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1. 29.
규연이는 수필도 읽어요. --232일째
11월 29일 금요일
<규연이의 일기>
오늘은 창문으로 햇살이 환하게 들어왔어요. 어제까지 하늘에서 이상한 것들이 나폴나폴 날려서 한참 동안이나 창밖을 내다 보았는데 엄마가 그러는데 그게 눈이었다네요. 아빠가 눈을 떠와서 처음으로 만져보고 아빠 엄마가 눈으로 뽀로로를 만들어 주어서 나도 한참이나 들여다 봤었어요. 그런데 밖이 춥다고 엄마가 문화센터에도 안 데려가고 바깥바람 쐬고 싶은 것도 참으라 해서 답답증이 나네요. 그런데 오늘 하늘이 파랗고 따스한 햇살이 집안까지 들어오니 나도 기분이 좋으네요.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것만으로는 내 호기심을 채울 수가 없어요. 그래서 거실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척하다가 엄마가 주방에서 뭔가 일을 하는 동안 슬그머니 내 방으로 기어갔어요. 장난감의 천국이거든요. 거긴 엄마가 이것 저것 공부해야 할 것들을 붙여 놓고 가끔 따라하라는 듯이 읽어주곤 하는데 도대체 말이 밖으로 비어져 나오질 않네요. 그래서 말을 하려고 하면 그냥 "에에에```````"하고 이상한 소리가 되고 말아요. 방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혼자 놀다 보니까 엄마가 어디로 가버리면 어쩌나 하고 겁이 덜컥 났어요. 살금살금 거실로 기어나와 보니 엄마는 여전히 주방에서 뭔가 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 문이 있는데 평소에는 깜깜해요. 엄마는 거기를 현관이라고 해요. 내가 나갈 때는 유모차를타고 그리 나가고, 들어올 때도 엄마가 뭔가 누르면 문이 열려서 그리로 들어오거든요. 가끔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실 때도 그리로 들어 오시는데 엄마는 나를 안고 마중을 나가셔요. 그런데 내가 그 앞으로 가기만하면 천장에서 불이 환하게 켜져요. 나는 그 불빛이 신기하기도 하고 밖에 나갈때 나를 태워주는 유모차인가 뭔가 하는 물건이 현관에 있는데 그놈이 어떻게 굴러 가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요. 나는 또 그게 궁금해지지 시작했어요.
엄마가 계속 뭔가를 하는 동안 살그머니 현관으로 나갔어요. 요전에 화장실이 궁금해서 들어갔다가 엄마를 놀라게 한 적이 있어 아주 조용히 기어갔어요. 요런 요상한 짓을 하면 엄마는 출근해서 회사에 있는 아빠, 고모, 이모,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소문을 내서 그 분들이 나를 만나면 "화장실에 갔쪄여?"하면서 놀리거든요. 현관으로 가니 또 불이 켜졌어요. 불이 켜지니 유모차 바퀴가 환히 보였어요. 살금살금 기어가서 그놈을 만져 보는데 불이 꺼지네요. 그런데 내방 창으로 들어온 햇살 때문에 그놈을 확실히 관찰할 수 있었어요. 그놈이 동그랗게 생겨서 바퀴라고 하는 모양인데 땅에 굴러가니까 내가 편히 앉아 있을 수 있는 물건이구나 생각하면서 만져 봤지요. 평소에 가지고 놀던 장난감과는 아주 다르네요. 입으로 깨물어 볼까 하다가 입으로 가져갈 건 아니다 싶어 만져보기만 하고 있었지요.
그 때 엄마가 달려왔어요. 엄마는 "규연이 거긴 왜 갔어요." 어쩌구 하면서 큰일이나 난 것처럼 나를 번쩍 안아 거실로 데려 갔어요. 나는 "엄마 아직 다 못 봤어요. 더 만져 봐야 알 수 있어요. 놓아주세요. 제발 제발" 하면서 소리를 질렀지요. 그런데 내 말은 그냥"에에에``````" 하는 소리로만 나오니 엄마가 알아들을 수가 없었겠지요. 삼신할머니, 나는 언제쯤 말을 할 수가 있을까요. 답답해요. 빨리 말하게 해주세요. "에에에``````옹알옹알"
엄마는 나를 발가벗겨 또 목욕을 시켰어요. 나는 물은 좋아하니까 다른 애들처럼 울지는 않았지만, 엄마가 몸을 닦아주는 동안 내내 언제 거기를 또 한 번 가보나 하고 계산하고 있었지요. 엄마는 내 옷도 다른 옷으로 입히고 전에 입었던 옷을 세탁해 버렸어요. 거기가 그렇게 더러운 곳인가요?
오후에 현관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더니 할머니가 오셨어요. 할머니가 오시면 할아버지도 뒤따라 오시거든요. 할아버지는 재미는 없지만 나를 안으면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볼 수 있게 해 주셔서 그건 좀 재밌어요. 나는 할아버지가 나를 안아주면 현관으로 가자고 부탁해 보려고 마음 먹었지요. 할머니가 무슨 음식을 가져 오셨는데 냄새가 기막혔어요. 그런데 궁금하고 먹고 싶어서 가까이 가려고 하면 얼른 안아서 다른 곳으로 데려가곤 하니 도대체 볼 수가 있어야지요. 할머니가 나를 안고 있는 동안 엄마와 할아버지가 "맛있다. 맛있다.고기도 맛있고 김치도 맛있고" "이건 목살이야. 사태살보다 더 맛있어." 하면서 먹는데 왜 나에게는 주지 않았을까요? 나는 계속 침이 솟아나서 침만 빨아 먹고 입만 오물오물거렸네요. 전에도 할머니가 요런 걸 가져 오셨는데 그때는 맛있는 냄새를 잘 몰랐거든요. 그러니 먹고 싶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이번에는 꼭 한 번 맛을 보고 싶었어요. 그러나 아직 때가 아닌가 봐요. 그래서 내게 안 주시겠지요.
엄마는 할아버지가 오시면 꼭 커피를 만들어 드려요. 과일도 깎아드리고 떡을 따뜻하게 만들어 드리는데 할아버지는 떡보인지 고기보다 더 좋아하셔요. 커피를 마시면서 꼭 "아 커피 맛 좋다." 하거든요. 그런데 고소하기도 하지만 씁쓸한 냄새가 나는 커피를 왜 그렇게 좋아할까요. 그런데도 내 입에는 왜 침이 생길까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번갈아 계속 안아 주셔서 나는 호강을 했어요. 그런데 유리창에 매달려 있는 버티컬 손잡이를 만져보고 싶어서 그쪽으로 가자고 몸을 바둥거리면 할아버지는 곧잘 가 주고 그놈을 만져 보게 하는데 잇몸이 간지러워서 깨물어 보려고 하면 할아버지는 "먹는 거 아니네요. 깨끗하지 않네요." 하면서 금방 빼앗아 버리는 거예요. 나는 그게 아쉬워 자꾸 가자고 하면 절대 입에는 못 가져가게 하네요. 그건 먹는게 아닌가 봐요."
할아버지는 나를 안았다가도 할머니처럼 오래 안아주지 않고 "규연아 앉아서 놀자." 하면서 바로 소파에 앉아버려요. 나는 답답해서 또 끙끙대면서 발을 바둥거리며 할아버지를 괴롭히지요. 그러면 할아버지는 바로 일어나 주셔요. 할아버지는 약간 꾀를 부리지만 바로 내 소망을 들어 주시네요. 그러면 나는 기분이 좋아 "에에에``````"하고 소리를 질러대지요.
할아버지가 무슨 책을 가져왔는데 표지가 아주 예뻐서 만져 보고 싶은데 만져보고 입에 대보려고 하면 바로 빼앗아버리는 거예요. 나는 입에 대보고 맛을 봐야 속이 시원한데 어른들은 왜 그것을 못하게 할까요? 엄마가 그 책을 읽고 있는 동안 나는 할아버지가 안고 여기 저기 다니면서 이것저것 들여다 보고 만져 보았어요. 그런데 한참 들여다 보고 있으면 할아버지는 금방 딴 곳으로 가버리는 거예요. 진득하게 한 곳에 있지 못하는 할아버지는 무슨 병일까요?
할머니 할아버지랑 더 놀고 싶어 잠들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는데 엄마가 우유를 주는 바람에 그걸 먹다가 깜빡 잠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걱정되어 또 잠이 깼지요. 그 때 할아버지 할머니가 가셨어요. 나는 참 섭섭했어요. 눈물이 나려고 하는 것을 간신히 참았어요. 한번 왔다 가시면 한 열밤은 자야 또 오시거든요. 그러니 섭섭하지요.
엄마가 할아버지 수필을 읽어 주셨어요. 나는 글자를 모르니 답답하지만 읽을 수가 없는데 엄마가 읽어주니 대충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는 하겠는데 내 느낌은 말할 수가 없네요. 말만하면 "에에에~~~ 옹알옹알" 이렇게 나오니 답답할 노릇이지요.
오늘 아주 재미있는 하루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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