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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여성의 삶과 사랑, 그리고 문학

느림보 이방주 2026. 6. 21. 20:15

조선시대 여성의 삶과 사랑, 그리고 문학

- 규범과 욕망의 두 목소리 -

 

이방주

 

1. 문학이 보여주는 조선 여성의 세계
2. 조선시대 여성의 삶과 사랑
3. 조선시대 살림하는 남자들
4. 조선의 사랑과 문학
5. 사랑과 한국 현대 수필

1. 문학이 보여주는 조선 여성의 세계

 

(1) 규범에 얽매인 삶

 

지아비 밧갈나 간 데 밥고리 이고 가

반상(飯床)을 들오데 눈섭의 마초이다.

친코도 고마오시니 손이시나 다라실가 -주세붕 오륜가 제 4-

 

주세붕은 중종 38년인 1543년 풍기군수로 있을 때에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 백운동서원’(현재 소수서원)을 세운 학자이다. 주세붕이 오륜가를 지은 목적은 그 지방의 풍속과 문화가 어지러우니 백성들에게 오륜을 알기 쉽게 가르쳐 인륜을 바로잡고자 한 것이다. 6수로 이루어졌는데 첫 수는 서문, 다음 5수는 부모의 은덕, 주인과 종 사이에 속임이 없어야 하는 일, 부부간의 유별(有別)’, 형제간의 우애’, 그리고 어른과 아이 사의 공경을 내용으로 한다. 부부유별을 읊은 제 4수에서 밭을 가는 남편과 밥고리를 이고 가는 아내 사이의 규범 속에 담긴 정을 그린 것처럼 백성들의 일상생활을 언어로 나타내려 했다. 이 시조는 남편을 위해 힘든 길을 마다하지 않는 아내의 모습을 미덕으로 찬양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 사회를 지배하는 윤리의식이 여성에게 일방적인 순종과 헌신을 요구했던 현실을 잘 보여준다. 남편 공경은 덕목으로 강조되었지만, 여성 자신의 삶과 욕구는 규범 뒤로 밀려났다. 따라서 이 작품은 부부애의 표현인 동시에 여성에게 희생을 강요했던 당시 사회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 신세한탄, 비관하는 삶

 

형님 온다 형님 온다 분고개로 형님 온다. / 형님 마중 누가 갈까 형님 동생 내가 가지

형님 형님 사촌 형님 시집살이 어떱데까? / 이애 이애 그 말 마라 시집살이 개집살이.

앞밭에는 당추 심고 뒷밭에는 고추 심어, / 고추 당추 맵다 해도 시집살이 더 맵더라.

둥글둥글 수박 식기 밥 담기도 어렵더라. / 도리도리 도리소반 수저 놓기 더 어렵더라.

오리 물을 길어다가 십리 방아 찧어다가, / 아홉 솥에 불을 때고 열두 방에 자리 걷고,

외나무다리 어렵대야 시아버니같이 어려우랴/ 나뭇잎이 푸르대야 시어머니보다 더 푸르랴?

시아버니 호랑새요 시어머니 꾸중새요, / 동세 하나 할림새요 시누 하나 뾰죽새요,

시아지비 뾰중새요 남편 하나 미련새요, / 자식 하난 우는 새요 나 하나만 썩는 샐세.

귀먹어서 삼 년이요 눈 어두워 삼 년이요, / 말 못 해서 삼 년이요 석삼년을 살고 나니,

배꽃 같은 요내 얼굴 호박꽃이 다 되었네. / 삼단 같은 요내 머리 비사리춤이 다 되었네.

백옥 같던 요내 손길 오리발이 다 되었네. / 열새 무명 반물치마 눈물 씻기 다 젖었네.

두 폭붙이 행주치마 콧물 받기 다 젖었네. / 울었던가 말았던가 베갯머리 소() 이겼네.

그것도 소이라고 거위 한 쌍 오리 한 쌍 / 쌍쌍이 때 들어오네.

- 작자미상, 시집살이 노래

 

시집살이 노래는 단순히 시집살이의 고달픔을 토로하는 노래라기보다 조선시대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살아야 했던 여성의 억압된 현실을 드러내는 민중의 목소리이다. 조선 사회는 유교적 윤리 의식에서 비롯된 규범을 바탕으로 여성에게 순종과 인내를 강요하였다. 여성은 시부모 봉양과 남편 섬김, 가사노동을 자신의 의무로 받아들여야 했다. 이 노래에 나타난 한탄과 원망은 불평등한 사회구조에 대한 무언의 저항이다. 특히 남성에게는 사회적 활동과 권한이 허용된 반면 여성은 집안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묶여 있었으며, 시집살이의 고통조차 개인의 운명으로 감내해야 했다. 작품 속 여성의 탄식은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당시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겪었던 구조적 억압의 증언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시집살이 노래는 조선시대 여성에게 희생과 순종만을 요구했던 유교적 규범의 한계를 보여 주며, 인간다운 삶과 존엄을 갈망했던 여성들의 숨겨진 목소리를 담고 있는 작품으로 읽을 수 있다.

 

(3) 조선시대 여성에게 주어진 두 개의 삶

조선시대 여성의 삶은 유교적 규범에 대한 순응과 그로 인한 고통의 한탄이라는 두 모습으로 나타난다. 주세붕의 오륜가에서는 남편에게 밥을 이고 가며 정성을 다하는 아내의 모습이 부덕(婦德)의 실천으로 찬양된다. 여성은 남편을 섬기는 일을 당연한 도리로 받아들이며 규범에 순응한다. 반면 시집살이 노래에서는 시댁에서 겪는 고된 노동과 억압적 현실을 한탄하며 여성의 고통을 드러낸다. 전자가 유교적 질서가 요구한 이상적인 여성상을 보여 준다면, 후자는 그 규범 아래에서 살아야 했던 여성들의 현실적 고뇌와 억눌린 목소리를 들려준다. 이처럼 조선 여성의 삶은 순종의 미덕과 삶의 고통이 공존하는 이중적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이중적인 삶 속에서도 진정성 어린 애정을 담은 사랑의 문학이 이어온 것은 매우 흥미 있는 일이다.

 

두 개의 세계

구분 사대부 여성 민중 여성
언어 규범언어 생활언어
표현 절제 직설
억압·은폐 노출·풍자
사랑 의무 중심 감정 중심

 

2. 조선시대 여성의 삶

 

(1) 혼인

- 법으로 혼인연령을 규정하였다.(18, 16) 조선시대 조혼 악습으로 여기지 않았으나 일제강점기 개화지식인들이 서구에 비해 이른 나이에 혼인하는 것을 폐습으로 보았다.

- 성년이라도 부모의 동의가 필요했다.

- 동성동본 혼인 금지 폐지 (2005)와 호주제 폐지, 여성재혼금지 기간 6개월 폐지, 처음에는 동성 간의 혼인을 금지하다가 동성동본의 혼인을 금지하게 되었다(조선 세종)

조선 세종 때 근친혼(부계) 금지, 성종 때 (모계) 금지- 사족만 지켜지고 양민은 지켜지지 않다가 광복이후 민법으로 규정

- 신라, 고려는 왕족에서 근친혼이 이루어짐(3, 4)

- 조선 시대 양인과 천인의 혼인 금지 규정이 있었다. 이 규정을 어기면 형벌을 받거나 공노비로 삼았다. 이 제도는 상위 신분의 남성이 하위 신분의 여성을 농락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되고, 하위 신분의 남성과 상위 신분의 여성이 관계 되었을 경우 극형에 처했다. 이것은 하위 신분이 지배층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한 것이다. 신분을 넘어서는 혼인도 인정되지 않았다.

- 조선시대에는 중혼이 금지되었다. 혼인은 혼서를 주고받음으로써 성립된 것으로 인정하였고, 중혼은 처벌받고 강제로 이혼하게 했다. 일부일처(一夫一妻)제도란 것도 처첩제는 용인하였다. 중혼을 했을 경우 여성에게 가혹했다. ()은 애정에 매달려 차별과 수모를 면치 못했다. ()는 부덕이라는 미명에 얽매어 자유롭지 못했다. 처는 배우자로 인정받고 부당하게 이혼당하지 않으나, 첩은 배우자가 아니므로 남편이 자의적으로 내쫓을 수 있었다.

- 가족 관계에서 배우자로 인정, 지위를 법으로 보장 받음으로 부당한 이혼을 당하지 않음
- 처의 친가 가족과 인척관계 성립(服制)
이혼을 당해도 자녀들은 복제를 지킨다.
- 가모(家母)로 살림을 총괄한다. (노비, 家率지휘, 곳간 관리)
- 남편의 정치 사회적 지위에 따라 상응하는 지위를 받는다(外命婦)
-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함(호부호형 못함)
- 남편이 자의적으로 내쫓을 수 있음
- 첩의 친가는 법제적으로 친족이 아님
- 죽은 처의 家母 지위를 첩이 대신할 수 없음
- 따로 살림을 차리는 경우(현지 첩)
- 벼슬 임용 제한 멸시
서자: 첩의 자식, 얼자: 비복의 자식
- 적자가 없어도 첩의 자식으로 계승하지 않음
남편 사후에 가모, 재산관리, 재혼 금지 남편 생시에도 재혼 허용(정절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움)

 

- 허난설헌은 김성립이라는 사족의 부인이었지만 그의 가사 규원가를 보면 부부관계가 불공평했음이 드러난다.

 

차라리 잠을 들어 꿈에나 보려 하니, / 바람에 지는 잎과 풀 속에 우는 즘생(짐승),

무슴 일 원수로서 잠조차 깨오는다?/ 天上의 견우직녀 은하수 막혔어도,

七月七夕 一年一度 失期치 아니커든, / 우리 님 가신 후는 무슴 弱水 가렸관디,

오거나 가거나 消息조차 끄쳤는고? / 난간에 비겨 서서 님 가신 데 바라보니,

草露는 맺혀 있고 暮雲이 지나갈 제, / 竹林 프른 곳에 새 소리 더욱 설다.

세상에 설운 사람 수 없다 하려니와, / 박명한 紅顔이야 날 같은 이 또 있일가?

아마도 이 님의 지위로 살동말동 하여라. 허난설헌의 규원가중에서

 

(2) 조선시대 혼인의 절차

주자가례 : 의혼-납채-납폐-친영

조선시대 혼인절차 : 의혼- 납채(납폐)-초례- 신행

17세게 이전(3) 17세기 이후 (4)
절차 의미 내용 절차 의미 내용
의혼 혼인의사 타진 중매인을 통해 타진 의혼 혼인의사 타진 중매인을 통해 타진
납채(납폐) 혼인의 확정
(문서+예물)
납채서 예물 납채 혼약의 확정
(문서+편지)
사주단자
(신랑집신부집)청혼
연길단자(신부집신랑집)허혼
납폐
(납징)
혼약의 확정
(문서+예물)
납폐서(납징서)+예물)
초례 혼인의 완성
(신부집)
전안례, 상견례, 교배례, 합근례, 동뢰연(同牢宴) 초례 혼인의 완성
(신부집)
전안례 상견례
(교배례, 합근례, 동뢰연)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과 친영혼(親迎婚)

남귀여가혼(교려시대) 친영혼(조선 태종 대)
신부 집에 가서 혼례를 치르고 혼인생활
고려 서옥제(婿屋制)
삼일 상견례
첫날 전안례, 2일 잔치, 3, 합근
신랑 집에서 혼례를 치르고 혼인생활
송나라 주자에 의해 제정
당일 상견례 (전안례, 교배례, 합근례)다음날 폐백 (姑舅)신혼생활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의 문제점

- 자식들이 외가에서 성장하여 본종(本宗)의 중함을 알기 어려움

- 양이 음을 따르게 되어 순리에 벗어나는 점

- 신부가 남편과 반목하여 가정의 법도가 무너짐

- 첫날 동침부터 하고 3일 째에 상견례를 하게 되어 예의에 벗어남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의 긍정적인 점

- 처가에서 아들처럼 지속적인 지원(경제적, 사회적)

- 남녀 균등 상속, 사위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음서제

- 장인에게 학문의 전수를 받을 수 있음

 

(3) 이혼(離婚)

이혼 사유

- 조선시대 이혼은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은 잘못된 견해이다. 경국대전에 대명률에 따른다고 규정되어 있으므로 법적 근거가 있는 것이다.

- 이혼을 조선시대에는 이이(離異), 출처(出妻), 기별(棄別), 기처(棄妻)라고 했다.

- 이이(離異)는 합법적으로 국가가 이혼을 강제하거나 허락하는 것을 말하며, 합의하여 이혼하는 경우인데 사실상 강제 이혼이다. 국가가 강제한 이혼은 부부 중 한 사람이 의절한 경우, 처에게 간통을 강요한 경우, 상대방 친족과 간통, 상대방 친족 살해, 처가 남편을 구타한 경우에 가부장제 훼손으로 보고 강제 이혼

- 남편과 아내가 모두 정절을 지킬 의무를 부여함. 그러나 정절의무를 어기면 여성만 유책 배우자가 된다. 동거 의무, 부부의무는 여성만 이혼 사유

- 아내가 간통하여 아이를 낳으면 남편이 용서해도 강제 이혼, 그 자식을 묵인하는 경우 남편 처벌

- 간통한 아내는 돈을 받고 팔 수도 있었다. 사족(士族) 부인의 간통은 극형에 처함

- 부인이 간통하고 개가한 경우 교수형, 남편은 처벌하지 않음. 남편을 배반하면 참수

- 가정 폭력에 의한 이혼은 차별적으로 적용함 여성에게 형벌이 크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포로에서 돌아온 여성- 공식 이혼시키지 않았으나 버림받음

칠거지악과 삼불거

- 불순부모, 無子, , , 惡疾, 多言, 竊盜

- 有所取 無所歸, 與更三年喪, 前貧賤 後富貴

- 칠거지악은 여성을 남성 중심의 가부장 질서에 종속시키는 규범이었다. 삼불거는 그 폐해를 완화하기 위한 장치였지만, 여성의 권리를 보장한 제도라기보다 남편의 축출권을 일부 제한한 예외 규정에 불과했다. 조선 여성은 보호와 통제라는 이중적 질서 속에서 살아야 했다.

이혼 이후의 여성의 삶

- 부부 모두 재혼 허락

- 자녀 양육권은 남편에게 주도록 법으로 못박아 놓음

- 재산권은 여성의 본래 재산은 여성에게 독립 재산을 인정함(노비도 마찬가지) 혼인 이후 늘어난 재산은 본질적으로 균등 분할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상속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남편이 죽으면 여성에게 재산 처분권을 주었다.

- 이혼 이후 여성은 친정, 노비의 봉양, 친족, 사찰, 재혼, 떠돌이

 

(4) 성범죄 (혼인 밖의 성관계)

- 전통사회에서 애정보다 가문을 중시하여 오늘날 애정과 성애의 결합과 달랐다. 간통죄의 처벌은 가부장제 유지의 방편이었다. 남성 혈통을 중시하고, 혈통을 불확실하게 하는 유부녀의 간통을 가중 처벌했다.

- 현대 1953년 제정된 간통죄를 2015년 위헌 결정으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인정

조선시대 간통의 처벌

- 가부장권 침해에 대한 징벌함, 공동 징벌이지만 여성에게 가중 처벌

- 조선시대에는 미혼남녀도 간통으로 처벌함 : 父權에 대한 도전

- 간통한 여성이 남편이 있으면 가중 처벌, 남성은 상대 여자가 남편이 있어도 문제 삼지 않음

- 상하 신분의 경우 신분에 따라 달리 처벌

- 사족은 천비와 일상적으로 간통

- 친족 간의 간통은 패륜으로 교수형, 참수형, 처족 간통은 참수

- 간통은 사족에게 더 엄하게 처벌함

 

(5) 조선시대 두 목소리

질서의 내면화와 삶의 현실 (순응의 단계)


사대부 민중
가족윤리 철저한 위계 실용적
부부 관계 의무 중심 생존 중심
철저한 침묵
오륜가, 우암 선생 계녀서
비교적 개방적 인식
잡가·가사, 시집살이요
여성존재 의의 가문 유지의 도덕적 주체 생계유지의 수단

 

민중 문학과 사대부의 문학 대비

사대부 여성은 규범 속에 살았고, 민중 여성은 현실 속에 살았다.”

사대부 여성 민중의 여성
억압 ()
사랑 체념
금기


한중록
억압 풍자 / 해학으로 전환
사랑 적극적 감정 표현
노골적 묘사 가능


춘향전
사설시조, 판소리,
변강쇠타령
말하지 못해 이 된다 말해버려 웃음과 풍자가 된다.”

 

자각과 표현의 분화 (조선 후기)

사대부의 내부 변화 경계적 존재 (기생)
제한적 자아 인식
은유적 표현
허난설헌
계층 경계에 위치
·사랑 표현의 자유
진옥

 

조선 여성의 삶과 수필문학

여성의 언어는 계층의 경계에서 가장 먼저 자유로워진다.”

조선 여성은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의 목소리였다.”

침묵은 사대부의 언어였고, 웃음은 민중의 언어였다.”

성은 숨겨진 것이 아니라, 표현 방식이 달랐을 뿐이다.”

현대 수필은 규범과 욕망이 동시에 말하는 장르다.”

조선 여성의 두 목소리가 현대 수필의 두 문체가 되었다.”

 

3. 조선시대 살림하는 남자들

조선시대 양반가 남자들은 집안의 살림꾼이었다. 양반가의 규모는 현대의 50~100명 직원이 근무하는 중소기업의 수준이었다. 곡식, 채소, 과일은 물론 술, , 신발, 가옥 등 의식주의 모든 것을 가내에서 생산했다. 또 자녀교육, 질병치료, 종교 활동도 집안에서 이루어졌다. 한 마디로 양반가는 작은 사회였다.

조선의 집안 살림은 안살림과 바깥살림으로 나뉘었다. 음식 만들기, 옷 짓기 같은 안살림은 여성들이 맡고, 사당 관리, 봉제사, 대소가와의 관계 유지, 생계활동, 재산 증식, 노비관리, 정원 관리, 자녀교육, 가족돌보기, 정서 활동 관리는 남성들이 맡았다. 여성들이 맡은 안살림에 대한 지원도 남자들이 맡았다.

집안 살림에도 위와 같은 기본적인 일 이외에 배려와 소통, 돌봄, 애정표현까지 포함되었다. 현대 수필에서 집안 살림은 무조건 여성이 희생적으로 임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전통적인 문화라고 하기 어렵다. 우리 조상들의 의식체계는 남녀 공존이 기본적인 정서이다.

 

(1) 조선 사람의 살림 인식

- 조선 전기에 여자가 가정 경제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으나,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겪은 17세기 이후 주자학의 정착으로 공존의식이 파괴되고 여자들은 권리를 박탈당하고 사회 참여를 금지했다.

- 조선 후기 혼인제도가 친영으로 바뀌고 재산상속이 남녀균분에서 장자중심으로 변화

- 여성이 가정 경제에서 재산증식, 생계활동을 맡기도 했다.(상황에 따라 여자가 전담하기도 하고 남자가 안살림까지 전담하기도 했다.)

미암 유희춘91513~1577)의 미암일기의 경우

녹봉으로 받은 물품의 질과 양을 기록(, 보리쌀, 명주, , 꿩고기, 노루고기, 젓갈, 새우) 부수입의 내역 등을 기록함

남자가 집안 살림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성호 이익(1681~1763) : 벼슬을 못하고 생업, 양계, 양잠, 양봉, 목화, 과수독서만 하는 선비는 썩어빠진 선비

연암 박지원 : 양반전, 허생전 등에서 서생 비판

서유구(1764~1845) ; 임원경제지에서 벼슬할 때는 백성에 봉사, 벼슬하지 않을 때는 일하며 공부

퇴계 이황의 경우

후실인 안동 권씨가 지적 장애인인 관계로 안팎살림을 주관했다(의복, 음식, 반찬거리, 농사, 노비관리, 재산 증식, 세금 납부) 서울에 가 있는 동안은 아들에게 편지로 지시

 

녹봉으로 나오는 보리는 오래 되어 묵고 좀이 슬어 종자로 쓸 수가 없다. 그래도 예닐곱 말은 누룩을 둥글게 만들에 배가 갈 때 김천으로 올려 보낼 것이다. 모름지기 사람을 보내 가져가서 다시 보리로 바꾸어 종자로 쓰는 것이 좋겠다. 보리는 이곳 집에서 쓸 것도 매번 궁색하여 부득이 무명과 쌀로 바꾸어 보충해 쓰고 있어 많이 보낼 수 없으니 안타깝다.(퇴계가 큰아들에게 보낸 편지)

 

(2) 요리하는 남자

조선시대 남자들은 바깥일을 해서 양식, 반찬거리, 땔감 등 식재료를 구했을 뿐 아니라, 직접 요리를 하고 요리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이것은 아들이 부엌에 들어가 요리를 해서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커다란 효도로 여겼기 때문이다.

영조(1694~1776)는 연잉군 시절 음식 담당 관청인 사옹원 도제거로 있으면서 음식을 하거나 탕약을 달여 부왕 숙종에게 올렸다. (숙종 어의 이시필의 소문사설)

서유구는 경기도 김화에 살면서 어머니께 아침저녁 진지를 올렸다. 그의 조부 서명옹(1716~1787)도 부엌에 들어가 요리를 해서 어머니를 봉양

박지원은 부인 별세 후에 볶은 고추장을 만들어 아들에게 보냄

남자가 쓴 요리책을 전순의 식료찬요(1460) 유학자 김유 수문잡방(1540), 허균성소부부고등이 있음

 

(3) 부부관계

손님을 대하듯 공경하는 것이 이상적인 부부관계

 

부부간에 예를 갖추어 공경해야 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너무 가깝게만 지내다가 마침내 서로 깔보고 업신여기는 지경에 이르고 말지(퇴계가 손자 이안도에게 보낸 편지)

 

추사 김정희는 아내에게 극존칭

 

저번 가는 길에 보낸 편지는 보아 계시옵니까? 그 사이에 인편이 있었으나 편지는 못 보오니 부끄러워 답장을 아니 하여 계시옵니까? 나는 마음이 매우 섭섭하옵니다.

 

미암과 아내가 주고받은 시

 

눈이 내리니 바람이 더욱 차가워

그대가 추운 방에 앉아 있을 것을 생각하네.

이 술이 비록 하품(下品)이지만

차가운 속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으리 (미암이 아내 송덕봉에게)

 

국화잎에 비록 눈발이 날리지만

은대(승문원)에는 따뜻한 방 있으리.

차가운 방에서 따뜻한 술 받으니

속을 채울 수 있어 매우 고맙소 (아내 송덕봉이 미암에게)

 

박지원이 며느리에게 보낸 편지

초사흗날 관아의 하인이 돌아올 때 기쁜 소식을 갖고 왔더구나. “응애 응애우는 소리가 편지 종이에 가득한 듯하거늘, 이 세상 즐거운 일이 이보다 더한 게 이디 있겠느냐? 육순 노인이 이제부터 손자를 데리고 놀 뿐 달리 무엇을 구하겠니? 또한 초사흗날 보낸 편지를 보니 산모의 산후 여러 증세가 아직도 몹시 심하다고 하거늘 썩 걱정이 된다. 산후 복통에는 모름지기 생강나무를 달여 먹여야 하니 두 번 복용하면 즉시 낫는다. 이는 네가 태어날 때 쓴 방법으로 늙은 의원 채응우의 처방인데 특효가 있으므로 말해준다.

 

손자 효수가 태어났다는 소식에 며느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낸 편지이다.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없는 며느리 사이의 사랑이다. 이후에도 며느리와 편지를 주고받는다.

 

청나라 곽희원의 아내가 남편에게 보낸 편지(다른 나라의 예)

碧紗窓下啓緘封 (벽사창하계함봉) 외로운 여인의 창 아래 보내온 글 열어보니

尺紙從頭徹尾空 (척지종두철미공) 한 자 넘는 편지지 텅 비어있네

應是仙郞懷別恨 (응시선랑회별한) 분명 낭군께서 이별의 정한 품어

憶人全在不言中 (억인전재불언중) 나에 대한 그리움이 불언 중에 가득하네.

 

곽희원이 아내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실수로 백지를 보냈다. 아내에게서 이런 답장이 왔다. 아름다운 실수이다. 문학은 진정성 있는 사랑과 인격을 반영한다.

 

(4) 외조하는 조선 남성들

내조란 남자가 원활하게 사회활동을 할 수 있도록 여자가 각종 집안일을 하며 돕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 외조란 무엇일까. 남자가 여자의 사회활동을 지원함으로써 여자의 사회적 자아실현을 돕는 것이다. 이 또한 훌륭한 사랑이다. 조선 시대 외조하는 남자들의 사례를 살펴본다.

미암 유희준 아내 송덕봉의 시문집 덕봉집을 만들다. 미암은 부인과 시를 주고받기도 하고 가족 시회도 가졌는데 아내의 시문 38수를 모아 처조카에게 부탁하여 만들었다.

허균, 누이의 문집을 만들었다. 허균(1569~1618)은 누나인 허난설헌(1563~1589)의 작품을 모아 목판본으로 묶었다. 남편 김성립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자식을 셋이나 잃고 27세에 요절했다. 시문을 많이 지었으나 남은 것은 유언에 따라 불태워 213수에 불과하다. 그의 시문집인 난설헌집은 중국판으로도 간행되어 널리 알려질 정도로 훌륭했다고 한다.1711년 일본에서도 간행되었다.

시인 유희경(1545~1636)이 기생 梅窓의 시집 매창집을 간행해 주었다. 발문까지 써 주었다.

임정주는 여성 성리학자 임윤지당(1721~1793)윤지당유고를 간행해 주었다. 윤지당은 젊어서 남편이 죽고 시동생과 함께 살면서 성리학을 공부하여 성리학 논고, 인물의 논평, 학문과 마음의 행실 닦기의 잠언 등을 엮어 막내동생 임정주가 편찬하고 시동생 신광우가 발문을 썼다.

한글학자 유희가 어머니 사주당의 태교신기(胎敎新記)간행

사주당 이씨는 청주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여공의 틈틈이 시경』 『서경등 유교경전을 읽었다. 남편 유한규는 아내를 적극 지원했다. 태교신기1800년 사주당 나이 60세에 간행했다. 이 책은 남편, 아들, 아들의 친구 등이 힘을 합해 만들었다.

 

4. 조선의 사랑과 문학

최근에 치른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많은 인물들이 후보로 나서고 당선되고 낙선하였다. 그들이 당선되려고 쏟아낸 많은 언어들에는 네거티브(negative)도 있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발전적이고 생산적인 세계를 지향하는 포지티브(positive)한 내용도 있었다. 어찌했든 그들의 언어를 들으면서 우리는 대부분 실망했다. 실망하는 이유는 그들의 언어는 역사를 만들어가는 중심축이 되기에 시대에 함께 살아 있는 사람들의 공동 책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소망한다. 정치인의 언어는 역사를 만들어가는 추주이기에 아름답고 낭만적이기를 간절히 빈다. 조선시대 역사에 사랑으로 밑줄 그는 학자 정치인의 낭만적인 언어를 살펴본다.

 

(1) 삼의당 김씨와 하립 - 남사친 여사진의 러브레터-

전라도 남원에서 1769년 한날한시에 태어난 삼의당 김씨와 담락당 하립은 소꿉친구로 지내다가 혼인하여 부부로 40년을 살았다. 남편 하립은 세종 때 영의정 하연의 12대손, 부인 김씨는 성종 때 사관 김일손의 후손이다. 18세에 결혼한 두 사람은 첫날밤부터 사랑의 시를 주고받는다.

 

만나고 보니 우리는 둘 다 광한루의 신선

오늘 밤은 분명 옛 인연이 이어진 것이네

배필이란 원래 하늘이 정한 것이고 세간의 중매는 모두 어지러운 법이라지 (河笠 初夜唱和에서)

 

열여덟 신랑과 열여덟 선녀가

동방화촉 좋은 인연 맺었네요

같은 해 같은 달에 나서 한 마을에 사니

오늘 밤 만남 어찌 우연이리오. (삼의당 김씨 附夫子詩에서)

 

밤이 깊어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니 점잖게 인연, 부부의 임무, 삶의 설계를 하던 이들이 18세 청춘 남녀로 돌아가 달빛 같이 희고 부드러운 삼의당의 연정을 자극한다. 이 밤에 이들의 언어는 두 개의 언어로 나뉘어 진화한다.

 

깊은 밤 밝은 달에 한철 고운 봄꽃이라

꽃은 화려한데 달빛 또한 더해지네

달빛 좇아 꽃을 볼 새 내 임이 다가오니

둘도 없이 좋은 경치 내 집에 펼쳐지네 (하립)

 

하늘엔 달빛 가득 뜰에는 꽃이 가득

꽃 그림자에 달그림자가 어우러졌다네

달인 양 꽃인 양 임과 함께 앉았으니

세상의 영욕 따위 뉘 집의 얘기던가 (심의당)

 

(2) 정철과 강아

정철의 정치 인생은 감수성과 강인함이 교차되는 성정으로 정계를 흔들었다. 그는 두주불사였다. 진천 송강사에 가면 선조가 하사한 은잔이 전시되어 있다.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남원 고을에서 동기(童妓)인 자미(紫薇)를 만나서 인연을 맺고 사랑하게 되자 자신의 호인 松江의 강를 따서 강아(江娥)라 불렀다.

 

一園春色紫薇花 일원춘색자미화 봄빛 가득한 광한루에 자미화 만발하였고

纔看佳人勝玉釵 재간가인승옥채 옥비녀보다 더 예쁜 미인을 보는구나

莫向長安樓上望 막향장안누상망 그대 광한루에 올라 한양 쪽을 보지 말거라

滿街爭是戀芳華 만가쟁시연방화 많은 사람들은 다투어 네 미모를 그리워하리라

정철 詠紫薇花전문

 

정철은 56세에 선조의 노여움을 사서 다시 강계로 유배되었다. 기생 眞玉은 정철을 못잊어 유배지를 찾아갔다. 정철은 유배지에서 음유시인의 감성이 있는 매력남으로 남아있었다.

 

옥을 옥이라커늘 번옥만 너겨떠니

이제야 보아하니 진옥일시 적실하다

나게 살송곳이 있더니 뚫어볼가 하노라. (정철)

 

철이 철이라커늘 섭철만 너겨떠니

이제야 보아하니 정철일시 분명하다

내게 골풀무가 있더니 뇌겨 볼가 하노라 (진옥)

 

은유와 도발, 색정과 순발력을 드러내며 이들의 사랑이 영육이 하나 되는 경지에 이르렀다.

 

(3) 원이 아버지께

이응태 묘 출토 언간, 또는 원이 어머니 편지는 원이 어머니가 남편 이응태를 사별하며 쓴 편지이다. 1998년 발굴되었다.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 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 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 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 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 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 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 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 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5. 사랑과 한국 현대 수필

 

(1) 한국문학에 수용된 사랑의 네 갈래

한국문학에서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라기보다 윤리, 구원, 연민, 자연과의 합일이라는 여러 전통이 겹쳐 형성되었다.

 

유교 : () 인간관계 속의 사랑

유교에서 사랑의 핵심은 이다. 은 감정적 사랑이라기보다 사람답게 서로를 살리는 마음이다. 그 특징은 효()에서 출발하여 사회로 확장, 인간관계 속에서 실천되는 사랑, 절제와 책임이 동반된 사랑이다. 한국문학에 수용되어 가족애··충의 서사, 인간관계의 도덕적 책임 강조하는 주제가 되었고 따뜻하지만 절제된 사랑의 정서를 바탕으로 한다.

 

불교 : 자비(慈悲) 모든 존재에 대한 연민

불교의 자비는 고통을 함께 느끼고 덜어 주려는 마음이다. 그 특징으로 생명 전체를 향한 사랑, 고통에 대한 공감, 자기 비움에서 나오는 사랑, 한국 수필문학에는 연민, 용서, 無常을 인식하는 주제를 바탕으로 인간 고통을 깊이 바라보는 서정,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갖는 정서를 드러낸다.

 

기독교 : 박애(Agape) 희생적 사랑

기독교 사랑의 핵심은 무조건적 사랑이다. 그 특징으로는 조건 없는 사랑, 희생과 용서, 타자를 위한 헌신을 중심으로 한다, 한국 수필에 희생과 구원의 서사, 죄와 용서의 주제, 약자와 고통 받는 사람을 향한 사랑을 주제로 수용되었다. 희생을 통해 완성하는 사랑이다.

 

노장 사상 : 무위자연의 사랑

노장 사상에서 사랑은 의도적으로 베푸는 감정이라기보다 자연스러운 조화이다. 그래서 강요하지 않는 사랑,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 자연과 함께 흐르는 마음, 수필문학에 자연 친화적 정서, 인간과 자연의 조화, 소박하고 자유로운 삶을 주제로 수용되었다.

 

(2) 네 가지 사상이 한국문학에서 만나는 지점

한국 수필문학에 위에서 제시한 네 가지 사랑이 겹쳐서 복합적으로 수용된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의 사랑은 따뜻하고, 슬프고, 헌신적이며, 자연스럽다.”라고 평가 받는다.

사상 핵심 개념 사랑의 성격 문학적 정서
유교 () 인간관계 속 책임과 배려 따뜻한 인간애
불교 慈悲(자비) 고통 받는 존재에 대한 연민 슬픔을 품은 사랑
기독교 博愛(박애) 조건 없는 희생과 용서 구원의 사랑
노장 無爲自然 강요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사랑 자유로운 사랑

 

(3) 현대 수필이 지향해야 할 사랑

현대 수필에서 중요한 점은 추상적 사랑이 아니라 생활 속 사랑이다. 조선시대 남자들이 살림을 맡아 하듯이 외조를 하듯이 구체적으로 행동을 담아내야 한다.

 

관계의 책임을 보여주는 사랑 (유교적 요소)이어야 한다. 사람 사이의 책임과 신의를 드러내는 이야기,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주제로 나아간다.

타인의 고통을 보는 눈 (불교적 요소)을 가져야 한다. 오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민의 시선이다. 노인, 노동자, 사회적 약자에 대하여 연민이 아니라 함께하는 공감의 시선으로 해석할 때 공명을 일으킬 수 있다.

자기희생의 윤리 (기독교적 요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 사회는 권리 이야기는 많지만 희생 이야기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수필은 작은 헌신을 발견하는 따뜻함이 있어야 문학 될 수 있다.

자연과 함께 사는 마음 (노장적 요소)을 가져야 한다. 현대 문명에서 잃어버린 감각이다. 현대문명으로 인하여 인간과 자연에게서 신성함을 잃어버렸다. 신성성을 회복하는 데 수필이 서도적인 문학이 되어야 한다. (자연, 느림, 비움)

 

수필가에게는 사람과 세계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수필가는 인간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윤리적인 책임을 가지며, 자연과 함께 살며 작은 희생을 기록하는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알 것이다.

좋은 수필은 결국 사랑의 기록이다.

 

***** 참고문헌

박양근, 문학 속 두 이야기, 지식과 감성, 2024.

신영복, 담론, 돌베개, 2020.

신영복, 강의, 돌베개, 2021.

신재기, 수필의 기본 개념들, 소소담담, 2026.

이영숙, 사랑에 밑줄 친 한국사, 뿌리와 이파리, 2021.

장병인, 법과 풍속으로 본 조선 여성의 삶, 휴머니스트, 2018

정창권, 조선의 살림하는 남자들, 돌베개, 2021.

 

*** 이 글의 구성과 자료 정리, 편집, 정보 확인에 AI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