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일
아름다운 스위스를 떠나는 것이 아쉽다. 타국에서 이런 감정은 처음이다. 사실 빨리 여행 일정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런데 막상 루체른 중앙역에서 기차를 기다려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기차는 산골짜기를 돌아 호숫가로 그림처럼 지나 절벽을 감고 올라 서서히 산 아래로 미끄러지듯 내려가기 시작한다. 찻길 옆의 건물과 풍경이 조금씩 달라진다. 스위스 마지막 역인 루가노역에 도착했다. 정치적으로는 스위스에 속하겠지만, 도시의 분위기나 건물은 모두 다르게 보인다. 이곳 사람들의 일상 생활은 이탈리아를 모습을 닮아 있는 모양이다. 기관차가 이탈리아 소속으로 바뀌고 승무원도 바뀐다. 이탈리아 경찰관인 듯, 삼엄하게 눈을 치뜨고 좌우를 살핀다. 작은 터널을 통과하자 바로 아탈리아의 첫 번째 역인 치아쏘역에 도착한다. 여기서 경찰관들이 내리고 차는 밀라노를 향해 속력을 낸다.
차창으로 내다보이는 이탈리아는 철저하게 정리된 스위스와는 정 반대이다. 철길 주변의 산과 마을이 자연 상태 그대로이다. 스위스 철길 주변에 잡초 하나 없이 깨끗한데 국경하나로 분위기는 달라졌다. 들판은 온통 옥수수밭이다. 서늘하던 차창에 따뜻한 햇살이 비친다. 크고 작은 도시에는 수많은 자동차가 오고 가고, 공장들이 즐비하다. 스위스와는 분위기가 아주 다르다. 스위스처럼 정갈하고 아기자기하게 정리되지는 못했지만, 활발하고 역동적인 분위기이다. 이탈리아는 영국이나 프랑스에 못지않게 번영을 누린 나라이다. 특히 로마 제국의 영향권은 이집트는 물론 전 유럽을 휩쓸다시피 했다.
차창으로 본 이탈리아의 옥수수밭
베네치아는 베네치아만(灣) 안쪽의 석호 위에 흩어져 있는 118개의 섬들이 약 400개의 다리로 이어져 있다. 섬과 섬 사이의 수로가 중요한 교통로가 되어 독특한 시가지를 이루어 흔히 ‘물의 도시’라고 부른다고 한다. 베네치아는 6세기 말에 리알토 섬을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건물을 어떻게 지었는지 알수가 없다. 사람들은 갯벌에 수많은 기둥을 박고 그 위에 지었다고도 하고, 물 위에 돌을 쌓고 그 위에 지었다고 하기도 한다. 어쨌든 예로부터 활발하게 발전한 도시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14,5세기부터 해상 무역과 상공업의 중심 도시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현재도 유리 제품이 이 지방의 특산물인데 옛날에 비해 많이 쇠퇴하였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영화제, 국제 비엔날레 등이 열려서 관광도시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밀라노에서 이탈리아의 고속전철 트렌이탈리아 (TRENITALIA)로 갈아타고 도착한 베네치아의 산타루치아역은 흥청거리는 오후였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
우리는 이탈리아의 귀신같은 소매치기에 대해 수없이 들었기 때문에 산타루치아역에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모두 소매치기나 되는 것처럼 눈을 부릅뜨고 걸었다. 우리 다섯은 모두 뭉쳐 다녔다. 특히 기차에서 처음 내렸을 때 기습적으로 달려든다는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음날에 로마로 떠날 트렌이탈리아를 예약하는 동안 계속 아들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누군가 아들의 서류 가방을 소매치기 해 갈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모두 기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른 나라에 비해 더 많은 경찰관들이 관광지를 살피고 있고, 불량하게 생긴 청소년들이 이야기처럼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었다. 산타루치아역의 나이 지긋한 역무원은 매우 불친절했다. 돌아보는 듯이 고개를 돌리다가 딴 일을 보고, 전화를 받기도 하였다. 로마까지 예약하는 웃돈을 15유로씩이나 받는다. 그의 불친절 때문에 규정보다 더 받는 것이 아닌가 잠시 의심했다.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산타루치아 역에서 바라본 베네치아만은 크고 작은 배들이 떠나고 들어오고 있다. 모두가 관광객을 실어 나르고 있을 것이려니 생각하였다. 역에서 숙소로 가는 좁은 골목은 시내에서 걸을 수 있는 중심가라고 한다. 사람들과 행상인들이 북적거렸다.
민박집은 한국인이 경영하는데 여러 곳에 분점을 가지고 있는 기업형이다. 지극히 사무적이다. 자신은 조국을 떠나 유럽에 와서 25년을 사는 것이 무척 자랑스러운 모양이다. 안내를 한다면서 우리를 가난한 고국에서 온 무식하고 불쌍한 사람처럼 대해서 몹시 기분이 상했다. 그러나 우리도 무식한 사람의 무식한 자존심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애써 참았다.
베네치아 관광에 나섰다. 바다 위에 떠 있는 것 같은 베네치아는 중세의 모든 시설들이 그대로 유지되어 있다. 건물은 낡고 지저분하다. 그러나 중세의 건물을 보수도 하지 않고 그대로 간직한 시민들의 사고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골목은 모두 운하로 연결되어 있다. 배에서 내려 바로 대문으로 들어가야 하는 집들이 대부분이다. 때로는 좀 더 넓은 운하로, 골목은 아주 좁은 운하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시내버스는 좀 더 큰 배로, 택시는 좀 더 작은 배(곤돌라)로 만들었다. 시내버스 승강장이 물 위에 있고, 택시 승강장도 물 위에 있다. 자가용 배는 자신의 대문 앞에 세워져 있다. 물이 석축을 넘어 대문으로 흘러들어갈 수도 있다. 물은 깨끗하지 않았고 수시로 쥐들이 헤엄쳐 다닌다. 1600년대에 페스트가 도시 전체를 휩쓸었다는 이야기가 아직도 남아 있는 듯 했다. 그러나 도시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겪었을 불편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중심부에 있는 리알토 다리
택시(곤돌라) 승강장
우리가 묵을 한국인 민박집 호텔베네치아도 예전에 왕족이 사용하던 궁궐이었다고 한다. 주인이 으스대면서 말했기 때문에 신빙성이 없었지만, 거실이나 주인 방, 계단 등의 구조가 그렇게 생각되기도 했다. 그는 거실의 집기도 150년 이상 된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아주 오래된 골동품처럼 보였다. 아마도 휴양지의 별궁 쯤 되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먼저 찾아 간 곳은 싼마르코대성당이다. 숙소에서 나와 골목길을 빠져 운하를 피해 돌고 돌면서 리알토 다리 주변의 상가와 낡은 건물들을 둘러보다가 싼마르코광장으로 이어지는 골목을 찾았다. 이 좁은 골목이 산타루치아역에서 싼마르코성당으로 걸어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고 그래서 가장 번화가라고 한다. 골목길은 방향감각을 잃을 정도로 돌고 돌지만, 건물의 벽에 이정표가 있어서 결국에는 싼마르코광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좁은 골목에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이 지나다니고, 수많은 가게에는 현란한 유리 제품이 눈을 유혹한다. 특히 종이로 가면과 유리 장식품이 많이 보였지만, 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마음에 들지도 않고 배낭에 넣을 수도 없었다. 좁은 골목길이 끝나자 탁 트인 광장에는 사람들이 들끓고 비둘기 수천, 수만 마리가 먼지를 일으킨다.
싼마르코 성당과 광장의 비둘기
싼마르코 성당과 두깔레궁전
산마르코 성당은 ‘마가복음서(마르코 복음)’의 저자인 마르코의 유해를 안치하기 위해서 9세기경에 지었다고 한다. 마르코는 예루살렘 교회의 유력자였다고 한다. 열두 제자와 함께 ‘최후의 만찬’을 열었던 곳도 그의 2층 방이라고 한다. 후에 알렉산드리아에서 그의 유골이 발견되어 베네치아로 옮겨 그의 유골을 안치하기 위해 싼마르코성당을 세웠다고 전한다.
웅장한 로마레스크 양식과 비잔틴 양식이 혼합된 건물은 옛날의 화려했던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건물은 모두 대리석으로 되어 있고, 색색의 무늬를 맞추어 장식했다. 외부의 아름다운 장식은 대부분 모자이크였다. 늦은 시간이라 철문이란 철문은 모두 닫혀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이튿날 다시 오기로 하고 광장만을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바다 쪽으로 가니 두깔레 궁전이 있는 곳에서 야외 연주회가 열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모여 들고 박수 소리가 요란하다. 가까이 가보니 음악이 예사롭지 않다. 아들의 설명에 의하면 이곳에 있는 레스토랑이 옛날 명사들의 단골집이라 한다. 돌아오는 길은 걸어서 시내 관광을 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데 골목마다 운하로 바닷물이 들어와 스산한 낡은 건물을 비추니 어쩐지 쓸쓸함을 금할 수 없었다.
산타루치아역 앞 광장에 날아드는 비둘기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 우중충한 건물마다 서서히 불빛이 들어온다. 유리세공으로 이름난 도시답게 화려한 유리제품과 가죽 가방 등을 진열한 가게들이 하나 둘 셔터를 내리고 사람들의 귀가하는 종종 걸음을 보고 있으려니 아내와 아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내 서재와 내 방이 그립다. 더구나 돌아갈 호텔베네치아는 그 호화로운 이름에 비해 훨씬 을씨년스럽다. 동그란 다리로 운하를 건너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두컴컴한 현관이 나온다. 어두운 계단 아래에서 금방이라도 백발의 노신사가 파이프를 입에 물은 중세의 복장으로 우리를 맞이할 것만 같다. 화장실, 목욕실, 침실이 모두 런던, 파리에 어림없다. 게다가 식사도 그렇고 주인 사내는 대부분이 한국인인 여행객들을 우습게 본다. 자신의 고국을 후진국이라고 깔보는 듯한 웃기는 사람이었다. 마치 라틴족의 피라도 섞인 것처럼 우습게도 라틴 문화를 자랑하는 웃기는 긍지를 가지고 있다. 나는 이런 겨레가 참으로 부끄럽다.
이태리 피자로 저녁 식사를 했다. 나는 본래 피자를 좋아하지 않는데, 이태리의 별식은 곧 피자라고 해서 먹어보았으나 역시 ‘요기’하기 위한 식사였다. 남들이 다 호들갑을 떨어도 아내가 끓여주는 된장국이 그립다.
8월 3일
이튿날은 비가 내린다. 된장국을 곁들인 쌀밥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얼마 만에 맛보는 밥인가? 스위스에서 계속 빵만 먹었는데 여기서 밥을 먹는다. 물론 우리 음식과는 너무나 달랐지만, 오랜만에 된장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국 맛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오늘은 싼마르코성당의 내부를 돌아보고, 두깔레 궁전, 탄식의 다리 부근을 돌아 본 다음 로마로 떠나기로 했다. 리도섬은 생략하기로 하고 예정보다 일찍 로마로 가는 것이 낫겠다는 것이 모두의 의견이었다.
그래서 오후 4시 30분에 예약한 트렌이탈리아 예약을 12시 30분으로 앞당기기로 했다. 아들과 나는 싼타루치아역으로 나갔다. 어제와 달리 여성 역무원이 나와 있었다. 그녀는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했다. 어제 남자 역무원보다는 나았지만 프랑스나 스위스의 역무원에 비해 매우 불친절하고 고자세였다.
싼마르코성당의 내부는 예상보다 훨씬 화려했다. '황금의 교회'라는 이름이 붙여질 만도 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부는 온통 금빛의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었다. 마르코의 유해를 성당으로 옮기는 그림도 모자이크로 그렸다. 기둥은 대리석을 깎아 세웠고 벽도 대리석을 붙여 장식했다. 바닥도 형형색색의 대리석 조각으로 모자이크하여 그림을 연출하였다. 벽과 천장도 모자이크로 금칠한 그림이다. 어마어마한 규모와 섬세한 그림이 놀랍다. 그 화려함과 제단의 웅장함이 사람의 마음을 절로 경건하게 한다.
성당 입구의 위 테라스에 장식된 네 마리의 청동말의 진품은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여기 있는 것은 모조품이라고 한다. 1805년 프랑스와 전투에서 패배하자 나폴레옹이 약탈해 갔다가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이 패배하자 되돌려 받았다고 한다.
이 성당의 웅장함을 보면서 라틴 문화의 우수성에 감탄했지만, 우리나라의 다보탑이나 석가탑 같은 정교함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하늘로 치솟은 종탑도 하늘신(天神)을 추구하는 기독교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그에 비해 자연 속에 깊숙이 파묻힌 우리의 사찰은 인간과 신의 조화를 추구하는 신앙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은 문화와 종교의 특성은 생각하지 않고 하늘로 치솟는 성당의 규모에 감탄하여 우리 문화를 왜소하게 생각하는 것이 실망스럽다. 불국사나 법주사 같은 우리의 사찰도 사실은 어마어마한 규모이다. 다만 서구의 성당이 하나로 모여 있는데 비하여 사찰은 수없이 여러 개로 흩어져 있을 뿐이다. 성당 광장에서 비둘기 모이를 파는 중년 사나이의 행동이 재미있다. 모이를 사는 사람이 없으니까 자신이 직접 모이를 뿌려서 비둘기를 모은다.그래도 사는 사람은 없었다.
비둘기 먹이를 파는 사내
두깔레궁전은 9세기경 베네치아공화국의 총독의 성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아름다운 건축물이었다. 탄식의 다리는 17세기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베네치아의 대부분의 다리는 운하를 연결하는 다리인데 비하여 이 다리는 두깔레궁과 감옥을 연결하는 다리로 두깔레궁에서 재판을 받고 나오는 죄수들이 세상과의 단절을 한탄하면서 건넜다고 하여 탄식의 다리라고 한다. 특히 작가이면서 바람둥이였던 카사노바도 이 다리를 건넜다고 한다.
숙소에 가방을 가지러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좁은 골목에 북적대는 시장을 구경했다. 거리의 노점상들은 우리네 시장과 아주 비슷하다. 손수레에 채소를 파는 전이나, 거리에서 생선을 파는 중년이나, 시장에 나와 오랜만에 만나는 노인들의 정겨운 대화가 그렇다. 감자, 가지, 강낭콩, 호박, 배추, 토마토 등이 우리네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형형 색색의 채소를 예쁘게 정리해 놓고 파는 모습이 보기 좋다.
시장에서 만난 노인들의 정겨운 대화
거리를 활보하며 음식을 먹는 젊은 여인들
시장의 풍경
채소 노점상(호박은 꽃가지 먹나?)
생선 노점상
베네치아는 베니스의 상인이 생각날 정도로 상공업이 발달한 도시이다. 섬유, 유리 세공, 화려한 종이 가면 공업이 발달한 것은 사실 귀족들의 휴양지였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귀족들의 욕구 충족을 위한 호화스러움과 사치스럽던 과거가 오늘은 관광으로 흥청거리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운하로 이루어진 인공 섬의 도시라는 특색을 잘 살려 내지 못한 것 같다. 물을 좀 더 깨끗이 할 수는 없을까? 건물은 예스러움을 간직하면서 좀 더 깨끗이 할 수는 없을까? 상인들이나 관공서 직원이 좀 더 친절할 수는 없을까? 시민들은 좀 더 질서를 지킬 수 없을까? 거리를 좀 더 깨끗이 유지할 수는 없을까? 결국 그들은 외국인 관광객들에 의지해서 살면서 과거 화려했던 베네치아 시절의 생각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리알토 다리같은 문화재에 늘어붙은 껌자국들, 쌓여 있는 담배꽁초, 심한 노출, 담배 피우는 여성, 거리거리에 서서 음식을 먹는 사람들, 위협적으로 호객행위 하는 택시(곤돌라)기사들, 흘겨보는 흑인, 훔쳐보는 아랍인 등 모두가 관광객에게는 편치 않은 분위기이다. 우리는 서둘러 베네치아를 떠나기로 했다.
(2006. 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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