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과 서재/심사평

삶은 관계지어가는 사랑의 길

느림보 이방주 2024. 5. 5. 23:55

계간 [문장] 2024년  여름호 신인상 심사평

삶은 관계지어가는 사랑의 길

 

문장 여름호는 이승희님의 〈자귀꽃〉 〈파지 줍는 노인〉, 이은하님의 〈붉은 신호등〉 〈경아의 꿈〉을 신인상 당선작으로 뽑는다. 두 분의 작품은 공교롭게도 모두 사랑을 소재로 하여 모든 이들에게 공명을 주었다. 사랑은 인간의 심성 가운데 가장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정이다. 우리네는 그냥 정을 주고받는다고 말한다.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영성(靈性)으로 유대관계를 지속하고자 할 때 상대에게 사랑을 베풀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양인들은 자신들이 속한 사회에서 존재를 드러내고자 할 때 남과의 관계 짓기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이웃과의 관계지어가는 삶에서 사랑만큼 소중한 것은 없을 것이다.

사랑은 보살핌, 베풂, 돌봄이 있는가 하면 존중과 공경의 마음도 있다. 물론 남녀 간의 애정도 있다. 사랑은 가족관계, 선후배 관계, 교우 관계, 정치, 경제, 학문, 문학 등 모든 사회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그만큼 사회의 필수요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문학에서도 아주 좋은 소재가 될 수밖에 없다.

이승희님의 〈자귀꽃〉은 부모님의 부부 사랑을 바라보면서 자식으로서 존경심과 사랑을 그려냈다. 모정(慕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애틋한 부모님의 부부사랑을 자귀나무라는 상관물에 빗대어 효과적으로 형상화하였다. 부모님의 부부사랑의 모습은 자칫 진부한 넋두리가 될 뿐 아니라 설명적 진술에 그칠 우려가 있는 소재이다. 그런데 자귀나무의 속성을 관찰 묘사하여 그 의미를 부모님의 부부사랑으로 환치함으로써 아름답고 잔잔한 울림을 주는 작품으로 형상화되었다. 다음 작품인 〈파지 줍는 노인〉은 파지 줍는 노인에 대한 관찰로 노인에 대한 공경은 물론 노동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작가의 마음을 형상화 하였다. 현실에 도전하고 몰입하면서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노인을 통해서 이 사회가 필요한 인간상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노인에 대한 연민의 정과 아울러 사회문제에 대한 충정을 담고 있다.

이승희님은 일상의 평범한 소재를 새로운 안목으로 의미를 찾아내어 수필의 구성과 표현기법을 활용하여 주제를 선명하게 표현하는 솜씨가 있어 수필가로서의 가능성을 보였다.

이은하님의 〈붉은 신호등〉은 자식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붉은 신호등을 착안점으로 모정(母情)을 표현하였다. 이 작품은 갑상샘암이 발병한 딸의 치료 과정을 보면서 보여준 내리사랑이 애틋하다. 작가는 한겨울 추위 속에서의 붉은 신호등을 따뜻한 햇살과 바람의 푸른 신호등으로 내리 사랑이 변환하는 구성의 효과를 거두는 솜씨가 남다르다. 아울러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 그 의미와 상징성을 서사와 연계되도록 하는 유기적 구성의 솜씨도 엿보인다. 두 번째 작품인 〈경아의 꿈〉은 시누이에 대한 사랑, 시누이와 함께 할머니에 대한 사랑을 소소한 일상에 담아내어 독자에게 잔잔하게 들려주는 겸손한 목소리가 큰 울림을 주었다. 아마도 ‘올케와 시누이 사이의 사랑’이라는 일반적이지 않은 가족애에 관한 서사여서 더 큰 감동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서사의 진술이 과장도 꾸밈도 없이 매우 진솔하게 드러났기에 일반화되기 쉬웠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작가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인식을 보편화하여 일반적인 삶의 원리로 개념화 해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수필 창작 과정에서 놓치기 쉬운 기법을 이미 익히고 있는 것으로 보아 좋은 수필가가 될 것으로 믿음이 간다.

새 출발하는 이승희 수필가님, 이은하 수필가님께 축하의 말씀을 드리며 더욱 정진하여 한국 수필문학의 미래를 빛내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자귀꽃

이승

아침이면 분홍빛 실타래를 풀어 헤치는 자귀꽃, 오롯이 하나가 된 밤 동안 포갰던 잎을 아침이면 기지개하듯 폅니다. 우리 집 앞마당의 자귀나무 한 그루가 올해는 유난히 활짝 잎을 펼쳤습니다.

낮에는 잎을 나래처럼 펼쳤다가, 밤이 되면 두 손을 포개듯 합칩니다. 밤낮에 따라 접히고 열리는 자귀나무 잎은, 낮에는 서로 떨어져 있다가 밤이 되면 만나는 부부의 모습을 닮았다고 합니다. 자귀나무 잎이 닫히는 날은 부부의 금실이 좋은 때고, 잎이 닫히지 않은 날은 부부 사이에 불화가 생긴 것이라는 일설도 있습니다.

어깨를 나란히 맞대고 걸어가는 두 사람은 걸음마다 자신들의 흔적을 찍어 놓습니다. 말을 맞추기라도 한 듯 아버지는 논으로, 어머니는 밭으로 일을 나갑니다. 도시 생활에 익숙한 아버지는 농사일이 서툴긴 하지만 놀이처럼 즐깁니다. 엄마는 하루치 식량을 준비하듯 온 힘을 다해 채소와 과일을 가꿉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한 지붕 아래 살며 돕고 살아가는 일이 쉬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서로에게 좀 더 가까이 가려 애쓰는 두 분의 모습을 보며 세상을 배웠습니다.

노래하는 걸 좋아하는 아버지, 특히 화초를 좋아하는 여린 감성의 소유자입니다. 영덕군에서는 몇 해마다 노래자랑 대회가 열립니다. 대회 참가를 위해 몇 날 며칠 노래 연습하는 모습을 보면, 아버지는 좋아하는 것에는 열정이 남달랐다는 생각이 듭니다. 뒤뜰과 앞뜰에 심은 갖가지 과일나무와 채소 가꾸기는 아버지의 좋은 취미생활이었습니다. 그러나 과일, 채소들을 가꾸고 키워내는 일은 늘 어머니의 몫이었습니다. 어린 내 눈에 묵묵히 일만 하는 어머니는 누구보다 생활력이 강하고 책임감이 투철한 분이었습니다.

농사일에 서툰 아버지는 세상 돌아가는 얘기들로 흥을 돋우고, 어머니는 몸으로 익힌 농사일로 아버지의 빈틈을 채워 줍니다. 도시와 시골을 오가며 지내야 했던 두 분의 신혼생활은 누구보다 애틋했습니다. 떨어져 지내야 하는 시간만큼 그리움도 큰 법이니까요. 도시에서 공부하고 있던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는 많은 농사일과 시집살이로 손에 물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떨어져서 살아서일까요? 두 분은 유독 정이 두터웠습니다. 아버지가 시골집에 왔다 가면 이듬해에는 자식이 생겼으니까요. 제가 태어났을 무렵은, 아버지가 군에 있을 때였습니다. 휴가 나온 아버지는 저를 몰라보고 누구 아이냐 했다는 것입니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시는 어머니가 임신한 얘길 하지 않아서 생긴 해프닝이었죠.

두 분이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수년에 걸쳐 자식이 늘어갔습니다. 부부 금실만큼은 남들 못지않았던 것 같습니다. 나보다 열네 살이나 많은 자유분방한 큰오빠, 여성미와 지성미를 고루 갖춘 언니, 성실함을 빼놓을 수 없는 작은오빠, 밝고 쾌활한 성품의 세 살 아래 여동생, 어디로 튈지 모르는 철부지 나. 자귀꽃이 피어나듯, 세상의 꽃으로 오남매가 태어났습니다. 모양도 향기도 제각기 다른 자식들은 두 분에게 있어 어느 것에도 비할 수 없는 소중한 꽃들입니다.

아버지가 피워 놓은 모깃불 매캐한 연기가 마당에 들이차면 식구들은 하나둘 마당 가운데 있는 평상에 모여 앉습니다. 갓 쪄낸 옥수수 하나씩 입에 물고 있으면 어머니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삶은 감자를 그릇에 소복이 담아와 이리저리 굴립니다. 포슬포슬한 하얀 꽃이 함박 그릇에 가득 피어납니다. 힘들었던 하루를 털어내는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에 가족의 정이 깊어 갔습니다.

어지간한 것은 감싸고 모자란 것은 덮어주었던 두 분입니다. 이제 서로를 보듬고 털어냈던 숱한 세월을 뒤로하고 백발이 무성한 어머니는 먼 산을 바라보며 먼저 간 아버지를 바라보듯 창밖을 보고 앉아 있습니다.

혹독한 시간을 견디며 피어난 분홍빛 꽃. 두 손 모아 밤새 키워낸 고운 노리개처럼 곱디고운 자귀꽃을 바라봅니다. 이제 초로의 어머니 나이가 된 나는 아침마다 분홍 자귀꽃을 정갈하게 피워내려고 밤마다 간절히 기도합니다.

 

파지 줍는 노인

 

어디로 가는 걸까? 매일 이 시간이면 노인은 산더미처럼 쌓아 올린 재활용품을 싣고 골목 귀퉁이를 돌아 나간다. 한차례 손님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미용실에서 나는 한숨 돌리며 창밖을 내다본다.

백발노인의 종종걸음은 해를 따라다닌다. 깡마르고 다부진 몸에 손끝도 여물다. 주워 온 각종 재활용 박스, 낡은 가전제품들을 해체하는 기술은 정교하면서도 재바르다. 짐을 빈틈없이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그의 손놀림을 보고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떡 벌린다. 집채만 한 짐 덩이를 리어카에 싣고 골목 끝을 지날 땐 애써 쌓은 박스가 쏟아져 내릴까 조마조마하다.

지하 슈퍼에서 나오는 빈 종이상자는 모조리 그 노인의 것이다. 성실한 노인을 보고 슈퍼사장이 인심 쓴 듯하나 사실은 서로 도와주는 셈이다.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빈 종이상자를 노인은 제집 정리하듯 모으고, 널브러진 주변 쓰레기까지 깔끔하게 정리해 치운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그 일을 하는 노인 덕에 사람들이 드나드는 슈퍼 입구는 항상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가끔 노인이 다른 데 간 사이에는 다른 아주머니가 접어놓은 상자 몇 개를 슬그머니 주워 가기도 한다. 얌체 짓을 하는 아주머니를 노인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은 각종 폐휴지, 재활용품을 실은 리어카가 옹골지다.

종이상자를 노인에게 건네주면서 그가 작업하는 과정을 한참 지켜보았다. 문구용 칼로 박스에 붙은 테이프를 제거하더니 박스를 크기대로 분류한다. 그러고는 리어카에 꼭꼭 눌러 채운다. 때론 재활용이 되지 않은 물건도 따라오는지 따로 모아 쓰레기봉투에 넣어 꾹 누른 다음, 단단히 묶어 전봇대 옆 쓰레기장에 갖다 놓는다.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에서 하루해가 저물 때까지 묵묵히 일한다. 노인의 손놀림 하나하나가 그의 삶을 말해주듯 차곡차곡 정갈하게 정리되어 리어카에 실린다.

통계에 따르면 폐지 가격 1kg당 100원 내외, 경기 침체로 그마저 반 토막이 났다. 노인은 하루 평균 11시간 동안 12.3km를 이동해 1만 428원을 버는 셈이다. 하루 최저임금이 시간당 9,860원인 지금, 쉴 틈도 없이 종일 박스를 주워 와 정리하는 노동의 대가치곤 이해가 되지 않는 금액이다. 날씨가 궂은 날에도 한결같이 폐지를 주워 모으는 노인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든다.

노인에게 일은 어떤 의미일까? 힘을 쓰지 않고도 할 수 있는 노인 일자리를 두고 하필이면 힘이 많이 드는 저 일을 선택했을까? 일에 푹 빠져있는 동안, 노인은 마치 신명이 나 있는 사람처럼 생기가 있다. 어려운 수학 공식을 푸는 학생처럼 그의 손은 신중하면서 정확하다. 벽돌을 쌓아 놓은 듯 반듯하게 제자리를 찾아 앉는 파지를 보는 노인의 눈빛이 겸허해 보인다. 나 역시 종종 노인처럼 일에 완전히 빠지는 경험을 한다. 하는 일에 몰입하면 어떤 결과에도 상관없이 마음은 유리알처럼 맑아진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스스로 만든 체계 안에서 성실히 제 할 일을 하는 노인, 노인의 일에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청춘은 나이와 몸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동감이라 했다. 그런 생동감이 노인에게 있다. 노인에게 일은 그저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시간을 버는 일 같기도 하다. 노인의 삶이 경이롭게 보이는 것은 자신의 한계에 매일 도전하며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치열한 몰입 때문이 아닐까.

오늘도 변함없이 리어카에 파지 한가득 싣고 노인은 골목을 빠져나간다. 무거운 짐이 힘겨워 보이지만, 젊은이 못지않게 리어카를 가뿐하게 끌고 가는 뒷모습이 가벼워 보인다. 노인은 노동 뒤에 오는 기쁨이 돈의 가치보다 더 크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한 모습, 하루를 충분히 살아낸 노인의 리어커를 본다.

손님들의 머리칼이 쌓여있는 바닥을 깨끗이 쓸어 담으며, 나는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충실하게 마감한다.

 

붉은 신호등 

이은하

정신없이 걷다가 건널목을 막 건너려는데 붉은 신호등이 켜집니다. 헐떡이며 걷던 걸음을 잠시 멈추어 섭니다. 초겨울 옅은 햇살 사이로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이 차갑습니다. 빨간 불빛이 깜빡입니다. 돌아온다는 희망이 있다면 잠깐씩 사라지는 일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으리라는 희망처럼 파란 불이 다시 켜집니다.

올겨울은 유난히 차갑습니다. 겨울이 일찍 찾아온 탓일까요. 아니면 내 마음이 추워서일까요. 딸의 문자가 스산하게 내게 왔습니다. 건강검진을 했는데 조직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석연찮은 소식입니다. 염려되어 전화기를 들었습니다. 가라앉은 딸의 목소리가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옵니다. 목에 이상이 생겼는데 큰 병원에 가서 검사받아 봐야 한다는군요. 반쯤 혼이 나간 채 병원을 알아보았습니다.

병원 가는 길은 왜 그렇게 멀게만 느껴졌을까요.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는 딸의 손을 슬며시 잡았습니다.

“괜찮아, 별거 아닐 거야.”

복잡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밝은 척했습니다. 조직 검사를 기다리는데 죄스러움이 밀려와 목이 메었습니다.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고 건강하게 낳아주지 못한 내 탓인 것만 같아 자꾸 마음이 짠해집니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딸은 나에게 따스한 위로가 되어 주었지요. 딸은 언제나 나의 말에 귀 기울여 주고 때론 내 위악을 무던히 참아주었습니다.

나는 딸에게 어떤 엄마였을까요. 번민에 젖어 지난날을 떠올립니다. 딸이 5학년 때 한쪽 귀가 잘 안 들린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제 할 일을 똑 부러지게 하고 속이 깊었던 딸은 엄마 마음이 아플까 봐 한 번도 내색하지 않았지요. 힘들고 불편했을 딸을 생각하니 가슴 한쪽이 자꾸만 무너져 내립니다.

소란하지 않게 마음으로 말하는 법을 알았던 걸까요. 딸은 아픔을 가진 아이들에게 남몰래 도움의 손길을 주고 있었습니다. 엄마도 모르게 ○○재단을 후원하고 있었는데 그런 딸이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릅니다.

검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옷 속으로 파고드는 매운 칼바람인들 딸의 시린 마음에 비할까요. 살면서 눈시울 젖을 때도 많았지만, 뿌리까지 얼어붙은 이 마음을 어찌할까요. 차창 밖으로 앙상한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며칠 뜬눈으로 지새우고 결과 보러 간 날, 서로 말없이 기다리고 있는데 간호사가 딸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순간 가슴이 방망이질하듯 뛰기 시작했습니다. 제발 아무 일 아니길 간절히 빌었지요.

검사 결과는 갑상샘암이라고 했습니다. 남편 얼굴도 창백해졌습니다. 다행히 일찍 발견해서 간단하게 제거만 하면 되는데 기도와 너무 가까이 붙어있어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목소리가 안 나올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가장 빠른 날로 수술 날짜를 잡고 병원 문을 나섰습니다.

참았던 눈물을 글썽이며 딸이 말했습니다.

“엄마, 내가 왜 암이야?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는데 이건 너무하잖아.”

하소연하듯 딸은 울분을 토했습니다.

“연우야, 이건 누구 잘못도 아니야. 잠시 쉬어가라고 몸에서 신호를 보낸 것뿐이야. 빨리 발견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우리 힘내자.”

딸의 등을 토닥이며 꼭 안아주었습니다.

저는 딸과 함께 있을 때면 세상 부러울 게 없는 엄마였습니다. 내 속에서 천사가 나왔다고 좋아했고, 웃고 있는 딸을 보면 메마른 가슴은 금방 꽃밭이 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딸의 병명을 듣고 난 후 내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천당과 지옥을 오갔습니다.

수술 날이 다가오자 점점 말수가 줄어드는 딸을 보며 행여 우울증에 걸리지 않을까 초조했습니다. 딸은 암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는지 자꾸 야위어갔습니다. 애교 많고 조잘조잘 얘기도 잘하던 아이가 말이 없으니 차마 다가갈 수 없었고 병실에는 적막만 흘렀습니다.

수술 날 아침 일찍 남편이 도착했지만, 차마 병실에 올 수 없어 수술실 앞에서 대기했습니다. 아빠를 본 딸은 담담한 척 애써 웃음 지었습니다.

“우리 딸 힘내자.”

남편은 딸의 손을 꼭 잡아 주었습니다. 수술실을 향해 들어가는 딸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한참 그 자리에 붙박여 있었습니다. 맥없이 아이의 이름을 되뇌며 천년 같은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희망과 절망이 실타래처럼 얽혀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일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얼마나 지났는지 드디어 수술실 문이 열렸습니다. 딸의 이름을 부르면서 한걸음에 달려갔습니다. 의사는 수술이 잘 되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긴장이 풀리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만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비몽사몽인 딸을 보니 코끝이 찡하고 눈시울이 자꾸만 붉어졌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안정을 찾으며 기분도 조금씩 나아졌습니다.

삶의 고통이란 신이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는 신호라고 하지요. 삶의 한가운데에서 세찬 비바람을 맞을 때 견딜 수 있는 것은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앞에 붉은 신호등이 켜질 때에야 우리는 별 탈 없이 살아가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습니다.

이제 신호등 앞에 나란히 딸과 멈추어 섭니다. 시린 상처에 새살이 돋도록 햇살과 바람으로 말끔히 씻어내는 푸른 신호를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파란 불이 깜빡입니다. 딸이 내 손을 잡고 뛰기 시작합니다.

 

경아의 꿈

 

“언니야. 오늘 바람 쐬러 가자, 준비하고 있어. 금방 갈게.”

잠이 덜 깬 상태라 조금은 귀찮았지만 ‘그래 까짓것, 하루쯤은 훌쩍 떠나 바람 쐬고 오자’ 혼자 중얼거리며 나갈 채비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재촉하는 전화벨 소리가 분주하다.

갑작스러운 나들이, 복잡한 시내를 벗어나 한적한 시골길을 달렸다. 차창 밖에는 벌써 벼이삭이 누렇게 익어 하나둘 고개를 숙이고 있다. 창문을 열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더없이 높고 푸르다. 문득 지난 시간이 무지개처럼 아련히 피어오른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해 가을하늘도 오늘처럼 높고 푸르렀다.

유난히 시골을 좋아하는 경아, 주말이면 경아는 할머니가 계시는 산골 집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할머니는 언제나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시골집의 앞마당에는 커다란 밤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쩍 벌어진 밤송이 사이로 알밤이 한껏 영글어 손을 대면 금방이라도 툭 떨어질 듯했다. 한 가지 꺾어 밤톨을 까는데 설렁거리는 가을바람에 알밤이 머리 위로 후드득 떨어졌다. 디딜방아 옆 마당 한쪽엔 깊은 계곡에서 끌어온 맑고 깨끗한 물도 흘렀다. 샘터엔 할머니가 금방 해놓은 꿀밤묵이 커다란 함지박에 담겨 있었다. 시원한 물에 손을 담가 만져본 묵은 매끄러운 아기 속살 같았다.

도시에서 자란 나는 난생처음으로 접해 보는 시골 생활이 신기하기만 했다. 할머니는 텃밭에 심어놓은 무를 뽑아 무생채를 하고 묵과 함께 한 상 가득 내오셨다. 무생채와 함께 비벼 먹은 묵은 어쩜 그리도 맛있는지, 쌉싸름한 묵 맛이 무생채의 시원함과 잘 어울려 색다른 맛을 만들어 냈다. 우리는 한 그릇씩 다 비우고 샘가에서 설거지를 했다. 그런데 너무 많이 먹은 탓이었을까? 자꾸만 하품이 나고 졸음이 밀려왔다.

“언니야, 우리 방에 가서 한숨 자고 나오면 안 될까?”

방으로 들어가 경아의 팔을 베고 어느새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경아가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눈을 떴다.

“언니야, 빨리 일어나 봐.”

“왜 그래? 무슨 일인데?”

나는 깜짝 놀라서 일어났다.

“내가 꿈을 꿨는데, 앞마당에 있는 밤나무 밑에 아주 굵고 탐스러운 밤이 잔뜩 있었어. 양쪽 주머니 가득 주워서 언니한테 줬어. 근데 꿈이 너무 생생해. 혹시 태몽 아닐까?”

경아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활짝 웃었다. “아유 참….” 경아의 웃음을 받아 나도 따라 웃긴 했지만, 그러고 보니 왠지 속이 더부룩하고 좋지 않았다.

묵을 먹고 금방 자서 그러려니 했으나 계속 속이 부대꼈다. 무엇보다 경아의 꿈 얘기가 마음에 남아서 몸의 부대낌보다 마음의 부대낌이 더 컸다. 꿈이 최면을 걸었던 것일까. 희미하게나마 임신의 기미가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다음 날, 일찍 산부인과에 갔더니 역시나 임신이었다. 가슴이 벅찼다. 제일 먼저 경아에게 소식을 전했다. 뛸 듯이 기뻐했다. 경아가 바로 그 자리에서 아기의 태명을 ‘똘이’라고 지어주었다. 똘똘하고 알밤처럼 영글게 자라라는 뜻으로.

열 달을 채우고 세상에 나온 똘이는 사내아이였다. 경아의 꿈처럼 아이는 까놓은 알밤처럼 토실하고 사랑스러웠다. 비록 2.3kg으로 작게 태어나 잔병치레가 많았지만, 건강하고 튼튼하게 잘 자라주었다. 그 아이가 벌써 결혼하여,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작은 일터를 알차게 꾸려가고 있다.

태몽을 대신 꿔주고 태명도 지어준 마중물 같은 경아는 나의 소중한 시누이다. 생각지 않은 경아와의 나들이가 옛 추억을 소환해 왔다. 한껏 무르익은 가을을 마음 가득히 느끼면서 기억 저편 흐뭇한 추억을 꺼내어 경아와 오붓하게 나누었다.

밤송이가 툭툭 껍질을 까고 나오는 날의 가을 나들이, 올케와 시누이의 우애가 가을빛만큼이나 탐스럽게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