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생활과 일상/에세이의 뜨락

참새와 함께한 휴가(김정자)

느림보 이방주 2008. 6. 30. 21:50

 

 

참새와 함께한 휴가

 

중부매일 jb@jbnews.com

 


 필리핀의 남쪽 섬에 위치한 세부에서 삼일 째 보내던 날 밤이었다. 갑자기 무엇인가 콕콕 찍는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내가 묵고 있는 리조트 천정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이튿날 직원에게 물었더니 천정에 참새들 둥지가 있다고 하였다.

   
이따금씩 지루한 느낌으로 슬럼프에 빠질 때면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훌쩍 여행을 떠나는 버릇이 있다. 낯선 곳에 가면 일상생활에서 무뎌진 마음이 새롭게 재충전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번 여행도 새로운 세계를 맞는다는 설레임, 즐거움 그 차체였다.

세부의 새벽에 들려오는 소리는 다양했다. 마당을 쓰는 빗자루소리와 새들의 지저귐, 관광객들이 산책하며 대화하는 소리에 잠이 깨어 창문을 열었다. 그 속에는 귀에 익숙한 소리도 들려왔다. 꼭 참새들의 재잘거림 같은, 무슨 새일까? 나는 소리만 듣고 이곳에도 참새가 산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가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곳이 머나먼 이국땅이 아니고 이웃마을처럼 느껴졌다.

리조트는 초가지붕으로 지어진 방이었다. 안에는 좋은 시설로 꾸며져서 며칠 지내는데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것 같았다. 마치 우리나라 농촌마을에 온 듯 전혀 낯설지가 않다. 옛날의 농촌 풍경을 회상하며 아름다운 세부의 하늘아래 그것도 초가에서 휴가를 보내게 되어 마치 어머니의 품에 안긴 듯 아늑했다.

초가지붕은 시멘트 문화보다 훨씬 나에게 친숙한 분위기로 다가왔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역사로 보아 백 년 전만 하더라도 농촌에는 초가지붕이 대부분이었다.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우리의 대표적인 살림집이었고 사대부나 양반이 아닌 백성들은 작은 초가에서 살지 않았던가.

소녀시절, 달빛아래 바라본 초가지붕위에 하얀 박꽃은 참으로 청초해 보였다. 너무 희고 가련해 미망인을 연상하기도 했었다. 다른 꽃들은 모두 아름다운 색상으로 치장을 하는데 왜 박꽃은 저토록 도도하게 흰색만을 고집할까, 그것은 먼저 간 낭군을 따라가지 못하는 죄책감으로 화사함을 멀리하는 것이라는 나름대로 생각도 했었다.

그 가녀린 조롱박들이 가을 햇빛을 머금고 보름달처럼 둥글게 커진 다음에야 초가지붕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그 다음은 초가지붕이 참새들 안식처로 바뀐다. 처마 밑이나 지붕 속에 집을 짓고 사는 참새를 잡으려고 한밤중에 개구쟁이 아이들이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잠자는 참새를 잡아 구워 먹는 날은 온 동네 어른들까지 밤잠을 깨울 만큼 시끌벅적 했다. 초가집은 그렇게 사람과 동식물이 함께 어우러져 살았던 자연 친화적 공간이기도 하다.

새마을사업으로 하여 오랜 전통을 이어온 초가가 대부분 사라지고 그 자리에 알록달록한 슬레이트지붕으로 개량 되었다. 이제는 농촌에서도 초가지붕은 볼 수가 없고 민속마을 에서나 볼 수 있는 정겨운 풍경이 되고 말았다.

참새소리에 이끌려 바닷가로 나아갔다. 티 한 점 묻어있을 것 같지 않은 파란 바다위로 붉은 얼굴을 내민 태양은 눈이 부셨다. 듣던 대로 세부의 하늘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이국땅에서 바라보는 해오름은 더욱 찬란했다. 눈부시게 반짝이는 모래사장위에는 참새 떼들이 수 백 마리 앉아 모이를 쪼고 있다. 그들은 일출 따위엔 관심도 없는 듯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모래사장 쪼기에 바쁘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모래사장엔 그들의 먹이 감이 보이지 않았다. 무엇을 그리 쉴 새 없이 쪼아 먹는지 알 수가 없었다.

참새의 먹이는 주로 식물성이나 여름철에는 딱정벌레 나비 메뚜기를 잡아먹는다고 한다. 식물성으로는 농작물의 낟알과 풀씨 나무 열매를 먹는다. 그 모래 속에 그들의 먹이가 있다는 게 신기했다.

참새를 그렇게 가까이 살펴보기는 난생 처음이다. 머리와 뒷목부분, 날개깃, 종아리 부분이 갈색과 황갈색 어두운 갈색 검정색 흰 색깔로 예쁘게도 단장한 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번식하는 텃새로 알려진 참새와 똑같은 모습이고 보니 꼭 우리의 참새로 생각되어 마치 한국에서 저들을 만난 것처럼 정겨웠다.

참새들은 땅위에서 움직일 때는 양쪽다리를 함께 모아 깡충깡충 뛰는 걸 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는 약속이나 한 듯 날아 갈 때는 일제히 날아올라 파도모양을 그리면서 어디론가 날아가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들은 일정한 지역에서 머물다가 저녁때나 새벽이면 나무숲에 모여 지저귀는 소리를 들려준다고 한다.

휴가 마지막 날 밤에도 천정에서는 여전히 무엇인가 쪼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따금씩 '짹 짹'소리도 들린다. 이제는 물어보지 않아도 참새 소리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참새는 사람들을 가까이 하지 않는 습성이 있는데 이 곳 참새들은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으니 참으로 영리한 동물이다. 짧은 기간이지만 참새들과 한 방을 썼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세부에서의 초가지붕아래, 그것도 참새들과 함께한 휴가는 참으로 행복했다. 이번 여행은 푸근한 마음을 맘껏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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