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생활과 일상/에세이의 뜨락

<에세이 뜨락> 얼굴(박종희)

느림보 이방주 2009. 9. 4. 01:04

얼굴
에세이 뜨락

 

중부매일 jb@jbnews.com

 

잔잔한 이야기 코너인 '에세이 뜨락'은 지역 수필가들이 1주일에 한 번씩 방문, 삶의 여정에서 건져올린 생각을 수필, 꽁트 등의 형식으로 들려주는 작은 사랑방입니다.


지난 세월 나를 스쳐간 많은 사람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처음 대하는 사람도 얼굴을 보면 어느 정도 그 사람의 성격 파악이 될 만큼, 사람의 얼굴에는 내면의 그릇이 그려져 있다. 겪어보지 않아도 따뜻한 마음을 읽어 낼 수 있는 얼굴, 명랑하고 활발한 성격일 것 같은 얼굴, 내성적이고 차분한 성격을 지닌 것 같은 얼굴, 고매한 인상을 주지만, 첫인상부터 거부감이 드는 얼굴도 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제각각 다른 얼굴을 가지고 태어난다. 나이 들고 직장생활을 오래하다 보니, 이젠 상대의 얼굴을 보면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지 웬만큼은 짐작이 간다. 가끔은 얼굴의 모습과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닌 사람을 보게 되지만, 사람 대부분은 거울처럼 얼굴 안에 내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마음속 가득 불만을 품은 사람의 얼굴을 보면 항상 일그러져 있고, 늘 남을 헐뜯고 나서길 좋아하는 사람의 얼굴에는 욕심이 가득하다. 처음 만났을 때 거부감 없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은, 언제 만나도 기분이 좋고 첫 대면부터 심상치 않다고 생각한 사람은, 정말 끝까지 자신의 얼굴값을 한다.

   
마음속 가득 불만을 품은 사람의 얼굴을 보면 항상 일그러져 있고, 늘 남을 헐뜯고 나서길 좋아하는 사람의 얼굴에는 욕심이 가득하다. 처음 만났을 때 거부감 없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은, 언제 만나도 기분이 좋고 첫 대면부터 심상치 않다고 생각한 사람은, 정말 끝까지 자신의 얼굴값을 한다.
예쁘거나 잘생긴 호남형은 아니지만, 덕이 있는 얼굴을 가진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보너스 점수를 가지고 살게 되는 것 같다. 한 번을 스쳐지나도 첫인상이 좋았던 사람은 가슴 속에 남아 오래도록 기억하게 된다. 좋아하는 사람의 취향이 다르겠지만, 나는 이미지가 요란하지 않고 단아하며 깔끔한 얼굴에 호감이 간다. 깔끔하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 관리를 잘하는 것일 테고, 겉으로 요란하지 않다는 것은 속이 허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이가 드니 이젠 상대가 가진 물적 재산과 명예보다는, 그 사람의 얼굴에서 풍기는 지적인 재산에 관심이 간다. 돈이야 노력하면 생기고, 명예나 자리는 만들 수 있지만, 타고난 얼굴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성형하기 전엔 고칠 수 없다. 그래서인지 요즘 취업을 앞둔 젊은이들한테 성형은 필수라고 한다. 너 나 할 것 없이 경쟁을 하는 시대이니 면접을 볼 때 첫인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하긴, 똑같이 수험표를 달고 앉아 있는 수험생의 얼굴이 특별히 인상 깊게 보인다면, 면접관의 기억 속에 오래 머물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사람의 신체에서 얼굴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 같다.

잠 못 이루는 밤이 되면 따스하게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사십 여년을 사는 동안 궂은 모습 한 번 보이지 않고, 늘 인자하고 자상한 성품을 간직하신 친정아버지의 얼굴이다. 직업군인이셨던 아버지는 아들들에겐 엄했지만, 딸들에겐 더없이 따뜻한 분이셨다. 추운 겨울이면 아버지는 자식들의 신발을 모두 연탄불이 있는 부뚜막에 가지런히 가져다 두셨다.

자다가 깨어 물을 먹으려고 부엌에 나가보면, 우리 집 부뚜막은 언제나 신발들이 도란거리고 있었다. 삼남, 삼녀나 되는 형제들이 모두 학교를 마치고 직장인이 되었을 때에도, 우리 집 부뚜막은 신발들의 수다 소리로 심심하지 않았다. 어디 그뿐인가, 밤에 연탄불 가는 일과 이불빨래는 아버지의 몫이었고, 김장철이 되면 아버지의 열 손가락은 모두 봉숭아 물을 들인 것처럼 고춧가루 물이 들어 있었다.

사람이 가지고 태어난 얼굴에서 풍기는 인상이나 성품은 꾸밀 수 없다. 친정아버지의 얼굴에서는 안온함이 느껴진다. 말 수가 적고 인자하신 아버지를 주위에선 법 없이도 살 사람이란 말을 자주 했었던 것 같다. 여든이 가까워지는 연세인데 아버지의 모습은 그대로다. 인상이 변하지 않았다. 나이 들고 연로해지면 얼굴의 이미지도 변한다고 하는데, 아버지의 얼굴은 내가 어릴 때 보고 자란 모습과 같다.

사십 대가 되고 불혹을 넘어서면 자기가 갖고 태어난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데, 과연 나는 내 얼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친정아버지처럼 호인 (好人)이란 말은 듣지 못하더라도 따뜻한 사람, 같이 있고 싶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며 살고 싶다. 혈색이 없어 차갑고 날카롭게 보이는 첫인상 때문에 자칫 거리감을 두는 사람이 있는데, 앞으로는 더 많이 웃으며 살아야겠다. 따뜻하고 정스러운 얼굴이 모여 사는 사회에는 환한 미소만큼 행복도 찾아올 것이다.

오늘 거울 안엔 모처럼 환하게 웃는 중년여자의 얼굴이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