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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김은희의 <그녀의 고백> <산과 그에 대한 기억>(한국수필 2021년 7월호)

느림보 이방주 2021. 6. 9. 16:29

신인상 심사평

 

김은희의 <그녀의 고백> <산과 그에 대한 기억>

 

이방주

 

김은희님의 <그녀의 고백> <산과 그에 대한 기억>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두 작품은 모두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의 삶을 제재로 삼았다. 수필은 치유의 문학이라고 한다. 수필 창작과정에서는 세계와 자아를 이해하는 통찰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긍정적 사고를 갖게 된다. 아울러 이러한 작품을 감상하면서 독자는 영혼의 치유 효과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녀의 고백>은 여행지에서 만난 여행가이드의 특별한 성격에 대해 처음은 반감을 가졌으나 애정으로 이해하면서 통찰하여 긍정적 시선이 된다. 결국 처음의 반감은 ‘열망이 있어 빛나는 그녀’로 결론을 내린다. 그녀의 삶의 고백을 들으면서 자신을 치유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산과 그에 대한 기억>은 산행에서 만난 구조대원인 ‘그’의 산처럼 큰마음에서 삶의 기쁨을 얻는다. 병렬로 구성한 몇 개의 등산 일화를 통해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그의 무한봉사는 모든 이를 감동하게 한다. 에베레스트 등정에서 사고로 그를 영원히 만날 수 없게 된다. 그래도 그의 따뜻한 사랑은 등불처럼 남을 것이라며 마감하였다. <그녀의 고백>은 서사의 주인공이 자신의 존재감을 위한 삶의 강인함을 다루었다면 <산과 그에 대한 기억>은 서사의 주인공이 이웃에게 사랑을 베풂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해가는 과정을 중심 화제로 삼았다. 글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서사에 치우치지 않고 감성에 머물지 않으면서 대상에 대한 깊이 있는 사색으로 가치를 확인하였다. 이러한 전개로 독자를 ‘기쁨을 주는 생명의 세계’로 끌어들이기에 충분하다. 늦은 등단이지만 뿌리가 깊어 빠르게 성장할 작가라 생각한다.

 

 

 

<수상소감>

 

수필쓰기는 인생의 마지막 일로 삼아

 

김은희

 

사춘기 소녀 때부터 문인들을 부러워했습니다. 한글의 낱글자들을 짜 맞추어 생각을 멋진 문장으로 엮어가는 작가의 능력이 부럽고 신기해 보였습니다. 많은 예술 중에 유독 문학을 사랑했던 건 작품 속에 사람의 영혼을 여물게 해주는 해법이 있다고 믿어서였습니다. 사람들이 바르게 살아가는 방법을 책을 통해 배우며 나 또한 바르고 의미 있게 살기를 꿈꾸었습니다. 글을 써보고 싶다는 소망도 있었지만 그저 막연한 꿈일 뿐이라고 여겼습니다. 책을 읽으며 수많은 작가를 흠모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결혼하고 바쁜 일상에 종종거리느라 문학에 대한 열망은 점점 남의 나라의 얘기처럼 멀게만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다 몸도 마음도 여유로워져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이순을 넘겨버렸습니다. 바쁜 삶이 지나가자 이유를 알 수 없는 허무가 마음의 이랑을 적시고 있었습니다. 허전한 마음의 근원을 찾느라 고심하던 중에 지금의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만큼이나 제겐 생명수 같았습니다.

가르침대로 따르며 내 것으로 만들려 애쓰지만 쉽지 않은 일이라 여겨집니다. 소화하기에 아직 무리가 있지만 뒤늦게 찾은 희망을 소중히 하려 합니다. 수필쓰기가 삶을 진솔하고 신중한 방향으로 인도해준다는 점에서 인생의 마지막 일로 삼고 싶습니다.

좋은 글이 되도록 지도해 주시는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수필 문학에 입문하도록 독려해 주신 문우 강현자 선생님과 무심수필문학회 문우들께도 감사드립니다. 곁에서 응원해 주는 가족에게도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약력

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방송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졸업.

세명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현대문학 전공 수료

서원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교실 수료

무심수필문학회 회원

이메일 : keh2128@hanmail.net

 

 

그녀의 고백

 

김은희

 

일상이 지루하다고 느낄 때 나는 여행을 떠난다. 매너리즘에 빠진 삶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데는 여행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여행지에서 알게 되는 새로운 인연을 꼽는다. 사람 냄새 진한 인정과 배려를 발견할 때 참으로 좋다. 더불어 여행가이드와의 만남도 기대해볼 만하다. 일상의 찌든 때를 헹구어주듯 막혀있던 가슴에 설렘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여행 가방을 싸는 일이다. 여행 가방을 펼쳐놓고 물건들을 고르다 보면 먼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이 소환되기도 하고, 또한 잊었던 옛 물건들과의 해후가 이루어지는 것처럼 가슴이 뜨거워져서 좋다.

매번 똑같은 일상에 서서히 지쳐갈 때쯤 여행은 가뭄에 단비 같은 모습으로 닫혀있는 마음을 열어준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내게 조금 부끄러운 약점이 있으니 숨길 수 없는 내 안의 부족한 상식과 지식이다. 기왕이면 여행지의 정보를 웬만큼은 알고 있어야 여행의 즐거움이 배가 될 것이라는 걸 안다. 따라서 부족한 상식으로 다리품을 팔고 있다고 누군가 면박을 준다고 해도 마땅히 항변할 구실을 찾지 못하리라는 것도 잘 안다. 그런 이유로 때로는 수박 겉핥기식의 여행이 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그 말대로라면 나는 반쯤 눈을 감고 여행을 다니는 셈이다. 다음 여행 땐 제대로의 심도 있는 여행을 준비해 보자 벼르지만 여전히 부족하긴 마찬가지다. 애당초 부족했던 상식과 지식이 어느 날 갑자기 무거운 저울추를 내던지고 튀어 오르듯 올라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채워야 할 숙제로 꼽고 있다.

우리는 사람을 평가할 때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너머의 것을 본다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사람의 됨됨이를 내 방식대로 쉽게 결정하는 일은 여행 중에서도 종종 있는 일이다. 그 일은 때로 판단의 오류를 범했을 때 느끼는 부끄러운 자각을 내게 안겨주기도 한다.

터키 여행에서 인형처럼 예쁜 가이드와 긴 시간을 함께 보낸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지나치게 정형화된 듯한 그녀의 예쁜 모습을 보며 믿음이 가지 않았다. 많은 곳의 투어를 인솔해야 할 사람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다. 먼저 굽 높은 하이힐 보관용 가방이 눈에 거슬렸다. 신발 담는 캐리어를 따로 들고 다닐 정도의 자기애라면 다른 일의 허술함이 불을 보듯 뻔하다는 내 나름의 선입견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정해 놓은 규격의 틀 안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습관이 있다. 그것이 일반적인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스스로 정한 규칙은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조금씩 다른 시각의 차이 때문에 서로 아파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나 또한 예외일 수 없기에 고통을 달고 사는 환자처럼 아파하며 산다. 내가 덜 아프기 위한 이유만 빼면 모든 사람이 똑같은 이유로 아파하며 산다고 느낀다. 그러나 순간 이쯤에서 내 선입견을 잠재워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내 생각이 언제나 모든 진실을 관통하고 있지는 않는다는 자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저런 생각을 되짚어 보면서 알게 되었다. 넘치는 프로 정신이 그녀를 완벽한 매무새로 장착시키고 있다는 것을. 그녀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셈이다. 따라서 나는 구두 굽 하나에도 온 마음을 다하는 그녀의 프로 정신에 점점 빠져들기 시작했다.

클레오라는 예명을 가진 그녀에겐 클레오파트라처럼 살고 싶은 열망이 있다고 했다. 터키로 이민을 가기 전부터 그녀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걱정으로 지켜보던 남편이 터키행 비행기 표를 건네주며 여행을 권했단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여행을 하며 그녀는 무엇에 홀린 듯 그 나라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다고 했다, 이후 그곳에서 다른 인생을 살리라 무작정 이민을 결정하지만 그곳에서의 삶 또한 녹녹하지 않았다. 힘든 현실의 벽 앞에 무참하게 무너질 때마다 강인한 여자로 거듭나자는 주문을 외워야만 했단다. 자신에 대한 아픈 고백을 말하는 그녀에게서 왠지 모를 진실한 울림이 전해져 왔다. 고난을 겪으면서 삶을 잡아줄 튼튼한 동아줄을 얼마나 필요로 했을까가 느껴졌다. 클레오파트라의 생애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그녀처럼 강인하게 삶을 버티고 싶었을 그녀가 마음으로 이해되었다. 그런 열망이 있어 그녀가 그리도 빛이 나는구나 하고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런 그녀의 행복을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다.

여행을 통해 얻는 것은 많다. 삶의 여유를 갖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더 넓게는 사물에 대한 애정도 품게 된다. 더러는 넉넉한 마음으로 삶을 바라보는 통찰을 배우게도 되는 것이다.

 

 

산과 그에 대한 기억

 

김은희

 

‘까무룩’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의식이나 기억이 순간적으로 흐려지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설명한다. 글을 읽다 보면 가끔 보이는 단어다. 그가 그랬을 것이다. 어느 한순간 ‘까무룩’해지다가 뒤이어 평온한 기운을 느끼며 움켜쥐었던 손을 풀었으리라.

그를 처음 본 것은 한라산 산행에서였다. 눈이 많이 오는 한겨울의 한라산은 아름다운 경치를 쉽게 내어주지 않는가 보다. 앞을 봐도 옆을 봐도 나무들의 모습은 내리는 눈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위로 나 있는 등산로를 따라 하염없이 걸었던 기억만 남았다.

그는 훤칠한 키에 서글서글한 인상이 보기 좋았다. 구조대장이라는 직책은 산행에 익숙하지 못한 나에게 든든한 기둥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함께 등반하는 모든 이들을 안심하게 한다는 점에서 믿음을 주었다. 이것이 그와의 첫 번째 기억이다.

사계절이 주는 산행의 묘미와 행복했던 순간들을 가끔 생각하게 된다. 한라산 등반 이후 그 등산모임 회원들과 가보지 않았던 산들을 등반하였다. 모르던 이들과 가까워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다. 그것이 산행에서라면 친밀도는 더욱 빨라진다. 산행은 그런 매력이 있다. 자연과 사람이 일체가 되게 하는 마력을 갖고 있다. 서로 다른 사람들과의 조합은 때론 낯설면서도 신선한 기쁨으로 마음을 흥분케 한다. 산길을 걷다 이름 모를 꽃을 만나면 놀라운 마음으로 한참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러다, 순간 이유를 알 수 없는 희망이 가슴 한편에 살아나 놀라기도 하듯이,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은 밋밋하게 닫혀있던 마음에 물꼬를 열어 놓는다.

어느 여름날 북한산 산행에서의 놀라웠던 일은 회원들을 통해 두고두고 회자되는 이야깃거리다. 한여름의 산행은 걸친 옷에 세계지도를 그릴 만큼은 돼야 맛이 난다. 한참을 땀으로 몸을 적시다 보면 입에서 찾는 건 시원함이고 몸이 요구하는 건 질펀한 앉을 자리다. 그 욕구를 참고 견디다 마땅한 시점이 오면 누구라고 할 거 없이 그때가 되었음을 직감적으로 알게 된다. 각자 나무 둥치를 기둥 삼아 편편하게 자리를 고르고 앉을 자리를 확보하고 나면 곧이어 먹을거리를 찾는다. 여기저기 푯대처럼 서 있는 배낭들을 살펴보는데 키보다 더 큰 그의 배낭이 먼저 열렸다. 그곳에서 머리통만한 수박을 꺼내자 사람들의 입도 수박만큼 크게 벌어졌다. 수박을 반듯하게 잘라 내미는 손길에 모두는 ‘와’하는 함성을 연발하고 나는 그 상황을 차라리 마술이라고 생각했다. 감동은 이럴 때 하라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 듯 보이지만 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 그런 상황을 만났을 때 사람들은 감동한다.

눈 덮인 겨울 산행은 춥고 위험하기도 하지만 아름다움도 함께 선사한다. 겨울 산행의 백미는 산자락의 형태를 맑은 물속의 고기를 들여다보듯 세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산비탈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도 볼 수 있고 쉽게 볼 수 없다는 노루며 다람쥐도 운이 좋으면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유독 겨울 산만 고집하는 이들도 있다.

지금은 기억에서 사라져 이름도 알 수 없는 횡성의 눈 덮인 겨울 산이 생각난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걷는 산행은 보통 때보다 체력소모가 훨씬 크다. 힘에 부친 나머지 ‘내가 여기를 왜 왔을까’를 고민하는 것도 잠시, 고개를 들면 눈 덮인 하얀 세상이 모든 시름을 씻어주니 고단함도 잊게 된다. 한발 한발 걷다 보면 도저히 오를 수 없을 것 같았던 정상도 결국엔 눈앞으로 다가온다. 산행하는 모든 이들이 이 순간을 위해 힘을 안배하고 고통을 참아 내리라. 산행에서 제일로 꼽는 매력이 아마도 그 순간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정상에 올라 헛헛한 배를 채우는 일 또한 두말할 것도 없이 몇 배의 기쁨임을 아는 이들은 다 안다. 이미 여러 번의 경험이 있던 터라 우리는 익숙해진 기억을 더듬으며 그의 마술 가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보온병에서 싱싱한 굴을 꺼내는 순간 한동안 잊고 지냈던 감동이 모두의 입에서 쏟아졌다. 그는 마치 그런 순간을 위해 사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이들을 감동시키는 매력은 그만이 가진 특허 같은 것이었다. 흰떡에 굴과 매생이를 넣어 끓인 굴 매생이 떡국의 맛을 오래도록 잊을 수 없다.

그런 그가 에베레스트 등정 길에 올랐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늘 새로운 도전에 목말라 한다. 그가 그랬을 것이다. 그가 도전하려는 등정의 높이도 시간이 갈수록 새로운 도전의 욕구만큼 점점 높아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목표한 산 정상에 태극기를 꽂고 까무룩 하게 생명의 끈을 놓았다. 정상에서의 사고는 아마도 기록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으리라. 정상에서 산소마스크를 쓴 것과 안 쓴 것의 차이를 놓고도 기록의 순위는 달라진다고 한다. 그날 그는 정상에서 산소마스크 쓰는 일에 소홀했다고 들었다. 그러나 산소가 부족해지면 모든 기록이 무의미해진다는 걸 왜 그는 생각 못 했을까? 그 깊은 속내야 알 길이 없지만 애석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그렇게 많은 이들에게 기쁨을 주던 그가 지금은 이 세상에 없다. 누구나 한번은 떠나야 할 길이라지만 많은 이들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의 생명은 좀 더 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런 사람과 나누는 시간여행은 순간순간이 감동이라 추억도 남다른 기억으로 남기 때문이다. 등반을 하다보면 높고 험준해 보이는 산인 듯 보이지만 의외로 편안하게 오를 수 있는 산이 있다. 그럴 때면 남성성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것 같았던 그의 따뜻함을 발견할 때처럼 반갑다.

어떤 일에 도전을 멈추지 않는 이들이 있어 사회가 발전한다고 알고 있다. 사회가 인정하는 일등의 위치에 서 보려고 애쓰는 사람들도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밝은 미래를 위해 공헌하고 있음도 사실이다. 그러나 꼭 최고여야만 하는지 그런 이들에게 가끔은 묻고 싶어진다.

이제 그는 여기 없으나 그가 행하던 따뜻한 사랑은 그를 알던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꺼지지 않는 등불처럼 빛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