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 ||||||||||||
에세이 뜨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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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매일 jb@jbnews.co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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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이야기 코너인 '에세이 뜨락'은 지역 수필가들이 1주일에 한 번씩 방문, 삶의 여정에서 건져올린 생각을 수필, 꽁트 등의 형식으로 들려주는 작은 사랑방입니다. 우뚝 선 당신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어찌 그리 우람하냐고?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느냐고?' 그러나 거대한 몸집에 놀라 감히 묻지를 못했지요. 돌아보면 당신 앞에선 매번 움츠러들었던 기억뿐입니다. 의연하게 서 있는 자태에 주눅이 들었지요. 내 나이 열아홉엔 당신 그늘에서 미래의 불안을 토하였고, 불혹을 넘겨서도 여전히 내 삶은 갈등의 연속이었죠. 그래요. 솔직히 그대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답니다. 얼마 전 그대와 맞닥뜨렸을 때, 어마어마한 자태에 놀라워 입을 벌린 채 감탄사만 쏟아냈습니다. # 내 나이, 열아홉 그 시절, "그대여, 얼마나 귀가 따가웠나요?"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리기 무섭게 우리는 느티나무를 찾습니다. 자신의 연인인 양 끌어안기도 하며, 어루만지고 살살 간지럼도 태우지만, 그대는 꿈쩍도 안 합니다. 돌아보면 우리는 진지한 내용이 아닌, 정말 별거 아닌 대화로 호들갑을 떨며 재재거렸던 것 같아요. 그때 그 친구들, 모두 어디로 갔나요? 어딘가에서 열심히 살고 있겠지요. 몇몇은 낯선 모습으로 나타나 당황스럽기도 했지요. 평범한 삶이 아닌 구도자가 된 스님이나 수녀가 된 친구, 이혼한 친구, 혼자 사는 친구 등 교정의 품 안을 벗어나자 삶의 모습은 모두 달라졌지요. 세월의 힘인가요? 아님 예정되어 있었던 운명의 길인가요? 나 또한 두 아이의 엄마, 아내, 며느리, 새언니, 이모, 외숙모, 직장에선 임원. 그즈음 딸과 언니로만 불리었던 호칭은, 여러 개로 늘어 몇 사람의 역할을 해내느라 허우적거립니다. 따져보면 이 호칭들은 내가 좋아 엮은 인연의 끈인데 엄살 아닌 엄살을 부리는 거지요. 오늘만큼은 복잡한 역할 놀이는 접어두렵니다. 교정 귀퉁이 서 있는 거목의 느티나무와 하얀 의자에 앉아 있는 날 추억합니다. 아직도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겠지요. 부디 그러기를 빕니다. 내 나이 열아홉, 인생의 큰 획을 그었던 그즈음. 학생의 신분을 벗고 험난한 세상에 발을 떼어놓았던 시기지요. 그대는 누구보다 내 마음을 알고 남으리라 봅니다. 미래의 불안과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그대 곁에서 늘 서성였으니까요. 그래요. 그대가 티 없이 맑던 내 모습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겠지요. 그대를 찾아가 순수했던 그 감정을 잃어버린 순정을 느끼고 싶습니다. 열아홉, 그 시절이 못내 그립습니다.
얼마 전, 그대를 다시 만난 건 청원 연꽃 마을에 섭니다. 단군성지를 가려고 마을 초입에서 그대의 위용에 놀라 발길이 떨어지지를 않았답니다. 하늘을 우러러 우듬지를 보려고 했지만, 무성한 가지와 이파리에 가려 보이질 않았어요. 또 그대의 팔은 어찌나 길던가요. 내 눈은 당신의 긴 팔을 더듬느라 뒷목이 뻐근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다 같이 온 지인들에게 제안합니다. 그대의 발치로 다가가 보자고요. 사실 당신의 허리사이즈가 궁금했어요. 세 명이 손의 손을 잡고 안아도 어림없었습니다. 그대가 만든 그늘은 수백 명을 품어도 남을 것 같았습니다. 나는 그대를 향하여 두 팔을 번쩍 들어 '만세'를 불러봅니다. 나이를 먹는 가 봅니다. 지나온 과거를 조용히 더듬는 걸 보면요. 무엇하나 제대로 잘해 놓은 일 없이, 오로지 선택한 길에 책임지듯 달려온 삶입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볼 여유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잘사는 길이라 믿었으니까요. 이젠 돌아갈 수 없는 머나먼 순정의 세계. 너나없이 변하고, 흔적 없이 사라져도 그대만큼은 변함이 없을 성싶습니다. 나는 지금껏 자신의 한 몸의 욕망을 이루고자 심혈을 기울였지만, 그대는 자신의 품을 키워 더 큰 사랑을 베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앞서간 선인도, 후인에게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고, 앞으로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 가리라 믿습니다. 그대가 뿜어내는 녹음에 눈이 부셔 눈물이 질금거립니다. 동안 어려운 세상살이 잘 이겨냈다며, 건들바람을 보내 내 얼굴과 살갗을 살살 어루만져줍니다. 기분 좋은 행운이 내게도 왔나 봅니다. 아, 오늘은 그대 안에서 제대로 쉬어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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