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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인도 성지 순례 9일차 12월13일 자이푸르

느림보 이방주 2016. 12. 14. 00:44

네팔 인도 성지 순례 9일차 12월13일 자이푸르

 

▣ 찾아간 곳 : 아바네리 계단식 우물,  바람의 궁전 하와마할, 암베르 성, 

                  잔타르만타르 천문대, 나하르가르포트 일몰 감상


자이푸르의 상징 바람의 궁전 하와마할


자이푸르(Jaipur)
인도 북서부 라자스탄 주의 주도. 인구 350만 정도,  남쪽을 제외하고 모두 구릉으로 둘러싸여 있다. 성벽 도시로서 12세기 라지푸트 일족이 세운 자이푸르 공국의 암베르를 대신할 수도로 1727년 사와이 자이 싱 마하라자에 의해 세워졌다. 아름다운 도시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이곳은 곧은 선형으로 설계한 것이 독특하며, 건물들이 주로 장밋빛을 띠고 있어 '연분홍 도시'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요 도로·철도·항공 노선의 교차점이며, 상거래 중심지이다. 기계공업과 금속세공, 수직기를 이용한 직조, 양조 등과 유리·양말류·메리야스류·양탄자·담요·신발·약품의 제조 등도 이루어지고 있다. 유명한 미술공예로 돌·대리석·상아의 조각품 제조와 보석 제조, 에나멜, 금속세공, 날염천의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주요 건축물로는 18세기 야외 관측소(잔타르만타르)인 도시 궁전, 하와마할(바람의 홀), 람바그 궁전, 나하르가르 성채(호랑이 성채) 등이 있다. 그밖에 박물관·도서관과 1947년에 세워진 라자스탄대학교도 있다.
자이푸르 시는 동쪽과 남쪽으로는 비옥한 충적평야로, 북쪽과 서쪽으로는 구릉지대와 사막으로 둘러싸여 있다. 주요작물로 바지라(아프리카 기장)·보리·병아리콩을 비롯한 콩류·목화 등을 재배하며, 철광석·베릴륨·운모·장석·대리석·구리·석류석 등의 광물을 채굴하고 있다.


   자이푸르 부근의 지도


오전 7시 아바네리 계단식 우물 관람 일정이 있어 5시에 기상했다.

실컷 잤다. 서둘러 몸을 씻고 옷을 갈아 입은 다음 6시에 식당으로 갔다. 감자 작은 것 두 쪽, 우유, 샌드위치 한 쪽. 커피 한 잔으로 식사를 마쳤다. 아니 아내가 오물렛을 갖다 줘서 반 쪽을 더 먹었다. 음식이 다 맛있다. 그래도 쌀밥에 된장찌개를 먹는 것에 비하면 이건 간식 수준이다.

 

7시에 아바네리 계단식 우물 관광을 위해 출발했다.

여기는 어제 일정인데 너무 늦어서 앞까지 갔다가 도로 왔었다. 그래서 오늘 가기로 했는데 기사는 안 간다, 가이드는 가자 하다 출발 시간이 늦었다. 선택관광이라 가이드는 꼭 가고 싶었을 것이다. 거리도 먼데 이왕 가기로 했으면 빨리 서둘렀어야 한다. 우리 일행은 추가 비용이 나가기 때문에 "우물"을 보러 3시간을 보낼 필요가 있나 하고 모두 취소를 바랐는데 계약이 이미 이루어져서 말하지 않았다.

 

어젯밤 어두워서 보지 못한 시가지를 보면서 간다. 옛 건물은 있는 그대로 보존이 안 되었고, 외곽 자동차 전용도로는 깨끗한데 시내 뒷골목은 쓰레기 천국이다. 여긴 소나 개 외에 돼지도 거리를 활보한다. 돼지는 꼭 우리나라 멧돼지처럼 무섭게 생겼는데도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옆을 지나다닌다. 동물을 이렇게 자유로이 두는 것은 힌두교 뿐 아니라 자이나교의 생각이 더 강하다고 한다. 자이나교는 사람과 동물을 동일시하고 같은 생명으로 여긴다고 한다. 그래서 수간하는 조각을 사원에 새겨 넣었는지도 모른다.

자이푸르는 자이라는 왕조의 수도이고 아직도 최후의 왕과 왕족이 자이푸르에 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조금 색다른 면이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자이나교 색채가 드러난다든지 하는 것이다.

카스트 제도를 법으로 금지했다고 해도 그 제도 자체의 의식은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면에서 혈통에 의한 카스트의 4계급이 빈부에 의해서 재편성된 것은 아닐까 한다. 차를 보면 자전거, 오토바이, 툭툭이, 승용차를 타는 사람 모습이 다르다. 땀을 뻘뻘 흘리며 릭샤(인력거)의 페달을 밟는 노인도 있고, 그 릭샤를 타고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는 젊은이가 함께 사는 것으로 보아 카스트가 살아 있는 곳이 이 나라이다. 버스도 이곳 시내버스와 우리가 탄 관광차 승객의 행색이 차이 난다. 아니 시내버스도 색깔에 따라 구분된다고 한다. 힌두교에서 자이나교와 불교가 개혁적으로 재창립되었다면 자비를 베풀고 중생 제도를 목적으로 하는 불교로 뭉쳤어야 한다.

 

아바네리계단식 우물

찬드 바오리(힌디어: चाँद बावड़ी, 영어: Chand Baori)는 인도 라자스탄 주 자이푸르에 가까운 아바네리에 있는 거대한 계단 우물이다. 이 우물은 하샤트 마타 사원의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도에서 가장 깊고 큰 계단 우물의 하나이다. 9세기에 지어졌으며, 계단의 수는 3500, 층수는 13층으로 깊이는 100피트에 도달한다. 이 곳은 영화의 촬영지에도 자주 사용되고 있어,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등 여러 영화에서 볼 수 있다.



아바네리 계단식 우물은 아직 멀었나? 차가 속력을 늦추지 않는다.

9시가 조금 지나서 아바네리 계단식 우물에 도착했다. 주차장에서 오른쪽으로 사원이 보였다. 처음에는 그것이 계단식 우물인가 했는데 안으로 들어가니 마치 로마의 콜로세움처럼 움푹 파인 곳에 많은 계단이 있는 것이 보였다. 계단이 3500개라니 과연 계단의 궁전이다. 작은 시바 신전에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흘끔거리는 눈길을 뒤로 하고 오른쪽으로 돌아가니 지하 궁전이 보였다. 그리고 맨 아래 물이 괴어 있었다. 이것이 계단 아래 우물인가 보다. 차라리 지하 궁전이라 이름 짓는 것이 어땠을까? 우물은 장방형으로 되어 있는데 4개의 카스트에 따라 사용하는 면이 다르다고 한다. 우물까지 내려가는 계단이 특별히 아름다웠다. 그리고 계단 아래 궁궐 같은 많은 구조물들이 있어 내려가 보고 싶었는데 내려가는 것은 금지되었다고 한다. 과거에는 내려가서 안에도 들어가 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쉬웠다. 지하 궁전에서 길 건너의 하샤트마타 사원으로 통할 수 있었다고 하니 신기한 일이다.


 여기저기 무너진 건물의 자재들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었다. 하나하나가 다 보물이었다. 돌 벽돌에는 연꽃 문양, 덩굴 모양 외에도 카주라호 사원들에서 본 성애의 모습도 있었다.

하샤트마타 사원으로 건너 갔다. 무너진 건물은 다행히 본전의 돔만은 유지되고 있었다. 거기에 노랑색 가사를 걸친 노인이 도인처럼 앉아 있었다. 사원 주변에도 무너진 돌더미가 여기저기 널려 있다.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하기 위해 조사를 끝냈다고 한다. 무너지긴 했어도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살아있는 사당이다.

아바네리 계단식 우물은 찬드바오리라고 한다. 이곳을 우물이라고 이름을 붙여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하여 그냥 넘어 갔으면 했는데 오기를 참 잘 했다. 다만 자이푸르에서 거리가 멀어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지만 이번에 안왔다면 30불을 주고 어떻게 다시 올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다른 궁궐에 비해 특이한 점을 볼 수 있었으니 정말 잘했다. 

 

우리가 묵은 페퍼민트 호텔

핑크시티

핑크시티

유채꽃이 한창인 자이푸르의 들녘

계단의 우물-수많은 계단

신전

저 아래 우물이 보이고 궁궐의 모습도 보인다

옛날 있던 건물의 잔재들을 전시하듯 보관하고 있다.

신전으로 가는 길

건물 외벽이었을 것으로 보이는 조각품들

사원 입구


사원의 문양 -연꽃

외벽 조각-풍만한 여성의 호위가 돋보인다

여성의 호위를 받는 신

널려있는 건물의 자재들 -안타까운 일이다.

남아 있는 사원의 돔

이슬람 소년의 마술


10 시에 아바네리 계단식 우물에서 잔타르만타르 천문대로 이동한다.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이때 한 이슬람 어린이가 버스에 들어와 마술을 보여 주었다.아홉 살이라는데 아주 영리해 보였다. 1달러를 주었다. 화장실에서 휴지 한장을 건네고 1달러를 요구하는 어른보다 훨씬 건실해 보였다.

 

12시까지 다시 호텔에 도착하여 점심 식사를 먼저 하고 잔타르만타르 천문대로 가기로 했다. 길이 많이 막히고 복잡하다.

엘바르트 박물관을 지났다. 영국 식민지일 때 세운 것이라 한다. 들어가지 않았다. 법원 앞이라는데 여기도 교통은 복잡하다. 까만 양복 입은 사람이 눈에 띠는데 이들은 모두 법원 직원이라 한다.  인도에서는 공무원이 최상의 직업이라고 하고  그 중에도 법원 직원을 가장 선호한다고 한다.  점심은 간단히 먹었다. 과일을 위주로 식사했다.


12시 30분 출발하기로 했는데 아무리 서둘러도 오후 1시가 넘었다.

바람의 궁전 하와마할로 간다. 그런데 교통이 너무 복잡하여 주차할 수 없어 차안에서 내다 보았다.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다. 내려서 만져보고 자세히 들여다 본 것만 못하다. 그러나 차 안에서 봐도 상당히 아름다은 건물이다. 하와마할이 있는 이곳은 핑크시티라 하여 모든 건물을 핑크빛으로 색칠했다. 마치 하와마할의 모형을 본 떠 만들었다. 핑크시티 큰길 가에는 똑같은 모양의 가게가 있다. 모두가 전세라고 한다. 약 2500개 정도 된는데 고유번호를 부여해서 관리한다고 한다

 

잔타르만타르 천문대

자이푸르(Jaipur)의 잔타르 만타르는 18세기 초에 세운 천문대 유적이다. 20여 개로 구성된 주요 관측기구가 땅에 고정되어 있다. 잔타르 만타르는 대개 고유한 특성을 지닌 유명한 관측기구 가운데 대표적인 석조 건축물이다. 눈으로 천체를 관찰할 수 있게 설계한 잔타르 만타르는 건축방식과 관측기구를 재현하는 데 몇 가지 혁신을 이룩하였다. 이는 인도 역사에 길이 남을 천문대 가운데 가장 중요한 종합체이자 보존이 가장 잘된 유산이다. 잔타르 만타르는 무굴 제국 말기에 학문을 사랑한 군주가 있던 궁정에서 보유한 천문학 기술과 우주론의 개념을 잘 보여준다.

자이푸르의 잔타르 만타르 천문대는 18세기 초반 인도 땅에 세워진 기념비적 시설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보존이 잘되어 있다. 어떤 기구는 일찍이 설립된 천문대 가운데 가장 큰 것도 있다. 잔타르 만타르 천문대는 많은 문명에서 받아들인 프톨레마이오스(Ptolemaic)의 우주천동설을 천문학 전통으로 따른다. 잔타르 만타르 천문대는 이 관찰 천문학에 따라 지이(Zij) 천문도 완성에 공헌하였다. 이는 천문학 전통을 놓고 보면 늦어졌지만 기념할 만한 일이다.

마하라자 자이싱 2(Jai Singh II)가 추진하여 설립한 자이푸르의 잔타르 만타르 천문대는 다양한 과학 문명을 받아들임으로써 당시 널리 퍼진 사회의 관행을 우주론과 연결할 수 있었다. 잔타르 만타르 천문대는 도시 규모, 시간 통제, 천문학을 바탕으로 한 합리적인 예측 능력을 상징하였다. 또 정치, 과학, 종교의 필요성을 조화롭게 구현한 대표적 사례이기도 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오후 1시 30 분 천문대로 갔다.

천문대로 가는 길에 핑크시티를 둘러보았다. 이곳은 영국 식민지 시절에 영국황태자를 환영하기 위해서 총독이 온 도시에 핑크빛을 칠한 건물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해방이 되고 나서 그 건물을 유지하지 못하고 여기 저기 무너지고 지저분해졌다. 똑 같은 모양의 가게를 만들어서 번호를 붙인 다음 전세를 주었는데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 거리는 지저분하고 짐승들이 돌아다닌다. 소들이 쓰레기 더미를 뒤져 먹이를 찾는다.


천문대는 해시계 별자리 관찰대 등 여러가지 천문 관찰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 놓았다. 해시계는 초까지 측정할 수 있다니 그 정교함에 놀랄 만하다. 그 옛날에 이런 과학적인 기구를 고안해 낸 것은 기막힌 일이다. 그러나 18세기에 만든 이 천문대에 비해 돌이켜보면 우리나라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15세기인 조선 세종 때 이미  해시계는 들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작고 정교했으며, 혼천의, 물시계 등은 매우 과학적이고 오늘의 과학연구에도 활용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일이다. 고구려 시기에 만든 별자리지도는 더욱 불가사의한 일이다. 우리는 왜 우리 것을 드러내지 못하는지 알 수가 없다. 우리 해시계에 비해 이곳 해시계는 건축물이라고 할 만큼 크다. 시간을 보려면 여기가지 와야 하니 과연 실용성이 있는가 의문스럽다. 우리의 해시게는 작고 견고하기 때문에 대량 생산도 가능했다.


별자리 관측대도 우리는 신라 때 이미 첨성대를 만들어서 별자를 보았으며, 고구려시대에 작성한 별자리표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으며 천문연구에 자료가 되고 있다. 15세기 장영실도 별차리를 관측하여 하늘의 지도를 완성하였다.

이에 앞서 여성 회원들의 문신 체험을 했다. 길거리에서 모녀로 보이는 여성 둘이서 팔에 그림을 그려주고 1인당 1달러씩 받았다. 둘이서 여섯 명 그림을 그리는데 10분도 안 걸린다.


혼천의

일명 혼의()·혼의기()·선기옥형()이라고도 한다. 고대 중국의 우주관인 혼천설()에 기초를 두어 서기전 2세기경에 처음 만들어졌다.

우리 나라에서는 확실한 자료는 없으나, 삼국시대 후기에서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만들어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기록에 나타난 바로는 1432년(세종 14) 예문관제학 정인지(), 대제학 정초() 등이 왕명을 받아 고전을 조사하고, 중추원사 이천(), 호군 장영실() 등이 1433년 6월에 최초로 제작하였다.

처음에는 재료로 목재를 사용하였으나 뒤에 구리로 제작하였다. 1657년(효종 8)에는 최유지(), 1669년(현종 10)에는 이민철()과 송이영()이 각각 제작하였다.

효종 때의 혼천의는 시계장치를 연결하여 혼천시계로 만들어진 것이다. ‘혼천의’라는 명칭은 중국 한나라 때부터 사용되었고, 그 이전에는 ‘선기옥형’ 또는 ‘기형()’이라 불렸다.

기형의 기()는 하늘은 공[]처럼 둥글다고 생각하고 그 표면에 일월성신의 운행을 설명할 수 있는 천구의()를 뜻하고, 형()은 천구의를 통하여 천체를 관측할 수 있는 관()을 의미하는데, 크기는 ≪서경≫에 따르면 기경()은 8척, 둘레 25척, 형장()은 8척에 그 구경이 한치였다. 그리고 ‘혼천의’의 혼()은 둥근 공을 말하는 것으로서 동심다중구()를 의미한다.

구조는 세겹의 동심구면으로 되어 있다. 제일 바깥층에서 중심으로 지평환()·자오환()·적도환() 등 세 개의 환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평환은 지평에 평행하며 천구를 상하로 양분하며, 자오환은 천구자오선과 일치하는 대원()을 이루고, 천구북극·천정·천구남극 등이 이 대원상에 있어 지평환과는 지평에서 직각으로 만난다. 적도환은 천구적도와 일치하는 환으로서 자오선과는 직교하나 지평환과는 엇비슷하게 만난다.

이들 세 개의 환이 교착되어 그곳에서의 천구를 알 수 있고, 천구의 상하와 사방을 추측할 수 있다 하여 이 환들을 육합의()라 한다. 가운데 층은 황도환()과 백도환()으로 구성되어, 해와 달 그리고 별을 관측할 수 있다. 따라서, 가운데 층을 삼진의()라 하는데 여기서 황도는 태양의 길, 백도는 달의 길을 의미한다.

안쪽 층은 적경쌍환()·극축()·규관()으로 구성되며, 망원경과 같이 천체를 관측하는 규관을 통하여서는 동서남북 사방을 볼 수 있으므로 사유의()라 한다. 이들 각 층의 각 환에는 필요한 수의 눈금을 표시하여 정확하게 관측하였다.

혼천의는 아침·저녁 및 밤중의 남중성(), 천체의 적도좌표·황도경도 및 지평좌표를 관측하고 일월성신의 운행을 추적하는 데 쓰였다. [한민족문화대백과]


필크빛 벽 아래 너저분한 천막들이 있다

문화재 아래 시장이 선다

핑크도시의 거리

똑 같은 모양의 상점들

핑크도시의 거리 모습

핑크도시의 거리 모습

아름다운 하와마할

문화재 바로 아래 노점상

핑크도시


문신

어마어마한 크기의 해시계

해시계를 설명하는 현지 가이드

해시계는 전면과 후면이 있다.

별자리 관측대 아래 백만사 여인들

잔타르만트르 천문대와 멀리 암베르성

별자리 관측대


암베르포트
암베르 포트의 역사는 카츠츠하와 왕조의 역사라 할 수도 있다. 12세기 중반 카츠츠하와 왕조는 미나(Meena)라고 불리던 부족을 정복하면서 이곳을 수도로 삼고 무려 6세기 동안이나 이 주변을 차지하게 된다. 카츠츠하와 왕조의 라지퓨트 출신인 Man Singh(1589-1614까지 집권)이 이곳 암베르에 성을 짓기 시작하고 이어서 자이 싱 1세에 의해서 현재의 화려하고 웅장한 규모로 바뀌었다. 자이 싱 1세는무굴 제국의 황제들에게 대단한 신임을 얻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아우랑제브는 그에게 7,000여 명의 군사를 거느릴 수 있는 특혜를 주었다고 한다. 이렇듯 암베르 지역의 통치자들과 무굴세력간의 동맹관계는 서로에게 커다란 이익을 가져다 주었고 결국 카츠츠하와 왕조는 전쟁터에서 획득한 전리품들중 그들의 몫으로 암베르 포트와 같은 성과 궁전을 건설할 수 있었다.
정원의 동쪽에는 암베르 성에서 가장 유명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바로 자이만디르 Jai Mandir라 불리는 곳이다. 거울의 방이라고도 한다. 온통 건물이 정교한 볼록 거울로 장식되어 있고 그 안에는 작은 방이 있는데 천장이 거울로 장식되어 있어 문을 닫고 촛불을 흔들면 마치 밤하늘의 쏟아지는 별을 보는 듯하다.


천문대에서 나와서 카펫 가게에 들른 다음 오후 3시에 16세기의 성 암베르 포트를 둘러보려고 서둘러 출발했다.

주차장에서 보니 암베르성은 규모가 대단했다. 가이드 설명에 의하면 총길이가 14km라고 한다. 작은 저수지 옆 주차장에서 짚차를 나누어 타고 성으로 올라갔다. 성 아래에서 보기보다 훨씬 규모가 크다. 이 성의 구조는 단순한 구조가 아니다. 매우 큰 마을을 안고 있는 산 등마루를 타고 포곡식으로 쌓았으며 중요한 성채가 있는 산 마루를 빙둘러 싼 테메식 산성의 복합 형태이다. 테메식 부분은 2중, 3중으로 겹성으로 되어 있다. 또한 축성의 목적도 이중이다. 유럽의 성은 영주나 지방 토호의 거주 의미를 지니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적으로부터의 방어나 주민의 대피용 성이 많다. 중국의 성도 대개 그럴 것이다. 그런데 암베르 성은 이 두 목적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포곡식 성 안 마을에 많은 주민이 살았을 것이며 테메식 성안에 있는 성채에 왕이 거주했을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부여 부소산성과 나성의 구조와 비슷하다. 성안의 인공저수지는 식수를 보충해 주었을 것이다. 청주의 상당산성 저수지의 목적과 유사하다.

산성은 대리석을 쓰지 않았다. 시멘트도 쓰지 않았다. 벽은 백회처럼 보였다. 그러나 매우 단단했다. 이 성에서 성첩의 모양은 우리 성과 다르고 매우 슬기롭게 실용적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첩은 로마의 방패 모양이고 총구를 뜷었는데 안은 크게 밖은 작게 하고 안에서 밖을 내려다 볼 수 있도록 밖으로 비스듬하게 했다. 따라서 안에서는 밖이 보이지만, 밖에서는 성안을 들여다 보지 못하도록 했다.

성안의 생활 공간으로 보이는 자이만디르는 백색 대리석으로 매우 고급스럽게 건축했다. 여기서 성주든 왕이든 첩을 여러 명 거느리고 호화롭게 살았을 것이다. 거울의 방이라는 모자이크 방은 볼록볼록한 작은 거울을 장식하여 다른 곳보다 화려했다. 여성회원들이 이곳을 떠나려하지 않고 계속 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그런 여성들의 소망을 들어주지 못하는 카츠츠가와 왕조에 못미치는 남자들이다.

 

카페트 짜는 모습 -한 장에 5,6백만원씩 한다

암베르 포트 주차장에서 여성 회원

우리가 타고 간 짚

성의 정문

입장을 기다리며

밖에서 보기보다 매우 화려한 성채

성채로 들어가는 문 앞에서

기둥과 천정이 이어지는 부분

성에서 내려다 본 인공 저수지

화려한 문양


성채 회랑에서

회원일동

녹색 정원

거울의 방 천정

천정 문양

벽면의 화려한 문양

대리석 기둥에 돋을새김한 문양

어마어마한 성벽과 성채

원숭이가 산다


오후 4시 짚을 타고 성 아래로 내려왔다.

버스를 타고 오다가 중간에 물의 궁전에서 시간을 보내고 5시에 다시 짚차로 출발했다. 나하르가르 포트 일몰을 보기 위해서다. 나하르가르 성은 암베르성보다 규모는 작으나 축성 방법은 비슷했다. 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서 일몰은 보지 못했다. 여기서 맥주를 마시고 어둑해서 내려왔다. 나하르가르 포트에서는 일몰은 보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 날이 어두워질수록 하늘이 맑아져서 달이 뜨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같은 성의 앞 봉우리에 불이 들어오고 조명이 시작되니 낮에 보는 낡은 성의 모습이 밤에는 환상으로 보였다. 오늘이 마침 보름이라 달도 매우 아름다웠다. 이국에서 보는 보름달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여기서 반가운 이를 만났다. 단양여고에 근무할 때 함께 근무했던 가정과 박선생님을 만났다. 당시는 젊고 아름다우면서도 마음씨가 고와서 참 훌륭한 교사라고 생각했던 분이다. 내가 고등학교로 전직하여 어려울 때 많이 도와주셨던 분이다. 보름달 사진을 찍고 있는데 그 분이 내게로 찾아왔다. 우리는 잠시 옛날 이야기를 하면서 반가워했다. 세월의 흔적이 보였으나 아직도 젊고 아름다운 미소를 잃지 않았다.

 

물의 궁전 원경

물의 궁전을 배경으로

물의 궁전 앞에 화려하게 치장한 여인들

나하르가르포트

나하르가르포트의 성채

나하르가르포트에서 내려다 본 자이푸르 시내

나하르가르포트의 달맞이


나하르가르포트에서 시내 야경


자이푸르의 야경을 보면서 호텔에 돌아 왔다. 내일은 델리로 긴다. 또 장시간 버스를 타야 한다. 여행도 막바지이다. 오늘 밤은 푹 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