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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인도 성지 순례 2일차 12월 6일 카투만두 → 포카라

느림보 이방주 2016. 12. 7. 00:59

네팔 인도 성지 순례 2일차 12월 6일  카투만두  → 포카라


▣ 찾아간 곳 : 부다스투바, 더르바르 광장, 쿠마리 사원, 카트만두 왕궁, 스와얌부나트, 포카라 페와 호수


오전 3시 30분

한국 시간으로 6시다. 4시 30분이 모닝콜이지만 잠이 깨어  일어났다. 어제 여행기를 정리하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다. 다행히 호텔이 와이파이를 허락해서 아이들과 친구들에게 네팔의 소식을 카톡으로 보냈다. 바쁘다. 아무데서나 여기는 와이파이가 터지는 게 아니다. 한국 같은 통신의 천국은 없다.

차를 끓이고 옷을 갈아입는다. 조금 따뜻한 옷을 입었다. 오늘 일정을 읽어본다. 어제 받은 '가다'를 목에 둘렀다. '가다'는 귀인을 맞을 때 주인이 손수 걸어준다고 한다. 이마에 붙이는 '티카'는 아직 받지 못했다. '티카'는 힌두교 사원에 참배를 해야 이마에 붉은 점을 찍어 준다고 한다.

 

오전 5시 30분

시리얼을 한 사발 따뜻한 우유에 말아 먹었다. 빵을 종류 별로 가져 오고, 감자와, 멜론, 수박, 파파야, 토마토까지 다 먹었는데 바나나죽이 맛있다고 해서 두 국자를 떴다. 우트밀을 갈아 만든 죽이다. 종류별로 체험한다고 하다가 또 과식했다. 커피를 원하면 커피를 따라 줄 정도로 모두 친절하다.

호텔 식당 내부

내가 차린 호텔 식

현관의 꽃

파크빌리지 호텔 마당에서

안중묵 이재량 선생님 부부


오전 6시30 분

부다스투바로 출발한다. 부다스투바란 붓다의 사리를 보관한 탑을 의미 한다. 카트만두에서 가장 큰 스투바로 보다나트를 찾아 가는 거리는 지진으로 무너진 채 있기도 하고 보수 공사가 한창이다. 먼지가 많고 사람도 참 많다. 그러고 보니 네팔인구가 3500만이라고 한다.  


매우 복잡한 거리에서 내려 골목으로 들어가니 너른 광장이 있고 광장을 가득 메운 불탑이 눈을 부릅뜨고 세상을 내려다 보고 있다. 하얀색 탑 위에 스투바가 올려진 형식으로 13계단의 금빛으로 반짝이고 '룽다'라고 하는 5색 경전 깃발은 줄에 매달려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13개의 금빛 계단도 다 따로 의미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룽다는 바람 불어 나부끼면 그 때마다 경전이 읽히어 모든 사람에게 전해진다고 한다.


참배자 수도자들이 북적인다. 아내와 나는 부다스투바에 삼배를 올려 참배하고 한 바퀴 돌았다. 수많은 순례자들이 북적이고 있다. 이곳은 성지를 찾는 불자들에게는 성지 중의 성지이다. 생각 같아서는 하루종일 탑돌이를 하고 싶지만 일행이 있고 일정이 있다. 간신히 빠른 걸음으로 한 바퀴 돌았다. 사람들이 걸릴 정도로 많은데 대부분 티벳에서 온 라마교 신도들이라고 한다. 삼보일배 하는 이도 있다. 온몸이 마르고 때가 묻고 손이 갈퀴처럼 되었어도 오로지 불심 일념 뿐인 것으로 보인다.


스투바의 주변에 불교 사원이 많다. 사원도 많고 불기를 파는 가게도 많았다. 염주를 모셨다. 큰 것은 20불, 보리수 나무로 깎아 만든 작은 것은 5불이다.

 

보다나트의 부다스투바

스투바 주변의 수도자들

수투바 아랫 부분의 불경

경건해진 불제자


무너진 건물


오전 7시 30분 

더르바르 광장으로 이동한다. 지진의 흔적이 역력하다. 가난한 네팔이 복구할 수 없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유네스코나 세계 여러나라에서 구호품을 보내 주거나 복구비를 지원해 주면 정치인들이 그것을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고 있다고 한다. 정치라는 종교는 어디서나 그렇게 부도덕한가 보다. 지진으로 무너진 잔해를 쌓야 놓은 곳을 지나노라니 이방인도 마음 아픈데 네팔 국민은 오죽하랴. 그러나 정치인들의 눈에는 그것은 보이지 않고 다른 것만 눈에 보이는 모양이다. 어느 나라이고 정치인의 시선은 잿밥에 있는가 보다.


더르바르 광장 (원숭이 왕궁, 하누만 도카, 쿠마리 사원 등)

더르바르 광장은 네팔의 광장이다. 카트만두 (카트만두 더르바르 광장), 파탄 (파탄 더르바르 광장), 박타푸르 (박타푸르 더르바르 광장)에 위치한 광장이 제일 유명하다. 카트만두에 있는 더르바르 광장은 시내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대 네팔 왕궁이 이곳에 있어 허누만 도카 궁전광장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허누만은 원숭이 신을 의미하는데 궁전의 중앙 입구 오른편에 붉은 칠을 한 원숭이 석상이 있다. 원숭이 신은 더르바르 광장의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는데, 지금도 많은 힌두교인이 찾고 있다. 더르바르 광장은 옛 왕궁 외에도 살아 있는 신이라고 불리는 꾸마리가 살고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더르바르 광장에 갔다. 주로 힌두 사원이다. 지진에 무너진 처참함 속에서도 순례자들의 참배가 끊이지 않는다. 비둘기, 개, 소와 사람이 엉켜서 무질서하다. 특히 원숭이신인 하누만신에 대한 참배 경쟁 대단하다. 하누만신은 카스트 계급의 가장 하층 계급인 수드라들이 제일 경배하는 신이라고 들었다. 무너진 신전에도 참배는 끊이지 않는다. 이방인의 눈에는 지진에 무너진 문화유산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어 안타깝다.


네팔에서 가장 높은 불탑인 보다나트는 9층까지 있는 목탑이었는데 지진에 무너져 3층 까지만 남았다고 가이드는 설명했다. 목탑을 설명하는 가이드읨 목소리가 울먹이는 듯했다. 그는 무너진 문화재보다 생명을 잃은 많은 사람들이 더 안타까운 모양이다.


쿠마리 사원의 건물도 지진의 영향 을 받아 지지대로 떠받치고 있다.

쿠마리 사원 안 쪽으로 들어갔는데 '쿠마리'는 보이지 않았다. 소녀가 아주 어린 나이에 선발된다고 한다. 석가모니의 가정인 샤카족의 후손이어야 하며, 몸이 깨끗해야 하고, 몸에 작은 흉도 없어야 하는 등 까다로운 여러가지 조건이 통과되어 이곳에 들어오면 밖에 나가지 못하고 신비성을 유지하며 살다가 초경이 오면 다음 쿠마리에게 물려주고 다른 세계에 나가서 평민으로 산다고 한다. 그는 어린 시절을 격리되어 살아야 하기 때문에 아마도 세상에 적응하기 매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꾸미리의 삶은 결코 행복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당사자는 쿠미리로 선발되는 것을 가장 영광으로 생각할 것이다.

카투만두 왕궁을 끝으로 스와얌브나트로 향한다. 더르바르 광장은 불교 사원과 힌두사원이 함께 있어서 신성한 장소이기는 하나 지진 피해를 복구하지 못해 안타까웠고 순례자와 순례자를 바라보는 상인의 눈초리가 다르게 보였다.  소나 개 비둘기 원숭이의 배설물이 매우 불결해서 성지의 면모라 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여기서는 동물의 오물도 신성한 것으로 본다면 별개의 문제라 생각한다.


 

더르바르 광장으로 들어가는 곳

거리의 방랑 신 소와 개


위험한 쿠미리 사원

꾸미리 사원의 안마당

근대식 사원도 위험

광장의 모습

탑이 있던 자리

사원의 조각이 예술이다.

힌두 사원의 주변

힌두 사원의 참배객들

여성 회원들

소들은 자신이 신인 줄 모른다.



사원의 모습

광장 모습

참배할 꽃을 파는 상인들

사원이 있는 거리


오전 8시30분 

스와얌브나트는 네팔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 사원이다. 여기도 지진 피해가 심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스와얌부나트는 네팔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 사원으로 175의 언덕 위에 세워져 있다붓다의 눈이 세상을 내려다보는 10높이의 불탑이 무척 인상적이다. 사원으로 가는 길에는 300개가 넘는 가파른 돌계단이 이어져 있고, 기념품과 골동품 상점, 원숭이들로 북적거린다. 외국인들에게는 스와얌부나트라는 이름보다 원숭이 사원 별명이 더 친숙하다 유골을 매장한 인도 화장묘, 스투파를 한 바퀴 돌면 불경을 1000번 읽는 것만큼 공덕을 쌓는 것이라 믿는 불자들로 스투파 주변은 언제나 분주하다.  수많은 작은 탑은 우리나라의 부도와 같은 기능을 하는 것 같다.

 

스와얌부나트에 올라갈 때 어린 아이를 안은 여인이 아이를 가리키며 손을 내밀기에 얼른 1달러를 주었다. 굉장히 고마운 표정을 지으며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을 보면서 우리에게 큰 돈이 아닌 1 달러가 그렇게 기쁜 보시가 되는 것을 보며 기분 좋았다. 그런에 그 여인이 얘기를 했는지 한 대여섯은 되는 여인들이 똑 같은 차림으로 내게 달려 들었다. "아 이건 아니구나." 돈이 아니라 굉장히 난처한 처지에 처하게 되었다. 나뿐 아니라 다른 일행들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무슨 조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시는 아기 안고 있는 여인에게 돈을 주지 말자.


원숭이들의 천국이라는 말에 걸맞게 원숭이들이 어울려 놀고 있다. 이들이 사람에게 가까이 오는 것은 사람들이 던져 주는 초콜릿이나 비스켓을 받아 먹기 위한 것이었다. 길잃은 개들이 여기저기 누워있다. 참배객과 개 원숭이가 섞여 무질서한 속에서도 부처님을 향한 마음은 하나로 보였다. 거리는 개 소 원숭이들의 천국이다. 청소를 했는데도 냄새가 남았다. 냄새가 사원에 피운 향에 섞여 모두 향이 되었다. 부처님 세계에 더러움은 없다. 모두 하나로 소중하다.


스와얌부나트로 들어가는 중

 

수트파 앞에서

천상천하유아독존 아기 부처님상

정상의 스투파

사원의 수행자 처소

불탑군- 부도처럼 보인다

내부는 촬영할 수 없다.

불경을 읽어


스와얌부나트에서 내려오면서 카트만두 시내

원숭이 족장인지 점잖다. 자기가 하누만신인지 아나?


오전 9시

포카라를 향하여 출발했다. 220km인데  7시간 거리란다. 우리나라 같으면  2 시간 남짓이면 충분할 텐데 말이다. 1시간을 왔는데 시내를 벗어나지 못한다. 길은 좁고 엄청나게 밀린다. 차들은 차선을 지키지 않는다. 버스, 트럭이 엉켜 차가 움직이지 못한다. 카트만두에서 제2 도시인 포카라로 가는 주요 도로인데 그렇다. 그래도 불편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 바람에 수도 카투만두의 사는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다.

아이들이 그 때서 학교에 간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학교는 10시에 시작되어 4시면 끝난다고 한다. 이곳 선생들은 참 좋겠다. 이곳 학생들은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학생들은 오후 10시가 되어야 학교에서 파하는 것 아닌가? 그러니 네팔이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 중의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  긴 밧줄에 자루를 매달아 흙을 담아 올리며 우물 파는 모습은 어린시절 많이 보던 모습이다. 그래도 우리는 도르레를 썼던것 같은데 수십년 지난 지금 두 사람이 힘으로 당기고 있다. 트럭의 앞머리는 대부분 힌두이즘에 따른 기원의 문양으로 장식했다. 앞 유리가 깨진 버스 운전기사는 마스크를 쓰고 운전한다. 버스는 대부분 초만원이다. 사람이 너무 많이 타서 문을 닫지 못하고 달리기도 한다. 차장이 있다. 70년대 우리 시내버스를 생각나게 한다.


가게는 물건이 팔리는지 마는지 주인은 그냥 앉아 있다. 10시가 다 되었는데 등교하는 아이들, 그 밝은 모습. 지진 이후 집을 1층만 짓고 2층은 철근콘크리트 기둥만 세웠다. 돈이 생기면 또 이어지을 기세이다. 네팔 사람들의 꿈과 소망이 옥상에 세워진 기둥에 담겨 있는 듯하다.

 

네팔에서 북인도를 오가는 트럭들


포카라
포카라는 네팔의 수도인 카트만두에서 서쪽으로 약 200 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도시로 약 19만 명의 주민이 살고 있어 네팔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꼽힌다. 30 km 이내에 다울라기리, 안나푸르나, 마나슬루 등 8,000 m가 넘는 고봉이 위치하고 있어 페와 호수 등 포카라 인근 어디에서도 이들 산을 조망할 수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는데, 특히 인근에 있는 사랑곳은 고산준봉을 조망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꼽히고 있다. 그 밖에도 물이 깊은 구멍으로 떨어지면서 사라져버리는 다비스 폭포도 유명한데 그 이름은 다비 또는 데이비드란 사람이 물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려고 구멍 안을 들여보다가 떨어진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12시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었다. 한 식뷔페이다.  밥, 시금치 무침, 감자채볶음. 생선튀김, 닭고기 감자볶음, 양배추 볶음, 스파게티, 닭고기 넣은 채소국을 먹었다. 그냥 먹을 만하다. 배도 고프니까. 아무튼 식당에서 우리 입맛에 맞추느라 애쓰는 모습이 보여 고맙다. 가이드 수리야씨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점심을 먹고 버스는 정신없이 달린다. 나쁘게 말하면 난폭 운전이고 좋게 말하면 곡예 운전이다. 이렇게 터덜거리는 버스를 타본게 얼마만인가. 이렇게 먼지를 날리며 달리는 버스를 본 것은 또 얼마만인가?

 

소도시 두서너 곳을 지났다. 동유럽에 비해 사람이 많다. 도시에도 도로가 정비되지 않아 먼지가 많고 깨끗하지 않다. 사람들은 도로 주변에 할일없이 서성이는 모습이다. 가이드는 욕심 없이 살아서 그렇다고 한다. 하지만 욕심이 없는 것과 의욕이 없는 것은 다르다.

포카라에 다가오자 히말라야 만년설산이 보인다. 언뜻언뜻 보이고 지나가는 설산들을 찍으려고 춤을 추듯 흔들리는 버스에서 애썼으나 쉽지 않았다.

 

오후 4시가 넘어 포카라 시내에 도착했다

내는 매우 번잡하고 사람이 많다. 중앙선도 그어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좁은 길에서 버스. 대형 트럭. 오토바이, 자전거, 사람들이 뒤엉켜 혼잡한데도 용케 빠져나가는 버스를 보면서 사람은 다 살게 마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포카라는 비교적 깨끗한 도시다. 먼지도 없고 건물도 번듯하다. 살림집들도 크고 좋다. 또 히말라야 설산들이 수호신처럼 둘러 싸고 있어 신비롭게 생각되기도 했다.

시내 중심가를 통과하여 페와호수로 가는 길에 비행장도 있다. 28인승 국내선이 이착륙한다고 하는데 카투만두에서 28분 걸린다고 해서 기가 막혔다. 우리가 7시간을 달려온 길인데 말이다.

 

4시 40분

페와호수에서 보트를 탔다. 보트를 타면 히말라야 설산인 안나푸르나 연봉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보트 한 대에 4명씩 타고 사공이 노를 저었다. 보트라기보다 나룻배라고 이름짓는 것이 좋겠다. 배를 타고 가는 동안 마차푸차레, 안나푸르나, 다울라기리, 마나슬루 봉우리들을 사공이 하나하나 일러 주었다. 뾰족한 삼각형 마차푸차레는 힌두교의 시바신과 부인 파르바티가 살았다고 하여 신성시 한다. 그래서 네팔 정부에서 등반을 불허한다고 한다. 아닌게 아니라 여기서 봐도 작은 산의 등성이를 넘어 뾰족한 얼굴을 내밀고 시내를 지켜보는 모습이다. 이곳에서 설산을 보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신비스럽게 보인다. 거리는 30km라는데 아주 뒷산처럼 가까이 보인다. 저기를 한 번 걸어보았어야 하는데 그럴 기회가 참 많았는데 용기를 내지 못한 게 후회스러웠다. 사공은 힌두사원이 있는 섬을 한바퀴 돌아 호숫가에 배를 댔다.


가이드를 따라 시내 기념품 가게를 구경했다. 캐시미어를 직접 짜는 베틀을 봤는데 원리는 우리나라 베틀과 같다. 다만 북이 작고 자동으로 움직이고 잉앗대가 4중으로 되어 있어 더 섬세하다. 북을 손으로 집어 바디 사이로 넣는게 아니라 연결된 끈에 달린 손잡이를 당기면 한꺼번에 움직였다. 옛날 어머니가 명주를 짜거나 베를 짜는 모습이 생각난다.

 

포카라 시내의 모습

포카라 시내 모습

차 안에서 본 인나푸르나 연봉

차창으로 본 안나푸르나

마차푸차레의 위용

페와호수의 흰두사원이 있는 섬

설산에 비친 저녁 놀


페와호수에서 본 설산

안중묵선생님 부부 모습 - 갤럭시S-5 폰으로 촬영

이용원 박호준 선생님 부부

저녁놀에 비친 안나푸르나

안나푸르나 연봉들-가운데 마차푸차레


호수에 비친 설산 (다울라기리는 안보이고 마차푸차레는 반만 보인다. 안나푸르나 남봉 1봉, 마차푸차레, 안나푸르나3봉 안나푸르나 4봉, 안나푸르나 2봉, 저 뒤에 마나슬루 )



이효정 선생님과 우리 부부(이재량선생님 사진)

캐시미어 가게의 베짜는 모습

호텔에 모셔신 힌두신상



호텔 식당 내부

나의 메뉴

6시30분 

호텔 저녁식사는 점심과 별다른 게 없었다. 구운 닭고기가 맛있었지만 한 조각만 먹었다. 이효정 대장이 가져온 파김치가 인기를 끌었다. 우리도 무슨 반찬을 해 온 것 같은데 아내가 아직 내놓지 않는다. 아마도 고추장 볶음, 들깻잎장아찌, 무장아찌, 멸치볶음, 김구이 등을 해 왔을 것이다. 어떤이는 네팔음식이나 호텔식이 입에 맞아 아무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아무리 네팔 인도 음식이 좋다고 해도 우리 음식이 그리울 때 요긴하게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맛있는 네팔음식에 우리 음식을 곁들이니까 더욱 맛있게 먹으며 지루하지 않은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대장 사모님은 국내 등산을 할 때도 김치를 자주 가져 오신다. 이번에도 안중묵 선생님 사모님이 고추장 볶음, 깻잎 등을 가져 오셨고 다들 입맛을 살릴 수 있는 반찬을 가져 왔다.

저녁을 일찍 먹고 객실로 들어 갔다. 방은 넓고 깨끗하다. 난방도 잘된다. 따뜻한 물에 몸을 씻고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