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에는 뜻이 없고 잿밥에만 마음이 있다.’ 정작 일에는 정성을 들이지 않고, 잇속에만 마음을 두는 경우를 비판하는 속담이다. ‘나무석가모니불’이라 염해야 할 것을 시주만 흘끔거리다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도로아미타불’이나 ‘나무잿밥불’이라 헛소리를 외기 십상이다. 본질에 뜻을 두라는 촌철살인이다.
본질에 뜻을 두어야 할 것 중에 중요한 하나가 교육이다. 교육은 삼합(三合)이 맞아야 한다. 주체인 학교와 교원, 수용자인 학생과 학부모, 또 내용과 정책이다. 이 중에 누구라도 본질에 어긋나면 교육은 곧은 걸음으로 제갈 길을 갈 수 없다.
교육의 주체나 정책 입안자들이 잿밥을 곁눈질하면 교육은 본분을 잃게 된다. 학부모나 학생의 요구가 본질에 벗어나도 교육은 곧은 걸음을 걷기 어렵다. 교육의 본질은 무엇인가? 대답은 간단하다. 학생을 바르게 가르치는 일이다. 곧 격물(格物)하여 치지(致知)하도록 안내하는 것이다. 사물의 원리를 바르게 가르치고, 그것으로 진실을 밝히고, 진실을 통하여 자신을 올곧게 한 다음, 사회에 자아를 실현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영원불변의 진리이다.
교육의 성과는 학생에게 돌아가야 한다. 학생을 바람직한 인간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바로 교육 주체가 해야 할 바른 염불이다. 교사나 학교가 자신에게 돌아올 과실을 기대하면서 교육에 임한다면 그것은 ‘나무잿밥불’을 왼 것이나 다름없다. 교육 정책이 잿밥을 제시하면서 교육의 성과를 올릴 것을 부추긴다면 그것도 역시 ‘나무잿밥불‘이다.
초중고등학교에 일제히 실시하던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를 금년부터 초등학교는 실시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게 중요한 평가가 사라졌는데 반갑기 이를 데 없는 것은 웬일일까?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는 학생을 기초학력 미달, 기초학력, 보통학력, 우수학력으로 네 단계로 구분하여 교육 정책 입안의 바탕으로 삼는 것이 본래 목표이다. 반드시 필요한 제도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제도가 정책 입안 자료로 쓰이기 전에 교육기관을 평가 도구로 먼저 사용되는데 문제가 있다.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는 잘못된 제도가 아니라, 그것을 잘못 활용했기에 구성원들의 반대에 부딪치는 것이다.
교육부에서는 교육의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성적이 우수한 시도에 예산을 추가 배정한다. 이른바 떡밥을 던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도 교육청은 지역교육청을, 지역교육청은 학교를 닦달한다. 학교는 당연히 6월에 실시하는 평가에 대비하여 3월부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기초학력미달로 예상되는 학생을 따로 모아 특별 지도를 한다. 교사도 괴롭고 아이들도 자존심 상한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강화훈련의 결과이지 학력 향상의 결과라고 할 수 없다. 평가를 왜곡하는 것이다. 이런 결과로 불이익을 받는 시도는 어느 나라 학생인가? 또 이런 결과를 가지고 국가의 교육정책을 입안한다면 삐딱 걸음으로 곁길로 빠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지난해 충북은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에서 4년 연속 최우수 성적을 달성해 냈다. 자랑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학교마다 내걸린 ‘경축’ 현수막을 볼 때마다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것은 무슨 까닭일까? 아직도 걸려 있는 일부 학교의 때 묻은 현수막은 보는 사람을 민망하게 한다. 올해는 5년 연속 최우수를 달성해야 하는 의무가 생겼다. 교육 행정가들은 "현실이니 어쩌느냐"고 구차한 변명을 한다. 현실이 무엇인가? 그것은 교육부의 추가 예산일 것이다. ‘나무잿밥불’이다.
교육은 국가의 백년대계라는 말은 그냥 공염불이 되어 버렸다. 교육은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교육 행정가들은 현실에 말라붙은 집착을 버리고 미래를 보아야 한다. 잿밥을 떠나 진실하고 정성을 다한 염불만이 이 나라 아이들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염불에는 뜻이 없고 잿밥에만 마음이 있다." 정작 일에는 정성을 들이지 않고, 잇속에만 마음을 두는 경우를 비판하는 속담이다. "나무석가모니불"이라 염해야 할 것을 시주만 흘끔거리다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도로아미타불"이나 "나무잿밥불"이라 헛소리를 외기 십상이다. 본질에 뜻을 두라는 촌철살인이다.
본질에 뜻을 두어야 할 것 중에 중요한 하나가 교육이다. 교육은 삼합(三合)이 맞아야 한다. 주체인 학교와 교원, 수용자인 학생과 학부모, 또 내용과 정책이다. 이 중에 누구라도 본질에 어긋나면 교육은 곧은 걸음으로 제갈 길을 갈 수 없다.
교육의 주체나 정책 입안자들이 잿밥을 곁눈질하면 교육은 본분을 잃게 된다. 학부모나 학생의 요구가 본질에 벗어나도 교육은 곧은 걸음을 걷기 어렵다. 교육의 본질은 무엇인가? 대답은 간단하다. 학생을 바르게 가르치는 일이다. 곧 격물(格物)하여 치지(致知)하도록 안내하는 것이다. 사물의 원리를 바르게 가르치고, 그것으로 진실을 밝히고, 진실을 통하여 자신을 올곧게 한 다음, 사회에 자아를 실현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영원불변의 진리이다.
교육의 성과는 학생에게 돌아가야 한다. 학생을 바람직한 인간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바로 교육 주체가 해야 할 바른 염불이다. 교사나 학교가 자신에게 돌아올 과실을 기대하면서 교육에 임한다면 그것은 "나무잿밥불"을 왼 것이나 다름없다. 교육 정책이 잿밥을 제시하면서 교육의 성과를 올릴 것을 부추긴다면 그것도 역시 "나무잿밥불"이다.
초중고등학교에 일제히 실시하던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를 금년부터 초등학교는 실시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게 중요한 평가가 사라졌는데 반갑기 이를 데 없는 것은 웬일일까?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는 학생을 기초학력 미달, 기초학력, 보통학력, 우수학력으로 네 단계로 구분하여 교육 정책 입안의 바탕으로 삼는 것이 본래 목표이다. 반드시 필요한 제도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제도가 정책 입안 자료로 쓰이기 전에 교육기관을 평가 도구로 먼저 사용되는데 문제가 있다.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는 잘못된 제도가 아니라, 그것을 잘못 활용했기에 구성원들의 반대에 부딪치는 것이다.
교육부에서는 교육의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성적이 우수한 시도에 예산을 추가 배정한다. 이른바 떡밥을 던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도 교육청은 지역교육청을, 지역교육청은 학교를 닦달한다. 학교는 당연히 6월에 실시하는 평가에 대비하여 3월부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기초학력미달로 예상되는 학생을 따로 모아 특별 지도를 한다. 교사도 괴롭고 아이들도 자존심 상한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강화훈련의 결과이지 학력 향상의 결과라고 할 수 없다. 평가를 왜곡하는 것이다. 이런 결과로 불이익을 받는 시도는 어느 나라 학생인가? 또 이런 결과를 가지고 국가의 교육정책을 입안한다면 삐딱 걸음으로 곁길로 빠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지난해 충북은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에서 4년 연속 최우수 성적을 달성해 냈다. 자랑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학교마다 내걸린 "경축" 현수막을 볼 때마다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것은 무슨 까닭일까? 아직도 걸려 있는 일부 학교의 때 묻은 현수막은 보는 사람을 민망하게 한다. 올해는 5년 연속 최우수를 달성해야 하는 의무가 생겼다. 교육 행정가들은 "현실이니 어쩌느냐"고 구차한 변명을 한다. 현실이 무엇인가? 그것은 교육부의 추가 예산일 것이다. "나무잿밥불"이다.
교육은 국가의 백년대계라는 말은 그냥 공염불이 되어 버렸다. 교육은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교육 행정가들은 현실에 말라붙은 집착을 버리고 미래를 보아야 한다. 잿밥을 떠나 진실하고 정성을 다한 염불만이 이 나라 아이들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2013.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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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교육 평가의 염불과 잿밥
[시선] 이방주 수필가
데스크승인 2013.05.20 지면보기 | 20면
충청투데이 | cctoday@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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