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생활과 일상/에세이의 뜨락

양귀비(박순철)

느림보 이방주 2008. 7. 11. 09:30
양 귀 비

 

중부매일 jb@jbnews.com

 

잔잔한 이야기 코너인 '에세이 뜨락'은 지역 수필가들이 1주일에 한 번씩 방문, 삶의 여정에서 건져올린 생각을 수필, 꽁트 등의 형식으로 들려주는 작은 사랑방입니다.

'유채꽃축제가 끝난 오창 들판에 양귀비꽃이 만발해 있는데 그 모습이 기막히게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는 엉덩이가 근질거려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이른 아침, 3만 여 평의 들판에 피어있는 양귀비꽃이 입을 딱 벌어지게 했다. 칭찬과 감동을 아무리 해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양귀비꽃 색깔이 한가지뿐인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여러 색의 꽃이 현란하게 피어있는 모습은 눈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마치 이 순간을 놓치면 후회라도 할 것처럼 가지고 간 카메라에 부지런히 그 아름다운 자태를 담기 시작했다. 아직도 남아서 자신을 봐주기를 은근히 기다리고 있는 유채꽃에는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 세상에 양귀비꽃처럼 아름다운 꽃만 있다면 다른 꽃이 설 자리는 없을 것이다. 사람도 잘난 사람만 산다면 너무 재미가 없을 것이다. 나 같이 평범한 사람도 있어야 잘 난 사람이 돋보이는 것이니 언제나 명암은 있게 마련인가보다.
당나라 현종이 양귀비에게 빠져들어 정사를 망쳤다는 이야기는 수 없이 들어왔고 문헌으로도 전해져 내려온다. 안녹산이 난을 일으켰을 때 양귀비는 서른여덟 살 꽃다운 나이였었다. 그처럼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던 양귀비도 제명대로 살지 못하고 목메어 자살했다고 하니 안타깝다. 예부터 미인박명이라고 하더니 가련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양귀비, 그 미모 옆에 감히 어느 누가 다가가려 했겠는가. 양귀비꽃 옆에는 유채꽃이 몇 포기 피어 서성거리고 있었는데 양귀비꽃의 위세에 눌려 초라하게 느껴지기 그지없었다. 같이 간 일행 그 누구도 유채꽃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람이 없었다. 마치 유채꽃이 나 자신이기라도 한 것처럼 동정심이 가기도 했다. 유채꽃도 온 들판에 가득 피어있던 전성기 때에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을 것이다. 이제 뭇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져가고 있으니 아름다움만을 좇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찌 붙잡을 수 있단 말인가.

세상에 아름다운 꽃만 있다면 다른 꽃이 설 자리는 없을 것이다. 사람도 잘난 사람만 산다면 너무 재미가 없을 것이다. 나 같이 평범한 사람도 있어야 잘 난 사람이 돋보이는 것이니 언제나 명암은 있게 마련인가보다.

양귀비꽃을 처음 보는 것은 아니다. 어려서 진짜 양귀비꽃을 본 기억이 있다. 그 때는 아름답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때의 일이니 까마득한 일이기도 하다. 그 때 어머님은 울안 텃밭에 상추와 같이 심었던 것으로 짐작이 된다. 어머님은 양귀비를 앵속이라 부르며 상추와 같이 쌈을 싸서 먹으면 맛이 더 좋다며 싸서 드시는 것을 보았다. 둥근 열매에 흠집을 내어 하얀 진이 나오면 술잔 같은 것을 대고 긁어모으는 것은 보았는데 쓰는 것은 보지 못했다. 꽃이 진 대궁은 엮어서 처마 밑에 매달아 말리셨다. 배가 아프다든가 하면 말린 앵속을 달여 그 물을 먹게 하면 바로 나았다. 마른 대궁을 손으로 비비면 담배씨처럼 아주 작은 씨앗이 꽤 많이 나오곤 했는데 그 것을 입에 털어 넣고 씹으면 무척 고소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내가 고향마을에서 농사일을 도울 때였다. 이웃 마을에 살고 있던 친한 친구로부터 급한 기별이 왔다. 연로하신 조부모님이 계시기에 노인들에게 급한 일이 생겼나하고 달려가 보니 어이없게도 양귀비를 재배하다가 적발되었다는 것이다. 경찰서에서 나온 형사들이 수두룩하게 마을에 깔려있고 전투경찰들이 증거물을 찾아 밭고랑을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친구 아버지는 어려운 살림에 도움이 될까하여서인지 아니면 상비약으로 쓰기위해서인지 양귀비를 심어왔다고 했다. 참깨 밭에 심으면 꽃피는 시기가 비슷해서 항공촬영을 해도 못 찾는다는 소문도 들려오곤 하던 때였다. 그때에도 포상금 제도가 있었다. 그 곳에 놀러온 사람이 친구네 집이 아닌 다른 사람 양귀비 밭을 보고 신고를 했는데 단속 나온 형사대는 온 들판을 헤집고 다녀 세 집이나 적발을 했단다.

친구 아버지 말고도 두 사람이 더 구속이 되었다. 발을 동동 구르던 친구 할아버지는 "내가 심었다고 하면 형(刑)이 가벼워질 것이고, 농사일은 바쁜데 애비를 빼와야 한다."며 그 이튿날 경찰서를 찾아가 아들을 풀려나게 하고 대신 구치소 생활을 시작하셨다. 후에 노인은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결국 양귀비로 인해서 연로하신 노인을 구치소에 보낸 친구 아버지는 가슴을 치며 통한의 세월을 보냈지만 양귀비 때문에 일어난 웃지 못 할 일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빨갛고 하얀 형형색색의 양귀비꽃, 대궁이 실한 가 만져보니 조그마한 씨방만을 달고 위태롭게 서있다. 황혼기에 접어든 모습이 역력했다. 모두들 이 세상을 하직할 때는 초라하기 그지없으나 양귀비꽃만은 달랐다. 아무리 시든 꽃이라 해도 역시 양귀비꽃은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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