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사랑의 방(가족)

해후

느림보 이방주 2013. 7. 27. 20:00

2013년 7월 27일

 

할 수 없다. 네비게이션이 지시하는 대로 강둑이건 논둑이건 달리는 수밖에. 좁은 강둑을 한참이나 기어가다시피 했다. 앞에 자전거를 타고 가는 노인이 있어 속도를 낼 수 없다. 엔진 돌아가는 소리를 들었을 텐데 천하 태평이다. 그래 이제 거의 다 왔는데 얼마나 가랴. 이렇게 사는 것이 평화이다. 옛날에 우리는 그렇게 태평하게 살아오지 않았는가? 그렇게 강둑을 가다보니 네비가 둑 아래로 내려서란다. 그래 가 보자. 40년 만의 해후. 마음이 급할수록 시간은 멀고도 멀다. 강둑에서 막 내려서니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안내를 종료합니다."하는 차가운 여자의 목소리를 끝으로 지도가 바뀌어 버린다. 아 여기가 곧 273-3번지구나. 황당하다. 어디로 가라고 길 가운데 세워 놓는가?

  

할 수 없다. 전화를 걸 수밖에. 6촌 자매들 중 가장 어린 열흘 앞선 누나 금례에게 전화를 했다. 바로 나온단다. 2분이나 지루하게 기다리니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핑크빛 셔츠가 손을 흔든다. 달려 갔다. 아무데나 주차했다. 우리는 6촌 남매라기보다 친구이다. 초등학교를 같이 다녔고 중학교도 같은 길을 걸었다. 어느새 숱많은 단발머리에 서리가 내려 이마를 덮어 팔랑거린다. 눈빛에 착한 장난기는 아직 남았다. 큰당숙 장례 때 처음 만난 자형되는 분도 함께 나왔다. 우리는 생애 두 번째 만나는 사이이다. 증조부가 한 할아버지이고 할아버지는 형제분이시고 아버지는 사촌지간인 혈육인데 12,3년전에 만나고 처음이고 자형인 그 남편은 그 때 만나고 처음이다.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다. 세상은 가족이 중심이 아니라 직장이 중심이다. 살아가는 재미가 중심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먹을 거리를 구하는 일이 삶의 가운데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기막힌 현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간다.

 

금례는 나보다 열하루 먼저 태어난 누나이다. 누나라고 불러 본 일은 없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 그가 누나라는 생각은 떠나 본 적이 없다. 같이 컸다고 해서 마음으로라도 혈육간에 형제의 서열을 구분할 줄 모르는 것은 금수와 다를게 없다. 그게 혈육이다. 하루라도 먼저 태어나면 그가 형이고 누나이다. 그 부군은 당연히 자형이 된다. 한 번도 그분을 남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런데 생각이 왜 언어로 표출되지 않는가? 자주 만나지 않아서 그렇다.

  

육촌 세 자매들이 마련한 전원주택은 안온한 자리에 있다. 서로 강경시장이 있고 남으로 너른 들판이다. 뒤로는 금강이 흐른다. 금강에는 백제의 혼이 도도히 흐르고 길에는 계백의 기운이 함성을 지른다. 그래서 저 길이 계백로이다. 마당에는 잔디가 예쁘게 자랐다. 집이 들어 앉은 자리 만큼 잔디가 깔리고 나머지는 남새밭이다. 모두가 정갈하다. 그 옛날 넷째 당숙이나 당숙모처럼 깔끔하고 따뜻하다. 누나들이 가꾸어온 집에서 당숙부모의 냄새를 맡는다. 나도 어머니를 모시고 들어서는 것처럼 마당이 정겹다.

 

내가 도착했다는 얘기를 들었는지 큰누나(금자) 둘째누나(금주)가 나오셨다. 친동생처럼 반가워 한다. 집안에서 나에게 오빠라고 불러주던 유일한 여동생 희옥이가 없어 마음 아프다. 희옥이는 당숙의 막내딸이면서 버릇없이 제가 좋아하는 곳으로 먼저 갔다. 막내들은 부모 생각을 하지 못하고 제 생각만 한다. 방으로 안내 되었다. 시원하고 깔끔하다. 큰누나는 예전 모습처럼 그렇게 너그러운 눈빛을 보내고 작은 누나는 다감하고 따뜻한 웃음으로 맞이한다. 큰 누나는 우리 막내누나하고 둘도 없는 친구이다. 내게 누나인 금례는 환갑이 지났어도 말마다 장난스럽다. 그래서 더 정겹다.

 

우리는 소나기를 퍼붓듯 서로의 안부, 살아온 이야기를 묻고 답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특히 내가 손자를 보았다는 것이 더 큰 화제이고 웃음 꽃을 피웠다. 나는 그게 좋아 말을 더 많이 했다. 아마 한 삼년치 말을 한꺼번에 해 버린 것 같다. 수박을 내와서 갈증이 가시고 입에 침이 생기자 더 많은 이야기, 더 많은 웃음을 웃었다. 큰누나 결혼하고 당숙이 고향에 사실 때 보고 처음이다. 그때 자형도 만났었지. 작은 누나는 내가 대학 다니던 시절 누나가 처녀시절에 인천에서 만나고 처음이다. 그러니 실로 40년이 넘었다. 할 말이 얼마나 많겠는가? 

 

자형은 점심 먹을 자리를 마련하느라 밖으로 나가고 나는 내가 가져간 책을 나누었다. 큰누나 작은 누나에게는 내 수필집 『손맛』을 금례에게는 먼저나온 수필집『축 읽는 아이』그리고『손맛』칼럼집『여시들의 반란』을 주었다. 신기하다. 참으로 신기할 것이다. 읽겠지. 꼭 읽겠지. 누군가 삼겹살이 모자라서 어쩌느냐고 했다. 내가 삼겹살을 조금 사왔노라고 했다. 생고기 삽겹살, 정말 그걸 사오기를 잘했다. 모두 마음이 통했다고 좋아했다.

 

내가 그 삼겹살을 사느라 강경읍내를 얼마나 헤맸는지 알기나 아나? 지나치기만 했지 한번도 들어가 보지 않은 강경읍내에 삼겹살을 사러 들어갔다. 집앞 하모니마트에서 살 수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시골 돼지 특히 흥수와 성충과 계백의 혼이 어린 논산 돼지가 더 맛있을 것 같았다. 강경읍내는 온통 젓갈시장이었다. 거기서 푸줏간을 찾는 내가 바보인것 같았다. 할 수 없이 시장 근처에 가서 길가 아무데나 주차하고 청과물, 지물포, 자장면집이 있는 골목으로 깊숙히 들어가니 드디어 육간이 보였다. 인심좋은 주인은 삼만원어치를 많이도 주었다. 거기서 또  273-3 번지를 찾아 가느라 읍내 골목을 몇 바퀴 돌았다. 그리고 겨우 약속시간인 10시 50분을 6분 넘겨 도착한 것이다. 그래도 잘했지 않은가?

 

포도나무 아래 들마루로 자리를 옮겼다. 점심상은 이미 차려졌다. 나는 그냥 상추쌈에 삼겹살이나 구워먹으면 되지 했었다. 거기에 집된장 쌈장이면 금상첨화라 생각했다. 그런데 온갖 남새가 가득하다. 집된장은 물론이고 각종 나물 장아찌가 가득하다. 기막히다. 고향에서 차린 점심상 같다. 지겹게 가난했지만 음식 인정만은 두터우셨던 당숙모가 내려보낸 반찬인가? 대부분 내 친구인 금례가 담근 장아찌들이라고 했다. '기특하구나' 하는 생각은 속으로만 했다. 그가 누나이니 동생에게나 쓰는 말을 쓸 수가 있나.

 

상추, 들깻잎, 당귀, 민들레, 쑥갓, 개똥쑥, 오가피잎, 마늘쫑 장아찌 취장아찌, 머위장아찌, 무장아찌, 고구마줄기무침, 밀가루풋고추찜, 애호박볶음, 비름나물무침, 순무김치, 곱게 발효되어 고졸한 맛을 내는 묵은지, 새우젓 등등 거기에 담북장, 된장, 빠금장 섞어 만든 쌈장, 내가 사온 생고기 삼겹살……. 밥은 논산 황산벌에서 계백장군의 의기를 빨아올려 농사 지은 강경쌀이다.

 

밥은 이야기만큼 구수하고 이야기는 밥만큼 차지게 두어시간 식사가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소주가 한 잔 있었으면 비단에 꽃인데, 우리 핏줄이 누구나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에 아예 생각조차도 못했나 보다. 나는 소주도 세 잔까지는 마십니다. 그걸 알아두세요 이렇게 말할 뻔 했다. 식사도 이야기도 끝나갈 무렵, 대전에 사시는 큰 자형께서 오신다고 한다.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일어서려 했는데 핑계가 생겼다. 새로운 화제로 두 시간은 더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마침 인천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작은 누나를 태우고 청주까지 오게 되어 헤어짐의 섭섭함을 덜 수 있었다. 청주시외버스정류장에 누나를 내려 드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간 왠지 서먹했던 혈육의 정이 새삼 더 두터워졌다. 다음에도 불러 주면 삼겹살을 사가지고 뛰어 가리라. 좋다. 참 좋다. 옛날이 그립다.

 

점심은 이렇게

쌈 남새와 함께 나온 다른 반찬들-신문지가 깔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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