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생활과 일상/삶과 문학

느림보와 수필미학

느림보 이방주 2025. 9. 19. 20:07

느림보와 수필미학

 

 

2019년 늦가을이었다. 별로 늦지 않은 저녁시간에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왠지 느낌이 좋았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지만 받았다. 수화기 저쪽에서 들려오는 말소리는 경상도 말투였지만 억양이 억세지는 않았다.

“저는 계간 수필미학 주간입니다. 이방주 선생님 맞으십니까?”

“예 제가 이방주입니다.”

대답을 해놓고 계속 처음 들어보는 ‘수필미학’이 생각을 가로막았다. 조금이라도 아는 체 해야 하는데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그냥 《한국수필》이나 《수필과비평》을 통해서 수필교실 문우들이 등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촌사람임을 실감했다. 수필미학에서 작고(作故) 수필가의 작품세계를 재조명하는 특집을 마련해서 첫 번째로 목성균 수필가에 대하여 원고를 마감했다고 한다. 그런데 검색 과정에서 내가 평론으로 등단할 때 쓴 글을 읽은 것 같았다. 얼굴이 화끈했다. 미리 알았으면 특집을 함께 쓸 것을 그랬다면서 아쉬운 말씀을 했다. ‘아 내 글을 읽어주는 분이 있구나.’ 이름만 평론가일 뿐 지방 일간지에 우리고장 작가들의 서평 몇 편 발표한 것이 전부였다. 나는 평론 한 편 제대로 써서 수필 전문지에 발표한 적도 없고 청탁을 받아본 적도 없는 무지렁이였다.

그런데 그 다음 말씀은 나를 더 황당하게 했다. 다음호에 고 김열규 수필가에 대하여 기획하고 있는데 함께 할 의향 있느냐는 것이 주요 용건이었다. 김열규 수필은 한편도 읽은 적이 없다. 그분이 국문학자이면서 민속학을 연구한 것은 잘 알고 있고, 그 분의 민속학 분야 저서를 몇 권 읽은 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김열규 교수도 쓰셨나요.’하고 되묻기에는 너무 창피해서 그냥 아는 체했다.

“우리랑 함께 해 봅시다.”하고 다그친다. 빨리 대답해야 한다. 나는 바보처럼 약점을 드러냈다.

“저는 학위가 없습니다.”

“그게 무슨 상관있습니까. 선생님 글을 읽어보고 드리는 말씀인데요.”

참 대답이 명쾌하다. 속셈도 없어 보인다. 그래서 경상도 남자가 좋다. 이럴 때 나도 명쾌하게 대답해야 바보 느림보를 면한다.

“하겠습니다.”

첫 전화로 단번에 청탁을 받았다. 김열규 수필가의 수필론에 대한 비평이다. 수필에 대한 비평이 아니라 수필론에 대한 비평이다. 어렵다. 난감하다. 그러나 해내야 한다. 김열규 교수의 작품집을 몇 권 구입했다. 수필과비평사에서 나온 선집이 작가론을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알았다. 쓰면서 공부를 했다. 나는 비평을 이론으로 공부한 적도 없고 비평 방법론에 대한 책을 읽은 적도 없다, 등단작인 졸고 〈수필적 상상으로 형상화한 삶의 근원적 가치〉도 감상문 수준이라는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주간님이 보내 준 《수필미학》에 올라온 평론을 읽으며 내 글의 방향을 잡았다. 그리고 〈심성心性을 영성靈性으로 다듬어 쓰는 수필〉이란 제목으로 김열규의 수필론에 대한 평론을 써서 보냈다. 두렵고 걱정되었으나 수필미학 편집장도 주간님도 아무런 대답이 없다. 다음 호에 그냥 게재되었다. 게재된 글이 별 탈은 없었던 것 같다.

이것을 계기로 계속해서 수필미학에 평론을 발표했다. 〈하동포구에 떠오른 무지개, 그 실존의 흔적〉(김규련 작품론), 〈관계의 지혜를 통하여 존재 방식을 발견함〉(최종 작품론), 〈비움, 변환하는 존재의 아름다움〉(허정진 작품론), 〈새 꿈을 꾸는 비밀 정원〉(현정원 작품론) 〈자연이 들려주는 말씀〉(조한금의 작품론) 등을 게재하였다. 이런 중에 월간 한국수필의 월평을 쓰게 되고 문우들의 작품집 발문도 썼다. 되잖은 글이지만 이 글을 모아 평론집 《해석과 상상》을 묶었다. 평론집을 낸다는 건 나로서는 감히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지금 두 번째 평론집을 준비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 해오는 가운데 비평에 대한 책을 읽고 평론가들의 평론집을 읽어야 했다. 나의 평론이 느림보이긴 하지만 조금씩 진화하게 된 것은 순전히 수필미학 덕이다.

내가 쓰는 수필 평론도 독자가 있었던 것 같다. 2024년부터 데일리한국에서 〈평론가가 뽑을 좋은 수필〉이라는 특집을 기획하면서 함께 하자는 의견을 보내왔다. 감사한 마음으로 참여했다. 그리고 성의를 다하여 좋은 수필을 선정하고 평론을 썼다. 쉬지 않고 연재하여 총 22편의 수필 단평을 게재하였다. 한국 수필문단에서 ‘수필가 이방주가 평론도 쓴다,’라고 아는 것이 아니라 ‘평론가 이방주가 수필도 쓴다.’하고 알게 되었다. 수필미학과 인연 덕분이다.

수필미학과 더욱 가까워졌다. 《수필미학》에 평론을 발표한 것을 인연으로 무심수필문학회를 취재 소개하기도 했다. 이제 수필가들이 《수필미학》에 작품 한 번 게재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할 만큼 수필미학은 성장했다. 수필미학이 성장하는 만큼 회원들은 함께 성장한다. 수필미학작가회가 구성되고 200명에 가까운 훌륭한 작가들이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수필미학작가회에 회원이 되면 훌륭한 작가들과 교류하는 계기가 되고 자신을 돌아보게도 된다. 자신을 돌아보는 것만큼 창작에 열중하고 심혈을 기울이게 된다. 우리 청주와 충북의 문우들도 수필미학작가회 회원으로 가입하여 활동 영역을 넓혀가는 것도 흐뭇한 일이다.

2025년 초 어느 결에 나는 수필미학작가회 회장을 맡게 되었다. 전국의 진실로 훌륭한 수필가들만의 모임인 수필미학작가회의 회장이 된 것은 형용할 수 없이 작은 ‘이방주’라는 그릇에는 담기 어려운 큰일이지만, 나로서는 그만큼 보람 있고 뿌듯한 일이다.

2025년 수필미학문학제가 9월 11일에 안동 이육사 문학관에서 1박2일로 열렸다. 전국에 흩어진 회원들 80여명이 참석했다. 청주에서도 10여 명이 참석했다. 수필미학문학제는 다른 어느 문학제에 비해 알차고 평화로웠다. 화기애애한 속에서 서로를 들여다보고 상생 성장하는 기회가 되었다. 회원들의 문학 세계를 통하여 내 그릇에 넘치게 꿈을 받아왔다.

시인 서정주는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라고 했지만, 바람으로 크지 못한 느림보 이방주는 수필미학으로 나의 수필과 수필 비평을 향한 꿈을 키웠다.

(2025. 9.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