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답사/등산과 여행

무작정 떠난 여행- 1.도피안사

느림보 이방주 2013. 8. 4. 17:35

피안은 어디일까

 

2013년 7월 30일

 

작정도 없이 목적도 없이 떠나는 여행의 첫 행선지는 도피안사(到彼岸寺)이다. 아파트 마당에서 네비게이션에 문득 도피안사를 쳤다. 그러나 피안에 이르고자 하는 욕심은 없었다. 그냥 막연하게 그렇게 쳐 본 것이다. 도피안사에 대한 사전 지식도 없이 그냥 대충 철원 어디라는 것만을 아는 것이 전부였다.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집에서 9시 30분쯤 출발하였는데 길은 정체도 지체도 없어 끊임없이 달렸다. 

차가 작은 도시를 지나고 드뭇한 인가를 지나고 이제는 인가도 없고 군부대만 이웃 마을 나타나듯 연속으로 이어지는 도롯가 막국수집에서 6000원짜리 막국수로 점심을 에웠다. 점심 식당에서 나와 다시 길에 들어 섰을 즈음에 도피안사라는 이정표가 보이기 시작했다. 지도에는 어느 만큼에서 주민등록증을 준비하고 군인들의 검문에 응해야 한다고 되어 있지만, 어느새 차가운 냉전의 시대도 지났는지 길가 초소에서 경례를 붙이는 군인은 있어도 검문은 하지 않았다.

 

도피안사 주차장에는 트럭만 한 대 서 있었다. 세상에 피안을 그리워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모양이다. 아니면 피안의 존재 자체에 대한 믿음이 확연하지 않은 까닭일까? 안내문을 보니 절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가 보다. 한 300m쯤 걸어 올라갔다. 입구에서 바라보이는 가람은 아담하기 그지 없다. 몇 채의 절집이 안온하게 배치되어 있다. 마치 어린날 골방에 혼자 숨어들었을 때처럼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작은 언덕이 어머니의 손길처럼 절을 감싸 안고 있어서 그런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절을 감싸고 있는 작은 언덕이 피안인가 언덕안에 절집이 피안인가?

 

천왕문을 지나 절 마당에 이르니 소박한 삼층 석탑이 우리 내외를 맞는다. 서기 9세기에 건립되었다는데 그 사이 얼마나 많은 풍파를 지냈을 것인가? 여기 저기 상처가 그 험란한 역사를 말해 준다. 6.25 이후 한동안은 민통선 안에 있어서 군인들이 이 절를 관리했다고도 하니 억세고 어린 군인들에게 부처님이 겪었을 고초가 생각할수록 가슴아프다. 그 후에 민간인 통제구역에 민간인이 자유롭게 드나들고 마을이 생기기도 하는 바람에 나도 여기까지 올 수 있는 것이다. 아픔을 겪은 삼층 석탑은 낙수면이나 옥개받침은 온전한 그대로이다. 우주는 따로 세운 것이 아니라 신석(身石)에 그대로 새겨졌다. 신석에는 어떤 문양도 새기지 않아 밋밋하다. 이 정도로 온전하게 유지된 것만도 우리 민족의 착한 심성의 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극락보전은 남아 있는 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는지 그 모습이 고고하다. 본래 극락전이었는데 어느 사리가 발견되어 극락보전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대적광전은 본래의 자리에 허물고 개축을 계획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절집이 있던 자리는 텅 비어 있고 주변에 기와가 있고 재목이 비닐 포장으로 덮여 있었다. 임시 건물에 대적광전이라는 현판이 볼썽사납고 이 절의 주불인 유명한 철조 비로사나불 좌상이 험한 임시 거처에서 수도하고 있는 모습이다. 창건 당시 도선국사가 철조 비로사나불을 주조하여 철원의 안양사에 모시려고 했는데 운반 도중에 사라졌다고 한다. 그래서 사방으로 수소문하여 찾아보니 바로 이곳에 와 있어 여기에 도피안사를 창건하였다는 옛 이야기가 전한다. 부처님 스스로 정한 거처이니 오늘의 고초에 누구를 탓할 수 있으랴. 아니 비로사나불이 모셔진 자리가 곧 대적광전이 아니겠는가? 집의 좋고 나쁨이 해당이나 될까? 아내가 삼배를 올리는 동안 밖에서 들여다 보니 검게 변한 부처님은 비로사나불의 일반적인 수인인 지권인을 하고 있었다. 지권인은 理와 智가 둘이 아니고 하나이며, 중생과 부처가 본래 하나이고, 깨달음과 미혹함이 하나임을 의미한다고 한다. 존재하는 부처님의 실체가 아니라 부처님 가르침의 이치를 형상한 부처님이다.

 

경내는 고요하고 새소리만 가득하다. 연못에는 연꽃이 피고 언덕에는 아무데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원추리꽃 같은 흔한 꽃들이 어우러져 피어 있다. 나무는 무성하게 잎을 피워 녹음이 짙고 요사체에서 나오는 스님은 한가하다. 대개의 절집에 불법을 상징하는 꽃만 피우고 있다든지 품위 있는 꽃이나 나무만 있는 것과 다르다. 피안은 그렇게 아무나 이를 수 있다는 가르침인가? 피안은 깨달음에 이른 세계인가? 아니면 중생을 안온하게 품어 주는 세계인가?  "이것이 무엇인가?"  의문은 의문을 낳고 어설픈 해답도 다시 의문을 낳는다. 내가 바라는 피안은 어디인가? 그런 깊은 생각을 하는 중에 '자동차를 피하라'는 아내의 핀잔을 들었다. 속으로 '후훗'하고 웃음 날렸다. 피안은 함부로 달려드는 자동차를 피하는 것이로구나. 아니 함부로 달리는 자동차에 의해 팔자보다 일찍 피안의 세계롤 가게 되는 건 아닐까?

 

갈 길을 재촉하며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중에도 의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부르릉' 차에 힘을 넣었다. 그렇구나. 피안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구나. 내 마음에 있는 것이구나. 도피안사 주불인 비로사나불이 일러 주지 않았는가? 현실과 피안이 다른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맞아 여기는 곧 저기가 되고 저기는 바로 여기가 되는 것이지 않은가? 

 

 

천왕문 앞에서 바라본 도피안사 전경

 

대적광전 임시 건물에서 본 삼층석탑과 요사채

 

대적광전 건립 예정지- 돌로 쌓은 축대가 아름답다.

비로사나불을 모셔놓은 임시 건물인 대적광전