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꽃
-목성균의 「소년병」을 읽고-
강현자
유월이다. 지구촌 저편에서 들려오는 전쟁 소식, 한갓 뉴스로만 지나칠 수 없는 것은 한국 전쟁을 치른 우리 민족의 과거를 되돌아보는 듯해서다. 물론 나야 직접 전쟁을 겪은 세대는 아니지만 우리는 한 편의 수필 속에서 그 참상에도 피어나는 안타까운 꽃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다.
1950년, 때는 바야흐로 국군이 서울을 되찾고 북진하던 어느 가을의 일이다. 「소년병」의 작가 목성균은 그날의 하늘이 살얼음처럼 새파랬다고 했다. 아마도 전쟁 중이던 때의 긴장된 분위기를 말하려 했음이리라.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는 농촌의 들녘이지만 사람들은 늘 걱정과 불안으로 아침을 열고 저녁을 닫았을 것이다.
작가와 할머니 앞에 느닷없이 나타난 인민군 패잔병은 차라리 경계할 수조차 없는, 여전히 소년티를 벗지 못한 나이였다. 이를 본 작가의 할머니는 전쟁 중이라는 것도 의식하지 않은 채 손자를 생각했을 것이다. 너무도 꾀죄죄한 소년병의 모습이 안쓰러워 해줄 게 아무것도 없다며 “사시장철 밖에서는 늘 쓰고 사시는” 무명 수건을 벗어서 소년병에게 건넨다. 마음으로야 무엇을 못 해줄까마는 그 당목 수건은 인간이 인간이게 하는 최선의 선물이었다. 나는 그 선물을 ‘사람꽃’이라고 부르고 싶다. 맞은편 산등성이로 올라가는 인민군 소년병을 바라보며 작가는 속으로 “형-!” 하고 부르던 그 마음에는 이념을 허공에 띄운 민초의 인간애가 여지없이 드러나는 것이다. 목성균은 그 소년병이 인민군으로 끌려가서 소식이 끊겼다는 아내의 오빠였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한다. 그만큼 민초들의 가슴 저 밑바닥에는 이념의 색깔도 사상의 형체도 없는 따뜻한 인정이 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작품 속 소년병은 내 기억 속 같은 전쟁의 또 다른 장면을 불러낸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한국 전쟁을 직접 겪으셨던 아버지가 남긴 자서전 중 한 페이지를 떠올렸다. 그때 아버지도 인민군 소년병의 형뻘 되는 푸른 나이였다. 할머니가 소년병에게 당목 수건을 건네던 즈음 아버지는 공병대 소대장으로 사기가 충천하여 북진중이었다. 어쩌면 할머니의 당목 수건을 받은 그 소년병을 향해 총을 겨누었을지도….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서늘해진다. 하지만 적군과 아군의 구분이 인정人情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무색해지고 만다.
그때 당시 주로 인민군 소년병 또래의 학도병으로 구성된 소대원을 데리고 아버지는 격렬한 전투에 임한다. 죽은 적군의 호주머니에서 고향에서 찍은 듯한 가족사진을 찾았을 때 아버지의 마음은 우울감에 휩싸였다고 했다. 그 부모형제들은 이렇게 죽어간 것도 모르고 지금 이 순간에도 안위를 하늘에 빌고 있을지 모른다며 승리의 쾌재를 부르는 자신의 상황을 비교하며 부끄러워한다.
꽃은 이념에 따라 옮겨 다니며 피지 않는다.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그곳엔 늘 ‘사람꽃’이 핀다. 아버지는 북진을 하던 중 압록강 근처 희천이라는 곳에서 간호원인 인민군 여군을 포로로 잡는다. 신문하는 과정에서 그 포로는 국군을 적군으로 의식하지 않고 그저 차를 태워준 고마운 아저씨로 생각하는 듯 순수했다. 그 여군 포로와의 짧은 인연은 아버지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았다. 훗날 아버지는 그날 밤을 이렇게 회고했다.
숙소에 돌아와 보니 그 여자는 그때까지 잠을 안 자고 나와 연락병의 양말을 빨아 놓았다. 정말 겁도 없고 착한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가씨 동무에게 잠을 잘 것을 청했다. “이렇게 됐으니 할 수 없다. 별도로 방을 줄 수는 없고 이 방에서 같이 자야지.”하고는 태연한 척했다. 그리고 눈치를 살폈다. 여자는 쉬이 대답하며 구석에 자리를 잡는다. 이미 연락병이 모포를 갈아 놓았던 것이다. 나도 옷을 입은 채 자리에 누웠으나 불안한 예감으로 총을 안고 잤다. 여자는 전혀 그런 눈치를 보이지 않는다. 눕자마자 모두 잠이 들어 눈을 떴을 때는 벌써 아침이었다.
강영환 유고집 『이토록 하고 싶은 이야기』 중에서
국군과 여군 포로의 하룻밤 이야기에서 나는 사람꽃을 보았다. 아슬아슬한 하룻밤이었지만 포성과 아비규환의 전장에서도 꽃은 피어나고 있었다. 포로임에도 집에까지 데려다주기로 한 약속을 진격 방향의 변동으로 지키지 못했다. 물론 아버지는 그 여군 포로를 다시는 만날 수 없었지만 그들은 적군과 아군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정을 잠시 되찾았던 것이다. 그것은 전쟁이 가져다준 꽃이었다.
전쟁은 세대를 넘어서까지 이어지지만 사람의 정은 총칼로도 잘라내지 못한다. 소년병에게 건네던 당목 수건 한 장, 적군의 가슴속에서 나온 가족사진 한 장, 여군 포로가 빨아 놓은 양말은 전장에서도 피어나는 작은 꽃씨였다. 서슬 퍼런 이념 대립이 빚어낸 전쟁도 꺾지 못하는 것이 ‘사람꽃’이다.
지구촌 저편 무너진 벽돌 아래에도, 서로 겨눈 총부리 끝에도 사람만이 건넬 수 있는 ‘사람꽃’이라는 작은 꽃씨는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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