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인도 성지 순례 10일차 12월14일 자이푸르 → 델리
▣ 찾아간 곳 : 꾸뚭미나르
델리
연방직할주는 올드델리로 널리 알려져 있는 델리와, 남쪽에 있는 뉴델리(1912년 이후 인도의 수도), 가까운 농촌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올드델리가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경제 중심지인 반면에 뉴델리에는 행정관청이 집중되어 있다. 직할주 전체가 중북부 인도로 가는 화물수송 중심지 역할을 한다.
델리는 여러 제국 및 왕조시대를 거치면서 계속 수도로 있던 곳이다. 여러 번 터를 옮기기는 했지만 이곳들은 모두 델리 트라이앵글(Delhi triangle)이라고 부르는 지역 안에 속해 있다. 갠지스 강 지류인 야무나 강 서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연방직할주는 우타르프라데시 주, 하리아나 주(서쪽)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델리 서쪽에는 델리 능선이라고 하는 아라발리 산맥 북쪽 연장선이 뻗어 있다. 이 도시와 능선은 히말라야 산맥 남쪽편 약 160㎞ 되는 곳에 있다. 매우 건조한 기후로, 여름은 아주 덥고 겨울은 춥다. 여름이 지난 다음에는 몬순 계절풍의 영향을 받는다.
델리에서는 공무원이 최고의 직업이다. 경제적으로 가장 중요한 부문은 서비스업이며 2번째가 공업, 그 다음이 상업이다. 현대에 와서 델리는 전기제품·공업기술제품·자동차부품·전자제품을 생산하는 중소규모 제조산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수공예와 의복은 물론 상아공예·그림·놋쇠기구·구리제품 같은 전통 수공예품도 여전히 중요한 몫을 하고 있다. 델리는 여러 세기 동안 인도 북부의 무역·상업중심지였으며 인도 준비은행 본부이자 증권거래의 중심지이다. 수송, 저장, 도매·소매 무역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올드델리의 나선형 도로망과 뉴델리의 질서정연한 대각선 교통망은 큰 대조를 이룬다. 뉴델리 인구밀도의 2배(몇몇 지역은 5배)나 되는 조밀한 인구를 가진 올드델리에 비해 북쪽에 있는 뉴델리는 부유층 거주지역 특유의 탁트이고 조용한 느낌을 준다. 올드델리의 경우 다른 주와 이웃한 여러 나라에서 이주자들이 들어와 사회구조 전반이 더욱 이질화되었지만 아직도 일부 지역에는 '이웃감정'(mohalla)이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이 눈길을 끈다. 뉴델리에서 가장 두드러진 곳은 동서방향으로 축을 이루는 중앙 비스타 공원이다. 공원 양 옆으로는 정부 건물과 박물관, 연구소가 늘어섰으며 큰 길을 중심으로 주요 쇼핑센터가 있는 북쪽 구역과 거주지역인 남쪽 구역이 나누어진다.
델리에서 눈길을 끄는 유적들은 거의 인도 역사 전시기에 걸쳐 만들어진 것으로 인도 이슬람 양식이 두드러진다. 파슈툰 양식으로 정교하게 만든 쿠트브 미나르, 쿠와트울 이슬람 사원이 그 예이다. 붉은 요새와 자미마스지드는 무굴 건축의 뛰어난 본보기이며 의사당은 영국이 통치하던 시대에 세운 건축물이다. 고등교육기관으로는 델리대학교(1922년), 자와하를랄네루대학교, 농업·기술·의학 연구소, 예술 아카데미가 있다.
적당한 대중교통 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은 델리의 도로는 우마차·자전거·자동차·트럭이 뒤섞여 상당히 혼잡한 편이다. 지리적인 위치 때문에 인도 북서쪽에서 동부 평원에 이르는 모든 육로, 곧 5개의 국도와 철도선 몇 개가 연결되는 교차점 역할을 한다.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과 그 가까이 있는 팔람 국내선 공항은 항공교통 중심지로서 큰 몫을 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대통령궁
델리 주변 지도
5시에 일어났다.
사실은 4시쯤 잠에서 깨어났는데 생각이 참 많았다. 인도 문화와 우리 문화에 대한 같고 다른 점도 있을 수 있고, 우리보다 우수한 점도 있다. 이른바 문화상대성을 인정하는 측면에서 서로를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나를 포함한 한국인들은 외국 여행을 참 좋아한다. 참으로 좋은 일이다. 그런데 섭섭한 것은 우리 문화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외국의 유적을 보며 감탄하고 우리 문화에 대해 자괴심을 갖는다. 우리 문화를 충분히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을 먼저 왜소하게 생각한다. 이것은 우리가 아이들에게 역사를 가르칠 때 자부심을 갖도록 길러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떤 분이 영국 버킹검궁의 근위병 근무교대식을 보고 감탄하면서 '역시 영국은 다르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나는 그 분에게 물었다. 종묘제례를 보았느냐고. 물론 보지 못했다. 1년에 두 번씩이나 거행되는 종묘제례도 못보고 동구릉에 가면 볼 수 있는 능제향도 보지 못하고 어떻게 무형문화재에 대해 자괴감을 갖는지 모른다. 그까짓 영국 근무교대식을 보면서 쪼그라드는 지식인이 한심하다. 기성세대들도 우리문화를 돌아보는데 지나칠 정도로 인색한 점도 반성해야 할 것이다. 오늘은 아침 식사를 하고 델리로 간다. 인도의 역사, 문화, 경제, 정치의 중심지라는 의미가 있다.
오전 8시에 호텔 peppermint 를 떠나 델리로 출발한다. 역사의 도시 자이푸르는 영원히 이별이다. 아니 언젠가 다시 온다면 그 때는 좀더 깨끗해져서 만났으면 좋겠다. 11시도 안됐는데 고속도로의 gangaurmideay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렇게 일찍 점심을 먹은 이유는 고속도로에 점심을 먹을 만한 만만한 휴게소가 없기 때문이란다. 점심은 호텔식만은 못해도 그냥 먹을 만했다. 점심시간이 좀 길었고 여성 회원들이 휴게소 쇼핑센터에서 물건을 사느라 시간이 많이 갔다.
그런데 츨발하자마자 차가 멈추고 가지 않는다. 알고 보니 버스가 주경을 넘서설 때 운전 면허 검사를 하면서 도로세를 내야 하는데 그것이 해결이 안되어 갈 수가 없다고 한다. 참 기막히다. 기사가 시동을 끄고 밖에 나가 있으니 차 안은 찜통이다. 여성 회원들은 휴게소에서 구입한 물건에 대해 서로 자랑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인도는 우리랑 참 많이 다르다. 공식적으로 내는 요금이라면 이런 일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비공식적인 급행료가 필요한가 보다. 알아보니 사무실에 돈을 받는데 카드도 안되고 반드시 2000루피짜리만 받는단다. 버스는 부근 주유소에 세워두었다가 갓길을 역주행하여 가다가 어떤 오토바이를 만났다. 환전상이다. 해결되었다. 환전상이2000루피 짜리를 가져온 것이다. 약 1시간 소요되었다.
차는 고속도로를 달려와 델리에 왔다. 5시가 다 되었다. 시내 거의 들어 와서도 두 시간이나 지난 것 같다. 운전기사나 관광 가이드나 미련하기 짝이 없다. 잔시에서 자이푸르 때도 그렇고 5시간을 쉬지않고 운전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하긴 고속도로 변에 만만한 휴게소도 없다. 차가 밀려 쉴 수도 없다. 트럭 기사들은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도로변에 오줌을 갈겨댄다. 정 급하면 그렇게 하라는데 여성들은 어쩌란 말인가? 이게 인도라는 나라이다. 참 마음 편하게 사는 나라이다.
꾸뚭 미나르
이슬람 건축이 남긴 최초의 유산 중 하나인 쿠툽 미나르는 마구 뻗어 있는 쿠툽 지역의 한 가운데에 홀로 우뚝 서 있다. 이 지역 건축물들 중에서는 가장 보존 상태가 좋은데, 아마도 아프가니스탄의 잠(Jam) 미나렛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쿠툽 미나르를 세운 사람은 델리 최초의 무슬림 군주인 쿠툽-우드-딘 아이박으로 추정되나, 사실 그의 통치 기간에는 1층만 완성되었을 뿐이다. 그의 후계자인 일투미쉬, 그 뒤를 이은 피로즈 샤 투글라크가 그 위로 층을 계속 올리도록 했고, 그 결과 72.5미터라는 놀랄 만한 높이의 세계 최고(最高) 벽돌탑이 탄생했다. 탑의 직경은 기단부는 14.3미터, 위로 올라가면서 점점 좁아져 꼭대기에서는 3.5미터밖에 되지 않는다. 각각의 층들은 다면체의 기둥형으로 복잡한 조각과 비문들이 표면을 덮고 있으며, 여러 왕조에 걸친 이슬람 스타일의 세렴됨과 진화하는 기술을 보여준다. 모두 다섯 개의 층에는 각각 까치발로 받친 발코니가 달려 있다.
이 탑의 목적에 대해서는 수많은 가설이 있어 왔다. 전통적으로 모든 모스크가 그렇듯 쿠툽 미나르 역시 기도 시간을 알리기 위한 미나렛이 있기는 하지만, 그리고 실제로도 쿠우왓 울 이슬람 모스크 바로 옆에 위치하기는 하지만, 그 규모로 보아서는 아무래도 아프간의 술탄 구르의 무하마드가 델리 최후의 힌두 왕조인 차우한을 무너뜨린 것을 기념하기 위한 승전탑이라는 설명 쪽에 무게감이 실린다. 주변의 다른 건물들 역시 스무 개가 넘는 브라만 사원을 파괴한 뒤 약탈해 온 자재로 지었다고 전해진다. '쿠툽'이라는 이름은 '축'을 의미하며, 이슬람 세계의 새로운 축을 자임하는 의미이다. 이 탑의 역사적 계보야 어떻든지 간에, 쿠툽 미나르는 그 오랜 세월을 훌륭히 이겨내고 델리 남쪽의 스카이라인을 책임지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지금은 세계문화유산인 구뚭미나르로 가는 중이다. 차는 계속 밀린다. 5시도 안됐는데 퇴근 시간이란다.
구뚭미나르는 작은 공원에 탑만 하나 우뚝 서 있을 줄 알았는데 부속건물이 많다. 중앙에 꾸뚭 미나르가 붉은 빛으로 우뚝 서 있다. 탑은 매우 웅장하다. 붉은색이 저녁 놀이 비쳐 더 아름답게 보인다. 가까이 가서 보니 붉은 사암을 벽돌 모양 정교하게 다듬어서 쌓았다. 아랫부분은 14m가 넘는다고 하고 한 층 올라갈 때마다 조금씩 좁아져서 72m 꼭대기는 둘레가 3.5m정도밖에 안된다고 한다. 이 탑은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서 세웠다고 전해진다. 아랍 이슬람 교도들이 힌두교 국가를 점령한 것을 기념했을 것이다. 주변에 부속 건물이 많다. 그러나 지진에 무너졌는지 전쟁에 무너졌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는 신라시대 전탑이 있으나 이렇게 규모가 큰 탑은 전해지지 않는다. 문닫을 시간이 다가 오자 사람들이 우르르 밖으로 나가기 시작한다. 우리는 5시 50분 나왔다. 시가지는 매우 복잡하다.
꾸뚭미나르
벽돌탑위 위용
탑을 배경으로
진입로에서
무너진 문
벽면 조각
회랑에서
6시 50에 저녁 식사하기 위해 중국인 식당에 들어 왔다.
식사하러 온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 군만두, 깐풍기, 양파볶음, 유부볶음, 미반, 국수를 그럭저럭 먹었다. 마지막으로 고추장에 미반을 비벼 입가심을 했다. 칼칼하다.
8시 저녁식사 끝내고 호텔로 이동했다. 시내를 한 시간이나 꾸불꾸불 복잡한 길을 달려 9시가 다 되어 Golden Tulip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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