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과 서재/완보 칼럼

구진벼루에서 성왕의 비극과 대통령 박근혜의 탄핵

느림보 이방주 2017. 3. 11. 09:03

구진벼루의 비극

 

 

백제 26대 성왕이 옥천 군서면 구진벼루에서 신라 김유신의 할아버지인 김무력 장군의 매복군에게 포로가 되었다.

성왕은 아들 부여창(27대 위덕왕)이 신라에게 빼앗겼던 옥천 관산성을 탈환하고, 다시 김무력 장군의 공격으로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 부여창을 돕기 위해 사비에서 급히 말을 달려 관산성으로 가는 길이었다. 다만 50여 명 군사만 이끌고. 32년이나 왕위에 있으면서 한강 유역까지 회복한 백제 중흥의 성군이 왜 이런 어이없는 실수를 했는지 아직도 궁금하다. 그것은 바로 오만이다. 전시에 국왕이 이동하는데 어찌 50여 명 군사만으로 할 수 있었을까? 이 사실이 김무력의 정보망에 포착되었겠지. 아무리 성군이라도 한 순간의 실수로 미래의 백제의 역사 뿐 아니라 삼한의 역사가 뒤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왜 몰랐을까.

김무력의 매복군 중대장은 천민 출신 도도이다. 신라 국왕은 바로 성왕의 사위인 진흥왕이다. 성왕과 진흥왕은 삼한 통일의 미래로 놓고 경쟁적으로 국가를 경영하는 처지이다. 백제 백성들이 성왕에 존경과 신임은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김무력은 성왕이 진흥왕의 장인이라는 것을 염려했겠지. 그래서 미리 지시를 내렸겠지. 생포 즉시 참수하라고.

천민 출신 중대장 도도는 의기에 넘쳐 소리쳤다.

대왕이시여, 제 칼을 받으소서.”

아무리 포로가 되었지만 왕이 천민의 칼을 받을 수 없다.”

대왕이시여, 우리나라 국법에는 아무리 제왕이라도 약속을 어기면 천민의 칼이라도 받도록 되어 있나이다.”

성왕은 할 수 없다 생각했다. 이쯤해서 포기할 수밖에 없다. 저기 한 마장쯤 가면 아들 부여창의 군대가 있는데 거기서 죽어야 했다.

그래도 그 천한 칼에 죽을 수는 없다. 마지막 부탁이니 나의 이 보검으로 죽여 달라.”

대왕이시여, 그리하겠나이다. 칼을 주십시오.”

성왕은 칼을 풀어 도도에게 주었다.

도도는 칼을 받아 성왕에게 두 번 절하였다. 적국의 국왕에게 대한 마지막 경의의 표시였을 것이다.

대왕이시여, 편히 가십시오.”

그렇게 백제 중흥의 성군 성왕은 어이없게 생을 마감했고 아버지의 죽음을 전해 들은 부여창은 너무나 흥분하여 아무런 작전도 없이 김무력장군에게 덤비다가 불쌍한 29,600명의 군마가 백골산성에 피를 뿌리고 흙으로 돌아갔다. 신라 백제의 삼한통일 경쟁에서 백제의 최후를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이때부터 백제의 국운은 기울기 시작하여 백년 쯤 뒤에 백제의 역사도 땅에 묻히게 되었다. 만약에 성왕이 이때 어이없는 죽음을 당하지 않고 백제를 중흥하고 진흥왕과의 경쟁에서 승리하였다면 역사는 많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어제 말도 많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선고되었다. 대한민국 중흥의 정치가도 아니고 성군이라는 말도 너무나 아깝다. 아니 민족사를 나락으로 떨어뜨릴 만큼 무능한 대통령이었다. 그의 오만과 불통의 정치는 제 식구에게 칼을 들려주는 실수를 저질렀다.  President를 꼭 대통령이라고 번역해야 하나 의심이 생기게 하는 대통령이었다. 청와대를 구중궁궐로 생각한 대통령, 대통령을 ~~~~統領으로 착각한 대통령이었다. 그의 말두를 패러디하면 "참 나쁜 대통령, 참 나쁜 딸, 참 나쁜 여성'이라는 삼박자를 모두 갖추었다. 성왕에 비기자니 성왕을 아직도 존경하는 사비의 백성에게 죄송한 마음이다.

아무튼 우리는 그를 사저로 보내야하고, 그 후에도 여러 가지 법적 절차가 남아 있을 것이고, 그건 그가 지은 인因에 대한 과果이고 연緣일 것이다. 인과응보라는 말이다. 그 결과는 자신의 칼인 많은 주변 정치인, 법관, 자신을 지지해 준 많은 국민이 내린 칼을 받아야 할 순간이다. 그는 그가 저지른 범법에 대한 처벌을 당연히 받아야 한다. 그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먼 훗날 역사가 탄핵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모르지만 현재로 보면 그는 어차피 살아도 죽은 듯 살아야 하는 역사의 죄인이다.

우리 국민은 칼 대신 촛불을 들고, 태극기를 들어 그를 보내게 되었으니, 이제는 당시 도도가 신라로서는 적국이었던 백제의 국왕을 보내듯 점잖게 보내는 것이 한국인다운 아량이고 한국인다운 인정이 아닐까 싶다. 그의 형상을 만들어 거리로 끌고 다니거나, 나체를 그려 국회에 전시하거나, 포승줄에 묶인 그림을 그려 거리로 끌고 다니며 모욕해서 시원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법을 어긴 일에 대해 법에 따라 처벌하면 된다. 그의 탄핵에 연민의 마음을 줄 필요도 없지만 인간을 미워하고 증오할 것까지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성왕을 보내던 도도처럼 두 번 절까지 할 수는 없겠지만, 이제 국민 의식 수준의 변화로 인한 역사 발전의 과정으로 생각하면서 조용히 그를 보내주는 것이 잘못하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이루어낸 선진국 시민의 의식수준이라고 생각한다. 꼭 그리했으면 좋겠다. 이 사회의 지성인인 대권주자, 정당대표, 국회의원, 교수님들까지 나와서 만세를 부르고 환호를 올릴 역사적 사건은 아니라고 본다. 그것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생물학적으로는 살아 있어도 철학적으로는 죽은 목숨은 그를 더 이상 모독하는 것은 바로 자신을 모독하는 일이라 생각된다.


“President~統領이라고 착각한 불쌍한 사람이여, 사저로 편히 가십시오.”

      (2017. 3. 11.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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