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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창작에서 섹슈얼리티 표현 전략(2024-2)

느림보 이방주 2024. 12. 19. 06:37

수필 창작에서 섹슈얼리티 표현 전략

 

1. 문학과 섹슈얼리티
2. 한국문학에 나타난 섹슈얼리티의 변용
3. 현대 수필에서 섹슈얼리티 표현 방법

 

1. 문학과 섹슈얼리티(性 sexuality)

성(性 sex)은 자연의 힘이다. 성(性 sex)은 이미 사회가 형성되기 이전부터 존재했다. 사회가 형성되기 이전에는 성이 자유였을 것이다. 먹는 것(食)과 성은 하늘로부터 주어진 원시적 자유이다. 사회가 형성되면서 인류의 원시적 자유는 규제가 따르기 시작했다. 즉 사회구조에 따라 그 사회가 규정한 규범, 도덕, 가치관에 따라 규제를 당해야 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근대사회에 들어 페미니스트들도 ‘젠더’는 생득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보았다. 이에 따라 섹슈얼리티에 관한 이론도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라디컬(radical)한 사고로부터 연구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섹슈얼리티(sexuality)의 개념 역시 사회의 일반적인 가치 체계와 권력 안에서 창조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섹슈얼리티(性 sexuality)는 생물의 성별과 성적 행위 따위를 통틀어 일컫는다. 인간의 경우 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태도, 감정, 욕망, 실천, 정체성, 사고, 가치관 등을 포괄하여 이르는 말이다. 성적인 것 전체를 통틀어 일컫는 말로 성별, 성행위, 성적 욕망, 성적 환상, 성역할, 성정체성, 성적 지향, 성 표현, 재생산뿐 아니라 성과 관련된 이데올로기, 사회 제도와 규범이나 관습 등을 전부 포함한다. 따라서 섹슈얼리티는 성에 대한 성애적, 감정적, 생물학적,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윤리적, 법적, 종교적, 영적 측면을 총체적으로 다루는 것이다. 그 뜻이 꽤 광의적인 만큼 여전히 논쟁적인 단어라 할 수 있다.

섹슈얼리티라는 단어는 성이 전 생애에 걸쳐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강조할 뿐 아니라 성이 사회적인 의미까지 내포한다는 점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 성이 단지 생물학적 기능하고만 관련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 정치 · 문화적으로도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섹슈얼리티란 단순히 섹스(sex), 성별뿐 아니라 계급, 인종, 국적 등 현실의 여러 요소와 상호적으로 밀접하게 기능한다.

섹슈얼리티라는 용어는 19세기에 만들어진 이후 맥락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쓰였으며, 각 사회나 시대마다 뜻하는 바도 변화해 왔다. 형식적으로는 성적인 것을 전부 지칭함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상황에서는 좁은 의미로 ‘성적 지향’만을 의미하기도 하고, 또 다른 상황에서는 성행위만을 의미하는 등 쓰임에 제약이 덜한 편이다.

이와 달리 에로티시즘은 사회적인 의미보다 본능의 측면을 강조하는 의미이다. 에로티시즘은 선정주의, 애욕주의를 일컫는 말로 그리스 신화에서 사랑의 신 에로스(Eros)에서 유래된 말이다. 섹슈얼리티라는 개념보다 훨씬 먼저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성애를 관능적으로 그린 문학 및 영화 등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쓰이나 넓은 의미에서는 사랑을 주제로 한 것이 모두 이에 포함된다. 오늘날 에로티시즘은 문학, 회화 같은 전통예술 분야보다 대중문화, 즉 영화, 사진, 패션, 광고 분야의 핵심적인 제재로 등장했는데 이는 대중문화 산업의 상업적 이윤추구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저변에서 꿈틀대고 있는 성관념의 반영이기도 하다.

고대로부터 섹슈얼리티는 여성들에게 차별적인 규범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근대 이후 실시된 신교육은 여성들이 자아에 눈뜨게 되면서 개인으로서의 자신을 찾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따라 섹슈얼리티도 새로운 ‘해방’의 계기가 되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섹슈얼리티는 인류의 원시적 자유이고 자연을 지탱하는 힘이다. 인류는 동서고금, 남녀노소, 학식이나 도덕의 높고 낮음을 불문하고 원시적으로 성의 자유를 추구하게 되어 있다. 인간은 스스로 만들어 놓은 규범이 원시적 자유를 규제하였을 때 갈등을 겪게 된다. 규제가 심할수록 갈등은 더욱 심화되고 고통은 더욱 커지게 마련이다.

예로부터 원시적 자유의 규제에 의한 아픔을 치유하는데 예술이 크게 기여했다. 그 중에서도 문학에 의한 치유가 가장 효과적이었다. 한국 문학은 이미 문자 이전의 구비문학에서 섹슈얼리티 표현을 수용한 문학이 규범의 규제로부터 원시적 자유의 세계로 벗어나는 탈출구가 되었다. 문학이 치유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은 섹슈얼리티 표현의 효과일 것이다. 문학 양식 가운데 작가 자신의 체험 사실을 고백하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수필이 치유의 효과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2. 한국문학에 나타난 섹슈얼리티의 변용

섹슈얼리티 표현은 기록문학보다 오히려 구비전승의 문학 작품에서 뚜렷하다. 기록문학이었던 향가 「처용가」나 향가의 배경설화에서 섹슈얼리티의 표현을 발견할 수 있다. 고려문학에서는 경기체가보다 속요가 더욱 적극적이고 빈번하게 수용되었다. 한문으로 기록되어 전하는 사대부 문학인 경기체가는 그들의 관념을 담아내거나 자아의 허황된 자존심을 드러내고자 했지만, 속요는 서민들의 삶의 정서를 진솔하게 담아냈기 때문이다. 고려 속요는 서민의 정서를 표현하여 구전되다가 조선시대에 문자로 정착되었다. 경기체가는 조선으로 넘어와 가사문학에 영향을 주었고 속요는 진솔한 서정과 소박한 삶의 양상이 시조 문학으로 이어졌다. 특히 속요에 담겨 섹슈얼리티는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라 하여 조선의 사설시조에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섹슈얼리티는 사대부 문학인 평시조보다 작가 미상이거나 민중의 문학인 사설시조, 판소리, 가면극 등에 매우 적극적으로 수용되었으며, 훈민정음 창제 이후에 등장한 소설에서도 판소리계 소설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표현되었다. 판소리계 소설은 구비문학인 판소리가 문자로 기록되어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판소리계 소설에 드러나기 시작한 섹슈얼리티는 창작소설에서도 표현되기 시작했으며 근대에 이르러 매우 활발해졌고 일반화되었다. 그러나 수필문학에서는 이러한 표현이 매우 저조하고 머뭇거리고 있는 형편이다.

현대문학에서는 대부분의 작품이 섹슈얼리티를 어떤 형태로든지 다루고 있다고 할 것이다. 특히 소설은 서두에서 규정한 섹슈얼리티의 개념의 영역을 벗어난 작품이 거의 없을 것으로 짐작된다. 시에서도 섹슈얼리티를 과감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우리 고전문학으로부터 이미 성의 묘사가 과감했으며 현대에 들어 더욱 과감해졌다. 다만 수필문학에서는 아직도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여기에는 수필의 양식적 특성상의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수필은 체험과 사실의 문학이라든지, 서술자와 작가가 동일 인물일 경우가 많다든지, 교시성 있는 내용이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문학이 삶의 문제로부터의 갈등을 치유하는 예술이라고 생각한다면 수필에서도 당당하게 맞서서 세슈얼리티 표현을 수용함으로써 아픔을 치유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성도덕이나 규범에 당당하게 맞서면서 그것을 뛰어넘고 그 이상의 다른 무엇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수필은 사실 체험의 문학이라는 옹졸한 개념에서 벗어나 수필적 상상의 문학이라고 생각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예시 작품> 1 처용가 / 신라 향가/ 처용

東京明期月良
夜入伊遊行如可
入良沙寢矣見昆
脚烏伊四是良羅
二肸隱吾下於叱古
二肸隱誰支下焉古
本矣吾下是如馬於隱
奪叱良乙何如爲理古.
ᄉᆡᄫᆞᆯ ᄇᆞᆯ긔 ᄃᆞ래
밤드리 노니다가
드러ᅀᅡ 자리 보곤
가ᄅᆞ리 네히어라
둘흔 내 해엇고
둘흔 뉘 해언고
본ᄃᆡ 내 해다마ᄅᆞᄂᆞᆫ
아ᅀᅡᄂᆞᆯ 엇디 ᄒᆞ릿고
(양주동(梁柱東)의 해독)
서울 밝은 달에
밤들이 노니다가
들어와 잠자리를 보니
가랑이가 넷이도다
둘은 나의 것이었고
둘은 누구의 것인가?
본디 내 것이지마는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오?

 

<배경 설화>

신라 헌강왕 때 처용이 지었다는 8구체 향가. ≪삼국유사≫ 권2 ‘처용랑망해사조(處容郞望海寺條)’에 관련설화와 더불어 원문이 실려 있다.

신라 제49대 왕인 헌강왕이 개운포(開雲浦:지금의 울산)에 나가 놀다가 물가에서 쉬는데,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해져 길을 잃었다. 왕이 괴이히 여겨 좌우 신하들에게 물으니, 일관(日官)이 아뢰기를 “이것은 동해용의 조화이니 마땅히 좋은 일을 해주어서 풀어야 할 것입니다.”라 했다. 이에 왕은 일을 맡은 관원에게 용을 위해 근처에 절을 세우도록 명했다. 왕의 명령이 내려지자 구름과 안개가 걷혔으므로 이에 그곳 이름을 개운포라 했다.

동해용이 기뻐하여 아들 일곱을 거느리고 왕의 앞에 나타나 덕을 찬양하여 춤추고 음악을 연주했다. 그 가운데 한 아들이 왕을 따라 서울로 가서 왕의 정사를 도왔는데 그의 이름이 처용이다. 왕은 처용에게 미녀를 아내로 주고, 그의 마음을 잡아 두려고 급간(級干) 벼슬을 주었다. 그런데 그의 아내가 무척 아름다웠기 때문에 역신(疫神)이 흠모하여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밤에 그의 집에 가서 몰래 같이 잤다. 처용이 밖에서 돌아와 잠자리에 두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처용가>를 부르며 춤을 추면서 물러났다.

그 때 역신이 모습을 나타내고 처용 앞에 꿇어앉아, “내가 공의 아내를 사모하여 지금 범하였는데도 공은 노여움을 나타내지 않으니 감동하여 아름답게 여기는 바입니다. 맹세코 지금 이후부터는 공의 형상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문에 들어가지 않겠습니다.”라고 했다. 이로 인하여 나라 사람들은 처용의 모습을 그려 문에 붙여 사기(邪氣)를 물리치고 경사스러움을 맞아들였다는 것이다.

(삼국유사)

 

<예시 작품> 2 만전춘별사(전 6연중 1연)/ 작자미상/ 고려속요

 

어름 우희 댓닙자리 보와

님과 나와 어러 주글만뎡

어름 우희 댓닙자리 보와

님과 나와 어러 주글만뎡

정(情)둔 오ᄂᆞᆳ밤 더듸 새오시라 더듸 새오시라

 

경경(耿耿) 고침상(孤枕上)애

어느 ᄌᆞ미 오리오

서창(西窓)을 여러ᄒᆞ니

도화(桃花)ㅣ 발(發)ᄒᆞ두다

도화(桃花)ᄂᆞᆫ 시름업서 소춘풍(笑春風)ᄒᆞᄂᆞ다 소춘풍(笑春風)ᄒᆞᄂᆞ다

 

넉시라도 님을 ᄒᆞᆫᄃᆡ

녀닛경(景) 너기다니

넉시라도 님을 ᄒᆞᆫᄃᆡ

녀닛경(景) 너기다니

벼기더시니 뉘러시니잇가 뉘러시니ᅌᅵᆺ가

 

▶ 남녀 간의 애정을 가식 없이 진솔하고도 적나라하게 표현했으며, 비유와 상징, 감각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문학성이 높은 편이다.

만전춘은 고려시대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속요이다. 만전춘별사라고도 한다. 『악장가사』에 실려 있다. 악보는 『세종실록』 권146과 『대악후보』 권5에 전한다. 모두 5연으로 되어 있으나, 마지막에 추가된 결사를 독립된 연으로 볼 경우 6연이 된다. 내용은 남녀 간의 애정을 적나라하게 노래한 것으로, 노골적이고 퇴폐적인 표현이 있다. 그 때문에 조선 시대 사대부에 의해 음탕한 노래로 규정되어 배척되었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시조 장르의 기원을 찾는 자료로 주목된 바 있다. 「만전춘」이 남녀상열지사로 지탄받음에 따라, 별사의 이름을 붙인 듯하다.

 

<예시 작품> 3 쌍화점(일부)/ 작자미상/ 고려속요

 

雙솽花화店뎜에 雙솽花화 사라 가고신ᄃᆡᆫ

回휘回휘 아비 내 손모글 주여이다

이 말ᄉᆞᆷ미 이 店뎜 밧긔 나명 들명

다로러거디러 죠고맛감 삿기 광대 네 마리라 호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자리예 나도 자라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잔 ᄃᆡ가티 더ᇝ거츠니 업다

 

▶ 1연에서 화자는 만두가게에 만두를 사러 갑니다. 회회아비가 손목을 잡는데 후에 나올 그 잔 곳 같이 난잡한 데가 없다는 것을 봐서 손목을 잡은 것이 은유적인 표현으로 순화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三삼藏장寺ᄉᆞ애 블 혀라 가고신ᄃᆡᆫ

그 뎔 社샤主쥬ㅣ 내 손모글 주여이다

이 말ᄉᆞ미 이 뎔 밧긔 나명 들명

다로러거디러 죠고맛간 삿기上샹座좌ㅣ 네 마리라 호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자리예 나도 자라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잔 ᄃᆡᄀᆞ티 더ᇝ거츠니 업다

▶ 2연에서 화자는 절에 갔는데 스님이 손목을 쥐었다. 조선 시대 평론가들은 이것을 불교의 타락으로 보기도 했다.

 

〈쌍화점〉(雙花店)은 고려 가요(고려 속요) 중 하나이다. 고려 충렬왕 때 지어진 것이라 전하는데 정확하지 않다. 지은이도 미상이다. 남녀 사이의 노골적인 정사를 내용으로 한 것으로 조선 성종 악장가사 편찬 시기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 또는 음사(淫辭)라 하여 가사를 약간 고쳤다. 이 노래는 당시 민간에 유행하던 속요를 성색(聲色)과 기악(妓樂)을 즐기는 군신(君臣)의 연회에서 쓰인 것으로, 그들의 향락적인 기풍을 그대로 말해 준다. 또한 쌍화점 노래에 담긴 뜻은 이슬람교 여인들의 고려에서의 상업 활동을 나타낸다. 노래의 형식은 전편 4연이며, 그 중 아래 2구는 후렴이다.

 

<예시 작품> 4 정철과 진옥의 문답/ 조선 시조

 

옥이 옥이라커든 반옥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진옥일시 적실하다.

내게 살송곳 있으니 뚫어볼까 하노라. (정철)

 

철이 철이라커늘 섭철로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정철일시 분명하다.

내게 골풀무 있으니 녹여볼까 하노라. (진옥)

 

▶ 정철이 애기(愛妓) 진옥에게 ‘진옥’이라는 이름을 두고 수작을 거는 시조이다. ‘반옥’은 다듬지 않은 변변찮은 옥이니 시골에 사는 보잘 것 없는 여인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 진품이라고 추켜세운 것이다. 그리고는 옥구슬을 꿰기 위해선 힘 있고 날카로운 송곳이 필요할 것인데 자신한테도 ‘살송곳’이 있다고 과시를 하고 있는 것이다. 노정객이 원색적인 상징으로 시를 들이밀었다.

섭철은 품질이 떨어지는 쇠부스러기이니 반옥이라 한 것에 대한 대구이다. 그냥 흔해 빠진 철이거니 했는데 진짜 만나보니 이거야 말로 진품 철이다. ‘녹여볼까 하노라’는 ‘녹아잘까 하노라’가 생각난다. 사랑의 오르가즘은 ‘녹는 것’이었다. 옥과 철은 모두 단단한 것이니 평소 삶의 줏대와 지조를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랑을 만나면 선비나 기생의 지조 같은 굳센 것이 녹아 하나를 이루지 않던가. 야하긴 하지만 비유와 상징으로 이만큼 뜨겁고 본능적인 구애가 동서고금 어디에 다시 있었던가.

 

<예시 작품> 4 동짓달 기나긴 밤/ 황진이/ 조선 시조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 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룬 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구비구비 펴리라

 

<예시 작품> 5 사설시조 몇 편/ 조선 시조

 

들입다 바득 안으니 세허리가 자늑자늑

홍상(紅裳)을 걷어치니 설부지풍비(雪膚之豊肥)하고 거각준좌(擧脚蹲坐)하니 반개한 홍모란(紅牧丹)이 발욱어춘풍(發郁於春風)이로다

진진(進進)코 우퇴퇴(又退退)하니 무림산중(茂林山中)에 수용성(水舂聲)인가 하노라

(작자미상)

 

반여든에 첫 계집을 하니 어렷두렷 우벅주벅

죽을뻔 살뻔 하다가 와다탕 들이달아 이리저리 하니 노도령의 마음 흉글항글

진실로 이 자미 알았던들 길 적부터 할랏다 (작자미상)

 

<예시 작품> 6 춘향전/ 조선 소설/ 작자미상

 

네가 미친 자식이로다. 도련님이 어찌 나를 알아서 부른단 말이냐. 이 자식 네가 내 말을 종달새 열씨 까듯 하였나보다.”

“아니다. 내가 네 말을 할 리가 없으되 네가 그르지 내가 그르냐. 너 그른 내력을 들어보아라. 계집아이 행실로 추천을 할 양이면 네 집 후원 담장 안에 줄을 매고 추천하는 게 도리(道理)에 당연함이라. 광한루 멀잖고 또한 이곳을 논할진대 녹음방초승화시(綠陰芳草勝花時)라. 방초는 푸르렀는데 앞 내 버들은 초록장 두르고 뒷 내 버들은 유록장(柳綠帳) 둘러 한 가지 늘어지고 또 한 가지 펑퍼져 광풍을 겨워 흐늘흐늘 춤을 추는데 광한루 구경처(求景處)에 그네를 매고 네가 뛸 제 외씨 같은 두 발길로 백운간(白雲間)에 노닐 적에 홍상(紅裳) 자락이 펄펄 백방사(白紡紗) 속곳 갈래 동남풍에 펄렁펄렁 박속같은 네 살결이 백운간에 희뜩희뜩 도련님이 보시고 너를 부르실 제 내가 무슨 말을 한단 말가. 잔말 말고 건너가자.”

(중간 부분 생략)

춘향과 도련님 마주 앉아 놓았으니 그 일이 어찌 되겠느냐. 사양을 받으면서 삼각산(三角山) 제일봉(第一峰) 봉학 앉아 춤추는 듯 두 활개를 에구부시 들고 춘향의 섬섬옥수(纖纖玉手) 바듯이 겹쳐잡고 의복을 공교하게 벗기는데 두 손길 썩 놓더니 춘향 가는 허리를 담쏙 안고

“나삼을 벗어라.”

춘향이가 처음 일일 뿐 아니라 부끄러워 고개를 숙여 몸을 틀 제 이리 곰실 저리 곰실 녹수(綠水)에 홍련화(紅蓮花) 미풍(微風) 만나 굼니는 듯 도련님 치마 벗겨 제쳐놓고 바지 속옷 벗길 적에 무한히 실랑인다 이리 굼실 저리 굼실 동해(東海) 청룡(靑龍)이 굽이를 치는 듯

“아이고 놓아요 좀 놓아요.”

“에라. 안 될 말이로다.”

실랑 중 옷끈 끌러 발가락에 딱 걸고서 끼어 안고 진득이 누르며 기지개 켜니 발길 아래 떨어진다. 옷이 활딱 벗어지니 형산(荊山)의 백옥(白玉)덩이 이 위에 비할소냐. 옷이 활씬 벗어지니 도련님 거동을 보려하고 슬그머니 놓으면서

“아차차 손 빠졌다.”

춘향이가 침금 속으로 달려든다. 도련님 왈칵 좇아 드러누워 저고리를 벗겨내어 도련님 옷과 모두 한데다 둘둘 뭉쳐 한 편 구석에 던져두고 둘이 안고 마주 누웠으니 그대로 잘 리가 있나. 골즙 낼 제 삼승 이불 춤을 추고 샛별 요강은 장단을 맞추어 청그렁 쟁쟁 문고리는 달랑달랑 등잔불은 가물가물 맛이 있게 잘 자고 났구나. 그 가운데 진진한 일이야 오죽하랴.

 

■ 현대시의 경우

한국 현대시에서 섹슈얼리티를 표현의 모습을 살펴보기로 한다. 시는 직관에 의한 종합적 관조를 목표로 한다. 그래서 성의 묘사는 직접적이거나 분석적으로 제시하기 어려웠다. 키이츠, 워즈워드, 셸리 같은 서구의 시인들도 문학에서 섹슈얼리티를 중요하게 생각하기는 했지만 아주 솔직하게 표현하지는 못했다. 자연미로 국한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최근 우리 시에서도 섹슈얼리티 표현하는 풍조가 확산되고 있다. 당대에 산출되는 힘 있는 사고는 언제나 상투성에 대하여 저항하고 참신하고 새로운 정신을 추구하고 도전한다. 시에서 성의 문제는 어휘 사용이나 육감적 분위기 제시, 성애 장면의 짧은 요약이나 암시로 드러난다. 시어는 당대의 사회 분위기와 필연적으로 관계된다. 시의 속성이 암시적이고 우회적인 표현을 즐겨 쓰기 때문에 생생하거나 직접적인 제시가 어렵다. 시에서 섹슈얼리티의 표현은 몇 가지 목적의식이 있다.

첫째 육감적 분위기의 조장이다. 낭만적 성향의 시가 원초적인 감정을 여과시키면서 에로틱한 정황을 들여온다.

둘째 고고함으로부터 탈피하려는 의도로 수용한다. 민중의식을 표방하는 전략이다.

셋째 위악적(僞惡)적 태도를 목표로 한다. 시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시대적인 압력을 느꼈을 때 이에 응전하기 위한 전략이다. 시적 자아가 자기 조소, 자기비하적 어조로 자기 성찰에 이르는 방법이다.

 

<예시작품> 최원규의 「斷章1」

 

소나기가 퍼붓는 벌판, 감나무 밑에

소나기를 피하는 행자(行者)와 아낙네가 마주쳤다네

슬슬 그 일을 시작해보니 홍시감보다,

달디단 그 맛 천둥소리도 잊어버렸네

저쪽에서 물렁감 하나가 뚝 떨어지니

행자는 하던 일을 끝도 안내도

물렁감을 주워 입에 넣으며

西天을 바라보며 가버렸다네

 

▶ 이 시에서는 육감적이고 직접적으로 제시된 것은 없으나 홍시의 이미지와 연관된 에로틱한 시적 분위기를 드러낸다.

 

<예시작품> 서정주의 「입마춤」

 

가시내두 가시내두 가시내두 가시내두

콩밭 속으로만 작구 다라나고

울타리는 막우 자빠트려 노코

오라고 오라고 오라고만 그러면

 

사랑 사랑의 石榴석류꽃 낭기 낭기

하누바람 이랑 별이 모다 우습네요

풋풋한 山노루떼 언덕마다 한마릿식

개고리는 개고리와 머구리는 머구리와

 

구비 江물은 西天으로 흘러 나려...

 

땅에 긴 긴 입마춤은 오오 몸서리친

쑥니풀 지근지근 니빨이 허허여케

즘생스런 우슴은 달드라 달드라 우름가치 달드라.

 

▶성애를 자연스러우면서도 역동성 있게 당당하면서도 은은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 현대 소설의 경우

우리 소설에서 대부분 작품은 직접적인 성 묘사를 꺼리어 암시적 수법을 쓰면서 추상화 시켰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 들면서 사회 현상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성이 신성화되거나(이광수 「무정」 심훈 「상록수」), 이민족에 의한 수탈로 인한 빈궁한 현실에서 매춘하는 행위로 표현되거나(김동인 「감자」)하는 작품들이 나왔다. 그밖에도 소외와 보상심리로써의 성 묘사, 반외세 의식과 성 묘사 등 다양하게 등장하였다.

 

<예시 작품> 7 「달」/ 현대 소설/ 김동리

무당 모랭이가 달득이를 배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열여덟 해 전, 과부된 지 오 년 만에, 그때까지 시름시름 까닭 없이 앓고 있던 병 끝에 우연히 무당 귀신이 들리어 새 무당이 났다고 한창 소문이 자자했던 그녀의 나이 갓 설흔 살 됐을 때였다.

나원당(동네 이름) 동네에서 굿을 마치고 물을 건너 숲 속을 지나올 때였다. 같이 굿을 마치고 돌아오던 화랑(그는 모랭이가 사는 봇마을을 지나서 또 십리나 더 가야 할 사람이었다)과, 그 어두운 숲 속에서 지금의 달이를 배게 되었던 것이었다. 풀밭에는 너무 이슬이 자욱하여 보드라운 모랫바닥을 찾아 그들은 자리를 잡았던 것이었다.

고목이 울창한 숲을 휘돌아 봇도랑의 맑은 물은 흘러내리고, 쉴사이없이 물레방아 바퀴는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여자의 몸에는 시원한 강물이 흘러들기 시작하였던 것이었다. 보름 지난 둥근 달이, 시작도 끝도 없는 긴 강물처럼 여자의 온몸에 흘러드는 것이었다. 끝없는 강물이 자꾸 흘러내려 나중엔 달이 실날같이 가늘어지고 있었다. 그 실날 같은 달이 마저 흘러내리고 강물이 다하였을 때 여자의 배와 가슴 속엔 이미 그 달고 시원한 강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었다. 여자의 몸엔 손끝까지, 그 희고 싸늘한 달빛이 흘러내려, 마침내 여자의 몸은 달 속에 흥건히 잠기고 말았고 그리하여 잠이 들었던 것이었다.

 

3. 현대 수필에서 섹슈얼리티 표현 방법

‘성의 자유’라는 풍조가 우리 사회에 휘몰아치고 있다. 모든 예술이 현실을 바탕으로 한다면 수필도 예외일 수 없다.

수필에서 성의 문제를 다루는 일은 결코 단순한 일은 아니다. 소설과 같이 허구라는 보호막이 있을 때 성의 묘사는 비교적 자유로울 수가 있다. 그러나 수필은 사실과 체험을 전제로 해야 하기 때문에 성적인 묘사 자체가 금기시 될 수가 있다. 그러나 때로 작품에 수용된 섹슈얼리티는 자연스럽게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는 해학이다. 자연스러운 인간사를 진솔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수필 창작에 섹슈얼리티를 수용하려는 의도가 있다면 독자의 공명(共鳴)을 불러올 전략과 방법이 필요할 것이다.

첫째 성숙한 기교가 발휘되어야 한다. 묘사를 지나치게 억제하거나 남용하면 독자를 유인하는데 방해가 된다. 다만 독자의 쾌락적 충동만을 자극하려 한다면 허점이 보일 것이다. 내용과 문장, 주제와 연계되는 의미화와 서사의 관계를 세심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섹슈얼리티 묘사의 부분은 작품 전체 구조와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수필의 엄숙성을 고려하여 성적 묘사가 그 엄숙성을 침식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엄숙성을 보조해주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셋째 성의 문제에 당당해야 한다. 그것은 ‘필요한 최소’로서 작품의 역동성을 전제로 한다는 말이다.

넷째 수필 창작에서 섹슈얼리티 표현의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21세기 문학이 지향하는 생태주의나 폭력에 대한 저항, 생명 중시 사고를 담아내는 목적으로 하는 것이 독자의 공명을 일으킬 수 있다. 쾌락적 심리는 자극하거나 독자의 눈길을 끌기 위한 섹슈얼리티는 일회성에 그치고 말 것이다.

다섯째 수필 작품 전체에서 성적 묘사의 빈도가 구조에서 황금비를 이루어야 한다. 주제에 맞는 빈도여야 한다. 대하소설이나 장편 소설에서는 성묘사의 빈도가 높고 묘사의 길이가 길어서 독자를 흥분에 빠뜨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도 주제와 작품의 목적에 맞아야 한다. 「장길산」 「태백산맥」 「객주」 같은 작품이 그렇다. 그러나 「토지」는 그렇지 않다. 성 묘사의 빈도가 주제와 관계 깊은 것을 보여주는 예이다. 수필은 더욱 유의해야 한다.

여섯째 수필에서는 누구를 대상으로 성을 묘사할 것인가가 섹슈얼리티 표현의 효과를 거두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서술자인 수필적 자아 자신일 경우, 보조적 인물일 경우, 자연을 대상으로 할 경우 그 방법이 다르고 효과 또한 다르다.

일곱째 묘사의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소설이나 시의 경우는 주제에 미치는 효과에 따라 직접 묘사하면 되지만, 수필은 작중인물이나 수필적 자아의 인격에 손상을 줄 수 있으므로 비유나 상징, 다른 대상으로 대체하는 방법을 적용하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시점과 문체를 고려해야 한다. 일인칭시점을 주로 하는 수필에서도 이인칭이나 삼인칭시점을 부분적으로 도입할 수 있으므로 이점을 고려하면 될 것이다.

<예시 작품> 「배필」 일부/ 목성균

나는 중대장 사모님을 뉘어놓고 주사를 놓았다. 왜 그리 떨렸을까. 핏기 없는 하얀 산모의 팔뚝에서 떨리는 손으로 혈관을 찾아 주삿바늘을 꼽는 일이, 숙달된 위생병의 평소 솜씨와 달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병사의 팔뚝에 주삿바늘을 꽂는 것과는 다른 일이었다. 팔이 너무 투명하고 맑아서 그랬을까, 혈관이 파랗게 비치는데도 불구하고 주삿바늘을 혈관에 바르게 꽂느라고 진땀을 흘렸다. 떨리는 손으로 주사바늘을 뺐다 꽂았다 몇 번을 거듭했다. 못미더운 수병의 주사 솜씨를 상 한 번 찡그리지 않고 정온(靜穩)하게 견뎌준 중대장 사모님. 나는 지금도 그녀의 교양을 존경해 마지않는다.

만약 그때 그녀가 불안하거나 불쾌한 표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였으면 나는 주사 놓기가 오히려 더 수월했을지는 모르지만, 그러면 그녀의 모습이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을 리도 없고, 내가 지킨 약속 또한 그리 소중하게 기억될 리도 없다.

 

<예시 작품> 「장마전선을 넘어」 일부/ 목성균

뭍의 발기가 결연한 의지로 바다 깊이 삽입되어 있는 곳이 곶〔串〕이다. 바다는 궁합이 안 맞는 여편네처럼 곶 끝에서 응얼거린다. 곶은 개의치 않고 정정당당하게 바다의 한 녘을 굳건히 장악하고 있다. 아! 수컷다운 기상. 나는 비 오는 곶 끝에 서서 사내의 사기를 진작시켜 본다.

<예시 작품> 「동백꽃 사랑」 일부 / 우작

미투나상은 성애의 갖가지 체위를 적나라하게 표현했는데, 어떤 것은 마주보며 희열에 젖어 있기도 하고, 짐승처럼 뒤에 서서 행위를 하는 것도 있고, 심지어 수간(獸姦)하는 모습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짐승 흉내를 내고 있는 조각상 중에서 엉덩이를 뒤로하고 허리를 굽히고 있는 여인은 매우 괴로워하는 표정으로 보였다. 이런 행위가 종교적으로 완전한 해탈에 이르려는 것이든, 내면의 사념을 버리려는 것이든, 종교적 가르침을 표현한 성스러운 종교적 행위로 힌두인들은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리 성스러운 종교적 행위라도 ‘그대만을 향한’ 사랑이 결여된 성은 폭력이다.

인도 암베르성에 갔을 때 참 희한한 광경을 목격했다. 저녁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이었는데 성채 지붕 위에서 원숭이 두 마리가 교미를 하고 있었다. 원숭이의 표정을 볼 수 없었던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분명히 사랑 없는 공허한 행위일 것이라 단정할 수 있었다. 원숭이는 육신의 형태가 인류와 비슷하기에 교미할 때 마주 볼 줄 알았는데 역시 짐승이었다. 소, 돼지, 개가 다 그렇다. 닭의 교미는 암컷을 짓밟는다. 암컷의 사랑을 확인할 겨를이 없이 폭력적이다. 수모를 당한 암탉은 고개를 홰홰 저으며 ‘꼬꼬댁’ 하고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자신의 모멸감을 해소한다.

 

<예시 작품> 「벼꽃, 밥꽃 하나 피었네」 일부 / 우작

들으니 벼꽃은 벌 나비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은밀하게 사랑을 이룬다고 한다. 이른바 자가수분이란다. 볏잎 무희들이 살랑살랑 미선을 흔들어 바람을 보내면 벼꽃은 합궁을 이룬다. 합궁은 주로 볕이 화사한 정오에 치른단다. 이슬이 허튼 물방울을 보내는 것을 경계함이다. 운우의 즐거움을 누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신비롭고 신성한 한낮이다. 합근의 순간에 벼 껍질은 갑자기 옷깃을 오므려 수술을 떼어내고 암술만 다독여 내밀한 여왕의 산실로 모신다.

 

<예시 작품> 「으름덩굴꽃에서 임하부인林下婦人까지」 일부 / 우작

으름 열매는 바로 쳐다보기 참 민망하다. 어떤 것은 열매 다섯 개가 조금 작은 바나나 모양으로 매달려 있다. 한 10cm쯤 되는 것들 다섯 개가 모여서 덩굴에 매달려 있어서 ‘그 놈 참 실하다.’라는 남성들의 부러움을 사고도 남는다. 그런데 바로 옆에 노랗게 익어가면서 한 쪽이 쩌~억 벌어진 것도 있다. 정말 민망한 모습이다. 전복 5개가 쩌~억 벌어져 나뭇가지 아래에 매달려 있다. 이때 내 정서를 억누르고 욕구를 가라앉히려면 ‘전복 같다’라고 하지 말고 점잖게 ‘임하부인(林下婦人)’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다. 그러노라면 노란 입술 속에 거뭇거뭇한 씨앗을 품고 벌어진 임하부인은 한 술 더 떠서 하얗고 되직한 액체를 방울방울 떨어뜨리고 있다.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혀를 대보면 달콤한 맛에 흠뻑 취할 것만 같다. 자연은 왜 이렇게 인체를 닮아서 점잖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지 모르겠다.

 

<예시 작품> 「호박꽃은 아침마다 사랑을 한다」 일부 / 우작

일벌이 수꽃에서 길어온 사랑을 전해줄 때 암꽃은 어떤 느낌일까? 아픔일까, 쾌감일까, 오르가슴(orgasme)일까? 쾌감을 몸으로 받을까, 마음으로 느낄까? 아무래도 수술이 직접 다녀감만은 못할 것 같다. 그래도 암꽃은 일벌이 다녀가면 꽃 아래 없는 듯 숨어 있던 어린 열매의 성장 속도가 빨라진다고 한다. 온몸에 동력을 넣은 듯 활력이 인다고 한다.

 

<예시 작품> 「사랑해도 괜찮아」 일부/ 이명지

“되더라고!”

친구의 그 말에 나는 왜 눈물이 났을까?

내 마음을 알아챘는지 친구가 목소리를 더 밝게 과장하며 우리가 그동안 쓸데없는 걱정을 너무 한 거 같다며 나한테도 용기를 내라고 격려까지 했다. 우리는 왜 안 된다고, 안 될 거로 생각했을까? 신포도 같은 것이었을까?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미련 버리기 같은….

친구는 육십에 바다를 보았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젊어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몸의 즐거움을 이제야 알았다고 했다. 몸의 언어가 이토록 따뜻한 것인지, 이토록 위로되는지, 이토록 건강한 것인지도 알게 되었다고 했다. 몸의 대화는 결코 힘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게 돼 남은 생이 더욱 아름답게 뵌다고 했다. 어깨에 카디건을 걸쳐주는 진심 어린 손길에서도 온몸의 세포가 낱낱이 돌기 되는 느낌을 나도 꼭 다시 알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여자는 뇌로 사랑한다는 말이 정말 맞는 것 같다며,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내게 단단히 당부까지 했다.

(중간 부분 생략)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조화란 말인가? 친구의 사랑 얘기를 듣고 있노라니 오래 잠자던, 잠자는 줄 알았던 나의 세포가 저 혼자 깨어 소리치며 일어서고 있었다. 아, 어쩌란 말이냐! 젠장!

 

<예시 작품> 「실뜨기」 일부/ 함무성

실뜨기를 좋아한 건 삼촌도 마찬가지였다. 삼촌은 군대에서 제대하자마자 얼굴이 뽀얗고 눈이 가느스름한 아가씨와 맞선을 보더니 서둘러 장가를 갔다. 새살림을 나기 전에는 우리 집 건넌방에서 함께 살았는데 문 닫고 조용히 지내는 때가 많았다. 그때 어머니는 “삼촌네가 방에서 조용히 실뜨기를 할 때는 함부로 문 열고 들어가지 말라.”고 했다. 유년의 시절에는 삼촌 내외가 우리들처럼 정말 실뜨기 놀이를 하고 있는 줄 알았다. 사춘기를 거치며 어머니가 말한 또 다른 ‘실뜨기’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곤충들의 ‘실뜨기’는 보기에 관능적이다. 등에 업혀 붙은 놈, 긴 꼬리를 말아 둥글게 모양을 만들고 둘이 붙은 채 하늘을 나는 놈, 뒤집어진 채로 데굴데굴 구르면서도 단단히 붙어 있는 놈, 나름 형이상학적인 오르가슴을 즐기는 것 같다. 그럼에도 음탕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들의 한살이 과정에서 후손을 남겨야 하는 사명使命이 인간이 추구하는 쾌락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일까.

접사렌즈로 풀벌레들의 모습을 찍었다. 참깨밭에서 사랑을 부르는 노린재는 엉덩이를 훼훼 흔들며 터울거리다가 짝이 정해지면 엉덩이끼리 잇댄다. 머리는 서로 반대편을 향한 채 미동도 없다. 미세한 움직임으로 사랑의 기쁨을 누리는 동안에는 사람의 인기척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왕사마귀의 사랑 방식은 독특하다. 수컷이 암컷의 등 위에 올라타고 사랑을 나눈 후 암컷이 수컷을 대가리부터 바수어 먹는다. 몸을 섞어 붙인 채 암컷에게 순순히 몸을 내주는 수사마귀는 고통스러울까, 아니면 지아비로서의 희생으로 만족할까.

남자들은 암사마귀를, ‘제 서방 잡아먹는 독한 년’이라고 욕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수컷 왕사마귀로 태어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며 밤이 늦도록 술잔을 부딪친다.

독한 암사마귀는 짝짓기와 동시에 이미 여자가 아니고 어미이기 때문이리라. 자연의 섭리는 오묘하고 경이롭다. 후손을 위해 넉넉히 양분을 섭취한 암컷은 몇 주 지나 돌 틈과 나무뿌리 사이에 알을 낳은 후 훌쭉해진 배와 기진한 팔과 다리를 숲에 내려놓는다. 먼저 보낸 수컷을 따라가려는 듯 기꺼이 생을 마친다. 숭고한 그들의 사랑 방식을 풀잎과 들꽃들은 알 것이다.

배추 포기마다 짝지은 섬서구메뚜기들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피식 웃음이 난다. 지난해 겨울, 앞산 고라니의 실뜨기를 눈치챈 밤에 남편과 나누었던 그 일이 새삼 떠올랐기 때문이다.

흰 눈이 사르륵거리는 밤에 고라니가 ‘쿠왝 쿠왜액!’ 비명에 가까운 괴성을 질렀다. 수고라니가 암컷을 부르는 소리이다. 그 소리를 듣고 성숙한 암컷이 찾아오면 고라니 부부는 그때부터 은밀한 실뜨기에 들어간다. 새 봄에 태어날 새끼를 위해 수컷이 만든 보금자리에 신방을 차린 것이다. 짐승이나 곤충들의 실뜨기는 몇 시간, 혹은 며칠씩도 이어진다 하니 그들의 그 순간은 절실하고도 진지할 것이다.

짝을 정한 고라니가 실뜨기를 시작한 듯 숲이 조용해졌을 때쯤에 남편이 슬그머니 나를 흔들어 깨운다. 숲속마을에서 자연과 친구 되어 살자고 한 남편은 신방 차린 고라니들이 부러웠나 보다. 우리도 실뜨기를 하잔다.

눈 내리는 겨울밤은 깊고 길다. 듣는 사람이 없는데도 우리는 숨죽이며 실뜨기를 했다. 조용히 날틀부터 시작하여 차례로 쟁반도 만들어 보고, 젓가락과 절굿공이도 만들어 본다. 공격도 하고 방어도 하며 한 쌍의 겨울 고라니가 되었다.

 

■수필에서 섹슈얼리티 표현의 필요성

수필에서 섹슈얼리티 표현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에코페미니즘이 수필 창작과정에서 세계에 대한 인식의 한 방법이라고 한다면, 형상의 한 방법으로는 섹슈얼리티의 표현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밝혔듯이 섹슈얼리티(性, sex)는 생태계를 구성하는 자연의 가장 기본적인 힘이다. 인류를 생태계의 일부라고 생각한다면 에코페미니즘을 담아내는데 섹슈얼리티가 배제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본다. 진정성 있는 고백이 생명인 수필 창작과정에서 온전하게 미의식을 드러내는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 참고문헌

김종갑, 성과 인간에 관한 책, 다른

마광수, 성애론, 해냄

명혜영, 한일 근대문학에 나타난 섹슈얼리티의 변용, 제이앤씨

이수영, 섹슈얼리티와 광기, 그린비

이영숙, 사랑에 밑줄친 한국사, 뿌리와 이파리

장병인, 조선 여성의 삶, Humanist

정종진, 한국 현대 문학의 성 묘사 전략, 우리문학사

정창권, 조선의 살림하는 남자들, 돌베개

■ 혜원의 그림에 표현된 섹슈얼리티

 

   
월하정인 (국보 135호)月沈沈夜三更 兩人心事兩人知달빛, 옷차림, 발, 머리, 치맛자락 이부탐춘(嫠婦耽春) : 과부가 봄빛을 탐하다.
개들의 흘레붙기소복한 여인 춘의 처자의 꾸짖음
   
四時長春圖
신발, 소나무, 계곡의 폭포, 꽃은 없음소녀(어린 여종)의 엉덩이 빼고 멈칫
지식인의 서재, 자연스러운 표정남자와 여자의 신분 나이,
남자 손에 든 것

이방주수필교실_종강공개특강자료(2024-2)-내지.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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