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생활과 일상/할아버지가 쓰는 규연이의 성장 일기

외가에서 땅콩 까기 -224일

느림보 이방주 2013. 11. 21. 09:37

2013. 11. 21

 

외가에서 땅콩까기 -  224일째

 

어려서 농사를 배우는 것은 바로 생존의 수단을 배우는 것이다. 미국의 어떤 대통령은 임기를 마친 다음 바로 땅콩 농장으로 돌아갔고 한다. 우리 규연이에게 농사를 짓는 외가가 있다는 것은 하나의 대학을 더 다니는 것만큼 큰 일생에 도움이 될 것이다. 아기가 태중에 있을 때도 엄마는 외가에 가서 농사를 지으시는 부모님을 만났고 농촌에 사는 집안 사람들도 만났으며 풍요로운 들판을 바라보았으니 그만한 태교가 어디 있을까? 또 세상에 나와서도 가끔 외가에 가서 엄마 아빠를 따라서 농사일을 도왔으니 그 경험이 어린 가슴에 심어 준 맑고 순수한 영혼을 짐작할 만하다.

 

나는 농촌에서 태어나 농사일을 도우며 학교에 다녀서 웬만한 농사일은 다 할 줄 안다. 내가 직접 설계하는 농사는 어렵지만 남을 따라하는 농사일은 어느 정도 다 습득했다. 그런데도 규연이 아빠에게 한번도 농촌을 가르치지 못했다. 그런데 처가가 농촌이니 주말에는 수시로 처가에 가서 농사일을 체험한다. 일을 돕지는 못하지만 아주 기초적인 농촌을 경험하고 농민의 순수와 아픔을 배운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내가 가르치지 못한 것은 사돈께서 가르쳐 주시는 것에 대해 늘 감사했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 규연이가 땅콩까는 외할머니와 눈을 맞추면서 사랑을 나누는 것을 생각하니 가슴 뿌듯하고 감사하기 이를데 없다. 기억에는 남지 못하겠지만 이런 체험이 가뭄에 빗물이 배추에 스며들 듯, 가을 햇살에 오곡이 익어가듯, 아기의 머리에 가슴에 맑은 영혼을 심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땅콩까기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 작은 땅콩 껍데기를 눌러 깨고 손톱으로 그 안에서 콩을 꺼내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엄지 손톱 부근이 갈라지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엄지와 검지 손가락 마디마디가 다 아프다. 그런데도 쉬지 않고 땅콩 하나하나을 집어 까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시간과 아픔과의 싸움이다. 외손자를 앞에 앉혀 놓고 땅콩을 까는 외할머니는 손자 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그 아픔을 잊으실 수 있을 것이다. 손자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다 귀엽고 신기해서 일은 뒷전이고 손자만 바라보실 것이다.

 

규연이는 어리지만 할머니의 그런 사랑을 다 감지한다. 어린 아이들은 부모나 할머니 사랑은 초음파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외할머니 땅콩 함지에 들어앉아 한줌 땅콩을 집어 올린다. 이것이 뭘까? 살피고 또 살핀다. 웬만해선 다른 아이들처럼 입으로 가져가지 않는다. 들여다 보고 또 들여다 본다. 호기심은 끝이 없다. 어려운 기대겠지만 나는 우리 손자 규연이가 이런 농작물 하나하나를 대할 때마다 엄마를 낳아 주신 그래서 자신을 세상에 존재할 수 있게 해주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고초의 알갱이라고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지금 당장을 모르지만 먼 훗날 규연이가 이 글을 읽으며 오늘을 생각한다면 고맙겠다. 규연이를 데리고 외가에 간 엄마가 아기에게 농촌의 정서를 공부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결과는 그렇게 훌륭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알 것이다. 고마운 일이다.

 

미국 대통령 같은 어마어마한 인물도 결국 자신이 태어난 농촌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우리 규연이가 교육을 잘 받고 세상에서 어떤 일을맡아 가족과 이웃을 위해서 우리나라와 인류를 위해서 진정을 다하는 동안 항상 본질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될 것으로 믿는다. 나는 규연이가 제가 설 자리를 선택할 때 어린날 농촌에서 배운 정서와 가치관을 중심으로 하기를 기대한다. 아마 그렇게 될 것이다. 우리 아가 규연이가 늘 제가 설 자리를 바로 찾는 그런 사람이 될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