를 제대로 보냈으면 난리가 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날이 풀리고 가랑비가 한 보지락쯤 내려 말랑말랑해진 오솔길은’에서 ‘보지락’은 비가 온 분량을 헤아리는 말로 보습이 들어갈 만큼 빗물이 땅 속에 스며들어간 깊이를 말하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이런 좋은 단어가 있는데도 남들이 이해하지 못할까봐 어수선하고 길게 설명해야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문학하는 사람에게 임무가 있다면 사라져 가는 아름다운 우리말을 되살려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설가 김주영은 소설을 쓰기 위해서 시장에서 노인들에게 막걸리를 사드리며 말을 배운다고 한다. 나는 속담사전, 시어 사전이나 고전을 읽으며 아름다운 우리말을 메모한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의무감에서다. 다른 사람의 글을 읽으면서도 새롭고 참신한 말이 나오면 반드시 사전을 찾아보고 메모한다. 그래서 쓰는 단어들이 많다. '보굿', '해토머리', '보늬', '호박눈썹나물', '흰무리' 같은 말도 그렇게 즐겨 쓰는 말 중의 하나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우리 말인가?

 

서정범 교수님께서는 유명한 문인이라면 그렇게 썼을 경우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만 보통사람이 그렇게 쓰면 안 좋다는 말로 나를 섭섭하게 했다. 그래서 나도 노인이 되어 가고 있으면서 문학회에 나가면 젊은이들의 신선함을 이해하지 못하시는 원로들에게 때로 반감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생전의 아버지가 생각났다. 누구만큼 고문을 읽으시고, 수시로 한시를 쓰시면서 문학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계시면서도 학문에 관해서는 고집을 피우시지 않던 아버지의 열린 사고가 부러웠다. 특히 무지렁이인 내 말에도 귀를 기울이시던 것에 대해 새삼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례에 대하여 한국에서 거의 독보적인 존재이시면서도 종묘제례나 사직 대제의 전수자들이 자신들의 스승인 아버지에게 면전에서도 이의를 제기하도록 허용하셨던 사고의 자유가 새삼 가슴 벅차게 했다. 그래서 아직도 제자들에게 그분으로 하여금 큰 그늘을 지어 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세미나

서울에서 바라보면 참으로 시골구석인 청주에서 혼자 올라간 나는 참으로 무거운 마음으로 한강을 건넜다. 그러나 나는 문인으로서, 문학을 가르치는 교사로서의 나의 임무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말을 만들어 쓰지는 않겠지만, 무명시절의 어느 문인처럼 소중한 우리말을 살려 쓰는 데 노력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무명으로 끝날지라도…….

 

용범이 기현이에게 전화를 했다. 추운 자취방에 있는 남매가 보고 싶었지만 그냥 고속버스를 탔다. 아이들은 나를 기다렸는지 그냥 내려간다는 말에 아쉬워했다.

아......, 무명으로 끝날지라도 정말 문인으로서 나이를 먹을수록 분명히 내게도 엄연히 존재할 아집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할 텐데……. 또 그런 나를 닮으라고 젊은이들을 채근하고 강요하지 말아야 할 텐데…….

(2005.  3.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