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답사/우리문화 답사기

통일 비나리

느림보 이방주 2008. 5. 31. 20:32

시민회관에서 권재은 명창의 발표회에 갔다. 국악 공부를 하고 있는 이선생님의 배려로 아주 좋은 소리를 감상했다. 나는 그의 소리에 취해서 의자에 몸을 붙들어 매 놓은 것과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동안 의자에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아내도 취해 있었다. 정말 고마웠다.

권재은 명창의 소리는 노랫가락, 긴난봉가 자진난봉가, 제전, 개타령, 변강쇠타령, 창부타령으로 이어지다가 통일비나리로 끝났다. 중간 중간에 풍물패 시누리의 설장구, 판굿이 흥을 돋우었다. 노랫가락은 본래는 神歌였다고 한다. 그런데 무당들이 시조를 얹어 불러 민요로 애창되었다고 한다. 명창은 노랫가락을 부르고 눈물을 흘렸다. 가사는 잘 듣지 못했지만 가락은 모든 사람의 한이 사래를 틀고 있다가 서리서리 펼쳐나는 것 같았다. 가슴에 물이 괴는 듯 했다.

긴 난봉가와 자진 난봉가는 권재은 명창의 제자라는 성제선 명창이 함께 불렀다. 처음에는 중모리로 나가다가 자진모리로 부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자진난봉가라고 부르는 것이 아닌가 생각만 했다. 민요에 대해 너무 모르니까 답답하기도 했다. 그래도 감동은 전해 오는 것은 음악은 가사보다 가락으로 전하는 언어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전은 역시  함께 불렀는데 제사지내는 과정을 세세히 노래하는 것 같았다. 제전만은 가사를 조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제수 장만하는 과정이 장황하게 나열되더니 제사 지내는 절차와 인생의 무상함을 한스럽게 토로했다. 개타령은 다소 해학적인 창이었다. 판소리처럼 아니리도 가끔 섞이고 개소리 흉내를 내서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변강쇠 타령은 본래 판소리라고 생각했는데 판소리와는 좀 다른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잡가를 들어 본 일이 없는데 일종의 잡가 형식이 아닌가하고 혼자 생각했다. 전하는 변강쇠 타령은 판소리 가운데도 가장 해학성이 짙은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남성과 여성을 묘사하는 장면은 눈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다. 그런 변강쇠 타령이 가사만 소설로 변하여 전해지다가 강릉 매화타령과 함께 최근에 알려져 창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통일비나리는  처음 들어보는 창이다. 민족의 한을 담아 소리질러 풀어내는 의미를 지녔다고 생각했다.

다음은 권재은 명창의 통일비나리이다.

 

통일 비나리


천개시에 나반이요 아만이라

환국서니 환인님이요 배달국 신시환웅 치우지나 십팔세

웅녀의 배를 빌어 단군이 나는 구나

천개이후 반만년 단군조선 서는 구나

불함산 아사달 왕검성 마련할 제

홍익의 인간이요 재세이화의 군이로구나.

드넓은 강토백성 순후지치로 다스려 내고

억세인 오랑캐 인과 덕으로 거느리니

치자의 대본이요 환족의 슬기로다.

이후로 그 혈손이 번창이 뻗어나가 자유평화 인류공영

각 집의 살림살이 넉넉히 유지하라

복빌어 다짐 놓으니 뜻이나 알고 가자

뜻이야 감춰가지고 역사는 가는구나.

각 대의 선왕들이 땅을 줄이고 나라를 세우니

따르던 착한 백성 반도 땅에다 곤두박혀

급기야 시러배놈들 나라마저 팔아먹으니

백성들 죽을 고생 기상은 어딜 가고 슬기마저 숨는구나.

최후엔 제 몸 잘라 남북으로다 갈라서니 애통타 설운지고

통일이 지상과업 통일이 살길이다

비나리를 하잔 뜻 살풀이가 본래 뜻

천지사방에 잡귀 잡신 과학신으로 몰아내

과학신에 붙는 살 민족주의로 몰아내

민족주의에 붙는 살 평화주의로 몰아내

이 구석에는 퇴폐살 저 구녕에는 향락살

이 바닥에는 사대살 저 바닥에는 종속살

이 논빼미에 사채살 저 밭뙤기에 투기살

쌀이라면 통일쌀 목숨부지 근본이라

오공육공 지랄살 입딱 벌어져 병신살

등살밑에 고생살 메치고 제치고 민의살

없는 놈들 한숨살 가진 놈들 과시살

민족주의에 모함살 사대주의에 발광살

하천마다 공해살 위기일발의 핵살

일체 액살 휘몰아다가 금일정성 대를 바쳐

풍물장단에 날려보내니 예 오신 여러분네

만사 대길이요 백사가 여일하여

마음과 뜻과 잡순대로 소원성취 발원이라

천개시에 큰 기상에 큰 뜻이요

두루 몽술이 통일역사 다리펴 도서일본 기지개로

압록건너 만주벌 허리띠 끊어 버리고 큰숨한번 쉬자하고

고난 질곡의 산줄기가 꿈틀거리며 깨는 구나


"비나리"는 한해의 재앙과 액을 멀리 물리치고자 하는 굿소리를 말합니다.

 이광수선생의 비나리가 -많이 알려져 있고- 내적인 인간의 사유를 담고 있는데 반하여

 권재은선생의 비나리는 우리 민족의 창세내력과 그 속의 민족의 한을 살풀이로 풀어낸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소리내는 창법이 다양하며 특이한- 다른 형태의 비나리라고 할수 있습니다.

 이 통일비나리는 1989년 정태춘씨의 '누렁송아지'공연에 함께 공연되었는데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풀어야할 우리 민족의 한의 소리로 채워져 있습니다.


오랜만에 정말 좋은 공연을 보았다. 돌아오는 길이 가벼웠다.

 

(2007. 10.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