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생활과 일상/할아버지가 쓰는 규연이의 성장 일기

꽃의 이름으로

느림보 이방주 2013. 4. 15. 17:03

 

꽃의 이름으로


1. 일찍 피어난 개나리

대청호 기념 공원에 산책을 나갔다. 개나리 줄기가 연두색으로 물들었다. 볕이 따사롭다. 볕이 따사로운 곳에 개나리 한두 송이가 먼저 피었다. 새벽잠을 깬 노랑병아리 주둥이처럼 추위에 바르르 떨고 있다. 곧 볕을 보게 될 우리 손자 같이 여리다.

 

아가야 서두르지 마라. 아직은 너무 이르다. 봄은 쉽게 오는 게 아니란다. 저기 저 검은 구름이 눈이 되어 하얗게 뒤덮일 수도 있느니라. 귓전을 간질이던 바람이 새파란 칼날을 세울 수도 있느니라.

 

아가야. 귀한 아가야. 서두르지 마라. 때를 기다려야 하느니라. 봄은 때가 되면 오느니라. 올 수밖에 없느니라. 때가 되면 말갛게 옷을 벗고 따사롭게 따사롭게 오는 것이니라. 아가야, 그것을 섭리라 하느니라.

 

너무 일찍 피어난 개나리를 그냥 두고 가는 발길이 무겁다. 모롱이를 돌아서니 ‘휘익’ 한 가닥 칼바람이 분다. 봄은 아직 이르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산월을 맞은 며느리에게 사진과 함께 개나리 사연을 보냈다.


2. 목련의 약속

4월의 아침 기온이 영하로 내려갔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말이 실감난다. 아파트 현관을 나오니 사람들이 자동차에 쌓인 눈을 치우고 있다. 하얀 것은 눈뿐만이 아니다. 정원에 목련이 하얗게 피었다. 잔뜩 성난 봉오리가 밀고 당김을 계속하더니 약속한 봄을 어길 수는 없었나 보다. 하얗게 벙그러진 꽃송이를 보듬고 있는 가지마다 말갛게 얼어붙은 진눈개비가 아침 햇살에 반짝인다. 

예정일을 일주일이나 넘겼는데도 아직도 세상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손자를 생각하니 마음이 조급해진다.

 

꽃을 시샘하는 바람아. 이제 놓아줄 때가 되었지? 봄을 약속한 아가야. 이제 망설이지 말아야지.

 

저녁에 원흥이두꺼비생태공원을 거닐었다. 오후의 따사로운 햇살 덕분인지 온갖 꽃이 한꺼번에 피어났다. 차가운 바람에 망설이던 매화도 목련도 한꺼번에 피어났다. 공원은 온통 봄의 축제를 열고 있다. 매향이 그윽하다. 목련이 눈부시다. 아가는 오늘도 그냥 지나가려나. 소식이 없다.

호수엔 두꺼비가 얼굴을 내밀었다. 봄은 영하도 진눈깨비도 두렵지 않다. 봄은 기어이 올 것이니까. 아가야 그렇지?

 집에 돌아와서 밤새워 아들의 전화를 기다렸다. 그러나 세상은 고요하기만 하다. 별만 새벽까지 반짝인다.

  

3. 생명의 열림

첫 만남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나는 소리를 탄성을 올릴 뻔했다. 아들로부터 스마트폰으로 전해진 서너 편의 영상! 생명의 신비! 머리가 핑 돌고 가슴이 멍하다. 봄을 약속한 아가는 예정일을 일주일을 넘기더니, 오늘 새벽부터 제 엄마에게 신호를 보내고 세 시간 정도 진통을 주고 태양의 남중 시간을 맞추어 빛과 대면하였다.


매화도 피고, 복사꽃 개나리 진달래 목련까지 피어나, 이렇게 좋은 삼월 삼짇날, 저렇게 고운 눈빛으로 우리 아가는 세상과 만났다. 나는 이제 한 생명의 할아버지로 살아야 한다. 새 세상이다.

 

아기는 잠들었다. 아주 곱고 고운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천사도 흉내 낼 수 없는 모습이다. 퇴근과 동시에 급히 몸을 씻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기 엄마는 웃고 있었으나 수척해진 얼굴이 안쓰럽다. 고맙다 아가야. 그 말밖에 더 할 말이 없어 답답하다. 

 

아가야, 이제부터 꽃의 이름으로 살아가라. 이름에 굳이 꽃을 심으려 애쓰지 말고, 깨끗이 씻어 맑게 가꾸어라. 이름에 굳이 금으로 빛내려 애쓰지 말고, 물이 흐르듯 섭리를 따라가라.


5일째 되는 날 아침, 아가는 어느새 눈을 부릅뜨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가슴이 뜨끔하다. 다만 며칠만이라도 태어나기 전과 같은 세계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세상은 모태처럼 안온한 곳이 아니지 않은가? 가만히 들여다보니 언뜻언뜻 내가 드러난다.

나는 갑자기 덜미가 가벼워졌다. 훌훌 짐을 벗은 기분이 되었다. 아니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그렇다. 다 이루었다. 시든 꽃을 떨어뜨리고 새로운 색깔로 꽃을 피워야 한다. 이제는 지난날을 돌아볼 까닭이 없을 것만 같다. 이제 지나간 내 삶에 무엇이 더 남아 있으랴. 새싹을 심어 가꾸어야 한다. 새로운 행복의 시작이다. 인생의 이모작을 시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