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5. 31.
제주 신당 답사 사흘째
수산진성 진안 할망당 답사
제주 신당 답사 삼일째이다. 오늘은 제주를 떠나는 날이기 때문에 가방을 꾸려 챙겨가지고 버스에 탔다. 다들 엄청나게 큰 가방을 가지고 왔는데 나는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왔다. 그래도 하나도 불편한 점 없이 편안했다. 여성들은 하루에도 옷을 몇 차례씩 갈아입는 것이 신비스러웠다.
수산진성 진안할망당은 제주시 성산읍 수산리에 있다. 진안 할망당은 수산진성 안에 있다. 수산 진성 안에는 아름다운 수산초등학교가 있었다. 학교 안에 주차장에 버스를 세우고 내려서 운동장을 가로질러 학교 뒤쪽 귤 과수원 안에 있는 신당을 찾아간다. 아름다운 수산초등학교를 바라보면서 운동장을 지나 동쪽 귤밭을 통과하니 당올레가 나온다.
수산 진성은 1439년 세종 때 왜구의 침임을 막기 위해 제주 정의현에 쌓은 방어성이다. 그런데 성이 마치 학교 담장처럼 학교를 빙 둘러싸고 있고 학교는 작지만 매우 아름다웠다. 아름드리 나무가 있고 꽃이 피고 바윗돌이 그대로 있으며 운동장에 천연 잔디가 깔려 있는데 잡초가 하나도 없다.
운동장을 지나 귤밭을 건너 돌를 밟으며 당올레를 걸어 진안할망당으로 올라갔다. 진안할망당은 진성을 쌓을 때 마을 사람들을 부역에 동원하고 축성의 비용을 부담시켰는데 어느 가정에서는 너무 가난해서 재물을 내놓지 못하고 어미가 방정맞은 말을 했다.
"우리는 내놓을 거라고 저 딸내미밖에 없다"
그렇다고 관원들이 그 딸래미를 데리고 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때부터 축성하는데 사고가 계속 일어났다. 성을 쌓아놓으면 무너지기를 반복했다. 축성의 관계자들이 난감해 하고 있을 때 한 스님이 지나다가 아는 소리를 했단다.
"그 집 딸을 이미 토지신에게 제물로 바쳤는데 쓰지 않으니 사고가 난다."
라고 일러주어 여섯 살인지 일곱 살인지 이 아이를 데려다 성 아래 생매장하고 그 위에 성을 쌓으니 무너지지 않았다. 그런데 계속해서 어린아이를 묻은 부근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났다. 관원들은 그 아이를 위로하기 위해 당을 뫃고 제사를 올리고 진안할망이라고 하니 탈이 없었다.
그로부터 이곳은 진안 할망당이 되었다. '할망'은 제주에서 여신의 또다른 이름으로 쓰인다. 어려서 죽었어도 할망신이 된 것이다. 진안할망은 소원을 잘 들어주었다.
이 때마침 진안할망당에 치성을 올리러 오는 일행이 있었다. 여성 세 분이 제물을 많이 장만하여 들고 당올레로 함께 걸어갔다. 우리는 치성을 드리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기도 하고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제물을 진설하는 과정이 매우 길었으나 하나하나 빠뜨리지 않고 다 지켜 볼 수 있었다. 제물은 떡도 있고 옷감도 있고 과자, 초콜릿, 제웅도 있었다. 진안 할망이 어린 소녀이기 때문에 어린이 들이 좋아할 물건들도 마련해 온 것 같았다. 무당은 우리 일행에게 소지를 한장씩 나누어 주면서 접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접을 때 마음 속으로 소원을 한두 가지 말하면 이루어진다고 한다. 나는 소지를 받지 않았다. 소원이 대개 이루어지지만 '이혼하게 해 주세요.' 같은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고 오히려 할망의 저주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 분들은 제주 사람이 아니고 안양에서 일부러 찾아온 것 같았다. 무당의 말로는 제주에서 여기가 본당이고 자신도 대기업에 근무하다가 신이 찾아와 여기서 신내리궂을 하고 무당이 되었다고 이야기 해주었다. 무당이 생각이 넓어서 타종교인에게 거리를 두지 않고 하나의 문화로 인정해 달라며 함께 치성을 드리도록 유도했다. 무당이 接神하는 과정을 눈으로 보았다. 기도가 시작될 때 무당이 몸을 부르르 떠는 듯하더니 아기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일종의 빙의憑依라고 할 수 있다. 어렸을 때 이런 모습을 보고 처음 본다. 기도를 하러 온 두분은 가정에 답답한 일이 있는지 아이 목소리로 말하는 무당의 말에 고분고분 따르고 대답했다. 불자로서 무신을 섬기지 않으면서도 무당이 하도 진지하게 치성을 드리므로 나도 거기 빠져버렸다.
돌아오는 길에 제수로 쓴 떡을 시루째 내주어 학교 벤치에 앉아서 맛있게 먹었다. 민속신앙은 미신이라며 경원시할 것이 아니라 우리네 살아온 문화의 흔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바른 길이라 본다. 모든 종교도 역시 원시시대의 우리 조상들이 섬겼던 샤머니즘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오늘 참 많은 문화를 보았다. 삶의 공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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