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감이 있는 날 아침은
뭔가 어수선하기도 하고, 머리가 띵하기도 하고,
공연히 출근하는 발걸음이 무겁다.
23시까지 교무실에 앉아 정독실을 돌아보아야 하는 일, 기숙사 급탕을 넣고 현관에 앉아 입사생을
기다려야 하는 일, 24시부터 점호를 하고 이제 그만 잘 사람, 더 공부할 사람을 구분하여 기숙사 정독실로 보내고, 불은 잘 들어 오는가,
춥지는 않은가, 아프지는 않은가, 한꺼번에 품안에 안을 수 없을 만큼의 몇 배나 되는 아기들을 살피는 일이 너무나 무겁고 힘들기
때문이다.
풍성한 한가위 명절을 맘 편히 보내지 못한 아이들은
점호 시간이 오기 전에 이미
세면, 청소, 옷 정리를
마치고
정독실로 침실 책상으로 제자리를 잡았다.
얘들아, 아무리 돌아 본들 너희 아빠 눈만큼 밝을 수
있겠느냐?
얘들아, 아무리 살펴 본들 너희 엄마 손만큼 따스할 수 있겠느냐?
공부가 아이들을 지치게 하는 것이어서는
안되는데
아무리 힘든 공부라도 아이들이 신나는 것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신나서 찾아가서 신명나게 들고 나올 수 있는 것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정말
신나는 것보다 더 거룩하게 공부를 맞이하는 사람이 있었다.
거룩한 것보다 더 경건하게
공부를 맞이하는 사람이 있었다.
세수하고, 머리감고, 몸을 씻고, 방을 깨끗이 정리하고
그리고는 교복을 단정히 입고 아주
경건하게 책상에 앉아 있는 어린 성자를 만났다.
그러나
"공부가 더 잘 되어서요."
자기가 앉아 있는 그 모습이 얼마나 경건하고
선생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는지 모르는 단순한 둣 깊은 대답이었다.
"심오한 철학일수록 언어는 단순한 것이다."
새벽이
오도록 공부하는 젊은이들이
대견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이쁘기도 하다.
혜진이는 혜진이라 이쁘고, 유진이는
유진이라 이쁘고, 초록이는 초록이라 이쁘다.
동한이는 동한이라 믿음직스럽고, 건이는 건이라 미덥다.
아침이되자 어린 성자들은
밤을 새웠으면서도 맑고 깨끗한 얼굴로 인사를 한다.
아, 나는 이 성자들이 부럽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가?
돌이킬 수 없는 그 시간이 뼈아프게 후회스럽다.
"아, 나의 고교 시절을 이 사람들을 통하여 돌이킬 수 있지
않은가? 그럴 수 있지 않은가? 더 강하게-----. 더 압축하면서-----. 밤에도 교복 입는 성자들을 위하여"
2004년 10월
2일
교무기획부장 이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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