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산 예찬 | ||||||||||||
| ||||||||||||
중부매일 jb@jbnews.com | ||||||||||||
| ||||||||||||
산행하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입니다. 산을 결정할 때 거침없이 우암산으로 가자고 했지요. 일부에선 '왜 하필 우암산이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숨은 이야기가 있으니 '일단 한 번 가보면 안다'고 우겼지요. 산에서 잠깐씩 스치는 물상과 나누는 해찰을 어떻게 다 전할까요.
우암산의 별칭은 와우산, 산세가 소가 누워있는 형상과 비슷해서죠. 속리산 천황봉에서 북서쪽으로 뻗어 내려온 한남금북정맥 산줄기에 속한 우암산은, 어느 명산처럼 이름난 문화재나 특별한 것도 없는 산입니다. 문득 자신의 고향을 지키며 그 사랑을 전파하는 섬진강 시인이 떠오릅니다. 시인은 자신의 일상을 글로 발표하여, 아마도 국내에선 섬진강을 모르는 이가 없을 겁니다. 참으로 부럽고 자랑스러운 문인입니다. 너무 사설이 길었나요? 우암산이 처음인 당신께만 살짝 귀띔할게요. 어느 곳에서나 느낄 수 없는 희한한 교감이 이루어지는 산이에요. 어서 그곳에 다다르면 좋겠습니다. 산길은 무시로 한사람이 호젓하게 거닐 정도로 좁아지는가 싶더니, 힘겨운 오르막길이 나오고, 어느 순간 솔향이 솔솔 풍기는 숲속 정자에 다다릅니다. 잠깐이라도 그곳에 앉아 숨을 고르며 마음껏 소나무 향기에 취해보세요. 그대여, 산길을 거닐며 숲의 하늘을 보았나요? 하늘이 상수리 나뭇가지와 잎새로 궁륭처럼 덮여 간간히 비치는 금빛햇살에 눈이 부십니다. 일렁이는 이파리가 같은 녹색 같지만 빛의 유무에 따라 달라 보이는 녹음의 농도를 어찌 표현할까요.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만 그 느낌을 절감할 수 있답니다. 또 곤줄박이소리에 닫혔던 귀가 열리고, 그들 속으로 빠져들면 숨죽여있던 내 몸의 모든 감각이 살아 움직입니다. 이 순간만큼은 초침의 속도를 잊고 마냥 거니세요. 운이 좋으면 나뭇가지 사이를 넘나드는 산골짝에 다람쥐보단 큰 청솔다람쥐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눈높이를 낮추면 길가나 바위틈에 핀 노란 양지꽃과 흰솜털이 많은 할미꽃은 요즘 보기 어렵겠지만 노란괴불주머니는 지천입니다. 꽃이 피어날 때 잎 안쪽이 고깔처럼 말린다 하여 고깔제비꽃이라고 했나요. 환상의 청보라 빛, 어울리든 않든 그 빛깔의 옷을 입은 내 모습을 그리니 기분은 절로 급상승 됩니다. 그렇게 한 시간 반을 오르면 성벽(상당산성)에 다다르게 되지요. 오름의 끝입니다. 곧 그대를 우암산으로 인도한 제 마음을 읽게 되는 순간이지요. 약 40도의 나무계단을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다보면 생소한 물상들과 마주칩니다. 나의 첫 느낌처럼 당신도 산하고 어울리지 않는 물상을 보고 생뚱맞다고 하겠지요. 그것을 처음 접한 계절이 낙엽이 지는 11월, '추운데 웬 얼음이야'라는 나의 반응이었지요. 이젠 변함없이 각얼음을 지게에 지고 올라온 사나이의 노고와 마음을 헤아리게 되니, '얼음골 쉼터'를 그냥 스칠 수가 없답니다. 힘겨운 산행에선 자기 몸 하나도 힘이 듭니다. 부피가 40×25×12cm가 되는 하나도 아닌 두 개의 각얼음을 지게에 지고 오르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다른 사람을 위하여 땀 흘리는 삶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얼음골 쉼터'라는 팻말과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빨간 우체통, 보랏빛 국화꽃 한 다발과 각얼음 두 판. 도시에서 볼 수 없는 아기자기한 풍경이지요. 하지만 도시문명과 절친한 우리에게 무언가를 암시하는 상징물 같기도 해요. 아, 그대의 표정과 느낌이 아주 궁금합니다. 난 그 분을 '얼음골 시인'이라고 명명했어요. 섬진강시인과 다름없는 분이 내 고장에도 있다고 생각하니 자랑스럽습니다. 도시에서나 산에서나 쉼 없이 질주하는 사람들, 문명에 절은 삶에 지친 보행자에게 쉬어가라 합니다. 무엇보다 한유한 소통을 원합니다. 지금도 내 곁에선 그 의미를 모르는 어른들이 본 체 만 체 휙휙 스쳐갑니다. 반면에 아이들은 산위에 놓인 얼음이 신기해서 두서너 번 두루 만지며 시원함을 온몸으로 표현하지요. 아이의 부모는 이미 그곳을 스쳐가 무에 그리 바쁜지 저만치서 큰소리로 아이를 부릅니다. 그대여, 오늘 산행 어떠셨나요? 당신의 얼굴을 보니 연산홍처럼 환합니다. 온종일 모니터와 키보드를 껴안고 사는 사무실에서, 자동차가 씽씽 달리는 아스팔트 위에서 꿈꾸지 못했던 기운이 넘쳐납니다. 당신은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멋진 사람입니다. 산행의 무료함을 달래주기 위한 하모니카 연주라 했지만, 동행자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나의 먹먹한 가슴도 치유해주었습니다. 얼음골에서 '행복 충전, 기운 만땅' 되었으니, 우암산에 오길 참 잘했죠? |
'문학생활과 일상 > 에세이의 뜨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참새와 함께한 휴가(김정자) (0) | 2008.06.30 |
---|---|
사진(박종희) (0) | 2008.06.30 |
김치와 우리(이방주) (0) | 2008.06.06 |
후회(박순철) (0) | 2008.05.30 |
곰세마리(김정자) (0) | 2008.05.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