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답사/한국의 사찰

덕주골에서 만난 겨울의 끝

느림보 이방주 2005. 3. 23. 21:37
   봄은 분명히 생활의 문턱에 와 있다. 봄은 삶의 문턱에도 와 있고, 발밑에도 와 있다. 봄은 바지가랑이에서 팔랑이는 작은 바람 속에도 묻어 있고, 걸음걸이마다 흔드는 소매의 배래에서도 묻어난다. 봄은 속눈썹 사이에서 팔랑팔랑 바람같이 일다가 안경알에 걸리어 회오리바람을 일으킨다. 어느덧 봄은 가슴속에 스며들어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있다. 제법 매운 기가 남아 있는 아침 바람도 어쩔 수 없이 따사로운 햇살에 밀려난다.

 

송계에는 아직도 겨울일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거친 바위틈에도 이미 봄이 비집고 들어 앉아 있을 것도 같았다. 오전에는 전날의 세미나의 후유증으로 오던 봄이 되돌아가 지난밤 모자란 잠을 채우고 일어나 아내를 꼬드겼다. 송계에 가면 이름 있는 덕주사가 있다. 신라 마의태자의 누이동생인 덕주공주의 한이 서려 있는 절이라는 얘기까지 들려주니 이른 점심을 먹고 출발하자고 했다. 둘이서만 탈 수 있는 코란도로 가기로 했다. 바람은 제법 싸늘하지만 차안에서 느끼는 햇살은 완연한 봄이다.

 

지릅재를 넘어 계곡으로 내려가니 겨울 가뭄으로 물은 마르고 커다란 바위들이 허옇게 드러났다. 따사로운 햇살을 생각하면, 겨울동안 쌓인 눈이 녹아 계곡에 차고 맑은 물소리가 골짜기를 울리며 흘러야 할 때이다. 마른 시내에 봄은 그렇게 마른 채로 다가온 것이다. 팔랑소를 지나 한 오백 미터쯤 내려가니, 시내를 건너 산에 작은 빙폭이 있다. 가뭄 속에서도 조금씩 흐르는 물이 겨울 내내 얼어 빙폭을 이룬 모양이다. 주위의 참나무 가지 끝에는 연두색 봄이 묻어 있는데 검은 산에는 아직 얼음 덩어리가 하얗게 버티고 있는 모습이 경이롭다. 사실은 얼음보다 나무 가지 끝에서 배어 나오는 봄이 아름다워 사진을 찍었다.

               겨울의 끝, 송계의 빙폭- 그러나 나뭇가지 끝에는 봄 햇살이 곱게 묻어 있다.

 

덕주사 입구는 덕주산성으로부터 시작된다. 차를 세우고 다리를 건너 골짜기로 들어간다. 만수골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만수골이 젖어 있다면 덕주골은 말라있다. 만수골이 문관이라면 덕주골은 무관이다. 만수골이 갓 목욕하고 나오는 여인의 젖은 머리카락 같은 아름다움이라면, 덕주골은 갑옷을 갖추어 입은 무장의 늠름함이다. 마른 계곡에 바위가 뒹군다. 마른 돌 틈으로 맑은 물이 졸졸 흐른다. 

                                            

                                     덕주골 입구 -덕주산성이 보인다-

산사 입구는 덕주산성의 흔적이 보이고  맞은편에는 용마봉이 울퉁불퉁 용틀임하는 근육질을 자랑하며 장정처럼 서 있다. 한 15년 전 쯤 용마봉에 오른 적이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산을 잘 모르던 때였다. 송계가 어딘지조차도 잘 모르던 때였다. 다만 용마봉 정상에 이르는 길에 바위 언덕에 소나무들이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만 했다. 덕주산성은 용마봉  기슭의 산성과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덕주공주의 한이 서린 덕주사 대웅전 -옛 절집은 불타고 새건물이 들어섰다.

아득한 옛날 그 시대에도 사람들 간에 갈등이 있었고 욕망이 있고 자존심이 있었음을 덕주공주의 이야기로부터 깨닫게 한다. 부왕의 실정으로 나라가 망하고, 망한 나라의 공주로서 백성을 대할 면목이 없었을 것이다. 연약하고 귀한 여성의 몸으로 경상도에서 험준한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이 덕주골까지 찾아온 옛이야기가 가슴을 아리게 한다. 이곳에 절을 세우고 자신을 의탁한 것을 보면 아무런 힘도 없이 혼자 왔을 것 같지는 않다.

 

본래의 덕주사 절집은 역사의 혼란 속에서 불타 버리고 새로운 현대식 건물이 들어섰지만, 덕주골의 안쓰러운 이야기는 길바닥에도 바위에도 여기저기서 배어나와 새삼 가슴을 울린다. 이제 축대를 쌓고 남부럽지 않은 대웅전도 들어서고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것을 보면 덕주공주의 영혼이 되살아 올 듯하다. 덕주공주가 자신의 한스러운 형상을 바위에 새겨 마애불을 만들었다는 옛 덕주사지를 찾아 산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날이 이미 저물기 시작하여 언제라도 월악영봉을 등정하게 되면 바로 다시 돌아보기로 하고 옛 성을 복원하는 공사장 부근에서 되돌아 내려왔다.

 

금강산에 은거하여 최후를 마쳤다는 마의태자가 미륵리 사원에 와서 석굴과 석불을 조영하였다고 하는데, 그 석불과 여기 마애불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고 하니, 속세라면 다정한 오누이였을 두 사람의 따스한 정이 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옷깃을 여미게 한다.

 

내려오는 길에 다시 들른 새 덕주사에는 해가 설핏한데도 봄기운이 생생하다. 용마봉 그늘이 덕주골에 가등하다. 저녁놀에 비친 대나무가 더욱 스산하게 반짝이고, 뜰에 소나무만은 푸른빛을 더한다. 앞 시내에 흐르는 얼마 되지 않는 물은 맑고 깨끗하다. 손을 넣으니 뼈마디를 찌르는 듯하다.

       덕주사에 바라보이는 용마봉-소나무 가지끝에 초록으로 묻어 있는 봄-

봄은 벌써 골마다 와 있다. 돌아오는 길에 소조령 굴길을 지나며 노을을 바라보니 떠날 때 얼어붙었던 가슴이 덕주공주의 울력인지 부처님의 자혜인지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2005.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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