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사지(廢寺址)에 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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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매일 jb@jbnews.co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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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이야기 코너인 '에세이 뜨락'은 지역 수필가들이 1주일에 한 번씩 방문, 삶의 여정에서 건져올린 생각을 수필, 꽁트 등의 형식으로 들려주는 작은 사랑방입니다. 그대여, 폐사지(廢寺址)를 육안(肉眼)으로 본다면 그다지 흥미로운 일은 아닐 겁니다. 절은 사라지고 터와 명맥만 유지하는 곳. 고즈넉한 사찰 분위기도 귀를 맑게 하는 풍경소리도 기대하지 마세요. 인적도 뜸한 예전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쓸쓸한 곳이니까요. 혹여 가족을 동행했다면, 실망 어린 눈길과 말투를 고스란히 감당해야만 할 겁니다. 무료한 아이들은 그곳이 운동장인양 공을 차자고 생떼를 부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만복사지는 주민 건강을 위한 축구장 같은 첫 느낌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옛 절터에서 굳이 생물을 찾아내라면 내 시선은 분주해지겠죠. 그러다 석당간지주에 뿌리내린 거무죽죽한 이끼와 석축을 반쯤 감싼 누런빛의 잡초에 시선이 꽂히겠지요. 이끼와 잡초는 동면에 든 양 누렇게 시들어 몸을 바짝 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악한 나는 그것을 지목하며 세월의 증거며 흔적이라고 추정할 겁니다. 이 자리에 발자국을 남긴 수많은 중생과 물체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폐사지는 '시간 앞에서 풍화하지 않는 것은 없다'란 진리를 알리는 공간인 듯싶습니다. 마치 알곡을 모두 퍼주고 남은 휑한 빈 들판처럼 다가왔지요. 아니 자식들에게 한평생 지성을 다하고, 늙고 병들어 쇠락한 부모님처럼 느껴져 눈자위가 뜨거워집니다. 자식들은 문명의 도시로 훨훨 날아가고, 부모는 흔적 없이 사라져갈 그날을 기다리며 큰집에 홀로 남아 지키는 적요한 들판처럼 말입니다.
그대여, 이곳은 내 마음에 그리던 폐사지의 풍경이 아닙니다. 악천후의 눈길을 뚫고 온 나의 바람을 아쉽게도 저버립니다. 만복사지는 주변의 건물과는 물 위에 기름처럼 떠도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세속에 물든 플래카드와 간판들, 살림집마저 주인의 개성대로 여러 빛깔로 지붕을 뽐내고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극명하게 드러난 그곳에서 아니 먹고 살기 바쁜 현실에서 잔디를 가꾸고, 철책이 둘러진 폐사지가 존재하는 것만도 다행인가요? 그래요, 오래된 풍경과의 대화는 진즉에 어긋난 모양입니다. 내가 그리던 풍경은 지극히 원시적이었습니다. 옛것 그대로의 모습, 나만의 욕심이었던가요? 사람의 발길이 뜸하면 뜸한 대로, 잡풀이 무성하면 무성 한대로 존재할 거라고 믿었습니다. 한데 보존한다는 아니 국보로 지정한다는 이름으로 범인의 손을 거쳐 돌멩이를 치우고, 나무와 잡풀을 없애고, 본디 그대로의 풍경이 허물어지고 흐트러져 안타까울 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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