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과 서재/문학과 수필평론

수필의 바이블 ‘누비처네’ (이명지 수필가)

느림보 이방주 2024. 6. 13. 10:55

수필의 바이블 ‘누비처네’ 

                                  이명지 mjlee8978@hanmail.net 

 목성균의 수필은 현대수필의 바이블 같은 글이다. 수필 문학의 기준을 제시하고 지평을 보여주며 수필가들에게 문학적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글이다. 내가 수필을 강의할 때 좋은 수필의 본보기로 꼭 추천하는 책 중 하나이기도 하다.  

 자신의 삶에서 소재를 찾아 사유하는 글인 수필은 진정성을 생명으로 한다. 소재는 일상에서 얻지만 시선은 철학적 관조여야 한다. 장자도 ‘진정이란 정성이 지극함을 말하고, 진정이 아니고는 사람을 움직이지 못한다’고 말했다. ‘진정한 친함은 웃지 않아도 사람을 친화케 하고, 진정이 안에 있으면 저절로 그 마음이 밖으로 드러나게 된다’고도 했다. 목성균의 수필이 그러하다. 수채 물감으로 그린 풍경화 같은 그의 글은 꾸밈없는 진솔함에 사유의 깊이와 삶의 철학이 담겨있다. 더욱이 글에서 느껴지는 인간적 품성은 읽는 이를 따뜻하게 끌어안고 토닥거린다.  

 목성균의 글을 접하면 일면식이 없어도 그가 고향 친구나 선배처럼 느껴진다. 내가 연재하고 있는 ‘나를 사로잡은 문장’에서 ‘누비처네’를 다룬 후 많은 이들이 ‘누비처네’에 대해 물어왔다. 수필가들에겐 널리 알려진 작가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아직 생소한가 보았다. 한결같은 반응은 이런 좋은 글을 알게 돼서 기쁘다거나 고맙다는 것이다. 나는 마치 내 글인 양 뿌듯했다. 더욱이 그가 산림직 공직자였다는 사실이 <산림문학> 문우들에게 알려지면서 이번에 특집으로 편성되어 영광스럽게도 작품 추천의 기회까지 얻게 됐다. 정성스럽게 다시 한번 목성균 전집 <<누비처네>>을 읽으며 ‘누비처네’, ‘어떤 직무유기’, ‘혼효림’ 세 편의 수필을 추천하게 됐다.  

 ‘누비처네’는 수필의 문학적 아름다움과 완성도를 잘 보여주는 목성균의 대표작이고, ‘어떤 직무유기’, ‘혼효림’은 산림직 공직자로 근무하던 시절의 일화와 삶의 철학을 감명 깊게 보여주기에 골랐다. 사실 목성균의 수필은 어떤 작품을 뽑아내도 모두가 대표작이 될 수 있을 만큼 모든 작품이 훌륭해 세 편을 고르는 게 쉽지 않았다.  

 ‘누비처네’는 본가에서 첫 아이를 낳은 아내를 명절에도 보러 갈 여력도 없이 객지에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부친이 소액환을 끊어 보낸 돈으로 사 간 아기 포대기 누비처네에 얽힌 이야기가 담긴 글이다. 나는 이 구절을 가장 백미로 꼽는다.  

“달빛을 담뿍 받고 방긋방긋 웃는 제 새끼를 업은 여자와의 동행, 나는 행복이 무엇인지 그때 처음 구체적으로 알았다. 아버지는 푸른 달빛에 흠뻑 젖어 아기 업은 제 아내를 데리고 밤길을 가는 인생 노정에 나를 주연으로 출연시킨 것이다. ‘임마, 동반자란 그런 거야’하는 의미를 일깨워 준, 아버지는 탁월한 인생 연출자였다.”  

 ‘어떤 직무유기’는 강릉 영림서 진부관리소에서 근무할 때 일화를 바탕으로 삼았다. 섣달그믐날 눈에 묻힌 산골 동네로 명절을 쇠러 온 도벌꾼을 잡아 오라는 임무가 떨어진다. 아무리 직무라지만 너무 비정하다는 생각이었지만 소장의 명령을 어쩌지 못하고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찾아간다. 그러나 오두막집 댓돌 위에 놓인 하얀 여자 고무신 한 켤레와 조약돌 같이 작은 까만 고무신 한 켤레, 그리고 다 헐고 흠뻑 젖은 남자 농구화 한 켤레…. 

 그는 어떤 직무유기를 했을까. 나는 이 글을 읽는데 혹한의 설국에서 가슴에 따뜻한 난로 하나가 피워지는 것 같았다. ‘혼효림’은 산림직을 인생의 가장 긴 시간 일터로 삼았던 그의 삶의 철학과 인생관이 가장 잘 담긴 글이라 보여 골랐다. 소나무와 참나무의 속성과 특성을 깊이 관찰한 시선으로 그 쓰임새와 품격까지 논하고 있다.  

 “사람들은 언필칭 소나무는 선비에, 참나무는 상민에 비유한다. 그러나 두 나무는 우열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다. (...) 참나무가 백중판의 상민들 같다면 소나무는 정자 위에 앉아서, 또는 탁족(濯足)을 하면서 음풍농월(吟風弄月)하는 선비 같다.” 

 특히 그가 “소나무와 참나무가 25대 75%가 되었을 때 가장 이상적이며 그 돈독한 숲의 사회상이 인간사회의 구성 요소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라고 한 대목에서 작가의 깊은 사유가 배어난다. 

  이 책의 발문에서 김종완 평론가는 “고향의 농경이 그의 삶과 문학의 모태라면, 젊은 날을 보냈던 산악은 그의 마음을 키워준 수련터”라고 했다. 그는 장학생으로 입학했던 서라벌예대를 중퇴하고 낙향해 농사도 지어보다가 서울에서 인쇄소도 해보다가 실패하고 산림 공무원이 된다. “문학이라는 것을 어디 배워서 하는가. 참다운 문학은 삶의 현장에서 몸으로 부대끼면서 얻어지는 것. 그러나 현실은 그에게 한 줄의 글쓰기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한다.  

 작품 세 편을 고르며 마지막까지 넣을까, 뺄까 고민했던 작품이 ‘배필(配匹)’이다.  

“어느 날 집에서 보낸 하서(下書)가 당도했는데, 강원도 귀래라는 곳에 전주 이씨 성을 가진 참한 규수가 있어서 네 배필로 생각하고 있으니 그리 알라는 내용이었다. 배필이라는 아버님의 굵직한 필적이 젊은 내 가슴을 설레게 했다. 평생 같이 뛰게 내 옆에 붙여 줄 암말 한 필, 나는 저녁 식사 후면 돈대에 앉아서 서해 낙조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참하단 말씀이시지-. 꽃처럼 예쁠까, 암말처럼 튼튼할까.’” 

 ‘임마, 고급진 에로티시즘이란 바로 이런 거야!’ 하고 어깨를 툭 치는 것 같은 글이다. 이 밖에도 ‘세한도’, ‘약속’ 등 주옥같은 작품을 들고 나는 욕심 많은 아이처럼 어느 것도 놓지 못하고 쩔쩔맸다.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지. 목성균이란 작가가 있다는 사실이, 내게 그의 책 <<누비처네>>가 있다는 사실이…. 

※ 출처: 목성균, 『누비처네(개정판)』, 2024. 5. 15 연암서가 

산림문학 2024년 여름호(45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