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생활과 일상/할아버지가 쓰는 규연이의 성장 일기

빨강 바지를 입고- 54일

느림보 이방주 2013. 6. 4. 22:19

2013. 6. 4.

 

빨강바지를 입었어요-- 54일째

 

<규연이의 일기>

 

오늘 날씨가 아주 더워졌어요. 밖에 나가고 싶지만 너무 더워서 엄마가 데리고 나가 줄 것 같지 않아요. 대신에 처음으로 반팔 티셔츠를 입었어요. 게다가 빨간 바지를 입혀주었는데 그런대로 보기 좋은가 봐요. 엄마가 사진을 찍어서 고모에게 보내 주는 것 같았어요.

팔이 다 나오니까 시원하고 바지가 넓어서 바람이 들어와서 좋으네요.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엄마가 유모차에 나를 또 태우네요. 나는 이 유모차가 무서워요. 울고 싶어요. 그래도 요전에 한 번 울었는데 사나이가 또 울 수는 없잖아요. 무섭고 겁이나서 눈물이 나오려는 걸 막 참고 있는 거예요. 엄마는 왜 방에서 유모차를 태우는지 모르겠어요. 아마도 여기서 이렇게 연습을 한 다음 밖에 데리고 나가려나 봐요. 안고 나가면 되는데 왜 그럴까? 하긴 요즘 내가 많이 무거워졌어요. 엄마가 주는 대로 다 받아먹으니 다리도 굵어지고 제 팔좀 보세요. 오동통하잖아요. 어른들은 다 살을 빼면서 나는 왜 이렇게 찌우는지요. 요즘은 볼살이 늘어나서 자꾸 늘어지니까 보는 사람마다 한번씩 '이쁘다'며 만지고 지나가요. 만지기만 하면 괜찮겠는데 그 여린 살을 꼬집기도 해요. 개념없는 사람들이예요. 안 그래도 볼살이 늘어져서 혹시 양볼이 무거워서 땅으로 툭 떨어질까봐 걱정학고 있어요. 고모는 볼 때마다 우리 규연이 볼살 떨어지겠다 하고 놀려 대걸랑요. 그런거 보면 떨어지지는 않을 거 같아요.

 

엄마가 유모차 손잡이를 잡고 있으니 굴러 가지 않네요. 아 바퀴에 고정 장치가 있는 것 같아요. 안심이예요. 나는 그냥 앞으로 막 굴러갈까봐 걱정했는데 그게 아니네요. 

요걸 타고 엄마가 뒤에서 밀면서 바깥구경을 하고 싶어요. 우리 아파트 정원에는 신기한 것들이 참 많아요. 사람들도 많고요. 그것들을 다 만져보고 무엇인가 알아보고 싶어요.

"엄마 이제 유모차가 무섭지 않아요. 어서 데리고 나가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