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 세마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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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이야기 코너인 '에세이 뜨락'은 지역 수필가들이 1주일에 한 번씩 방문, 삶의 여정에서 건져올린 생각을 수필, 꽁트 등의 형식으로 들려주는 작은 사랑방입니다. "여보세요, 우리예능원이죠?" "이영순님께서 지금도 원장님이신가요?" "네, 그렇습니다." 27년 전 막내아들이 졸업한 유치원원장의 소식이 갑자기 궁금해졌다 전화를 받은 선생님께 지금 원장님 연세가 얼마나 되셨느냐고 물으니 78세란다. 밖에서 화단정리를 하고 계신다고 했다. 기다리는 동안 수화기 속으로 피아노와 마림바 트라이앵글 탬버린등 합주에 맞추어 꼬마들의 '곰 세 마리' 노래가 시끌벅적하게 들린다. 근 삼십 여 년 전의 원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여보세요, 아이구 상수어머니를 내가 잊지 않고 있지~"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때의 다정했던 온정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는 여전하다. 지금도 그때처럼 선생님 두 명과 함께 원아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원아들이 줄어 이제는 별 재미가 없다고 했다. 점점 시들해져간다는 그 말에는 힘이 빠진 느낌이 가슴에 젖어든다. 그러나 얼마 전 미국의 아버지 부시대통령께서 오셨을 때 특별 초청되어 아이들이 연주를 맡았단다. 부시전대통령께서 감탄을 하며 "탱큐, 탱큐" 를 연발 하였다며 흥분된 어조로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시설이 열악해 문화재로 등록할 정도인데 지금까지 잘 벌어먹었으면 그만이지" 하는 이원장의 여운 남는 끝인사에 한번은 찾아뵈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시절부터 삼십 여년을 함께한 아이들의 어머니 모임인 알뜰 모임 날이었다. 제일 나이가 많은 J어머니가 먼저 들어왔다. "언니, 손자 본 재미가 어때요?" 이제는 모두 할머니가 되어 그 예쁘던 어머니의 모습은 사라지고 인생 계급장을 훈장처럼 달고 있다. 전형적인 할머니의 모습이 되도록 매달 만났으니 그동안 만난 횟수만도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하나둘씩 손자 손녀가 태어나면서 허리는 점점 구부러지고 몸매는 S자형에서 모두 H형이 되었지만, 세월이 흐른 만큼 우리들의 정은 두텁게 쌓였다. "응? 잘 살지! 내가 다 모이면 우리 아들 사는 꼬락서니 좀 공개 할 껴" "지금 미리 하면 또 리바이벌을 할 테니 힘 들자녀 ~" 젊은 시절에는 C대학교 교무처장까지 지낸 남편과 함께 '사모님'소리 들어가며 예쁜 모습으로 살던 1남 4녀의 어머니였다. 아들을 꼭 낳고자 애쓴 보람으로 막내로 독자를 낳았으니 얼마나 좋았을 거란 것은 상상할만하다. J는 워낙 키도 훤칠하고 인물이 좋아 우리 예능원 졸업시에 왕자 역을 맡아 아이들과 어머니들의 부러움을 샀던 바로 그 J의 어머니였다. 잘 자라서 좋은 대학교까지 마치고 대 그룹에 입사했다. 나이 서른두 살에 결혼을 했는데 우리 회원들이 모두 참석했었다. 그 후 1년이 지나 손자를 보았으니 그 아이가 어떻게 사는지 많이 궁금했다. 부모님은 청주에 살고 아들 내외는 수원에 둥지를 틀었다. 첫손자를 출산하고 J의 어머니보다 아버지가 손자를 보고 싶어 안달을 하다가 며칠이 멀다하고 수원을 찾았다. 처음 몇 번은 반기던 며느리가 시부모가 자주 오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다는 것이다. 같은 지방에 살아도 손자가 보고 싶어 갈 때면, 지금 가도 되느냐고 물어 본 다음에 며느리 집을 방문하는 것이 요즘 세상이 아니던가. 모두 J엄마에게 좀 자제해야 한다고 했지만 자기 남편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다고 했다. 무더운 여름날이었단다. 그날도 아들네 집에서 잠을 자는데, 새벽에 손자 우는 소리가 들려 아들 방으로 가 보았더니, 며느리가 우유를 타서 아기에게 젖꼭지를 물리며, 아들을 발로 툭툭 차며 "자기야 얼른~ 자기야" 하며 깨우더란다. J는 비몽사몽으로 "응? 우리아기 깼어~." 눈을 부비며 아기에게 부채질을 하면서 "곰 세 마리 한집에 있어 엄마 곰 아빠 곰…. " 눈을 감은 채 노래를 부르며 율동을 하는 모양이 참으로 가관인지라, 차마 바라 볼 수가 없어 못 본체 슬그머니 그 방을 나왔다고 하였다. 우리는 허리를 잡으며 눈물이 나도록 박장대소하였다. 자랄 때는 잠 깨우는 것을 제일 싫어해 이런 말 저런 말로 달래가며 깨워 학교를 보냈는데, 장가들더니 자기 자식 앞에서는 눈을 부비며 곰 세 마리 노래를 불러 가며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렇게 해서 아기를 길러낸 어머니들이 그들의 아이들을 키우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녀의 며느리가 또 며느리를 보았을 때, 그 아들이 또 출산한 아기를 앞에 놓고, '곰 세 마리'노래에 맞추어 춤을 추는 모습을 본다면 그녀도 행복하다고 말 할 수 있을까. 그를 길러낸 어머니도 금쪽같은 손자를 바라보며, 옛날의 자기 모습을 상상하며 시모님이 생각나, 그리움에 젖어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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