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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왕실 기도처인 계룡산 신원사

느림보 이방주 2017. 5. 17. 16:30

왕실 기도처인 계룡산 신원사

 


 

백제 마지막 태자인 부여융(扶餘隆615~682)이 멸망에 앞서 피신했던 암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계룡산 신원사 고왕암이다. 고왕암에 태자가 몸을 감추었던 굴(융피굴)을 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나라의 패망과 함께 만인의 선망인 왕자가 피신해야만 했던 비운의 현장을 직접 보고 싶었던 것이다. 고왕암 가는 길에 신원사를 들러 부처님께 먼저 삼배를 드려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지나는 길에 들렀던 신원사는 내게 남다른 인상을 심어주었다.

설이 지나고 추위가 풀리는 211일 점심을 먹고 출발했다. 차는 시내 동부우회도로, 세종시, 공주시 슬쩍 지나 계룡산갑사 진입로를 곁에 두고 1시간 조금 넘어 신원사 입구 매표소에 앞에 머리를 댔다. 매표소에서 70세는 넘었을 것 같은 어르신이 나와서 날보고 '경로'냐고 한다. 내가 경로로 보인단 말인가. 2천원을 냈다. 고왕암만 가면 문화재관람료를 받지 않는다는데 굳이 그런 말을 하기 싫었다. 에둘러서 고암암 가는 길을 물으니 처음이냐면서 아주 자세하고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그러면서 신원사도 들렀다 가라고 한다.

차를 타고 신원사 입구까지 가도 주차장이 없다. 불경하게도 주차장은 경내에 있었다. 경내를 살펴보는데 마음이 고왕암에 있었기에 큰 절은 오히려 건성건성 지나치게 된다. 그리고는 곧 후회한다. 이왕이면 자세히 조금 더 성의를 가지고 보는 것이 후에 다시 오지 않아도 되었던 교훈을 거듭 새김질한다.

경내는 다듬고 가꾼 흔적을 찾기 어렵다. 공사를 하는지 차가 드나들어 여기저기 허물어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무 도막이 뒹굴고, 낙엽과 비닐 조각이 날렸다. 구석에 쌓아놓은 눈에 먼지가 섞여 보기 흉했다. 참배객은 많다. 설 끝이라 부처님께 세배라도 드리려는 대중이 이렇게 많은데 마당에는 싸리비 지나간 무늬는 보이지 않는다. 행자들의 아름다운 수행 흔적인데 말이다.

대웅전에 들렀다. 참배객이 법당에 가득하다. 백팔배인지 삼천배인지 끝없는 절 공양을 올리는 신도들이 연신 들어오고 나간다. 이럴 때 스님 한 분이라도 오셔서 나지막하게 목탁소리라도 내주면 삼천 배 수행이 고행으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생각하기에 따라 처처불상 사사불공 處處佛像 事事佛供이라는데 스님의 염불을 바라 무엇 하겠는가. 내가 읊조리는 노년의 옹알이만으로도 고해의 강을 건너는 배가 되고, 법당 뒷산 새소리가 다 번뇌로부터 일깨우는 목탁소리라 여기면 되는 일이다. 일체유심조인데 게으른 염불이나 목탁소리만 못하겠는가 생각하니 원망하는 마음도 사라졌다.

가방과 목에 걸린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모자를 벗고 옷깃을 여미었다. 부처님을 우러러 삼배를 올렸다. 대웅전은 그리 크지 않다. 의자왕 때 창건하여 조선 태조 때 왕명에 의해 무학대사가 중창한 후 명성황후의 후원으로 보련화상이 중창했다고 한다. 후면에 소나무가 아름답고 멀리 계룡산의 봉우리가 내려다보며 대웅전을 지키고 있다. 법당을 크지는 않지만 주변의 산과 어울려 아름다웠다. 법당 앞에 오층석탑이 정면으로 세워져 있어 석가모니 부처님과 한 줄로 서있는 모습이다.

범종각 뒤에 고려시대의 지은 것으로 알려진 오층석탑을 돌아보았다. 처음에는 법당 앞에 있는 오층석탑이 보물인 줄 알았는데 정작 문화재는 범종각 뒤에 숨어 있었다. 봄이 되면 꽃이 피어 주변이 아름다울 수도 있겠지만 현재는 어쩐지 소외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주변에 아무런 시설도 없고 낙엽이 쌓인 속에 찾아오는 이도 없이 천년 이끼를 입은 채 그대로 서 있다.

생각에 이 절에서 중악단 외에 아름다운 전각으로 범종각을 들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범종각은 그리 오래된 건물 같지는 않았으나 아름다움으로 치면 중악단에 버금 갈 것이라 생각되었다.

중악단은 조선 태조대왕의 명으로 무학대사가 지어 왕실의 기도처로 내려오다가 폐사된 것을 고종 때 명성황후의 서원으로 재건되어 현재까지 내려온다고 한다. 신원사에서는 해마다 명성황후를 추모하는 천도재를 이곳에서 지낸다고 한다. 건물은 그 지난 세월만큼 고색창연하고 아름다웠다. 중악단에 참배하려다 산신을 위하는 느낌이 들어 들여다보기만 하고 그만 두었다. 묘향산에 상악단, 계룡산에 중악단, 지리산에 하악단이 있었는데 중악단만 남아 있다고 한다.

허물어진 채 그대로 있는 담장을 지나 눈 녹아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고왕암으로 올라간다.

 

 

 

 

위치 : 충남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8

대한불고 조게종 제 6교구 마곡사의 말사 신원사

창건 : 백제 의자왕 11(651) 고구려 보장왕의 국사 백제로 망명한 보덕화상이 창건

문화재 : 국보 299호 노사나불화

보물 제 1293호 중악당 건물

지방문화재 제 80호 대웅전 건물

지방문화재 제 315층 석탑

지방문화재 후불탱화 2

답사일 : 2016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